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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29화 (129/250)

129화.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아리랑이 사라졌다는 말에 태월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직원을 따라가 보니 그의 말대로 백호는 보이지 않았다.

“아샤? 아리랑 어디 갔어?”

“방금까지 있었는데 갑자기 안 보여요. 시간도 없는데, 촬영에 지장을 주지나 않을까 모르겠어요.”

태월은 아진 옆으로 와서 작게 속삭였다.

“아루도 없잖아. 같이 간 거 아냐?”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아요. 불쇼의 촬영이 끝나긴 했는데. 아까 뭘 먹으러 간다고 한 거 같아요.”

정령치고는 식탐이 꽤 있는 아루다.

“오늘 아리랑 뭘 좀 먹였어?”

“아, 고양이로 주로 있다 보니, 백호일 때를 생각 못 했네요. 촬영하느라 정신없어서 제대로 챙겨주질 못한 거 같아요.”

아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아루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반경 1km 내에만 있다면 소통이 가능한 상황까지 발전했다.

‘어디야?’

‘어? 아리랑이랑 밥먹고 있어. 거긴 왜 밥을 안 챙겨주냐!’

‘아루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챙겨? 그리고 말없이 아리랑 데리고 가면 어떡해? 다들 찾고 있잖아.’

‘얘도 굶었거든? 그리고 얘가 구석에서 고양이로 변해 있더라. 그래서 데리고 온 건데?’

‘우리가 아리랑을 제대로 케어 못 해 준 거네. 그럼 빨리 먹이고 다시 데리고 와. 한 시간이면 되지?’

‘응, 충분해. 여기 도시락 몇 개 하고, 정육점에서 사 온 고기 먹이고 있어. 모텔이지롱.’

아리랑의 행방불명 해프닝은 이렇게 끝이 났다.

사흘에 걸친 촬영도 끝이 났고, 일행은 모스크바로 향하기 위해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띠리링! 띠리링!

“오빠 벨소리 좀 바꿔! 그게 뭐야?”

“여보세요? 어? 엄마! 네? 수련원에서 불이 났다고요?”

-끼이익!

전화를 끊은 태월은 차를 급히 세웠다.

“아, 설희는 오늘 항공편 예약한 거 취소해. 저녁에 가는 걸로 잡아. 지금 화성의 청소년 수련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사망자가 많아지려나 봐. 유치원생들이 많다고 해! 거기로 가야겠어.”

“아, 어떡해! 연기를 해놓을 테니까. 그리로 빨리 가!”

조수석에 있던 아샤가 라디오를 켜서 뉴스 채널에 맞추니, 실시간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1999년 6월 30일 0시 40분,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백미리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였다.

새벽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였고, 현장에선 사람들이 잠자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 당시 현장에는 서울 소망유치원생 42명, 서울 공릉미술학원생 132명, 안양 예그린유치원생 65명, 부천 열린유치원생 99명, 화성 마도초등학교 학생 42명 등 497명의 어린이와 인솔교사 47명 등 모두 544명이 있었다.

태월이 화성군에 있는 화재 현장에 도착한 건 오전 9시경이다.

현장에는 소방차 20여 대와 소방관 70여 명 그리고 경찰 250여 명이 출동하여, 인명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태월은 5일 전에 가지고 있었던, 마이클 잭슨 공연 의료팀 스탭증을 보여주었다.

“돕고자 왔습니다. 제 일행은 누군지 보면 아실 테니, 신분은 증명이 되겠죠?”

태월의 말에 차 안을 살피던 김태수 경위는 화들짝 놀랐다.

“아, 성, 성녀님들 일행이군요!”

공연중계를 보았던 사람 중에 그런 표현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현직 경찰까지 저럴 줄은 태월도 몰랐다.

“하하, 아무튼 들어갈 수 있겠죠? 저 포함해서 차 안의 3명이 의대생입니다.”

“물, 물론입니다. 의료에 도움이 당연히 되고요. 그런데 지금 불이 나면서 발생한 유독가스와 건물 붕괴위험으로 진화작업이 더뎌지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들어가시는 건 안 됩니다.”

