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마이클 잭슨과 스노우 합동 공연
아루가 턱을 치켜들더니 도도한 척해 본다.
“이 가방에는 이 옷이 어울리거든!”
“윽, 가방도 노랗고 옷도 노랗고! 단무지네?”
“흥, 태월은 패션을 몰라 패션을!”
“......”
아무튼 노랑 패션으로 장착한 아루와 태월 일행은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도착 후, 미리 기다리고 있던 공연대행사 직원의 안내로, 일행들은 인터뷰 대기실로 이동했다.
사전 노출을 막기 위해 멀찍이 떨어진 곳이다.
“오늘 기자들이 어느 정도 왔길래 이렇게 분주합니까?”
“하하, 세계 최고의 마이클 잭슨과 한국 최고의 디바 스노우 아닙니까? 해외 언론사는 30여 곳이 되고, 국내 언론사는 빠진 곳 없이 전부 왔습니다. 기자만 120명 정도 됩니다.”
“어휴, 엄청나네요.”
“그런데 이쪽 분도 굉장히 미인이시긴 한데, 나이로 봐선 매니저로 보이진 않네요. 코디도 아닌 것 같고 누구신지?”
“후후, 가족입니다. 말괄량이라서 따라왔네요. 상관없지요? 철이 없긴 해도 사고는 안 칠 겁니다.”
태월의 농담 섞인 말에, 아루는 태월에게 눈을 부라렸다.
“뭐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동선만 겹치게 하진 말아주세요. 노랑 옷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어울리네요.”
대행사 직원이 밖으로 나가자, 아루가 문밖을 째려본다.
“아유, 저놈도 패션을 몰라 패션을! 앙드레쯤은 돼야 날 제대로 봐줄 건데.”
“아루 언니? 그 가방은 누가 고른 거야?”
“아샤, 누구긴? 안목이 탁월한 내가 직접 고른 거지! 어때? 간지나지?”
“그, 글쎄요.”
“얘, 너도 안목 좀 길러!”
혼자 좌충우돌 중인 아루를 빤히 보는 설희다.
“아루는 광고 섭외가 따로 들어올 거 같은데?”
“오! 역시 설희네. 보는 눈이 있구나!”
“코트를 검은색으로 해봐.”
“아니, 여기서?”
“응, 그럼 김밥이잖아!”
“헉! 설희, 너마저! 눈 있다는 거 취소!”
30분 정도가 지나자 대행사 직원이 다시 나타났다.
“20분 후에 기자회견장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그전에 마이클 잭슨이 이곳 대기실에 먼저 들를 예정입니다. 좀 전에 도착했거든요.”
5분 정도가 지났을 때, 다시 문이 열리며 7명의 남자와 여자 1명이 들어섰다.
두 번째에 들어오는 남자가 바로 마이클 잭슨이었다.
“안녕하세요. 마이클입니다.”
많이 연습한 듯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마이클 잭슨이다.
한국엔 두 번째 방문인 그다.
“네, 안녕하세요. 스노우 설희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진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아나스타샤예요. 아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눈부신 셋의 미모로 인해, 마이클 일행에게서 잠시 정적이 있었다.
그 틈에 태월이 나섰다.
“전 이 셋을 책임지는 TW의 박태월입니다. 아 그리고 여긴 같은 가족인 아루라고 합니다.”
아루는 엉겁결에 손을 흔든다.
“영상에서는 보정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실물이 몇 배는 더 아름답네요. 이 말부터 통역을 해줘!”
마이클의 통역사인 듯한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태월이 나섰다.
“마이클? 여기 있는 우리 일행은 전부 영어로 대화가 됩니다. 언어에 대해서는 편하게 하면 돼요.”
마이클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했다.
“오우! 다행입니다. 통역을 거치면, 있는 그대로의 감정 표현까진 되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스노우 빼고는 두 분에 대한 정보가 일절 없더라고요.”
“아, 그건 이 둘이 이 공연을 끝으로, 다시 학업에 열중해야 해서요.”
“어? 그럼 교환학생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아진은 한국인이고 아샤는 러시아인입니다. 그리고 둘 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의학부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은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온 거였죠.”
“그럼, 스노우 양과 다 친구분?”
