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캄차카 원정대 (2)
아루가 아샤를 빤히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무슨 소리야? 아쿠도 가능하거든?”
“앗! 안 돼요! 제가 할 거예요.”
“아이고 어른도 아직 아니면서!”
“저, 글로벌 나이로는 17세지만, 한국 나이로는 19살이거든요? 그리고 전 이미 성장할 만큼 다 했다는 거 알잖아요?”
아샤의 말이 틀리진 않기에 아루는 딴짓을 한다.
괜히 같이 언쟁해봐야 또 아루 몸 체형에 대해 공격당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흠 준비는 거의 했는데 스노모빌만 끝내면 되겠어. 역시 캐터필러가 달린 차량으로 해야겠지?”
사륜구동차가 편리하긴 하지만, 갈라진 언덕이나 틈새가 많고 경사진 언덕, 즉 크레바스를 달리려면 캐터필러가 달린 스노모빌이 필요했다.
무한궤도인 캐터필러로 달리는데 시속 100km까지 낼 수 있다.
눈이 자체적으로 냉각 및 윤활 성질이 있어 고속에 적합해진다.
태월은 아쿠를 통해 러시아 군용 헬기를 구입한 루트로 A-1 스노모빌을 5대 구입했다.
민간용보다는 안전이 입증된 군용이, 목적지인 빙벽의 화산에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느라 5일이나 시간 소모가 되었다.
그동안 5명이 민간에서 쓰는 스노모빌을 타고 기본 운용 교육을 받고 있었다.
드디어 눈앞에서 잘 길들인, 러시아 군용 스노모빌 5대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군에서는 1인용으로 쓰이지만, 이거 옆에 보조를 달면 2인용이 가능해져. 이거 거의 새것이야. 뇌물 쓰니 슬쩍 폐기할 중고로 팔아주더라. 호호 한국에서는 어림없는 일이지?”
“아마, 바로 잡혀갈걸?”
“역시 러시아는 달러에 약해.”
태월은 배달되어 온 스노모빌을 타고선 연습 삼아 조정해 본다.
“오, 이거 꽤 괜찮은데? 알혼섬이나 바이칼호에서 써도 되겠어. 수륙양용도 가능하군.”
“우와, 나도 타보자!”
역시나 아루의 행동은 빨랐다.
여름이라 눈밭은 없었기에, 스노모빌을 타고 바이칼호로 뛰어들려는 아루였다.
“아루, 멈춰! 가능은 하지만 테스트도 안 해보고 물로 뛰어들려 하면 어떡해? 지금 시간도 없고 하니, 그냥 땅 위로만 다녀봐. 몸에 익숙해지면 바로 헬기로 이동할 테니 다들 그리 알아. 현지에 가서 적응훈련을 또 할 거야.”
알혼섬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태월 일행은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이르쿠츠크 공항에서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츠키 공항으로 가야 하는 여정이다.
처음 계획은 헬기로 캄차카반도를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무리한 운행으로, 태월의 최적 컨디션 유지에 문제가 있기에 포기한 것이다.
샤후르타 선착장 쪽의 신 이르쿠츠크 공항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헬기를 타고 이르쿠츠크 공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안드레이 수고해.”
“아닙니다.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다들 몸조심하시고요.”
안드레이가 헬기를 운전하고 알혼섬으로 돌아가는 걸 지켜보곤 돌아섰다.
태월 일행은 이틀에 한 번꼴로 있는, 캄차카반도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진짜 여기 이르쿠츠크 공항은 너무 열악해. 국내선인데도 항로가 많지 않아.”
“신공항이 조만간 완성되니 그때까진 참아야죠. 그나마 우랄 항공에서 양쪽을 다녀주기에 다행이잖아요.”
아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눈을 감고 휴식에 들어갔다.
클류쳅스카야 화산은 등산가에게도 꽤 악명이 높은 산이기에, 일행의 리더로서 컨디션 유지가 중요했다.
잠결에 기체가 땅에 닿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뜬 태월은, 창밖으로 보이는 활주로에 비로소 도착했음을 인지했다.
“불의 땅이라고 불리는 이곳에 오게 되는군.”
“어머 일어났어? 그래도 여기가 외국에서 꼽는 러시아 관광명소 3곳 중 하나야. 우리가 그동안 신경 안 써서 그렇지, 외국에선 나름 유명하다니까.”
