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캄차카 원정대 (3)
태월은 아루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 주었다.
“위험하면 너는 빠져있어!”
“으익! 무서워서 떠는 게 아니라, 너무 화가 나서 떤 거야! 아니 동족을 그렇게나 잡아먹다니! 절대 살려둬선 안 돼!”
“그래, 꼭 없애 버리자!”
태월은 새로 귀속된 정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원래 모든 화산에는 불의 정령이 있나?”
태월의 말에 뒤에 있던 아루가 나섰다.
“그 화산의 불의 정기가 그만큼 모였을 때나 가능하지. 흔하진 않아. 이곳 캄차카가 특이한 것이야. 그래서 이 지역을 불의 땅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봐. 지금 우리 발밑 땅속으로도 용암은 흘러가는 중이야.”
아루의 말에 아샤의 몸이 움찔거렸다.
“호호, 아샤 걱정하지 말아. 지표면을 뚫을 정도는 아니야. 여기서 한 1km는 더 올라가야 흐르는 걸 느끼게 돼!”
“대장이 잠시 자릴 비운 거라면, 나머지 여섯은 어디에 있지? 그들부터 우선 구원하자.”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런데 그중 일부는 이미 혼탁해져서 순순히 따르진 않을 거예요. 잘못하면 대장에게 텔레파시로 알릴 수도 있고요.”
“음, 대장이 성질 급해서 덤비면 그나마 낫지만, 도망가면 곤란하겠는데?”
“그럼 내가 불의 정령 본체로 변해서 이 아이랑 다녀올게. 다른 땅에서 온 정령 정도로, 어리숙하게 보이면서 도망치면 따라올 거야. 내가 한 연기 하잖아?”
최악의 경우만 아니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을 거 같아 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근처까지 가서 숨어 있을게. 그리로 데려와. 여기까지 오면 시간만 낭비되어,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셋은 스노모빌 한 대로 출발했다.
두 정령체를 품에 둔 채, 태월은 꼬마 정령의 요청에 따라 움직였다.
“오케이. 여기서 기운을 감추고 기다릴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다 데리고 와도 상관없어! 다녀와!”
“네, 잘 유인해 올게요.”
태월은 일본에서 하급신을 처지하고 얻은 변신 스카프를 둘렀다.
머릿속으로 바위 이미지를 그리자 그는 외형상 바위가 되었다.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아루가 불덩이들을 피해 도망치면서도 약을 올리고 있었다.
불덩이들이 바위를 지나가는 순간, 바위에서 도깨비의 커다란 입이 튀어나오며 불덩이들을 순식간에 집어 삼켜버렸다.
-슈아악! 후릅!
뒤에서 튀어나온지라, 불덩이들이 눈치챌 사이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사라졌다.
“아하하! 이것들 그대로 먹혔네. 어때? 내 연기 솜씨가?”
“오, 진짜 이젠 조연급은 되겠는데?”
“잉? 좀 더 써! 조연이 뭐야 조연이! 주연급은 되는 거지!”
“에구, 그래 주연 해라 주연 해! 그런데 대장은 아직도 없던?”
“기척이 전혀 안 느껴지던데? 얘들이 다였어.”
고개를 끄덕여준 태월은 스노모빌을 타고 원래의 자리로 무사히 복귀했다.
중간쯤 내려오는 중에 문신이 정령들을 내뱉는 바람에 잠시 지체되었긴 했지만.
“오빠? 성공했나 봐? 불덩이들 가득이네.”
“하하, 뒤를 잡아챘지!”
“오호호, 다 이 몸 덕분이라고! 내가 한 연기 하잖아.”
“아루? 수다 그만 떨어. 본체 해제하고, 옷부터 다시 입도록 해.”
“알았어. 그런데 얘들에게 줄 요괴 능력이 모자라서 사람으로 변신을 못 시키겠네? 에이, 번듯한 꼬봉들 만들려 했는데 아깝다.”
아루가 인간체로 다시 변신하고 나오자, 태월은 불의 정령들에게 이름을 하나씩 지어줬다.
“불의 크기 대로 줄을 서봐! 왼쪽부터 지어야겠네. 아루의 후배들이니 아루의 루자를 따서 루가, 루나, 루다, 루라, 루마, 루바, 루사다!”
