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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30화 (130/250)

130화. 설희의 새로운 고민

죽은 이유가 문제 되는가 싶어, 빤히 쳐다보며 묻는 병원 관계자였다.

“아, 그건 아닙니다. 하여간 잠시 돌아가신 분을 위해 기도를 할 생각입니다. 누가 들어오지 못하게 밖에서 망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뭐, 김 경위의 요청이 그거였으니, 그리하긴 하겠습니다. 어휴, 바쁜데 이게 뭐 하자는 짓인지!”

마음에 안 드는지 툴툴거리며 문밖으로 나가는 병원 관계자다.

그리고 3명만 소생시켰고 나머지 둘의 영혼은 잘 설득해서 유언만 받아적고 곧바로 천도를 시켜 주었다.

“이 유언은 우리가 들어줄 시간이 없겠네. 그 김 경위에게 전해야겠어. 믿어줄까?”

“호호, 그래도 언니 추종자가 하나 생겨서 다행이네. 난 100%로 믿을 거라고 봐! 아까 오기 전에 눈을 못 봤구나? 거의 광신도였어.”

“맞아! 나도 그렇게 느꼈어!”

아샤와 아루의 장담에, 태월은 마음이 놓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태월은 영안실 문을 열고 밖을 보았다.

문 앞에 불퉁한 표정의 병원 의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레지던트쯤 되어 보이는 나이인데, 병원 관계자와 교대를 한 거로 보였다.

“저기? 의사시죠?”

“아, 네! 이제 일이 끝났습니까?”

“화상을 입은 분들을 제외하곤 아이들 셋은 살아났습니다. 회복실로 바로 이송시켜주시기 바랍니다.”

“네? 지금 장난합니까? 바쁜 사람을 여기서 보초 서게 하더니, 망자를 두고 지금 뭐라고 떠드는 겁니까?”

“저희도 바쁩니다. 직접 확인하세요.”

태월이 비켜서자, 성질이 난 레지던트는 인상을 구기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분도 안 되어 비명이 들려왔다.

“으허헉! 살, 살아있잖아! 으아아! 이게 뭐야.”

“생각보다 간이 콩알만 한 사람이네. 이봐요! 지금 해야 할 일부터 하시죠? 우린 이만 가보겠습니다.”

“당, 당신들 누구야?”

레지던트는 가까이 있던 설희의 모자를 잡아채 버렸다.

그리고 드러나는 얼굴이 다시 소릴 지른다.

“허 억! 당, 당신! 스노우?”

설희도 갑자기 얼굴이 드러난 게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아, 안녕하세요. 저희는 바빠서 이만!”

설희가 앞장을 서서 빠르게 나오니, 일행들도 같이 움직였다.

이렇게 5곳의 병원을 돌고 나니 오후 3시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아이들 19명은 전원 소생되었고, 그 외 성인은 4명 중 1명만 살아났다.

인솔 교사로 추측되는 3명은 태월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다만 그들의 유언은 김 경위에게 전해질 것이다.

“오빠! 이제 우리 할 일은 끝났어. 바로 김포공항으로 가야 해. 한 시간 반 정도 남아서 빠듯하지만, 서두르면 될 거 같아.”

“휴, 그래 이제 가야지. 정신적으로 꽤 피곤하네.”

“내가 운전할 테니, 키나 주고 오빠는 뒷좌석으로 가!”

“그래 잘 부탁해!”

태월도 거절하지 않고 설희에게 키를 넘겼다.

차를 곧바로 출발하였고 빠듯했지만, 출국 수속까지 밟을 수 있었다.

“아 오늘 오랜만에 스펙터클한 하루를 맛봤어. 고베 대지진 이후로 오랜만이네.”

“뭐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피곤한 건 비슷하네. 기내식이 모자라지 않을까? 우리 밥도 못 먹었잖아.”

“역시나 우리의 먹방걸 아루답다. 자 이제 가볼까?”

아루의 말대로 태월 일행은 기내식을 바닥내 버렸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점심과 저녁을 먹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만큼 허기진 하루였다.

비행기는 솟아올라 이르쿠츠크로 날아갔다.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놓쳤던지라, 그리로 향하게 된 것이다.

기내식을 먹던 중에 결국 일행의 정체가 들통나 소동은 잠시 있었으나, 무사히 이르쿠츠크에 도착은 하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먹던 아샤가, 식사에 방해가 되는 모자를 살짝 올려 쓰다가 걸렸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바탕 사인회를 가지게 되었고, 사진 촬영도 응하게 되었다.

