134화. 불의 하급신
태월은 영혼 수집기를 열어 200개의 정화된 영혼을 꺼냈다.
영혼 수집기가 두 개였지만, 많다고 좋은 건 아니었다.
태월의 리드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최적의 숫자가 중요했다.
천도를 해주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이 영혼들은 두 가지 부류였다.
천도를 원치 않거나 오염되었던 영혼들인데, 정화를 거치게 되어 맑은 영혼이 된 상태다.
새로운 육체가 생긴다면, 그때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흠, 이 작전은 일본에 이어 두 번째인데, 이들의 영혼을 훼손시키는 것이 아니니 편하게 생각하자. 악신을 해치우는 것이니, 이들에게도 선업은 조금 생기겠지.’
200개의 영혼을 20개씩 짝을 지은 후, 영혼 에너지로 감싸 당구공만 한 크기로 만들었다.
10개의 당구공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상태로 대기 중이다.
하급신이 된 불의 정령은 괴조의 모습으로, 부리와 발톱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종종 입에서 뿜는 불의 공격도 있었지만, 같은 불의 성질을 지녀서인지 그 타격은 효율성이 적어 보였다.
태월이 당구공 하나를 손에 쥐고 야구공 던지는 투수처럼 와인드업 동작을 취했다.
키킹에 이어 스트라이드로 다리를 벌리면서, 릴리스 포인트를 끌고 나오더니 팔로우 스로를 했다.
-쉬 이익!
투수의 전력투구 거리는 18.44m가 기준이 되겠지만, 지금 태월과 그 괴조의 거리는 약 30m 정도다.
3루수와 포수와의 거리 27.43m 정도의 거리인 셈이지만, 에너지를 두른 태월의 팔은 충분히 감당하고 남는다.
그리고 연이어 와인드업을 재개했고, 9개를 연속해서 던질 계획이다.
불새로 여겨지는 괴조를 공격 중이던 하급신은 자신을 향해 무엇인가가 날아옴을 감지했다.
공격 방향을 틀어 날아오는 무엇인가를 쳐내버렸다.
-캉!
압축된 영혼 에너지 구체와 발톱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였다.
그런데 쳐내고 나니 또 다른 게 쏘아졌음을 알게 된 하급신은, 공격 상대를 태월로 바꾸었다.
곧바로 다가오는 걸 다시 쳐내고 나니, 3번째가 날아오고 있다.
가소롭다는 눈빛을 보이며, 방어와 동시에 공격 자세를 취하려던 하급신은 순간 당황했다.
완전히 목숨을 끊지 못했던 괴조가, 그의 목을 두 발로 껴안으며 발톱을 박은 것이다.
‘헉! 이 새 새끼가 잠시 숨을 붙여놨더니, 죽어가면서도 지랄하네.’
괴조의 다리를 두 발로 잡아 틀며, 가까이 다가온 구슬은 덥석 삼켜버렸다.
두 번의 방어 때 별다른 위험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그냥 삼켜지고, 끝이네? 크크, 별 시시한 공격이군. 돌팔매질이라도 하는 건가? 기운이 꽤 있어 보이기에 뭐라도 있는 줄 알았구먼!’
착실하게 다 죽어가는 괴조의 두 다리를 꺾어가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구슬은 전부 삼켜버렸다.
‘구슬에 기운이 담겨 있는데? 나에게 왜 먹을 걸 주지? 뭐지? 그런데 이 자식은 왜 이리 안 죽어?’
몇 번을 반복하던 하급신은, 태월의 진의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집중은 방어보단 괴조의 숨을 끊는 데 가 있었다.
마지막 숨통을 끊으려 괴조의 심장에 발톱을 박아 넣으려는 순간, 하급신의 동작이 흐트러졌다.
‘누구? 나? 아니 나보고 물은 거야! 에이, 그게 아니라 나거든? 야! 이제 이거 내 몸이야? 나 새는 싫은데? 새면 어때! 이건 내 몸이야. 넌 다른 데로 가! 야! 일단 저 까만 놈이 원주인 같다! 힘을 합쳐 이놈부터 몰아내고 그때 다시 주인을 정하자고! 어때? 좋아 좋아! 자자, 밀어붙여!’
하급신의 머릿속으로 백여 개의 영혼들이 수다를 떨며 아우성쳤다.