일곱 번의 빛이 번쩍이며, 그들은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되었다.
“오빠? 가나다라마바사? 너무 막 짓는 거 아냐?”
“일곱이나 되기에 어쩔 수 없어. 그래도 구분하기 쉽고 부르기도 편하잖아.”
일곱의 불덩이가 태월의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데, 아루가 그들을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하는 폼이 교육을 하려는 것이다.
20분 정도가 지나서야 그 정신교육과 적응훈련이 끝이 났다.
“제일 큰 루가는 이리 와서 보고해. 대장이 지금 어디 간 거야?”
“네, 마스터! 대장은 분화구 정상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알을 가져오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 분화구에 무슨 알? 용암에 알이 왜 있어? 황당하네.”
“저에게만 넌지시 말해줬습니다만, 자세한 건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아루? 용암에도 알이 생길 수 있나? 정상 근처에 호수라도 있나? 물고기 알인가? 호수가 있다는 소린 못 들었는데.”
“음, 나도 잘 모르겠는데? 오래된 불의 정령이라면 모를까. 내가 알 리 없잖아. 오늘 불의 정령도 나 외엔 처음 보는 건데.”
“시간상 늦었으니 오늘은 이곳에서 캠핑한다.
여기부터 스노 라인이니 이곳이 적당하겠어. 이곳에 파이널 캠프를 설치하자.”
해는 져서 어둑해지고 있었다.
태월은 주변을 살펴 예전에 캠프를 설치했던 곳으로 보이는, 평평하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냈다.
그리고 공간 배낭에서 10인용 텐트와 침낭 그리고 코헬 등을 꺼냈다.
“와 우리처럼 패킹 배낭도 없이, 편하게 등반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대형 장비들도 다 가지고 다닐 수 있으니, 공간 배낭이 좋긴 좋네. 이거 에베레스트 8,848m 등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불의 요정 아루, 세계 최고봉에 오르다! 라고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될지 누가 알아?”
“그래 불의 요정! 아루는 꼭 가봐라. 난 그런 데는 관심이 없어서 말이야. 그런데 모래 요정 바람돌이랑 친구냐?”
“에이, 태월은 낭만이 없어, 낭만이!”
바닥을 정리한 후 텐트를 팩을 받아서 단단히 고정했다.
와이어로프를 턴버클로 돌리며 양쪽을 당겨 텐션을 유지했다.
와이어 고정을 위해 와이어 클립도 사용했다.
“이거 너무 거창한 거 아냐? 텐트 위에 아예 천막을 치는군!”
“하하, 우리도 다들 초보 아니냐? 그러니 뭐든 단단해야지! 장비는 많으니 다 써먹는 거지.”
낄낄대며 캠프를 차리는 태월 일행은, 이곳 등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힘들게 등반해서, 정상 정복하려는 마음을 먹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캠프 완성 후에 저녁 식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각종 싱싱한 식재료들이 동원되었고, 일류 쉐프 수준을 지닌 아쿠가 주방장을 맡았다.
이류 쉐프쯤 되는 아진과 아샤가 그녀를 도우며 근사한 만찬을 차렸다.
“호호, 이거 뭐 산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아니네. 유명 레스토랑급인데?”
설희의 칭찬에 요리에 참여했던 아쿠와 아진 그리고 아샤가 방긋 웃는다.
“맛있게들 먹어주세요! 팁은 기본입니다.”
“하하, 알았어! 주방장 아쿠에게 200달러! 부주방장 아진과 아샤에게 100달러!”
“난 왜 안 줘? 난 서빙인데! 원래 서빙에게 팁을 흔히 주는 거거든?”
“그럼 넌 굶어! 서빙이 손님이랑 같이 먹는 게 어딨냐?”
“에잇! 그럼 나도 손님!”
즐거운 식사를 겸한 수다는 2시간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 밤은 지나갔다.
다들 숙면을 한 상태서, 특이하게도 아루가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새벽 4시 기상 알람이 울렸다.
제일 먼저 눈을 뜬 태월은 늑대족의 호흡법으로 몸의 컨디션을 끌어 올렸다.
한둘씩 일어나며 다른 이들도 태월을 따라 했다.
“자 다들 간단히 식사하자고! 아침은 어제 남은 된장국에 김밥!”
