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캄차카 원정대 (1)
설희는 결국 한국에 전화하게 된다.
홍미연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니, 그녀에게서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휴, 그래서 우리 호족에게는 여자가 주로 태어난 거였어. 옛 조상 중에도 남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럼 남자는 어찌 되었는데요?”
“음의 기운이 강하다 보니 오래 살진 못했어. 그리고 남성 호르몬 자체도 약했었고.”
“오빠는 좀 다르지 않나요?”
“그들과는 전혀 다르지. 영혼을 다룰 줄 알고, 기운도 흡수하고 있으니 말이야. 수명으로 따지면 우리 중에 제일 오래 살걸? 그렇지만 남성의 상황으론 애매하긴 해. 음, 과거 기록을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네. 더 알아보고 연락할게.”
“응, 알았어. 전화 줘.”
다음 날 아진, 아샤는 설희를 데리고 알혼섬 관광을 다녔다.
아루의 휴가는 끝이 났기에 관광열차에 다시 복귀했다.
태월은 사업 관련하여 아쿠와 회의를 하느라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알혼섬에 온 지 이틀이 지났을 때, 설희는 홍미연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캄차카반도의 화산요? 거기에 그런 게 있었어요?”
“호족의 옛 기록상에는 그런 게 적혀있긴 했어. 그걸로 음기를 중화시켰고, 그로 인해 자식도 두고 오히려 더 장수했다고 나오네. 부인도 셋에 자식 열둘인 걸 보면, 성공했다고 봐야지.”
“어머, 옛날이니 그게 가능했나 봐. 요즘 그렇게 낳으면 키우기도 어려울 건데.”
“캄차카반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라고 하니, 아마 클류쳅스카야 화산일 거야. 그 당시는 지도도 없었을 테니, 그게 정확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그보다 낮은 곳일 수도 있어. 엄마가 정보를 확인해보니 화산은 캄차카에 30개나 되더라.”
러시아 캄차카반도에 있는 클류쳅스카야 화산은, 해발고도 4,750m로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이다.
원래는 5,000m 높이였는데, 몇 년 전 큰 폭발로 인해 정상부의 250m가 통째로 나가떨어진 것이다.
“고마워요, 엄마! 아카의 정보도 취합해볼게요. 그럼 더 나아질 거예요.”
설희는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는 바로 아카에게 그 내용을 알렸다.
아카 또한 유사한 방식으로 양의 기운을 취하는 걸 찾고 있었던지,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태월 역시 호족인지라, 호족의 자료가 오히려 더 신빙성이 컸다고 여긴 것이다.
“설희가 이야기하긴 곤란할 테니, 태월에겐 내가 이야기해 볼게.”
“나야 그리해 주면 고맙지. 부탁해!”
설희로서도 친오빠에게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긴 곤란하던 참이다.
태월은 아쿠와 사업검토를 하던 중에 미국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받았다.
“어? 아카가 웬일로 화상회의시스템을 작동시킨 거지? 아쿠? 오늘 RAON과의 일정이 있었어?”
“응? 없었는데. 일단 수락하면 알게 되겠지.”
아쿠가 시스템의 ON 버튼을 누르자, 회의실 전면 모니터의 화면이 켜졌다.
케이블을 연결한 국내 간 화상회의가 아니라, 인공위성을 이용한 해외 간 방식이었다.
“어? 아카 안녕! 갑자기 무슨 일이야?”
“언니! 잘 있었어요?”
“호호, 다행히 둘 다 있었네? 전화로 하려다가 이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쿠야, 인간이 아니니 같이 들어도 상관없을 테고. 하여간 태월에 대한 이야기야. 설희 어머니와도 이야길 했거든.”
“헐, 무슨 일인데, 엄마 이야기가 나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아카를 쳐다보는 태월이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그전에도 알아보던 참이었는데, 호족에게 너와 비슷한 상황이 좀 있었더라. 호족 남자가 달의 기운을 가지게 되면, 음기가 너무 과해서 단명하거나 성적으로도 문제가 생긴다고 해.”
“나야 수명적 문제는 없을 텐데?”
“그건 맞아. 그러나 성적으론 문제 되잖아. 결혼해서도 아이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어. 이렇게 되면 태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게 돼. 배우자도 그렇고 부모님에게도 좀 그렇잖아?”
