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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22화 (122/250)

122화. 1999년

엉거주춤 서 있는 니콜라이가 불쌍해 보이진 않는 태월이다.

“그래 고생했어. 그런데 여기 벙커는 왜 만든 거야? 그 벙커엔 뭐가 있지?”

“그전의 제가 만든 건 아니고 원래 이 집 자체에 있던 것입니다. 뭐 숙청을 당한 사람의 집이었거든요. 소련 해체 때 연방을 탈퇴해서, 적대적 국가로 바뀐 곳이 몇 있습니다. 그곳에 있던 핵무기를 이곳에 빼돌려놨습니다.”

“헙, 핵, 핵무기라니.”

태월은 예상치 못한 니콜라이의 말에 당황했다.

“아, 아직 러시아 정부는 모릅니다. 이 몸이 지금 대통령을 믿지 않았거든요. 소련 해체의 주역이지 않습니까?”

해외정보국의 일개 팀장이 저지를 짓은 아니었다.

연방안전국의 빅터가 말한 것처럼, 해외정보국의 니콜라이는 미친개가 맞다.

“헐, 그래서 다른 특별한 건 없고?”

“그 컴퓨터의 하드에 인공위성과 핵무기 제조기술이 들어있습니다.”

“헉, 니콜라이가 미쳤구나. 그걸 러시아 정부 몰래 숨겼다니.”

“제가 보기에도 니콜라이가 제정신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뭐 그만큼 현 정부를 믿지 못했단 거겠죠. 뇌의 기억으론 반정부 혁명을 꿈꿨네요. 그는 예전의 강대한 소련을 원했습니다.”

“혁명도 돈이 있어야 할 건데. 일개 팀장이 돈이 어딨어?”

“핵무기를 팔려고 했는데요?”

태월은 어이가 없어서 입이 벌어졌다.

“헐, 니콜라이는 그냥 둬도 오래 살지 못했겠어. 지지층도 없는데 무슨 혁명 타령이야. 그리고 핵무기가 그리 쉽게 문제없이 거래되는 줄 알아? 못 팔면 혁명 못 하겠네?”

“그래서 인공위성과 핵무기 설계도를 복사본으로 두 개나 팔았더라고요.”

“아이고 그래도 뭔가 하긴 했네. 그래서 그 돈은 얼마고 어디에 있어?”

“스위스계좌고요. 2억 5천만 달러입니다.”

“헐! 부자네. 그 돈 가지고도 어느 정도 될 건데, 왜 RAON 여회장을 노린 거야?”

“러시아를 살리려면 돈이 더 많아야 했거든요. 혁명에 성공해도 풀 돈이 없으면 오래 못 가죠. 한 10억 달러쯤 만들려 했습니다.”

“핵무기는 벙커에 없던데?”

“아닙니다. 바닥에 공간이 있습니다. 그곳에 3기가 있지요.”

태월은 아카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카? 저 설계도들하고 핵무기 어쩌지?”

“인공위성은 우리도 거의 완성돼가는데. 그리고 핵무기는 생각도 안 해봤고. 그래도 꽤 도움은 되겠어. 러시아 인공위성 기술에 우리 기술이 합쳐지면 상당할 거 같은데? 핵무기는 벙커에 그대로 두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니콜라이? 앞으론 여기 RAON 여회장을 나라고 여기고 충성을 다하도록 해. 내 가족이니 그리 생각하면 될 거야. 아카도 니콜라이를 통해 정보를 모으면 도움이 될 거 아냐?”

“네, 마스터!”

“호호, 그럼 꽤 많이 되지. 드러난 세상 외의 정보도 알 수 있으니 좋은 기회야. 최상의 시나리오는 니콜라이를 밀어주는 거고, 해외정보국을 손에 쥐게 해야겠어.”

“그럼 둘이 더 이야길 하도록 해. 그리고 니콜라이 비자금은 아카가 맡아서 활용해.”

“응, 알았어.”

태월은 그 둘을 남기고 1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와 보니 아샤와 아진이, 이반을 뺑뺑이 돌리고 있었다.

몸수색 때에 있던 일로 갈구는 중이다.

그런데 자신의 몸이 그리했다는 걸 아는지라, 이반은 불만 없이 벌을 달게 받는 중이었다.

소생하면 영혼이 정화되기에 저런 생각을 한 거지만.

“셰퍼드들은 말썽 없이 마당에 있나?”

