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같이 졸업할 거거든요?
아샤는 캐나다 수학올림피아드에서, 42점 만점을 기록하며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
재능을 부여받긴 했지만, 더 노력했고 그만큼 집중한 것이다.
아샤의 만점이라는 점수로 인해, 부진했던 러시아팀 성적 평균이 껑충 뛰었다.
그 결과로 국가전에서 총점 1점 차이로 중국을 누르고, 러시아가 1등을 하였다.
개인전 1위, 국가전 1위를 달성한 것이다.
개인전 금메달이야 상위 1/12로 인해 여럿이 땄지만, 만점 1위의 기록은 계속 남는 것이다.
더구나 아샤의 외모가 워낙 뛰어나서, 경시대회장을 뒤숭숭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아나스타샤 양! 조국에 대단한 영예를 안겨줬어요. 국가로부터 존경훈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존경훈장은 소련 해체 이후 폐지되었다가, 러시아에서 1994년에 부활하였다.
노동적기훈장도 탈 수 있었으나,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이후엔 이 훈장은 중지되었다.
정부는 약속을 지켜, 아샤를 고등학교로 그해 9월에 진급시켰다.
그 후 고등학교는 1년 만에 졸업하였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는 특별 전형으로, 96학번 신입생이 될 예정이었다.
“오, 여름 방학 때보다 더 성숙해 보이는걸?”
여름 방학 때는 태월과 아진이 알혼섬으로 넘어갔었다.
1학년의 수업 정도는, 둘에게 그리 부담되지 않았기에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의대에서 예과 자체를 한 학기 돌리더니, 2학기엔 본과로 넘어 가버렸다.
현재 새로 만들어진 이곳의 의학부는 역사가 길지 않아, 실제 임상 과정에 더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생긴 지 3년밖에 안 된 기초의학부고 졸업생도 없었기에, 입학 전 내용과 달리 조정된 것이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 200년 가까이 존재했던 의과대학은, 65년 전에 떨어져 나갔다.
1930년 소련 정부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의 교육정책 일환으로 의과대학을 독립시킨 것이다.
그 의대가 따로 독립되면서 이름도 바뀌었는데, MMA(Московская Медицинская Академия) 즉 므마라고 불리는 모스크바 의학 아카데미다.
그 뒤로 60년간 공백기를 거쳐, 1992년에 빅토르 사도프니치 총장이 의학부를 발의했다.
그리하여 새로이 모스크바 대학교에 기초의학 학부가 생겨난 것이다.
기초의학부엔 두 분과가 있는데, 하나는 임상의 과정(6년)이고 다른 하나는 약사 과정(5년)이었다.
이곳에서 임상의(기초의학&임상의학) 6년 과정 졸업 시, 의사 자격시험을 딸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의미 없던 예과가 사라진 태월과 아진은, 1년이라는 시간을 절약한 셈이다.
“아샤! 어서 와. 많이 기다렸어!”
“언니! 나도!”
아샤가 아진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리곤 태월에게 혀를 쏙 내밀고 삐친 척한다.
“아니, 오빠는 편지 써도 답장도 띄엄띄엄 해주면서 뭘 성숙 타령이래.”
“하하,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전화했잖아. 뭘 또 새삼스레 손편지까지 쓰라고 해.”
“그래도 아진 언니는 매일 써줬거든요?”
“하이구, 얼씨구다. 그건 엽서였잖아. 그리고 사실 여름 방학엔 봤으니, 겨우 한 달밖에 안 지났거든?”
“흥!”
한국 나이론 이제 16살인 아샤지만, 겉으로 봐선 19살 대학 새내기쯤은 되어 보인다.
태월이 이제 18살인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거나 같은 경우겠지만.
“사람들이 쳐다보니까. 이동부터 하자. 하고픈 거 있어?”
“학교를 둘러보고 싶어.”
“그럼 학교 근처에서 식사하고, 그 후 가보면 되겠네. 자 출발!”
“고고고!”
태월의 차에 올라탄 아샤는, 차 안에 있던 아리랑을 껴안고 부비부비 중이다.
“한 달 만인데 그래도 좀 자란 것 같네?”