“아효, 기장까지 나와서 그러면 어떡해? 비행기는 누가 몰았을까? 헉! 지금 생각하니 큰일 날 뻔했네.”

“하하, 아루? 부기장도 있고 또 자동항법도 운항 중에 한다고 하더라. 그때 나온 거겠지.”

“태월? 나 흉보지 말고 아리랑이나 꺼내줘. 답답해하겠다.”

“아, 깜빡했네.”

배낭을 열어 아리랑을 꺼내놓았다.

심술이 낫는지 나오자마자, 태월의 손가락을 깨문다.

“아얏! 이놈이 결국 심술을 부리네. 도착한 지 10분도 안 되었거든!”

-끼야옹!

“어! 저기 아쿠 언니가 나와 있어!”

아샤의 외침에 고개 돌리니 저 멀리서 아쿠가 손을 흔들어댔다.

“다들 말짱하네? 화재 난 곳에 갔다기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그을렸을 줄 알았더니!”

“으흐, 처음에만 화재 현장이었고, 그 외는 병원이었어. 그나마 물수건으로 다 닦았어. 제대로 씻다간 이 비행기도 못 탔을 거야. 아, 그런데 난 아직도 머리에서 탄 냄새가 나.”

아루가 자기의 머리를 당겨 냄새를 맡으며 대답했다.

“그럼 일단 씻으러 가자! 설희는 진짜 오랜만에 보네? 잘 지냈지? 한번 안아보자!”

“응, 나야 뭐 늘 하루가 비슷했지.”

아쿠가 설희를 꼭 껴안아 주더니, 옆의 둘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공연 잘 봤어! 진짜 멋지더라. 아진과 아샤도 대단했어!”

-끼양!

“호호, 그래 아리랑도 아주 멋있었어!”

아루의 품에 안긴 아리랑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아쿠다.

인사들 나누느라 지체되어, 사람들이 몰려들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모자를 눌러 쓰고는 있지만, 보통 사람들과는 뭐가 달라 보이는 일행이다.

공항을 떠나 샤후르타 선착장에 도착했다.

마지막 배를 그나마 탔기에 알혼섬에서 첫날을 보낼 수 있었다.

“호호, 여기가 그 유명한 알혼이구나. 정말 공기 자체가 다르네. 사진으로 보던 거와는 정말 딴판인데?”

“여긴 밤의 조명에도 신경을 꽤 썼거든. 몇 년 전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지. 곧 다리가 완성되면 관광객은 두 배 이상 늘어날 거야. 뭐 러시아 자체로는 불경기지만 말이야.”

주변을 둘러보며 아쿠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설희다.

“일단 씻고 나서 식사하는 걸로 하자. 지금 이 건물엔 다른 사람이 없으니 공동샤워장에서 씻도록 해.”

“어머! 설희도 씻는데 오빠가 같이 씻는다고? 알나리깔나리! 변, 변태!”

-딱!

“아야!”

“여기 샤워장이 두 개 거든? 너 여기선 안 씻어 봤구나! 남녀 샤워장이 하나씩이야. 너 여기서 근무했으면서 왜 그걸 몰라?”

“에잇, 내가 여기에 올 일이 어딨어? 내가 뭘 하는지도 몰랐단 소리잖아? 난 관광열차 담당이었거든! 너무 하는 거 아니야?”

태월은 아루가 알혼섬에서 뭘 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아쿠를 돕는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음, 내가 너무 무심했었네.’

태월을 한 번 째려본 아루는 아리랑을 데리고 샤워실로 향했다.

“어? 거기 이 인원이 들어가면 꽉찰 건데, 내가 아리랑이랑 씻을께!”

“태월! 아리랑도 암컷이거든!”

“헐, 그전에는 자주 씼었는데? 뭘 새삼스레!”

“그거야 태월이 변태니까 그런 거지!”

반려동물 기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황당해할 소리였다.

그런데 걸어가는 내내 아루가 킥킥거렸다.

오랜만에 태월을 말로 이겼다고 여겨 신난 것이다.

태월도 씻고 나와서 1시간을 더 기다리니, 그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냥 씻는 건데 왜 이리 오래 걸려?”

“흥, 태월은 이래서 여자를 모른다니까! 여자에겐 다 그만한 시간이 필요해.”