“응, 그 애들도 소생해서인지 착해졌어.”

“뭐, 원래 착했는데, 그 약 때문에 그리됐을 수도 있지. 아카의 마무리가 끝나면 우린 집으로 바로 가자. 그림도 그려야 하고, 시간이 좀 늦었어.”

“응, 나도 좀 피곤해.”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아카는 1층으로 올라왔고, 태월 일행은 니콜라이의 배웅을 받으며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식자재만 그대로 두고 빈방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새벽까지 그림을 그렸으며, 아침이 되어 아진과 아샤를 데리고 학교로 등교했다.

아카는 한국에 자료를 보내고, 투자 관련해서 조민희와 장시간 통화하게 되었다.

그사이 그림이 마르자, 오후 늦게 미국행 비행기로 돌아갔다.

그 후 반년이 흐른 1998년 6월에 알혼섬으로 가는 BATR 다리는 완성되었고, 태월도 개통식에 참석하였다.

학교는 여름 방학 중이라서 아진, 아샤와 함께 알혼섬에 있던 시기였다.

“이제 알혼섬과 칭기즈칸 박물관으로 관광객이 넘쳐나겠네.”

“개통에 맞춰 알혼의 확장 도로도 다 완공되었고, 관광열차도 완전한 탈바꿈을 이뤘습니다. 아직 놀이공원이 80%의 완성도지만 이것도 올해 내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다들 수고했어. 러시아 상황이 안 좋긴 하지만, 관광객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문제는 그리 없겠어.”

“네, 내국인은 줄어들었긴 해도, 해외관광객이 급증한 만큼 여건은 호재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달러로 모든 게 유통되고 있어서, 실질 이득은 더 큰 상태고요.”

“보육원과 학교는?”

“9만 명이 넘는 원생이 추가로 생겨났습니다. 러시아 경제가 파탄 상황에 오자, 아이들이 거리로 더 내몰리고 있어서죠. 학교는 9월 개교에 맞춰 진행상 차질이 없는 상태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사업 보고를 1시간 정도 더 듣고 나서야 회의실을 나설 수 있었다.

자신이 이제 적극적으로 개입 안 해도, 알혼섬은 잘 돌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흡족했다.

결국 러시아는 8월이 되자, 아카의 예측대로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하게 되었다.

BATR 기업은 만반의 준비를 이미 해둔 상태기에, 피해보단 실질 이득이 더 커졌다.

지방정부의 파산이 연이어 터졌고, 다수의 기업이 도산하고 있었다.

BATR는 건실한 기업들을 본격적으로 헐값에 사들여나갔다.

외국자본이 더 많긴 해도, 주체가 국내 기업이기에 러시아 정부에서도 협조적이었다.

해외 기업에 팔리는 것보단 낫기 때문이다.

그렇게 1998년은 지나갔고 1999년이 되었다.

태월은 한국 나이로 21세지만,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나이로는 19세다.

길지 않은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태월은 한국으로 건너왔다.

“아진 언니? 한국 온 소감이 어때요?”

“호호, 할아버지 나라에 오니 마음이 심쿵해지네. 주민증 만들 때만 해도, 그땐 정신이 없어 실감이 안 났는데 말이야.”

“아진인 온 김에 나랑 같이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자.”

“네, 저도 그러려고 했어요.”

공항 출국장을 나오자, 설희가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설희 언니!”

“호호, 어서들 와!”

아샤가 쪼르르 달려가 설희에게 안긴다.

“에고, 이젠 아샤가 나보다 더 크네?”

“잉, 차이도 안 나는데 뭘.”

“안녕하세요. 신아진입니다.”

설희는 아샤를 밀어내고, 아진의 손을 맞잡았다.

“어머, 이야긴 들었어요. 그런데 너무 미인인 거 아녀요? 아샤랑 쌍벽을 이루시네.”

“저보단 한 살 언니신데 말 편히 하세요. 그리고 미인은 언니에게 더 잘 어울리네요.”

“호호, 알았어. 빈말이라도 듣긴 좋네.”

“너희 그만 떠들고 나가자. 구경거리가 되고 싶냐? 사진 찍는 거 안 보여?”

공항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카메라를 꺼내 태월 일행을 찍고 있었다.

“어머, 깜빡했네. 빨리 이동하자.”

“얼굴 없는 가수라서, 찍히는 건 신경 안 쓰나 보네? 이젠 알릴 때가 되지 않았어?”