“그럼, 부상자를 돌보겠습니다. 사망자 확인이 가능했으면 합니다. 가끔 일시적으로 심장이 중단되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김태수 경위는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현장은 그런 걸 일일이 따질 경황도 없었다.

“사망자를요? 음, 뭐 이미 숨졌으니 문제는 없겠지요. 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차에서 구급요원복으로 갈아입은 일행은 차에서 내렸다.

공연 때 몇 개 챙겨 놓았던 걸 이참에 사용하는 것이다.

“길을 열어주세요! 여기 성녀 일행이 도착했습니다.”

김태수 경위의 멘트에 태월 일행은 황당스러웠다.

“아니, 경찰분이 그런 공개적 멘트를 해도 됩니까? 갑자기 웬 성녀예요?”

“아니, TV에도 나온 이야기인데 못할 게 뭐 있습니까?”

“아, 그건 일부 사람들 주장일 뿐이잖아요.”

“저도 그 일부 사람들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여깁니다.”

오히려 너무 당당한 김태수의 말에 태월은 해 줄 말이 없었다.

“여기 화재 진원지가 어딘가요?”

“수련원 2층 C동 301호입니다.”

태월이 건물 잔해 전체를 훑어보니, 2층과 3층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원래 1층 건물인데, 그 위에 2층과 3층을 컨테이너로 올린 임시 건물이네요? 저렇게 건물 만들어도 허가가 나나요?”

“허가가 날 수 없는데 난 거 같습니다. 52개의 컨테이너가 올려져, 2층과 3층을 만든 상태입니다. 그래서 허가 관련해서 저희도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한눈에 봐도 위험 요소가 산재한, 문제가 많아 보이는 구조물이었다.

“거기 뒤로 빠져! 빠지라고!”

“여기! 물을 더 뿌려 진입 자체가 안 되잖아!”

“이쪽! 사람 둘 더 보내!”

화재 진압이 여러 이유로 늦어지면서, 점점 상황은 악화됐다.

태월 일행은 구조 요원들을 지나쳐, 막 구조된 중상자와 사망자가 생겨난 곳으로 갔다.

중상자는 한 명이었는데 화상이 심해서 태월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곧바로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떠났다.

사망자는 3명의 어린아이와 1명의 인솔교사가 있었다.

다행히 유독가스에 질식해서 사망한 상태였고, 화상은 그리 없었다.

인솔교사가 행한 일인지 아이들 옷은 축축했다.

“김 경위님? 잠시 아이들 상태를 살필 테니 방해돼서는 안 됩니다. 문밖에서 경호 좀 부탁해도 될까요?”

“아, 성녀님이 뭔가를 하시려는 거군요. 걱정 마십시오. 철통같이 지키겠습니다!”

혼자 오버하는 김 경위가 나간 후에, 태월은 문신을 움직였다.

소생이 전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어, 불과 10분 만에 끝을 낼 수 있었다.

“오빠! 숨을 쉬고 있어!”

코밑에 손을 대어본 아샤가 환하게 웃는다.

아진도 다른 이들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4명 전부 소생시킬 수 있었다.

설희가 피곤해지겠지만, 사람의 생명이 먼저였다.

설희 또한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에, 태월은 문을 열었다.

“김 경위님? 4명이 숨을 쉬고 있습니다. 빠르게 후송 바랍니다.”

“헉! 진, 진짭니까? 사망 판정까지 내려졌었는데. 우와! 역시 성녀 님이셨구나!”

“사망자들을 우선 더 봐야 하니, 흩어진 병원에 연락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혼자서 번쩍 만세를 부르려던 김태수 경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전기로 지시를 했다.

“박 경장! 여기 사망자실에서 4명이 부활했으니, 앰뷸런스를 불러! 없으면 박 경장이 직접 차에 싣고 병원으로 가도록 해! 아 그리고 올 때! 이송된 병원들에 연락해서 성녀가 납신다고 통보해! 이해 못 하면 경찰 수사에 관련된 긴급한 일이라고 못 박아!”