날개 움직임을 멈추었다간 용암에 처박힐 것이기에, 혼란함 속에서도 의지를 집중해 용암 밖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용암 속에 빠진다고 해도 죽지는 않는 하급신이지만, 육신의 훼손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불의 정령 본체였다면 용암 속이 부담 없었겠지만, 하급신으로 변하면서 몸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알을 먹거나 이 불새의 심장을 먹으면, 그 정도 문제는... 야! 네가 그걸 왜 먹어! 넌 나가기나 해! 못생긴 검둥이! 빨리 꺼져!’
하급신은 또 다시 정신이 흐트러졌다.
태월은 하급신의 동작이 연이어 멈칫거리는 순간, 칼을 꺼내 에너지를 둘렀다.
그리고 용암 밖으로 완전히 나오는 순간을 기다려 그에게 달려들었다.
‘아, 저놈이 이걸 노렸구나! 간악한 놈! 야! 간악한 놈은 너잖아! 야 다들 힘을 합쳐 정신을 집중해 날개를 멈추자!’
날개의 움직임이 점점 부자연스러워졌다.
거기에 더해 같이 딸려 나온 괴조의 몸체는, 하급신의 동작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는 태월의 칼에 찔려가면서도, 괴조부터 몸에서 떼어냈다.
괴조의 죽음을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20분간의 공방 속에 하급신이 태월에게 날린 건 불덩이 5개가 전부였다.
발톱의 공격은 전부 아리랑이 막아내기에, 결정적 유효타를 터트릴 수 없는 상태다.
그로 인해 태월의 십여 번 칼질에 하급신의 날개가 반복해 베어져 나갔다.
하급신이 공격과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나 정신이 혼란해 집중이 자주 끊기기 때문이다.
“으아! 이것들은 대체 뭐야! 너! 뭘 하는 놈이야! 넌 특별히 살려줄 테니 이것들을 빼내 가!”
“꼴에 자존심은! 싫은데? 이거나 더 먹어라!”
칼이 연이은 왼쪽 날개의 공격에 이어 남아있는 근육을 마저 베어버렸다.
공중에 떠서 휘청대다가 기우뚱해지며 몸체가 땅바닥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감히! 나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 거 같냐?”
“시끄러워 이 자식아! 어디서 허세야!”
태월은 하급신에게 문신을 써보려다가, 아직은 시기상조임을 느꼈다.
‘이놈 일본의 그 하급신보다 강한 거 같네? 하급신 중 상급 정도 되려나? 더 지쳐서 집중하지 못할 때 삼켜야겠어! 미리 패를 보여, 괜히 도망이라도 치면 곤란하잖아.’
몇 번의 드잡이질을 반복하던 중에 태월의 응원군이 도착했다.
“태월! 우리가 돕겠어!”
“와! 큰 참새다!”
아쿠와 함께 아루가 정령 본체로 도착했다.
응원군이긴 해도 태월은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나마 다행은 아진과 아샤가 아직 도착하기 전이란 것이다.
‘아쿠는 물의 기운으로 저놈의 힘을 약화시키도록 하고, 아루는 용암 속에서 알을 찾아내서 빼돌려! 용암 위에서 싸운 것을 보니, 그 속에 있을 듯해!’
아쿠와 아루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태월은, 그 전보다 더 과감한 공격을 이어갔다.
불의 하급신 격인 그에게도, 상극인 물의 정령이 펼치는 원거리 공격은 굉장히 성가신 것이다.
물의 정령의 공격을 받게 되자, 하급신의 정신이 더 없어졌다.
“대체 물의 정령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감히, 겁도 없이 불의 땅을 침범하다니!”
“호호호! 꼴에 하급신도 신이라고 지금 건방을 떠는 거야? 이거나 먹어라!”
아쿠가 빙빙 돌며 공격을 하더니, 태월과는 반대 방향에 자리 잡았다.
결국 양방향의 공격에, 하급신은 정신없는 방어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용암 속으로 침투했던 아루가, 알을 찾아내 용암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었다.
예전부터 정령 본체로 물체를 움직이는 연습을 자주 했었던 아루였지 않은가.
지금도 10kg이 넘는 물건은 정령체로는 들기 힘들지만, 저 알은 그 절반인 5kg이다.
“호호호! 야! 참새! 이거 이제 내 거야! 그런데 이걸 왜 그리 노린 거야? 궁금하네.”