“에이, 어제저녁이 그립네.”
식사를 마친 태월 일행은 떠오르는 태양을 감상했다.
“아, 이놈이 언제 내려올지도 모르는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쩝, 결국 어쩔 수 없이 정상까지 가야 하는군. 다들 스노모빌에 탑승해!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분화구까지 간다. 제일 중요한 게 안전이라는 걸 명심해!”
“오케이!”
“아진과 아샤는 정령 둘씩 데리고 가! 불의 기운을 알아서 흡수해줄 거야.”
넷을 지정하자 그들은 아진과 아샤에게로 날아갔다.
“오빠, 얘들이 알아서 보온도 도와주는데?”
“오, 머리들은 좋은 편이네. 자 출발하자!”
-부릉! 부릉! 부아앙! 콰콰콰콱!
5대의 스노모빌에 시동이 걸리고, 태월 일행은 위로 향해 전진했다.
“아샤! 전방 10m 크레바스 조심해! 왼쪽으로 돌아가! 아쿠? 옆으로 불길 솟으니 거리를 띄우고 전진해!”
5대의 스노모빌에는 스피커들이 켜져 있어서, 태월의 지시에 따라 일행은 위험도를 줄여나갔다.
안전을 우선하는 전진인지라, 3번을 쉬었고 두 시간가량이 되어서야 정상 근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스탑! 시동 끄고 용암이 없는 곳에 다들 주차시켜! 이제부터 걸어서 올라간다. 이곳에서부터 그 대장인가 하는 놈의 기운이 미약하게 감지돼! 정령들 다섯은 이곳에서 대기하면서 불로부터 스노모빌을 보호하도록! 그리고 둘은 아진과 아샤를 따라 같이 간다!”
“네! 마스터!”
루가라고 붙여진 첫째 정령이 대답했다.
그리고 정령들에게 위치지정을 해준다.
아리랑도 변신을 풀고 백호로 몸을 드러냈다.
“내가 정찰 다녀올 테니 전진하고 있어!”
“조심히 다녀와!”
태월은 백호의 등에 타고는 분화구 쪽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온 걸 알고 있을 텐데도, 가만히 있는다고? 조금 이상한데?’
태월은 목에 두른 스카프를 변형시켜 방호복으로 만들었다.
아리랑은 발소리를 죽이고 올라가는 중이다.
그렇게 전진하길 30분 정도가 되자, 푹 파인 분화구가 눈에 들어왔다.
태월은 아리랑에게서 내려서 몸을 엎드렸다.
그 순간 백호가 눈 쌓인 곳으로 가더니 흐릿해진다.
‘어라? 아리랑이 은신술이 있었나? 눈 색에 동화돼버리네.’
잠시 백호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세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눈에 영혼 에너지까지 넣어가며 탐색하던 태월에게, 드디어 무언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조금씩 그 방향으로 전진하던 태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뭐지?’
보글보글 끓고 있는 죽 같은 용암 위에서 붉은 괴조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왼쪽은 기운으로 보면 그 대장일 거고, 오른쪽 저 새는 뭐지?’
불의 정령에서 하급신으로 변모한 괴조에 맞서 싸우는 새는 덩치가 조금 작았다.
3m쯤 되는 새와 2m 정도 되는 새의 싸움이었는데, 2m 정도 되는 새가 많이 다친 상태였다.
필사적으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양새다.
그에 반해 3m의 새는 부상은 없었으나, 상대가 워낙 집요해서 승부에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음, 저 새는 결국 살진 못하겠네. 지금 구한다고 해도 살아나긴 어렵겠어. 눈 한쪽도 다쳤고, 장기 일부가 손상된 상태네. 저렇게 필사적인 이유가 혹시 그 알이란 것 때문일까? 시간이 없을 거 같네.’
태월은 그나마 지금이 공격하기 최적의 상태라 여겨졌다.
물론 중급신인 문신을 믿고 있지만, 굳이 유리함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여겼다.
‘그리고 이 정도면 우리 일행의 도움 없어도 충분한 거 같고. 그 역할은 저기 저 새가 대신해주는 상황이니. 자 이제 가볼까? 크크, 이럴 땐 뒤치기가 최고지! 어디 맛 좀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