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이거 신형 군용보트거든요
커크 파크 비치로 향하면서 보았는데, 쉬고 있는 보트 2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안드레이 뛰어!”
안드레이에게 길게 소리치고는, 태월은 아쿠의 손을 잡고 내달렸다.
뒤따라 아카의 차도 시동이 걸렸다.
태월이 빈 보트에 도착했을 때는, 관리인인지 경비원인지가 주변에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보트가 있던 흔적이 10여 대인 거로 보면, 다 출항 중이고 2대만 남았단 의미다.
“헉헉, 안녕하세요?”
“아니, 뭐 하시는데 그리 뛰어오셨습니까? 여자분도 생각해주셔야지.”
아쿠는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보트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급해서요. 사장님 없습니까?”
“아 이 보트는 어제 새로 들어온 거라, 길 좀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안 되는데요? 제가 사장 겸 관리인입니다만?”
“그럼 그 옆에 있는 것은요?”
“고장이 난 것입니다. 저녁에 수리할 생각이고요.”
새로 들여왔다는 보트는 군용 고무보트였다.
고장이 난 보트는 낚시용 보트였고.
“이 고무보트를 빌릴 수 없을까요? 급해서 말입니다. 사람을 구해야 하거든요.”
“아, 저기 영화 찍는 곳에서 사달이 났던데. 거기 일인가 보죠? 그래서 30분 전에 2대나 빌려 갔다니까요.”
태월이 사장과 논쟁하는 사이에 아카의 차량이 도착했다.
“거기 아저씨! 차라리 이 보트 파시죠? 지금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일일이 따져야겠습니까?”
“허,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뭘! 누구….”
고개를 돌리던 보트 대여 가게의 피터슨 사장은, 아카를 보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자신이 처음 본 미녀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줄줄이 내리는 여자들도 엄청났다.
‘아니, 무슨 영화길래 이런 미녀들이 다 출동했지? 진짜 그곳 사람들인가 보네.’
“사장님이야 낼 다시 주문하시면 되지요?”
“그, 그렇지요.”
“이거 얼마에 사신 거예요? 그냥 고무인가?”
“헐, 이거 미군 납품용으로 최근 생산된 하이팔론이란 소재의 합성고무로 만든, 최신형 보트입니다. 아직 군에도 정식보급이 안 된 거고요. PVC 소재 보트와는 비교 상대가 아니죠.”
“그래서 얼만데요?”
“7천 불은 주셔야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럼 5천 불에 사셨군요. 6천 불 바로 드릴게요. 사람부터 살립시다.”
‘헉, 이 여자 공장도가를 어떻게 알았지? 아니, 그래도 이동시키고 때 빼고 광내느라고 500불은 들었구먼. 이래 봬도 5,500불짜리요!’
괜히 뜨끔해진 피터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수고한 거에 비하면 500불도 괜찮은 수익이었다.
더구나 이런 미인들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좋소! 조심해 다루시오. 8인승에 이거 무게만 100kg이 넘는다오.”
아카는 차 안에서 수표책을 꺼내 오더니, 그 자리에서 쓱쓱 적는다.
피터슨의 이름과 계좌번호를 적고 사인까지 마쳤다.
그리고는 명함 한 장도 곁들여줬다.
“문제 있으면 이리로 전화해 주세요.”
피터슨도 자신의 명함과 그걸 교환하더니, 여러 가지를 챙겨준다.
“자, 우린 급해서 그러니,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네, 사람 꼭 구하시구려!”
태월과 안드레이는 보트를 바다까지 끌고 갔다.
“나랑 안드레이 그리고 아쿠만 갈 거야. 나머진 저쪽 선착장에서 대기해줘.”
“우리 걱정하지 말고. 빨리 다녀와!”
-위이잉! 위잉!
신형이라서 그런지 터치 한 번에 바로 시동이 걸린다.
태월은 처음 몰아보는 보트지만, 재능에 있던 보트 운전이라 5분 정도 만에 감을 잡았다.
한 손으로 안드레이에게 잠수 관련 재능 하나를 넘겨줬다.
빛이 반짝였다.
“태월, 좌현 15도 방향으로 밀려갔어. 거리는 80m 더 멀어졌고. 바닥 해류가 급하고 멋대로 흐르고 있어. 그래서 구조요원들이 찾지 못했을 거야.”
