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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24화 (124/250)

124화. 블라디미르 푸틴

태월이 눈을 빛내며 조민희를 응시했다.

“응? 더 빠르게? 그게 뭔데?”

“며칠 이내로 아카가 정보를 보내올 거예요. TW는 부동산 쪽은 강하지만, 주식은 약하잖아요. 앞으론 주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셔야 해요. 저평가된 주식도 많을 거고, 부동산과 달리 자금 회전도 빠르잖아요. 정보만 정확하고 예측률이 높으면 주식은 노다지예요. 공룡도 먹어 치울 수 있을걸요.”

“뭐, 그렇게 정보만 주어진다면 못 할 게 없지. 특별 부서부터 만들어서 준비해둘게.”

“설희 얼굴 공개를 준비한다면서요?”

“우리도 그거 때문에 시달려서 더는 버티기 힘들어. 사실 2차 앨범 나올 때가 제일 적기기도 하고. 아, 그리고 이젠 설희도 매니저가 필요해서 구해놨어.”

“어떤 분인데요?”

“이쪽 업계에서 5년 정도 일한 사람인데, 성실해서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지. 그러다 그 회사가 IMF로 망한 거야.”

“음, 혹시 그 회사도 인수한 거 아녀요?”

“어머, 점쟁이네? 규모가 작아서 굳이 너에겐 말하지 않았던 거고.”

“그거야 설희에게도 소속사가 필요할 테니까요. 설희가 학교도 다녀야 하니, 소속이 있는 게 낫잖아요. 그런데 그 연예기획사 이름이?”

“이름이야 바꿨지. TW 엔터테인먼트로!”

“에이, 그 이름값 때문에 작은 회사가 되긴 글렀네요. 재계 8위 기업의 계열사를 누가 쉽게 생각하겠어요. 더구나 음악방송사도 가지고 있는 TW인데. 한 시간 후면 퇴근 시간이네요?”

“호호, 아빠도 일찍 들어온다 했으니, 다 같이 퇴근 시간에 맞춰 나가자. 음식은 이미 출장요리사에게 부탁해놨거든! 사실 엄마가 직접 해줘야 하는데, 요즘 너무 바빠서 불량 주부가 다됐어.”

“에이, 몸이 하난데 집안일까지 잘하려 들면 스트레스가 생겨요. 아빠도 그거에 불만 없던데요?”

“호호, 네 아빠는 주변 지인들 식당에서 밥 먹으며 반주 한 잔 걸치는 걸, 더 좋아해서 그래. 예전부터 그랬는데 뭐. 그런데 오늘 점심쯤 올 줄 알았더니 다른 일 있었어?”

“아, 여기 오는 길에 운전면허 응시 신청했거든요. 온 김에 따놔야죠.”

“도로 주행 연습 같은 것도 해야 하잖아? 실력 있는 강사 소개해 줄까?”

“그건 러시아에서 많이 했어요. 운전 실력은 몇 년 되거든요.”

몇 년이나 된다는 태월의 말이 조금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조민희다.

“너 혹시 러시아에서 무면허 운전했니?”

“하하, 가끔은요. 그래서 모스크바에서 서킷 코스를 많이 주행했어요. 거긴 달러만 내면 서킷을 돌 수 있거든요.”

태월은 일주일 정도를 서울에서 머물렀고, 아진과 아샤를 데리고 서울 관광을 다녔다.

그리고 설희의 2차 앨범 발표를 본 후에, 곧바로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일정상 더 머무를 수도 없었고.

“태월! 잘 다녀왔어? 설희는 잘 있고? 아니 아루까지 웬일이야? 거기 요즘 다리가 놓여서 굉장히 바쁠 텐데.”

“흥, 나도 나이 들어 휴식이 필요한 몸이거든? 휴가받았지!”

“아이구, 그러셨어요? 몸으로 봐선 한창 성장기 같구먼.”

“윽, 여성 비하 발언이야.”

태월은 아루의 장난을 무시하고 아쿠에게 고개를 돌렸다.

“특별히 뭔 일 있어? 우리가 알아서 가도 되는데.”

“음, 특별할 거까진 없긴 한데, 지금 대통령이 위기야.”

“보리스 옐친이 왜?”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지 뭐. 그런 이야긴 종종 나왔잖아. 그리고 과도기에 무리한 일을 여러 번 해서 시위도 참 많았고.”

