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20화 (120/250)

120화. 러시아 연방안전국과 해외정보국

막아섰던 차에서 한 명이 내려 운전석 문을 두드렸다.

태월은 몸에 에너지를 두른 상태서 차창을 내려 그를 응시했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막아선 이유는, 이 일행을 노리는 집단이 있어서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당신들은 누구죠? 그리고 우리를 아나요?”

“저희는 러시아 연방 안전국입니다. BATR 다국적 기업 관련 임원들 아니십니까?”

1991년 8월 KGB가 해체되고 나서 연방안전사무소(AFB)를 거쳐 1992년 1월 러시아안전부(MBR)로, 1993년 연방방첩국(FSK)로 격하되었었다.

그 후 체첸사태 등으로 정보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95년에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연방방첩국(FSK)을 러시아연방안전국(FSB)으로 개편하여 정보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였다.

러시아의 정보부는 FSB와 SVR 두 가지가 있으며, 미국의 FBI와 CIA 같이 이원화 체제로 가고 있다.

연방안전국(FSB)은 러시아 국내의 치안과 방첩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해외정보국(SVR)은 해외 첩보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의 주요 부처에 국가정보기관 출신들이 포진해 있는 상황이다.

보리스 옐친의 대통령 행정실 국장을 맡은 블라디미르 푸틴도, 동독에서 오랫동안 KGB 요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15년간 KGB 제1 총국(해외공작부서)에서 근무했었다.

“우릴 감시하고 있었나요?”

“감시는 아닙니다. 지금 러시아의 해외 투자자본 이탈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라서, 관심을 가지고 보호하는 상황이었을 뿐입니다.”

‘뭐, 어찌 되었든 무늬만 다를 뿐 감시가 맞긴 하네.’

“누군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면, 관광은 글러 먹었네요. 시간도 남고 하니 자세한 사항을 들었으면 합니다. 그게 아니면 우린 감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다국적 기업을 감시한다는 게 알려지면, 국내 분위기가 살벌해질 듯하네요.”

“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위에 연락해보겠습니다.”

태월 일행에게 20분 후 허락이 떨어졌고, 그들의 차를 따라 어떤 가게로 들어갔다.

“혹시 연락할 일이 생기시면, 이곳 지배인에게 알려주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태월 일행은, 별실 2호라고 이름 붙여진 룸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엔 5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갈색 머리의 건장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에프에쓰베의 빅토입니다.”

FSB를 러시아에선 에프에쓰베라 부른다.

“네, 반갑습니다. 소개는 굳이 안 해도 되겠죠?”

“하하, 뭐 이름 정도는 알고 있긴 합니다. 이쪽으로들 앉으세요.”

태월 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자, 따뜻한 차 한 잔이 나왔다.

“질 좋은 차가버섯입니다. 마셔 보세요. 조금 쓰긴 하지만, 식욕을 돋우어 줄 겁니다.”

러시아산 차가버섯은 항암 작용도 뛰어나고, 면역력 강화에도 효능이 높아 태월도 애용 중이었다.

끓는 물에서는 주요 효능이 소실되기에, 끓이기보단 80도 이하에서 우려내 먹어야 한다.

태월이 한 잔을 먼저 마셔 보니, 늘 먹던 것보단 더 순수해 보였다.

“오, 이거 질이 꽤 좋네요?”

“하하, 정보기관에서 주는 걸, 의심 없이 벌컥 마시다니 담대한 분이군요. 뭐 먹는 거로 장난은 안 치니 염려하진 마십시오. 그 차가버섯은 시중에선 구하기 힘들 겁니다. 수량이 많지 않아 우리 회사에서 전량 사들이고 있습니다.”

빅터가 말한 회사라는 건, FSB를 위장해서 부르는 이 세계의 흔한 지칭이다.

“또 먹어보긴 어렵겠군요.”

“하하, 필요하다면 조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는 여유가 있거든요. 받는 게 부담되시면, 우리가 사는 매입가로 나눠드려도 되고요.”

선물 자체가 하나의 부담으로 남는 걸 싫어하는 기업인의 특징을 빅터가 잘 아는 것이다.

“네, 후자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리를 노리는 곳이 어딘가요?”