태월은 결혼에 대해서 그리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특별히 독신주의자도 아니기에, 아카의 말에 따르면 꽤 문제를 가진 사람이 된다.
“쩝, 그래서 뭘 어쩐다는 거야?”
“호족의 과거 기록에 의하면, 러시아 캄차카반도의 화산에서 양의 기운을 가진 것들이 있었다고 해. 그중 취하기 쉬웠던 수백 년 묵은 영초를 구한 남자 조상이 있었어. 그래서 음의 기운에 양의 기운을 조화시켜 장수를 누리고, 부인도 여럿 두고 자손도 많이 낳았어.”
“헐, 그래서 그 영초를 구하러 가자고?”
“그 당시 기록엔 열흘간 찾았지만, 영초가 하나밖에 없었다고 해. 그러니 그걸 찾긴 어렵거나, 남아 있었다 해도 이미 누군가 취했을 거야. 쉽게 얻을 수 없는 건 잊어버리고, 태월은 불의 정령을 찾아야 해. 그 조상이 자신의 능력으로 얻지 못한 존재를 묘사해놓았어. 그 내용을 보면 불의 정령으로 추측되거든. 그게 하나가 아니었던 모양이야.”
정령 이야기에 시큰둥하게 듣고 있던 태월의 표정이 비로소 바뀌었다.
“오, 아루의 종족들인가 보네?”
“뭐, 본질이야 같겠지만, 서로 종족으로 생각할지는 모르겠네. 하여튼 그 정령을 취해야 해.”
“헐, 설마 먹으란 소리야? 흡수?”
“그럼, 무슨 수로 양의 기운을 얻을 건데? 넌 산삼 같은 걸로는 어림도 없어.”
“에이, 아루라고 생각해봐. 그걸 어떻게 흡수해.”
“너 영혼 에너지도 흡수하면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거야 대부분이 악령들이잖아. 그런 거야 양심에 꺼릴 게 없지.”
“호호, 바로 그거야! 그 불의 정령 중에 오염되어, 대장질하는 악질이 있었대. 같이 갔던 호족들도 그놈에게 여럿 당했다더라.”
“흠, 그런 놈이라면야 상관없긴 하겠네. 그런데, 이거 난이도가 상당할 거 같은데?”
정령이라면 수백 년이 지났어도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힘은 더 강해졌을 거고.
“졸개들이 더 늘었는지는 모르지만, 걸리적거릴 졸개들부터 각개 격파하면 되지 않을까? 태월의 그 문신은 중급신이잖아. 일대일로는 그 대장 정도는 충분할 것 같은데? 아루로 유인하고 상극인 아쿠를 활용해도 될 거고.”
“음, 나도 도움이 되면 해볼게.”
아쿠까지도 찬성이었다.
“하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다들 걱정하는데 당연한 것 아니야? 너도 찜찜했을 거고, 이참에 털어버려야지! 왜 또 어물쩍 넘기려고? 어쩔 거야?”
태월의 머뭇거림을 보던 아카가 그에게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쩝, 알았어. 그렇게 해볼게.”
이렇게 해서 태월 일행의 캄차카 원정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오빠? 나도 원정대에 참여할 거야.”
“헛, 안 돼! 이거 위험할 수 있거든? 단순한 여행이 아니잖아.”
“불의 정령 하나 정도는 나도 상대할 수 있거든? 아루에게 물어봐!”
태월은 아루가 또 무슨 바람을 설희에게 넣었나 싶어서 째려봤다.
“아, 난 별말 안 했어! 그냥 설희와 대련했는데 상당하더라. 나와 비등해.”
설희는 어릴 때부터 노스님의 사제였던 홍무경에게서 수박과 각희를 배웠었다.
따지면 태월보다 더 오래 수련한 셈이다.
그리고 태월에게서 추가로 받은 무술 재능도 있었고.
“뭐가 비등해? 내가 비기를 쓰지 않아서 무승부로 보인 거지. 무술로 따지면 오빠보다 더 단계가 높잖아.”
귀신의 재능을 받지 못했다면, 설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왔던 태월이다.
실제 순수 대련에서도 설희는 태월에게 밀리진 않았었다.
다만 문신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인해, 실전에선 태월이 더 강한 것이고.