“오케이!”
사고 발생지보다 6km 이상 떨어진 곳이고, 구조요원들이 수색 중인 곳과도 방향이 90도 차이였다.
“멈춰. 이쪽이야. 좌측 3m 아래고, 수심은 35m. 바위틈에 둘이 걸려있어.”
태월은 공간 배낭에서 잠수장비를 꺼내서, 안드레이에게도 착용시켰다.
둘은 동시에 잠수했다.
-풍덩! 풍덩!
해류 때문인지 부유물들이 많이 있어 시야는 좋지 않았다.
태월도 기감을 펼쳐 주변을 살펴 나갔다.
다행히 아쿠가 정해준 곳과는, 2m 정도의 오차만 생겼을 뿐이다.
그사이 해류로 인해 조금 이동한 것이다.
여배우의 눈은 치켜 떠져 있었고, 중년의 남자는 그곳에서 3m 정도 떨어져 흔들거리고 있었다.
영혼 두 개가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있다.
태월은 문신에 의지를 전해, 그 영혼 둘을 삼켜버렸다.
태월이 여자를 안아 들자, 안드레이도 남자를 뒤에서 잡아끌고 왔다.
둘을 밧줄에 묶고는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태월이 그 둘을 보트 위까지 올린 후에, 문신에게 신호를 보내니 두 개의 영혼 구슬을 토해낸다.
-우웩!
영혼 구슬 두 개를 각각의 입에 물렸다.
약 두 시간 정도 흐른 시신들이라, 아직 몸이 불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창백했고 해류에 휩쓸렸기 때문인지, 자잘한 상처가 많이 보였다.
여배우라서 그런지 얇은 옷만 걸친 탓에, 천 조각은 거의 남아있는 게 없었다.
“마스터! 몸의 장기도 멀쩡하고, 외부상처는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보여. 이제 장기들이 느리지만 살아나기 시작했어. 옷은 벗기고 담요를 둘러줘야겠어. 체온부터 올려놔야지.”
태월과 안드레이는 두 사람의 옷을 전부 벗기고 닦은 후, 태월의 속옷을 입혀줬다. 그 후 가방에서 꺼낸 모포를 몸에 둘러줬다.
“태월은 우리 말고, 다른 여자 몸에도 별로 감흥이 없나 봐? 홀랑 벗겨 놓고도 덤덤하네?”
“거의 시신인데 뭐가 흥이 생겨?”
“에이, 지금 살아 있거든? 괜히 뜨끔해서 그러는 거지?”
“으이그, 싱거운 소리 그만하고, 수건으로 여자 머리나 말려줘. 길어서 물기 제거도 잘 안 되네.”
“그런데 속옷은 우리도 안 가지고 다니니. 여자 건 입혀줄 게 없네?”
“여자들 옷은 아카 차에 있잖아. 이거라도 입혔으니 됐어. 여자 몸이 더 차니, 아쿠가 머리 말리면서 안아줘. 이럴 줄 알았으면 아루도 데리고 올 걸 그랬네.”
불의 정령이니 이럴 땐, 도움이 됐을 거 같다.
20분 정도가 지나자 둘은 정신을 차렸다.
태월은 소생자들에게 하는 거짓말을 또 늘어놓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너희는 그 몸의 주인이 된 거야. 그대로 살면 되겠지? 그리고 너희는 물속에 빠졌다가 해류에 휩쓸려 이곳까지 떠내려온 거야. 그리고 우리가 구사일생으로 구조한 거고. 헷갈리면 안 돼!”
“네, 마스터!”
“알겠습니다. 마스터!”
“왜 무리한 촬영을 한 거야?”
“이 몸이 신인이라서 너무 열정을 가졌나 봐요. 꼭 떠서 어렵게 생활하는 엄마를 돕고 싶었던 거죠. 아직도 건물 청소를 다니거든요.”
위험을 감수한 사연이 효도 때문이라니, 태월의 마음도 조금 짠했다.
“그런데 너희 이름이 뭐야?”
“전 글로리아입니다.”
“저는 더글라스고요.”
“난 박태월이다. 이제 돌아가자!”
태월은 보트의 시동을 다시 켜, 강습을 받던 방향으로 쾌속 전진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해변 선착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보트가 선착장에 닿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 사이에 아카와 일행들의 모습도 보였고.