보리스 옐친의 대표적인 실책이 국영 석유사의 헐값 매각과 체첸전쟁의 실패였다.

체첸 공화국과의 전쟁은 1994년에 시작되어 1996년에 끝났다.

소련 해체기에 체첸 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포하자 발생한 보복 전쟁이었다.

그러나 1999년이 되자 다시 불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대화하기 뭐하니, 저녁도 먹을 겸 식당으로 가자.”

“그래, 조용한 곳이 있는데 거기면 되겠네.”

20분 정도가 걸려 도착한 식당은, 저택을 개조한 유럽식 레스토랑이었다.

“여기 분위기가 꽤 괜찮은데?”

“호호, 나도 직접 오긴 처음이야.”

“그런데 옐친이 어떻게 할 거 같은데?”

“측근에게 넘길 거 같아.”

“측근이면 블라디미르 푸틴? 지금 연방안전국, 아 최근엔 연방보안국이라 부르던데. 하여간 그 FSB 국장을 하고 있잖아.”

“연방 안전보장회의 서기도 겸하고 있잖아. 그를 밀어주려는 것 같아. 총리로 임명하려는 분위기야.”

“뭐, 물러나도 옐친 자신이 안전하려면, 측근이 권력을 가져야겠지. 그래서 푸틴하고 연결 고리를 만들려고?”

“푸틴 자신도 결국 해외 자본 유치가 러시아가 살길이라는 걸 알아. 러시아에서 우리만큼 호의적인 다국적 기업은 없잖아. 더구나 모라토리엄 이후 정부와 꽤 협조적이었고.”

“흠, 그건 나보단 아쿠가 더 인맥이 좋을 듯한데? 나야 한동안 물러나 있었는데 뭘 알겠어.”

“푸틴이 총리 이후 대통령이 된다면 꽤 장기집권을 할 거 같아. 아마 정책 1호는 경제 정책이 될 거야. 추락한 러시아 경제를 끌어올리는 데 모든 힘을 쏟을 거 같아.”

“그럼, 석유와 가스 수출에 매진하겠네? 가격도 꽤 오를 거 같던데.”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렇긴 해. 그래서 우리도 모라토리엄 후부터 꾸준히 석유와 가스 관련 회사 주식을 매입해왔잖아. 그때 국영 석유 사업에 입찰할 걸 그랬어.”

“대신 다른 사업에 투자해서 승승장구하는데, 그 당시 입찰까진 필요 없었잖아. 차라리 그 회사 주식을 더 사들이는 게 이득이지. 하여간 푸틴과의 일은 아쿠가 잘 해봐.”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해볼게.”

태월은 아쿠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둘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끝난 듯 하자, 아루가 아샤와 아진을 본다.

“그 머리 서울에서 한 거야?”

“응, 압구정 엄마가 데려가 줬어. 연예인들이 주로 오는 곳이라던데?”

“으익, 나도 휴가를 당겨서 같이 갈 걸 그랬어. 여기 러시아 미용실들은 전부 구식이야.”

점점 인간화되어가고 있는 아루다.

태월은 개강에 맞춰 학교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 사이 아쿠의 예측대로 푸틴은 총리에 임명되었다.

그 후 보리스 옐친은 석 달 정도의 임기를 남겨두고,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을 표했다.

총리로 있던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았고, 4개월도 되지 않아 러시아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러시아 연방 헌법상 대통령 임기는 두 번의 연임을 제한한다.

아마 장기집권을 하려면 중간에 총리직을 다시 맡아야 할 것이다.

“아카? 오랜만이네. 무슨 일 있어?”

“한국의 벤처기업 중에 1993년에 세워진 새롬기술이라고 있거든? 거기 기술력이 꽤 신박해. 인터넷을 이용한 무료전화 서비스를 준비하는 것 같아. 진행도 꽤 되었더라고.”

“상장했어?”

“올 8월에 코스닥에 상장할 거야. 내부 계획이 그렇더라고. 아마 상장 이후 좀 지나고, 두 달 정도면 가격이 최저가가 될 거야. 당장 드러난 업적이 없으니,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거든. 가격이 낮아진 10월에 사들이는 거로 해. 그 외에도 몇 가지 회사 정보가 있는데 그것도 보내줄게.”

“알았어. TW에 그렇기 전해둘게. 거긴 별일 없어? 여긴 해외관광객이 생각보다 더 늘어나고 있어.”