“어휴, 그럼 아루와 같이 졸개들 제압할 때만 돕도록 해. 그 이상은 내가 불안해! 그리고 거긴 활화산이야. 백번 조심해도 모자라는 곳이잖아. 항상 발밑을 살펴야 해!”
“호호, 알았어!”
“저희도 가고 싶어요! 우리도 무술 재능을 받았잖아요.”
“맞아요. 졸개들 숫자가 많아 처리에 시간 걸리면, 대장이 눈치챌 테고 그럼 곤란하잖아요. 시간 끄는 정도선에서라도 돕고 싶어요.”
“참나, 너희까지 왜 그러냐? 우리가 놀러 가는 줄 알아? 화산 자체만 해도 위험한 거거든?”
“싫어요!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게 더 힘들어요. 제가 혹 문제 되면 삼키면 되잖아요.”
“그게 그리 간단한 건 줄 알아? 너 몸이 손상되면 그것도 어려워!”
“큰 부상만 아니면 되잖아요. 몸을 우선해서 생각할게요. 데려가 줘요!”
태월은 평소와 다른 아샤의 집요함에 떨떠름해졌다.
‘얘는 또 왜 이러지?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신경 쓰이네.’
“이런 식으로 다 데려갈 순 없어! 전문 등산가들도 힘들어하는 곳이야.”
결국 30분간 더 논쟁이 이어졌고, 결론을 내었다.
캄차카 원정대는 태월, 아루, 아쿠, 설희, 아샤 이렇게 다섯이 떠나기로 한 것이다.
아진은 의외로 쉽게 수긍했는데, 태월만 모르는 일이 있었다.
태월은 공간 배낭에 준비물을 챙기려 자릴 비우자, 나머지 일행이 일제히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호호호, 오빠가 아진 언니를 빼니 타협에 성공했다고 여기나 봐.”
아샤는 기쁜지 신이 나 있었다.
“아카 언니의 조언대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린 조심해야 해. 지상으로 60m까지도 솟구치는 용암 폭탄이 즐비해. 세계적으로도 위험성이 큰 곳이 바로 클류쳅스카야 화산이야. 화산 폭발로 인해 해마다 고도가 바뀌는 그런 곳이야.”
아쿠가 다른 일행들을 돌아보며 조언 중이다.
용암 폭탄은 화산탄(volcanic bomb)이다.
화산탄은 화산 폭발로 분출되는 용암 덩어리를 말하며, 거친 알갱이의 본질인 화산 쇄설물의 일종이다.
외형이 거의 결정된 후에 냉각에 동반하는 고화나 발포가 이루어지는데, 용암 크기의 지름은 32mm 이상을 뜻한다.
“등산이 목적이 아니니 우린 처음부터 걸을 필요가 없잖아? 뭘 타고 갈 건데요?”
“응, 헬리콥터와 스노모빌을 이용할 생각이야. 헬기는 태월이 운전할 테고, 우린 스노모빌 타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해. 클류쳅스카야 화산의 2,850m 지점까지 헬기로 이동할 거고, 그 후엔 스노모빌을 타야겠지. 그러나 정상이 가까워지면 그때부턴 걸어서 가야 해. 정상 오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령들을 찾는 게 목적이잖아.”
“홍홍, 드디어 내 쫄병들이 생기게 되었어. 몇이나 있을까? 많으면 좋은데 말이야.”
“참나, 아루? 많으면 우리가 위험하거든? 말이 씨가 되는 수가 있어!”
“헙, 미안! 그런데 설마 정령이 산짐승도 아니고 그렇게 많을 리가 있나? 많았다면 벌써 소문이 돌았겠지.”
“아루 언니? 정령이니 몸을 안 드러내면 보통 사람들이야 모르는 거잖아. 너무 안일해서도 안 돼! 거기는 사람도 꽤 죽어 나갔거든?”
아쿠가 아루에게 경각심을 더 주고 있었다.
정령들인 자신들이야 문제가 없지만, 설희와 아샤는 인간의 몸이다.
“아, 알았어! 음, 그런데 아샤가 필요할 때가 없었으면 좋겠다. 진짜 그런 부작용이 생기면 아샤도 힘들 건데?”
“음, 전 자신 있어요. 가능한 사람이 저밖에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