“아루 언니는 거의 잠도 안 잤어요. 불의 땅에 가는 거라 마음이 들뜬 거 같기도 하고.”
“호호, 맞아. 기분이 엄청 좋아. 랄랄라.”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즈키 공항에 내린 일행은, 예약해 놓은 헬기를 탔다.
클류쳅스카야 화산으로 바로 갈 계획이다.
그곳의 2,850m까지가 목적지였는데, 그 이상은 위험도가 높기에 그리 정해졌다.
“아리랑? 하늘에서 보니 어때?”
아리랑은 비행기를 전에도 몇 번 탔었지만, 늘 공간 배낭 안에서 잠이 든 상태였다.
그러니 실제로 하늘에 떠 있는 건, 스스로 처음 겪는 상황이다.
“하하, 반려동물이 그곳으로 향하는 건 처음 보네요. 비록 여름이긴 해도 정상은 밤 기온이 영하 30도 가까이 되는데, 고양이가 그 추위를 견딜까요?”
헬기 조종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리랑을 잠시 살폈다.
“뭐 알혼섬의 한겨울에도 잘 지냈으니,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야 이해가 되긴 하네요. 이 고양이가 시베리아 고양이긴 하죠. 노르웨이숲 고양이와는 조금 다르거든요.”
“그걸 어떻게 아시는데요?”
“하하, 제가 두 품종을 다 키워봤거든요.”
-끼 웨 옹! 웨 옹!
“이 고양이는 뭔가 말을 하려는 느낌이네요. 아니면 멀미를 느끼는 건가?”
“호호, 네가 뭘 알아! 라고 하는데요?”
“......”
농담 같은 진담으로 조종사 입을 다물게 하는 아루다.
실제로 아루가 저 말을 한 것은 사실이고.
시베리아 고양이는 수백 년간 시베리아 지방에 존재했던 고양이로, 골격이 크고 단단한 중대형종이다.
성장기가 5년일 정도로 길며 암수 간에 유대가 강해서, 새끼 양육을 함께 한다.
털도 3중 털로 구성돼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고양이 품종보다 상대적으로 주인을 대하는 모습이 개와 유사하다.
그리고 노르웨이숲 품종과도 유사해 가까운 근연관계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더불어 모든 장모종 고양이의 조상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기는 중이다.
그리고 아리랑은 조종사의 말대로 시베리아 고양이로 변신해 있다.
‘시베리아 호랑이라고 해서 그리 변신한 건가? 그런데 시베리아에 백두산 호랑이가 살긴 하나?’
태월도 아리랑의 고양이 품종이 뭔지를 정확히 몰랐었다.
그냥 노르웨이숲처럼 생겼기에 그렇게만 여기고 있었다.
백두산 호랑이를 영어로 시베리아 호랑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실제로 시베리아에는 그 호랑이들이 살지 않기에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여기까지입니다. 아이젠을 단단히 조여야 할 것입니다. 꼭 정상 등반에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미리 연락을 주시면 이곳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고생하셨습니다. 내려올 때 연락드리도록 하지요.”
헬기가 떠나가자, 주변을 한 번 살핀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5대의 스노모빌을 꺼냈다.
“요 주변 반경 500m를 돌아보며, 스노모빌의 현지 적응 연습을 해봐. 속도가 있으니 다들 유념하고. 아리랑은 일단 내가 데리고 탈게. 30분 후에 이곳에 다시 모이는 걸로!”
시베리아 고양이 이전에, 아루에 의해 관악산에서 불의 정기를 흡수했던 아리랑이다.
백두산 호랑이였던 아리랑이기에 추위에 강하기도 했었지만, 그 일로 이정도의 날씨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직은 불의 정령과 부딪치지 않았기에, 고양이 상태로 있는 것이다.
태월이 설희와 아샤의 안전을 위해 특별히 경호 역할로 데려온 것이다.
-부아앙! 카카캉!
스노모빌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이놈들이 어디쯤 있으려나? 인공위성의 감지로는, 그나마 이곳 산에 있을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했는데.’
태월은 스노모빌의 적응훈련을 하면서 틈틈이 주변을 관찰했다.
30분이 막 지나갈 무렵 스노모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대가 보이질 않았다.
“어? 아루는 어디 갔어? 얘가 또 딴짓하는 거 아냐?”