“친구긴 한데, 따지면 다 동생들입니다. 가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분은 그냥 직원 같지 않네요? 세 분과의 분위기도 그렇고.”
마이클 잭슨의 눈엔, 일행이 너무 다정해 보였기 때문이다.
“호호, 느낌으로 금방 아시네요? 맞아요. 여기는 제 친오빠예요. 친오빠도 방금 말한 그 대학 의학부를 다니고 있고, 이 둘을 데리고 한국 온 거였어요. 그러다 저와 함께하게 된 거죠.”
“아 아, 친오빠셨구나. 끈끈해 보이는 게, 단순한 공적 관계로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오, 그럼 세 분 모두 의사가 되시겠네요? 그 노래 실력으로 의사를 하기엔 아깝지 않나요? 아, 오해는 하지 마세요. 의사를 비하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인류의 손실입니다.”
아샤가 의학부이긴 해도 약사 과정을 밟는 중이다.
그러나 구구절절 그런 말까진 마이클에게 해줄 이유가 없기에 넘어가는 태월이다.
“의대를 나오더라도 취직이나 개업을 할 생각은 없거든요. 그냥 의학에 관심이 많다고 여기시면 됩니다. 노래야 취미 삼아서 종종 부를 수도 있을 거 같고요.”
“오! 그럼 졸업 후에는 합동 공연이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네, 뭐! 나중에 기회 닿으면 가능하겠죠.”
“아, 저기 끝에 계신 분은 동생분인가요? 노란색 입으신 분! 저도 노란색을 공연 때 자주 입었는데, 패션 감각이 돋보입니다.”
“어머! 탁월한 안목이시네요. 패션에 대해 뭘 좀 아시네.”
자신의 복장에 대해 알아주던 사람이 없어서 자신을 잃어가던 아루는, 표정이 금방 밝아지며 텐션을 높였다.
그 후로 5분간은 아루의 세상이었다.
의외로 마이클도 아루와는 대화를 길게 이어갔다.
그리고 설희와 아진 그리고 아샤와도 전화번호 교환까지 하며, 즐거운 사담을 이어갔다.
대행사 직원이 시계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기자회견장으로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마이클은 직접 문을 열어 숙녀들을 인도했다.
기자회견은 짧게 하기로 해서 40분간 진행되었다.
의외인 건 세계적 가수인 마이클 잭슨의 관심과 비슷한 분량으로, 설희와 두 여자에게 질문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해외 언론에 대한 답변은 그 나라 말로 해주었고, 국내 언론의 질문에는 한국어로 했다.
영어, 일어, 중국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한국어라는 8개 국어가 사용된 것이다.
같이 자리한 마이클 잭슨도 놀랐고, 질문하는 기자들도 경악했다.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유창한 원어민의 발음이었다는 게 또 하나의 이슈였다.
그리고 프랑스 기자의 질문에 그들 셋의 학벌도 공개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최고 명문인 서울대와 러시아 최고 명문인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의 의학부라는 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공연 전 기자회견 하나로 새로운 이슈를 만들며, 이 내용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8개국 언어 능력자에 최고의 학벌 그리고 월드클래스의 얼굴과 몸매.
그야말로 뉴스를 접한 사람들에겐 그녀들은 이 시대의 끝판왕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리허설이 한 번 있었고, 이틀 후엔 드디어 공연의 날이 밝았다.
오후 5시가 되자 잠실 운동장이 개방되었다.
6만의 객석은 빈자리 자체가 없었고, 운동장 밖의 야외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는데, 노랫소리라도 들으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연 끝났을 때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긴 시간을 죽치고 있는 셈이다.
그 때문인지 텐트를 가져온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그래도 웃기는 건 마이클 잭슨이 메인이 되어야 함에도, 대부분은 세 여자를 보러 온 것이었다.
“와! 사람 너무 많은 거 아니야? 6만이라길래 그런가 했는데, 실제로 보니 엄청나네?”
“하하, 아루는 떨리나 보네?”
“응? 내가 떨 일이 어디 있어? 난 얼굴도 안 나올 건데.”
“그러면서 손톱은 왜 물어뜯고 그래?”
“아? 아하하, 그냥 칼슘이 부족했나 봐.”
“너도 이제 준비해야지.”
“알았어! 잘 놀다 올게.”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 쇼가 시작되었다.