“뭐 여긴 인공위성과 로봇 쪽 일 때문에 정신없어. 전문연구원 추가 확보도 해야 하거든.”

“아, 맞다. 우리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연결점을 확보해놨어. 뭐 대신 자금 투자를 더 해야 하지만 말이야. 자원 쪽을 사들일까 해.”

“호호, 나도 조만간 그 인맥에 연결해줘. 블라디미르도 좋아할 거 같은데?”

“해외투자라고 하면 맨발로 튀어나와 손 번쩍 들고 반길 거야.”

“알았어. 만나게 되면 하이파이브도 해주지 뭐. 혹시 바람둥이는 아니겠지?”

“글쎄, 내가 그쪽으론 좀 무디잖아.”

“호호호, 드디어 인정하는군.”

아카와의 통화를 끝내고, 아쿠와 다시 연결되었다.

이런 건 바로바로 넘겨주는 게 태월에게 속 편하다.

아카와의 통화내용을 통보해주고는, 아쿠와 본격적으로 제3차 러시아 투자를 모색했다.

“아쿠? 러시아는 광산자원도 좋지만, 석유와 가스가 더 적당해.”

“결국 석유회사 하나 정도는 사들여야겠네. 공구 확보가 잘된 곳으로 추려야겠어.”

“아직은 석유 가격이 한참 낮으니 회사매입을 저렴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긴 하지. 아카에게 연락해서 러시아 석유회사들 정보를 보내 달라고 해. 아마 꽤 정보가 방대할 거야.”

“오케이. 그다음부턴 내가 알아서 할게. 괜히 학업에 지장 주면 안 되잖아.”

“하하, 날 이해해주는 건 역시 아쿠가 제일이야. 땡큐!”

한국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홍미연이 보내온 내용이었다.

명품브랜드 이름을 ‘TAESEOL’ 즉 태설로 지었다고 한다.

태월의 태와 설희의 설을 합친 자식 사랑의 결과다.

태월이 모스크바 근교에 있던 소규모 샘플 제작공장 하나를 인수해서 그곳에서 만든 걸 몇 점 보내줬었다.

옷 열 벌과 가방 다섯 점이었는데, 지인들의 반응이 굉장했다고 한다.

하긴 그림을 수억에서 수십억 받고 팔던 태월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손으로 하나씩 만드는 거와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이것만 잘 진행된다면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그 이름이 퍼져나가는 것이다.

태설이라는 명품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그러다 보니 태월은 경면주사의 확보를 TW에 의뢰하였고, 중국을 통해 대량으로 매입했다.

“오빠? 이번엔 한국 안 가?”

“하하, 러시아는 이게 문제야. 여름 방학이 너무 길어. 그런데 우리 의과는 다들 남아서 공부하잖아. 우리 셋만 이렇게 놀 거 다 놀 뿐.”

“우리가 천재라잖아. 그러니 천재의 의무를 다해야지.”

“이런 건 권리라고 해야 할 거 같은데?”

“설희 언니 콘서트 가보고 싶단 말이야. 늘 만석이라던데, 얼마나 신이 나겠어. 나도 거기서 콩닥콩닥 뛰어보고 싶다니까!”

“에고. 등치는 어른만 한 게 하는 짓 보면 딱 엽기 발랄 한국의 중2 소녀네.”

“아직 일주일 더 있어야 방학이거든? 뭘 벌써부터 부담을 주고 그래.”

“안 그럼, 알혼섬 갈 거 아냐!”

“너, 아리랑을 또 맡기고 가자고?”

“아니! 그 배낭에 넣어가면 되잖아.”

“에휴, 아샤가 점점 떼쟁이가 되어가네. 그래 가자 가!”

“야호! 아진 언니!”

주방으로 도도도 뛰어가는 걸 보니, 아진도 한국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다.

일주일 후 방학이 되었고, 이번엔 아루까지 데리고 가기로 했다.

아쿠마저 빠지면 문제 되기에, 그녀는 가지 못했다.

안드레이와 라리사도 하루 정도면 몰라도 긴 시간은 낼 수 없었다.

해외관광객이 점점 더 늘어남에 따라, 다른 걸 돌아볼 여유가 적어졌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 괜히 미안함이 드는 태월이다.

“예? 설희가 다쳤다고요?”

비행기 타기 두 시간 전에 걸려온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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