“아루 언니는 저기 왼쪽 능선을 타고 갔었는데? 좀 더 기다려 봐야 할 거 같은데?”
10분을 더 기다려주던 태월이, 무전기로 연락을 취해봤지만 역시나 무응답이었다.
결국 텔레파시로 연이어 신호를 보내게 되었다.
‘아루? 왜 아직 연락이 안 되냐? 무슨 일 있어? 이것도 두 번째 보내는 신호인데!’
‘아, 잠, 잠깐만! 나 무사해! 마무리할 게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줘!’
‘휴, 무슨 일 난 줄 알았잖아. 알았어! 마무리 짓고 빨리 오기나 해.’
’응! 끌고 갈게!‘
태월은 아루의 마지막 말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가볍게 넘겼다.
스노모빌을 끌고 온다는 소리로 들었기에, 그걸 고치는 중으로 여긴 것이다.
스노모빌 점검요령과 기본 정비는 이미 숙지가 된 터라, 간단한 고장은 다들 처리할 능력이 되었다.
2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아루의 스노모빌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 아루 언니다!”
“응? 그런데 아루 쟤는 뭘 안고 오는 거야? 불덩이? 어, 그게 아닌데? 헉! 정령이잖아!”
태월의 말대로 아루는 품속에 조금 붉은 색의 불의 정령을 안고 있었다.
스노모빌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눈앞에 멈췄다.
-위이잉! 윙!
“호호호! 다들 놀랐지? 내가 이 꼬맹이를 잡아 왔어.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거 같은데, 숨어있다가 나에게 잡혔어.”
“너무 스노모빌을 요란스럽게 험하게 타서 숨었던 거 아냐?”
설희의 놀림에 아루가 코웃음을 보냈다.
“흥! 날 뭐로 보고. 얘는 그 대장인가 뭔가 하는 놈이 자릴 비운 사이에 도망친 거라더라. 하여간 그놈이 나쁜 놈이 맞는 거 같아. 이 꼬맹이가 우릴 도와줄 거야. 동족까지도 괴롭히다니! 우선 얘가 기절 중이거든? 얼른 삼켜서 뱉어! 일단 정화부터 시켜야지.”
“왜 기절한 거야?”
“내 말을 안 믿고 도망을 자꾸 치길래 10분간 패줬어!”
태월은 아루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문신을 가져다 댔다.
두 주먹만 한 불덩이는 그대로 도깨비에 삼켜졌다.
“뭐, 멀쩡할 때 삼켜지는 것보다 이게 낫겠지. 깨어나면 세상이 더 밝아 보일 거야.”
십여 분이 흐르자 역시나 문신은 토악질하며 내뱉었다.
-우 웨엑!
튀어나온 건 연붉은 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뀐 불의 정령이었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을 살펴보는 중인지 두리번대고 있었다.
그러다 태월을 발견하고선 앞으로 와서 멈췄는데, 귀속이 되었다는 걸 안 것이다.
태월은 손을 들어 불덩이를 쓰다듬어 줬다.
“이곳 정령들에 대해서 설명해봐. 대장이란 놈과 그 졸개들.”
“그분, 아니, 그는 수백 년간 동족들을 대부분 삼켜 하급신이 되었어요. 지금 남은 동족이라곤 일곱이에요. 태어난 지 십 년 이내라, 종족 유지를 위해 남겨 둔 거죠.”
“헐, 대부분을 먹었는데도 아직도 7명? 여기 진짜 세상 사람들이 클류쳅스카야산을 불의 땅이라고 부를 만하네. 활화산만 29개라더니, 설마 화산마다 하나씩 태어난 거야?”
태월은 정령 숫자를 마리라고 해야 하지만, 아루와 아쿠를 인격체로 대하는지라 사람처럼 명으로 칭했다.
“네, 태어나서 전부 이곳 산으로 모이게 해놨어요.”
“음, 그럼 29명의 정령이 원래 있어야 하는 거였네? 수백 년간 22명을 흡수했다고?”
“아, 그게 아니라 저희가 먹혀버리면 다시 그 화산에서 새 정령이 태어났어요. 그런데 그런 아기 정령은 그에겐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제대로 자란 후에 먹는 식으로 했으니, 수백 년간 아마 100명은 먹었을 거예요.”
“헉!”
아루가 깜짝 놀란다.
그러더니 몸을 부르르 떠는 아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