정신없는 방어 속에서 아루의 짓을 발견한 하급신은 다급해졌다.
“으아아! 너도 불의 정령이면서 감히 나에게 대항하려 해? 흠흠! 그래도 널 어여삐 여겨! 제1 권속으로 임명할 테니 당장 나에게 가져와! 내 권능도 일부 전해주마!”
“오오! 정말요? 그런데 이 알이 그 정도 가치가 있나요? 그냥 후라이 해 먹으면 딱 맞는데! 뭘 알아야 가져가든 말든 하죠. 일단 깨서 반만 가져갈까요?”
“아, 안 돼! 그 알은 불새의 어미보다도 더 중요해! 무려 이 불의 땅의 절반에 가까운 힘이 응축되어 있어. 용암을 옮겨 다니며 저 어미가 그 힘을 모은 거지. 감히! 나와 맞먹는 힘을 가진 후손을 만들어 내려던 꿍꿍이였지! 컥!”
간신히 방어하며 아루를 꾀던 하급신에게, 태월과 아쿠의 결정타 몇 방이 가해졌다.
“오! 진짜 귀한 거였군요.”
“그러니 내게 가져오너라. 나의 권속아!”
“권속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랑 난 국적이 다르거든? 멍청하긴! 설명 잘 들었어. 하여간 이건 내 거야!”
알의 비밀까지 털어놓게 된 하급신은, 속았다는 생각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뇌의 과부하가 가중되자, 머릿속 백여 개의 영혼은 무당처럼 더 널뛰었다.
한쪽 날개마저 제 기능을 잃어버리고, 몸은 바닥에서 겨우 버티게 되었다.
“오빠! 우리도 도울게!”
아진과 아샤가 아쿠의 뒤로 나타난 것이다.
“헉! 너희는 뒤로 물러서!”
다급한 태월의 외침에 하급신의 눈이 빛났다.
이 파티의 약점을 찾아낸 것이다.
아쿠 방향으로 모든 힘을 쏟아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아리랑이 더 빠르게 점프하며 아진과 아샤의 앞을 막아섰다.
하급신은 그로 인해 태월과는 완전히 등을 지게 되었고 말이다.
다급했던 말과 표정과는 다르게, 태월의 입가는 미소가 감돌았다.
‘후훗, 아진과 텔레파시 한 효과가 나타나는군. 하급신 치곤 머리가 나쁜 편이야.’
왼손을 뻗으니 도깨비 입이 튀어나오며 하급신의 뒤를 쫓았다.
아리랑의 저항을 버티며 전진하던 그는, 그 뒤를 덮치는 쫙 벌어진 도깨비의 입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못 한 채 삼켜져 버렸다.
“와! 잡았다! 잡았어!”
“언니! 우리가 참새를 잡았어!”
신이 난 아루와 아샤가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주변을 둘러보던 아쿠가 괴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는 괴조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배를 갈라 심장을 꺼냈다.
“태월? 이거 양기가 엄청나!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거 같아. 호족의 남자 조상이 취했던 그 영초 정도는 되지 않을까? 불의 하급신 기운은, 문신은 몰라도 태월의 몸이 감당하지 못할 거 같은데?”
“문신에게 흡수하지 말고 당분간 보관만 하라고 전할게. 일단 두고 보지 뭐.”
“그럼 이 불새의 심장은 캠프로 돌아가서 복용하는 거로 해. 공간 배낭이면 신선도 유지는 충분하잖아.”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아쿠가 전해주는 심장을 공간 배낭 속에 보관시켰다.
“태월? 저기 불새 시신도 함께 보관해. 쓸모가 많을 거 같아. 그리고 저 상태가 사람들에게 눈에 띄어선 좋을 게 없어. 괜히 시끄럽기만 하잖아.”
아카가 전해주는 인공위성의 정보에선, 이곳을 오르는 등반팀은 이틀 후에 도착 예정이었다.
심장이 사라진 괴조에 대해서 언론이 떠들면, 먼저 출발했던 태월 일행의 흔적이 잡힐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괴조의 시신을 공간 배낭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을 떠나 캠프로 이동했다.
내려오는 길은 마음이 홀가분해서인지 다들 표정이 밝으면서도 오묘했다.
태월은 하산에 바빠 그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