“그게 뭔데?”

“음, 음... 그렇게 있어! 궁금하면 다음에 같이 씻어봐. 그럼 알게 될 거야.”

사실 아루도 잘 모르는 이야기다.

아직 인간의 습성을 따라 하긴 하지만, 자신도 샤워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걸 아는 거다.

아루는 샤워장에서 대충 씻고, 아리랑이랑 노는 데 열중했었다.

“헐, 나도 남자거든? 왜 같이 씻냐?”

“아카 언니 말로는 꼭 그렇지도 않다던데? 이성에 대해 무지하다고 하던데 뭘. 그... 웁!”

태월이 나서서 아루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렸다.

동생이 있는 데서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 여긴 것이다.

“아루?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의 몸에 문제가 생긴 거야?”

“아, 아니야! 아루가 그냥 장, 장난치는 거야.”

태월이 조금 당황해하는 것 같자, 설희는 아샤를 빤히 보았다.

아루는 태월의 눈치를 보면서 딴청을 부렸다.

“흠, 뭐가 있긴 있는 거 같은데?”

“에휴, 아니라니까! 아루? 엉뚱한 소리 또 하면 혼난다!”

아루는 태월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아쿠는 고개를 몇 번 내젓더니, 손뼉을 두 번 치고 집중을 시켰다.

“이제 식당으로 가자. 미리 준비해놨으니, 맘껏 먹어도 될 거야.”

“야호! 밥이다. 밥! 아리랑 가자!”

아리랑은 아루와 한국의 관악산에 다녀온 후로 부쩍 친해졌다.

아마 성장에 필요한 부분을 아루가 양보하면서 도왔기 때문이리라.

식사하는 내내 설희는 아루의 말이 떠올랐다.

‘오빠의 건강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분위기상 지금 물어볼 상황도 아니고…. 아루나 아쿠는 말을 안 할 거 같고. 아카에게 연락해봐야 하려나?’

그렇게 그날 밤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설희는 국제전화로 아카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아카? 나야 오랜만이지?”

“어, 설희가 웬일이래? 세계적인 뮤지션께서!”

“이긍 싱거운 소리 말고. 나 꼭 알고 싶은 게 있는데, 속이지 말고 대답해줘.”

“응? 갑자기 웬 심각? 대체 뭔데?”

“어제 아루가 얼핏 말하다 말았는데, 오빠 몸에 이상이 생긴 거야? 이성 어쩌고 하던데?”

설희는 전날에 있었던 일을 상세히 풀어서 말해주었다.

태월이 아루의 입을 막았고, 아루는 그 이후에 물어도 얼버무릴 뿐이라고.

“음, 이게 애매하네. 나야 인간이 아니라서 그대로 말할 순 있지만, 인간 관계에서 오누이는 애매해서 말이야.”

“애매할게 뭐 있어? 혈육인데. 꼭 말해줘야 해.”

“휴, 뭐 언젠가 알게 되겠지만. 그럼, 미리 안다고 여겨. 태월은 여자에게 관심을 아예 안 가져. 호르몬 문제 같은데, 자신의 말로는 달의 기운에 의해 음기가 강해서라더라.”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데?”

“여자가 벗고 있어도 성적 자극을 전혀 안 가져. 일부러 참는 건 절대 아니고. 그냥 흥분이 전혀 안 일어나나 보더라.”

“헉! 오빠가? 에이 설마.”

설희가 보기엔 태월은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바르다.

“너도 우리가 인간과 달라서 집에 있을 땐 자주 벗고 지내는 건 알지?”

“응, 그거야 너희가 그런 존재잖아.”

“단지 그거뿐이라면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전에 아샤와 아진이가 벗은 적도 있거든? 그런데도 아무 생각을 안 하더라. 내가 태월의 바지를 봐도 흥분하거나 하는 게 전혀 없었어. 심장 박동도 평소와 같더라.”

“헛, 진, 진짜!”

설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무래도 엄마랑 상의해봐야겠어. 달의 기운이 문제일까? 엄마라면 방법을 알 수 있을 거야. 아 어쩌지.’

“나도 방법을 알아보는 중이니까. 설희 어머니에게도 물어보도록 해. 머릴 맞대면 방법이 나오지 않겠어?”

“휴, 나도 그럴 참이야. 전혀 몰랐었네. 오빠도 상심이 크겠다.”

“호호호, 전혀 아니거든? 태월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라.”

“헉!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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