두 사람을 부축하고 내려서니,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선착장을 덮었다.
“와아! 저 두 사람이 살아 있었어! 기적이야!”
“구조대는 왜 다른 데서 저러고 있었지?”
“글로리아! 감독님!”
“살아계셨어! 으흐흑.”
“글로리아!”
영화 쪽 사람들도 있었는지, 둘을 부르고 난리가 났다.
“어어? 세 사람이 저, 저들을 구했어요?”
“하하, 다니엘 씨! 운이 좋았습니다. 빠르게 구조되어서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네요.”
“하핫, 서핑만 초보셨군요. 보트 운전에 잠수라니….”
“전 좀 쉬어야겠네요. 자세한 건 저 두 사람에게 질문하시고, 전 그냥 두세요.”
“하하,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911에도 그렇게 요청해 놓겠습니다.”
“강습은 어떻게 하지요?”
“두 시간 후에 하는 걸로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태월이 일행에게 돌아오니, 그들끼리 쑥덕대고 있었다.
“뭐하고들 있었어?”
“아쿠에게 들으니 딴 여자에게도 감흥이 없었다며?”
“아니, 그게 왜 여기서 나와? 또 그게 왜 중요한데?”
“우리야 가족 같아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아무 이상이 없거든? 쓸데없는 소리 말고, 2시간 후에 강습을 이어 하기로 했어.”
“혹시? 남자 몸에 자극을 느껴?”
“헐, 전혀 아니거든? 싱거운 소리 말고 보트 타고 싶은 사람? 아니다. 전부 올라타도 되겠군. 저게 8인승이라잖아.”
태월은 일행의 시선을 돌리고자 보트 이야길 꺼냈다.
‘진짜 뭐가 문제 있는 건가? 음기가 과한 것 때문인 거 같은데….’
일행과 함께 한 시간 정도를 보트를 타고 신나는 스릴을 즐기며, 태월은 그 일을 잊어버렸다.
“이야, 보트 정말 잘 산 거 같아. 서핑과는 또 다른 맛인데?”
“오늘 2차 수강하고 나면, 내일은 이 보트로 웨이크 서핑을 해보자고.”
“오! 예!”
웨이크 서핑은 파도 대신, 보트가 지나가는 흔적을 따라 서핑하는 것을 말한다.
인공파도를 이용하여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는 수상스포츠다.
고강도의 전신 운동으로 근력 강화에 상당히 효과적이다.
또 다양한 기술의 연습 과정을 통해, 균형 감각과 협응력을 높일 수 있다.
수상스키와 비슷하긴 했지만, 폭 좁은 스키보드가 아닌 서핑보드를 이용한다.
시속 50~58km/h 정도의 수상스키와는 달리, 30~38km/h 정도의 느린 속도에서 묘기를 선보이는 것이다.
한국에선 빠지면서 배운다고 하여, 빠지서핑이라는 우스갯말도 나왔다.
실제론 납작한 배를 뜻하는, barge라는 바지선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다시 서핑 강습은 시작되었고, 어제보다 다들 나은 서핑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하, 진짜 적응들이 빠르시네요. 뭐 아루 양이 혼자 받기 싫으시다니, 이만 강습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틀간 즐거웠습니다. 휴가 마칠 때까지 종종 뵙겠네요.”
“네, 서핑하다 보면 마주치긴 하겠네요. 참, 누군가 뵙길 원하던데. 거기 영화사 감독요. 구해준 스턴트 감독이 아니라 메인 감독요.”
“그분이 절 만날 이유가 있나요?”
“감독으로서는 만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영화 망칠 뻔했는데. 감사 인사는 기본이잖아요. 더구나 요 앞에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어서요.”
다니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태월 일행이 강사진들과 헤어지고 돌아서는데, 10m 밖에서 남자 둘이 다가온다.
“안녕하십니까? 벤자민입니다. 구해주신 덕분에 영화를 말아먹지 않은 감독입니다.”
“안녕하세요. 글로리아의 매니저 리암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박태월입니다. 감사 인사 때문에 오신 거면, 이 정도가 좋은 것 같습니다. 운이 좋아서 구한 것이니, 그들의 행운 아니겠습니까?”
“글로리아에게 삶의 역전이 될 수도 있거든요.”
“네? 아니 어째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