“부, 부활이라뇨? 무슨 뜬금없는 소리입니까? 혹시 술 드셨어요? 공무 중인데….”

“야! 나 제정신이거든! 빨리, 지시대로 하기나 해!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되잖아! 이 자식이, 아직도 성녀님을 못 믿네!”

무전기를 끈 김태수 경위는 설희를 돌아보더니,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인다.

“제가 오늘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아, 아니 혹시 천주교인가요? 그럼 성당?”

“저, 교회나 성당 안 다니거든요.”

“아, 아니. 그럼 어떤 종교의 성녀신데요?”

“제가 한 일은 없어요. 저들의 수명이 아직 하늘로 갈 때가 아니었겠죠. 그냥 살려주라고 기도만 한 게 다예요.”

“아, 기도발이 있으셨군요.”

살려달라고 기도한 게 아니라 살려주라고 기도했다는 말에, 갑자기 끝판왕 성녀가 되어버렸다.

“정해진 신이 아니라 이름 모를 신이 강림했던 거군요. 어쨌든 신의 대리자인 설희 님께 경배를 드립니다.”

한 번 더 허리를 굽혀, 설희에게 절을 하는 김태수 경위다.

이상한 광신도가 하나 추가되었다.

“으헉! 김 경위님! 아이들이 진짜 숨을 쉬네요? 여기 선생님도 숨을 쉬고.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박 경장이란 사람이 나타나서 떠들고 있었다.

“야! 자식아! 내가 뭐랬어! 내가 성녀님이라고 했었지?”

“저기 김 경위님? 그 병원 명단부터 주실래요? 저희도 빠르게 가야 해서요.”

“아, 그렇죠! 야, 박 경장? 명단 어딨어? 그리고 병원에 연락은 해놨어!”

김 경위의 다그침에 박 경장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리고 주섬주섬 메모를 김 경위에게 건네며, 눈치를 본다.

“명, 명단은 여기 있습니다. 그, 그리고 이제 연락하겠습니다.”

“뭐? 이 자식이 지시한 일도 안 하고 있었다고? 직속 상관의 명령을 네가 거부해?”

“바꿔서 생각해보십시오. 죽었던 사람이 전부 살았다고 하면 어느 누가 믿겠습니까? 그래도 명단은 가져왔잖습니까?”

박 경장의 변명에 당황한 김 경위는, 구둣발로 그의 엉덩이를 차버렸다.

“야! 이 자식아! 네가 성녀님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너 명령 불복종으로 보름간 정직시켜 줄까? 이게 어디서 항명이야!”

“김 경위님! 자중하시고 우선 목숨부터 살려야지 않습니까? 늦을수록 영혼에 무리가 생깁니다. 그 명단부터 보시고 곧바로 각 병원에 직접! 통보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태월의 말에 박 경장 때려잡기를 멈추고, 설희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명단에 적힌 병원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부분 병원이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국가 중대사처럼 떠들어 대는 김 경위의 협박에 결국 두 손 든 병원 관계자다.

태월은 명단을 건네받고, 일행과 함께 바로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안녕하세요. 화성 경찰서 김태수 경위의 요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갈 수 있을까요?”

설희와 아샤 그리고 아진은 모자를 눌러써서 신원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하아,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이런 요청이 다 있다니 황당합니다. 뭐 어쨌든 응하기는 하겠습니다만, 전적으로 책임은 김 경위가 지는 겁니다.”

“저희는 요청대로 할 뿐입니다.”

“이리 따라오십시오. 아직 가족들에겐 통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다 보니 주민증이 있는 게 아니라서요.”

인솔교사가 있었으면 확인이 되었겠지만, 인솔교사가 참변을 당한 경우는 아이의 신원을 바로 확인할 수 없었다.

영안실에 도착한 태월 일행은, 눈앞에 놓인 시신들부터 확인했다.

“헉, 화상이 심한 분도 있네요?”

“네, 아이들을 보호하려다 그리된 걸로 판단됩니다. 성인 2명은 화상으로 숨진 거고, 아이들 3명은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입니다. 왜요. 문제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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