“자는 애를 왜 깨우고 그래. 하여간 그만 비벼대라 애가 피곤하겠다. 뭐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없어?”
“불고기?”
“하하, 알았어. 한인 식당으로 가자.”
1990년 소련 해체 직전에 한소수교가 이루어져,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 한국 유학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록 모든 수업이 러시아어로 진행되다 보니, 언어에 부담을 느껴 유학생 자체는 많진 않았다.
그래도 한인 식당 하나가 생겼는데, 재러교포 2세가 차린 곳이라 맛은 꽤 괜찮았다.
푸짐하게 식사를 마친 일행은 학교를 향했다.
“학생증 제시해야 해. 아샤는 입학허가서 가지고 있지?”
“응, 챙겨왔어.”
모스크바 국립대학은 일반 시민들에게 일부는 개방되어 있지만, 학교 내부는 재학생과 관련자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후문 쪽으로 몰래 들어갈 수 있다는 소문은 돌고 있지만, 사실과 달리 그쪽 경비들이 만만치 않았다.
“우와, 본관 캠퍼스가 말로만 듣던 것보다 더 크네? 저게 대체 얼마나 높은 거야?”
“높이는 240m, 길이는 450m에 33층이지. 몇 년 전까지도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거든.”
“강의실 숫자도 엄청나겠는데?”
“총 길이 33km의 복도와 5,000개의 강의실이 있어. 한국의 대학들과는 강의실 규모가 다르지?”
“그러네. 이야 이거 짓느라고 오래 걸렸겠다. 학생 등록금도 안 받는다면서 이건 무슨 돈으로 지었을까?”
1919년부터 학생들이 부담하던 등록금이 폐지되고, 국가가 부담하고 있었다.
단, 자국민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들은 고등학교 성적이 모두 ‘A’여야 응시원서를 제출할 수 있다.
“스탈린 통치 시절, 독일군 전쟁포로들의 노동력으로 지은 건물이지.”
본관 앞에 세워진 커다란 동상이 있다.
아샤가 그곳에 새겨진 글을 읽고 있었다.
1755년 이 대학의 설립자인 러시아의 대학자 미하일 로모노소프 동상이다.
한 권의 책을 왼손에 들고, 저 멀리 참새의 언덕을 쳐다보는 모습이다.
“로모노소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를 첫 글자를 따서 엠게우라고 부르거든. 그 엠게우의 설립자야. 이곳은 그의 열정으로 인해 생긴 대학이지.”
태월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던 아샤의 눈에 높은 지역이 보였다.
“언니? 저 학교 뒤쪽의 산은 뭐야?”
“아, 거긴 참새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곳인데, 산이라고 하긴 애매해. 해발 115m 언덕이고, 관광객이나 신혼부부들이 사진을 찍으러 많이 가는 곳이야.”
미하일 불가코프가 쓴 소설 ‘장인과 마르가리타’의 ‘광활한 언덕’에서 인용되어 ‘참새의 언덕’이라 부른다.
과거 소련 시절에는 레닌의 언덕이라고도 불렸었다.
“오빠와 언니가 쯔모를 다녔으면 나랑 같이 입학했을 텐데. 수업도 같이 들을 수도 있고.”
“헐, 시간을 단축해도 모자랄 판에 거길 왜 다녀. 큰일 날 소릴 하네.”
외국인들은 이곳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를 입학하기 위해선, 흔히 쯔모를 들어가게 된다.
쯔모는 모스크바 국립대학 부설 어학기관인데, 러시아어와 대학진학 준비과정을 돕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 대학은 옛날에 의대가 독립해서. 새로 생긴 건 얼마 안 되지?”
“1992년에 기초의학 학부가 설립되었으니 이제 4년째 돼가네. 예과는 일단 본과로 바뀌었지만, 훗날 다시 생길 수도 있겠더라. 그런데 넌 무슨 전공을 하려는 거야? 전에 물어도 대답을 피하더니.”
“정부에서는 자꾸 물리학자나 수학자가 되라는데, 난 그게 재밌진 않아. 생명과학 쪽에 흥미가 있는데 그런 과는 아직 없잖아. 그래서 생명을 다루는 기초의학부로 갈까 하는데?”