“음, 민망한 이야기지만, 에쓰베에르입니다.”

러시아의 해외정보국 SVR을 그리 부르는 것이다.

“그들이 왜 우리를?”

“실제로는 BATR의 지분 중에 RAON 기업이 젤 크지 않습니까? 또 미국의 RAON 기업도 요즘 굉장히 핫하고요. 러시아가 지금 재정적으로 어렵지요. 그러니 정보기관이란 게 뻔하지 않습니까?”

해외정보국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RAON을 노리고 있단 뜻이었다.

더불어 제일 주요 타켓이 아카였단 소리다.

그리고 두 정보국 간에 보이지 않는 알력도 있다는 뜻이고.

“흠, 이상하네요. 에쓰베에르는 저를 해할 수 없을 건데요?”

“물론이죠. 다만 교류하게 되면 그게 공작이 되죠. 미국 쪽에서 RAON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되니, 문제가 되지 않나요?”

틀린 말은 아니기에 아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정보부에서 파고들 여지를 만든다면, 그것 자체도 기업활동에 위축을 가져온다.

“그럼 에쓰베에르가 BATR에 대해 관여하려는 게 아니라, RAON에 관심을 둔 거군요?”

“BATR는 이미 러시아 내에서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들이 그걸 관여하다간 우리와 부딪치게 되지요. 아 오해는 마십시오. 그렇다고 우리 에프에쓰베가 BATR를 어찌하려는 건 없습니다. 그저 투자회수하지 않는 걸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음, 다만 오늘 온 에쓰베에르 요원 하나가 별명이 미친개라서….”

태월은 빅터의 영혼 색의 변화를 체크 했는데, 저 말은 사실에 가까웠다.

“그 사람이 사고 칠 수도 있었단 소리네요?”

“공적으로 보면 까게베 시절에 상위로 올라가고도 남았지요. 다만 사고를 자주 치기에 공과가 적용돼 아직도 현장에 있습니다. 편협된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광신도죠.”

KGB를 러시아에선 까게베라고 부른다.

태월은 좀 더 대화를 나누다가 그곳을 나왔다.

나오는 길에 차가버섯 분말 가루 구매 의향을 묻기에 최대치로 되받아쳤다.

빅터가 조금 황당해하는 걸 느꼈지만 무시하는 태월이다.

결국 최대한으로 사면서도 값은 루블로 치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들 키득대고 있었다.

“아, 아까 빅터 그 사람 표정을, 태월이 정면에서 봤어야 하는데. 달러가 많은 BATR 이사가 루블로 계산하니 입을 쩍 벌리더라.”

“아니 자기네 나랏돈으로 사준 건데 뭐가 문제야. 그럼 자신들은 그 차가버섯 사 올 때 달러로 계산했나?”

“아니야, 잘했어! 이럴 때 루블을 소모해야지. 오늘 현금카드에 루블 예금된 거 다 써버릴까? 백화점도 가고 말이야.”

“호호, 루블이 하루하루 절하되는데, 일찍 쓸수록 더 이익이잖아. 좋은 생각인 거 같은데?”

“음, 좋아! 관광도 못 가게 되었으니 쇼핑이나 하자! 붉은광장의 굼 백화점으로 가는 걸로. 그리고 쭘 백화점도 가보자고.”

“오오오, 백화점 고고!”

막내인 아샤답게 분위기를 띄웠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막내의 생일 같아.”

굼(ГУМ) 백화점은 1893년에 지어진, 모스크바의 관광 1번지 붉은광장의 한쪽 면으로 길게 늘어선 3층 건물의 국영백화점이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해외 브랜드는커녕 매장에 물건이 부족해 빈 곳이 많았다.

그러나 1997년인 지금은 꽤 많이 입점해 있었고, 개방화에 따라 해외 브랜드 및 수입 식료품도 많았다.

쭘(TSUM) 백화점은 중앙백화점의 약자만을 따서 쭘 백화점이라고 부른다.

1900년 대형 화재로 소실되었던 이곳은, 1922년에 5층짜리 건물로 다시 세워져 백화점으로 사용 중이다.

여행객들과 현지인들이 지나다니는 찌아뜨랄나야 광장 주변에 있다.