아루로 인해 그 비용이 절반쯤 줄어들었다.
그리고 공연은 시작되었다.
각국의 방송사들이 실시간 중계 중인 공연이었다.
이 공연 실시간 방송에는 TW의 음악방송국도 참가 중이다.
사회자의 멘트에 이어, 크레인의 하강 장치를 이용해 마이클의 노래가 공중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이 준비해온 플래시로 노래에 호응하니, 반딧불의 향연이 관객석에서 펼쳐졌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무대 장치가 바뀌면서 장애물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등장했다.
“우와! 저게 뭐야? 저, 저거 호랑이잖아!”
“헉! 백호다!”
“그, 그녀들이 타고 있어!”
백호의 등에 아샤와 아진이 타고 달렸다.
2m 지름의 불타는 고리를 통과하고, 불붙은 장애물을 뛰어넘고 무너져 가는 계단을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 뒤로 총을 든 삼십여 명의 군인들이 그녀들을 쫓고 있었다.
일부는 앉아 쏴 자세를 취하며 총을 쏘았다.
-탕! 탕탕! 타타탕!
관객들은 경악하였다.
“으억! 총! 총까지?”
“헉, 이거 가상현실 영화라도 되나?”
“이, 이거 영화 속에 우리가 있는 거 아냐?”
사전 정보 유출을 막은 덕에 관객들은 이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계단 끝에 도달한 성녀 복장의 설희는 종루에 설치된 대형 범종을 향해 걸어갔다.
그 범종은 절에서 하루 임대를 해 온 것이다.
그 순간 아샤와 같은 복장을 하고 종루를 지키던, 여전사 아진이 손을 들어 불을 만든다.
그런데 그 불은 몸체를 점점 키우더니 하늘로 10m가량 떠올랐다.
그리고 전설의 불의 새 피닉스로 변하더니, 밤하늘에 불꽃 쇼를 펼쳤다.
잠실 운동장의 하늘엔 온통 불의 꽃잎이 휘날렸다.
뜨겁지도 타지도 않는 특이한 불이었다.
“으아, 불, 불이야! 미친….”
“어? 뜨…. 뜨겁지 않네?”
“머리카락에 떨어졌는데, 불도 안 붙고 금방 꺼졌어!”
“이, 이런 연출이 가능하다고? 마법 아니야?”
황당한 일이었지만, 안전하다고 느꼈는지 다들 무대 상황에 흥분해 있었다.
그리고 아진과 아샤는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쫓아온 병사들과 맨손으로 전투를 벌였다.
무술에 관한 재능은 오래전에 받았기에 이젠 능숙했다.
병사들이야 전문 무술 관련 스턴트맨들이지만, 그들도 이틀 전에 겪은 당황이 다시 연출되었다.
리허설 때 실전에 가까운 상황을 요구하는 그녀들에게 황당했었다.
여자 둘이서 33명을 상대하려고 해서다.
그런데 막상 오기로 받아들이고 나서는, 5분 만에 일방적으로 뻗어버렸다.
지금은 다들 몸이 공연의 열기에 사로잡힌 상태라 격렬하였지만, 역시나 오늘도 처맞는 건 같았다.
비록 액션이 큰 것에 비해 큰 충격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삐끗하면 부상이었다.
“아! 이건 또 웬 블록버스터급 액션 영화냐?”
“야, 좀 입 닥쳐!”
같이 온 옆자리 친구가 중얼거리는 그를 팔꿈치로 쳤다.
집중하는데 입 닥치고 방해하지 말란 의미다.
집중을 깨서는 안 될 객석 분위기였고, 숨을 쉬지도 못했다.
그녀들은 땅에 발을 거의 대지 않는 상태서, 병사들의 어깨와 쓰러진 등을 밟고 공중에서 날아다녔다.
공중 휘 돌려차기에 굽혀진 병사의 등을 다시 밟고 양발 가위차기.
5분간은 그냥 판타지 활극이었다.
허벅지까지 그대로 드러난 여전사복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마다 눈부셨다.
종루에 올라서 있던 설희는 아래를 힐끗 보더니, 종 옆에 매달린 타기를 최대로 당겼다가 밀어버렸다.
-데에엥!
웅장한 범종 소리가 잠실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그때서야 관객들은 숨을 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