“헐, 너까지 의사가 되려고?”
“호호, 기초의학부가 뭐 임상의만 있나? 난 오빠와 언니랑 같이 졸업할 거야. 혼자 다니긴 싫거든? 그러니 약사 과정을 밟아야지!”
약사 과정이 5년이니 1년 차이가 메꿔지는 건 맞다.
“천재 수학자가 약사라니? 정부가 삐지겠군.”
“아, 몰라. 1등 해줬으면 된 거잖아.”
***
아샤의 입학식엔 정부 인사도 참여했으나, 기초의학부로 진학한 것에 대해선 황당해했다.
한창 떠오르는 BATR 다국적 기업의 후원을 받는 아샤였기에, 다행히 압박까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는 작년에 이어, 초월적 미녀의 출현으로 또 한 번 소란스러웠다.
다행히 이번엔 자국의 미녀라서 질시는 적었지만, 쓸데없는 러브레터가 남발되었다.
그러다 태월이 둘을 데리고 다니자, 공공의 적은 태월로 귀결되었다.
“아니, 저 자식은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한국의 재벌후계자라도 되나 보네?”
“재벌 후계자가 힘든 의대를 다닌다고? 그건 또 이상하지 않아?”
“후계자는 아니고 숨겨둔 아들쯤 되나 보지.
종합병원 하나 챙겨 받나 보네.”
태월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가족이 생겨버렸다.
학교에 다니면서 셋이 붙어 다니다 보니, 태월의 교우관계는 좋지 못했다.
태월 자신도 적극적이지 않았기에 더 그런 면이 있었지만.
“일본의 토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이번에 일본의 중의원 제도가,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가 되었다네요. 그래서 미루던 출마를 하게 되었대요.”
토리는 사토유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마음을 읽는 요괴 사토리고 현직 변호사다.
“고베 대지진으로 명망을 얻었으니, 나갈 만도 하지. 최연소 중의원이 될 수도 있겠네. 따로 부탁하는 건 없었고?”
일본은 양원제 국가이며, 국회는 참의원과 중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의원은 한국의 국회의원과 같은 4년의 임기를 가지고 있는데, 참의원보다는 의사 결정권이 우선된다.
“네, 그냥 상황 보고만 하는 것입니다. 기업 인수도 적극적으로 해서, 회사 규모는 두 배 정도 늘어났습니다. 장학 재단은 문제가 없는 상태고요.”
일본에서부터 아진이 아사코로 지내면서 태월의 개인비서였던지라, 토리가 그녀에게 연락하는 것이다.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도 한번 가봐야 하는데. 입학식 때도 못 가봤잖아. 음반도 낸다는데, 가보긴 해야지.”
쌍둥이 여동생인 설희는, 올해 서울대학교 음대를 들어갔다.
목소리가 좋아서 성악 쪽으로 가려나 했더니, 막상 입학한 곳은 작곡과였다.
자기가 부를 노래는 자기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작년 가을에 모스크바를 다녀간 설희가 해준 이야기였다.
그때는 압구정 가족들과 홍대 가족들이 함께 왔었다.
“아가씨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네요.”
“작곡 재능도 가지고 있으니, 잘될 거야. 당분간의 얼굴 없는 가수로 지낼 거라는데, 그것도 나쁘진 않아. 얼굴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을 받겠단 거잖아.”
태월에게 받은 능력도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설희 자신 또한 그 이상의 노력을 한다.
사실 노력과 더불어 타고난 것도 있긴 했다.
“그런데 아샤는 왜 이리 늦어? 아리랑하고 산책 다녀온다더니?”
“글쎄요. 밤도 늦었는데 그렇긴 하네요. 전화기도 안 가져갔던데.”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또 길을 잃은 건가? 나갔다 올게. 혹시 길이 엇갈려서 들어오게 되면, 나한테 전화를 해.”
“네, 그렇게 할게요.”
전에 길을 잃은 적이 한 번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태월이 아파트를 나와 공원 방향으로 걸어갔다.
10분 정도의 거리에 공원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다다르니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