“음, 그렇긴 한데, 다음 주 신곡 나오거든? 작은 엄마가 그때 하자고 하더라.”

설희가 말하는 작은 엄마는 조민희다.

오빠의 엄마이기도 하기에 그리 부르고 있다.

설희는 1년간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자작곡 7곡을 냈다.

처음엔 알려지지 않다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틀어준 걸 계기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음악방송에서 탑텐에 진입하더니, 한 달 만에 7곡 전부 20위권에 안착했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나서는 1위로 올라섰고, 나머지 곡들은 2위, 3위 그리고 6위부터 9위까지 줄 세우기를 해버렸다.

언론에서는 설희라는 가수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음악방송사는 끝까지 침묵하였다.

TW가 인수한 음악방송국이다 보니, 정보 유출이 되지 않은 것이다.

오죽하면 1등 상만 5차례나 TW 홍보실에서 대리로 받았다.

무려 1년간이나 버텼으나, 비공개로 인해 안티가 생겨날 조짐이 보였다.

그래서 2집 신곡 때 공개하기로 발표했고, 대한민국 팬들이 2집 나오는 날만 기다리는 중이다.

그리고 해외 팬들도 생기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급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TW에서는 2차 신곡 때는 해외 신드롬까지 예상 중이다.

-찰칵! 찰칵!

“어머머, 저 여자들 누구야? 한국엔 저런 여배우가 없는데? 홍콩 쪽인가?”

“헉! 역대급이다! 누구 아는 사람?”

“우와, 눈이 다 시원하네. 갑자기 시력도 좋아진 것 같아.”

“오빠? 내가 그 눈 때려줄까? 아 막 화나야 하는데, 뭐라 할 말이 없네. 그런데 셋 다 진짜 이쁘긴 이쁘다. 저 남자가 매니저인가? 한국 남자 같은데?”

“외국 배우를 한국 남자가 매니저 할 리 없잖아. 두 여신은 한국 여자 같고, 다른 여신은 러시아? 미국? 유럽?”

“저, 저기요! 배우분들이죠? 아니면 가수? 연예인은 맞는 거죠?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팬! 1호 팬을 하겠습니다!”

“모자 좀 벗어 주시면 안 될까요?”

이십여 명이 몰려있는 상황이기에, 태월은 일행을 챙겨 빠르게 빠져나왔다.

빨간색 차가 주차장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압구정 들렀다가 인사드리고 바로 홍대로 가자. 그런데 차를 샀어?”

“호호, 마이카지롱! 내 돈으로 샀음. 오빠는 아직도 면허증 없지?”

“크, 부럽네. 그러잖아도 한국 들어온 김에 이번에 따려고 해. 저기 아진도 그렇고.”

압구정 집엔 아무도 없기에 도장부터 들렀다.

조민희는 회사에 있기에 나중에 들를 생각이고.

“우와! 연예인들이다.”

“누나들! 저 사인 좀 해주세요.”

태권도장은 저학년 학생들 수업 시간이어서인지, 초등학생들이 잔뜩이었다.

수업 중이던 사범 하나가 고개를 돌리다가, 태월 일행을 발견하곤 앞으로 나섰다.

“우와! 사범님 오랜만이네요?”

“하하, 어릴 때 잠깐 한 건데, 무슨 사범 타령이에요. 아버지는 관장실에 있죠?”

태월이 러시아로 가기 전, 한 달 정도 초등부를 맡은 적이 있었기에 저러는 것이다.

“네, 그러잖아도 온다는 얘기는 하셨어요. 그런데 한 분이 동생분인 건 알지만, 다른 분들은?”

“러시아에 있는 가족들이죠.”

“가족요? 그새 결혼이라도 하신 거예요?”

“크, 아니요. 그냥 가족과 같다는 의미예요.”

“사범님! 우리 사인도 받게 해줘요!”

“하하, 아이들이 저렇다는데요?”

“글쎄요. 연예인도 아닌데 사인하는 게, 좀 이상한데요?”

“얘들아! 아쉽겠지만, 이분들 연예인이 아니랜다. 포기해라!”

“악! 안 돼요. 그럼 단체 사진이라도 찍어요.”

“어? 아들 왔어? 우리 딸도 왔네?”

도장이 시끄러워져서인지 관장인 박승철이 나온 것이다.

“어라? 아빠 얼굴이 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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