붉은광장에서 대로를 건너 볼쇼이 극장 쪽으로 가면 나오는 것이다.

구소련 시절에는 상품이 많지 않아서 외면당했으나, 지금은 입지 조건으로 인해 쇼핑객이 끊이질 않는다.

“굼 백화점이 모스크바 최대 백화점 이유가 이거네요. 붉은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곳들이 다 유명해요. 레닌의 묘, 국립역사박물관, 상크트바실리 대성당.”

관광 지도를 꺼내 살펴보는 아진이다.

“그럼 백화점과 여기만 가보는 걸로 하자. 아 그리고 아카는 이걸 쓰도록 해.”

태월이 내미는 것은, 일본에서 하급신을 소멸시키고 얻었던 변신 가면이었다.

사용법 또한 자세히 알려주는 태월이다.

차 안에서 아카가 가면을 쓰자, 낯선 30대 초반의 백인 여자로 변한다.

“어머, 아카 언니가 아줌마로 변했어.”

“헐, 아쿠 언니, 너무 심했어. 아줌마까진 아니거든? 아카 언니가 30대 초반 여성 사업가로 보이는데 무슨.”

아쿠와 아샤의 호들갑은 귓등으로 듣고, 아카는 거울을 꺼내 자신을 살폈다.

“어머,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착용해보니 이거 굉장한데? 호흡하는 데 불편함도 전혀 없고, 이물감도 안 느껴져.”

붉은광장에 도착한 태월 일행은 굼 백화점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자 이제 싹쓸이를 하러 가볼까?”

신난 여인네들은 3층부터 올라갔다.

5명은 쇼핑카트를 각자 끌고, 괜찮아 보이는 물건들을 싹 쓸어 담고 있었다.

관광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분을 풀려는 듯이.

“3층 쇼핑은 1차로 이걸로 끝내고, 일단 차 있는 곳으로 내려놓고 오자.”

“으아, 바퀴가 잘 안 굴러가!”

주차장에 내려온 태월 일행은, 쇼핑 카트 5개에 실린 물건들을 전부 공간 배낭에 담아 버렸다.

그리고 다시 3층으로 가서 쇼핑을 한 번 더 한 후, 2층과 1층에 집중했다.

결국, 쭘 백화점에는 가지도 못했다.

컨테이너 두 개 분량의 공간이 가득 차서다.

보석류와 귀금속 또한 최대치로 구매했다.

그날 굼 백화점은 개장 이래로, 최대 매출을 올렸다.

“와 아, 속이 다 시원해. 신나는 쇼핑이었어.”

“호호, 아진 언니가 이렇게 신나 하는 건 첨 본다.”

“그런데 아진은 옷은 별로 안 사고, 웬 식료품들만 잔뜩 샀어?”

“맛있는 요리를 하고 싶어서요. 재료가 풍족하니, 이제 맘껏 할 수 있잖아요.”

“캔버스만 사고 아까 말한 3곳을 가보자.”

태월이 가끔 들르던 미술 재료상을 방문하여, 마지막 구매품을 사들였다.

“캔버스 하나 정도는 들어갈 여유가 있었네.”

“그 배낭은 부피 표시가 안 나나? 혹시 무한정 들어가는 건 아니지?”

“아니야. 알혼섬에서 테스트해보니 컨테이너 두 개 정도 들어가면, 그 이상은 입고가 아예 안 되더라. 캔버스야 얇으니 들어갈 공간이 있었나 보네.”

공간 배낭답게 무게가 아닌 부피로만 적용되는 것이다.

“묘부터 갈 거야?”

“호호, 혹시 레닌의 영혼을 만나게 되는 건 아니겠지?”

일행은 레닌의 묘로 이동하였다.

피라미드 형태로 만들어진 레닌의 묘는 높이 3m, 총 무게가 약 1만 톤에 이른다.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1870~1924)은 5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뇌졸증과 뇌출혈 반복 증상으로 고생하다가, 1924년 1월 21일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시신은 방부 처리되어,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태월의 차량이 레닌의 묘 건물 주차장에 다다랐을 무렵, 두 대의 차량이 갑자기 튀어나오며 앞뒤로 막아선다.

“아니, 또 왜 저런다냐? 이번엔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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