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09화 (109/250)

109화. 뉴욕 몬탁 해변

둘의 분위기를 눈치챈 아루가 나섰다.

“러시아는 대학 입학이 9월이니, 아직도 3달이나 남았어. 같이 갈지 혼자 갈지는, 그때 천천히 정하기로 해.”

“그래, 아루 언니 말이 맞아. 며칠 후면 아샤 여름 방학인데, 식구들끼리 휴가라도 가야지? 좋은 데 추천해봐. 난 작년에 여름 휴가를 못 갔으니, 이번엔 가려고 해.”

작년보단 올해가 더욱 바빠졌다. 그러나 임원진이 배는 늘어나, 무리하면 열흘 정도는 시간을 뺄 수 있게 된 아쿠다.

“경치야 여기가 좋긴 한데, 이번엔 다른 델 가야겠어. 아카랑 약속한 것도 있고. 이번엔 미국 어때?”

“오우 예! 좋아, 좋아!”

“저도 좋아요!”

태월이 미국을 제안하자 다들 환호한다.

그래서 9박 10일의 미국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아사코도 이번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는데, 축하 파티라도 열어야지?”

“아루 언니? 그럼 아사코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잖아. 신아진! 아니, 아진이라고 불러야지.”

“그러고 보니 아쿠의 말이 맞아. 앞으론 다들 아진이라고 부르자!”

“아진! 이름이 너무 이뻐!”

“호호, 고마워요.”

“자자, 오늘 저녁은 파티다!”

“우와! 파티! 파티!”

제일 신나 하는 이은 아샤와 아루다.

TW 기업을 통해 아사코를, 한국에 이민 신청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원래 재일교포 3세라는 서류가 존재했기에, 국적 취득이 무난할 수 있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그 서류상으로는 아사코가 28세이기 때문에, 실물과는 너무 괴리감이 컸다.

아사코는 새로 몸을 얻고 문신에게 삼켜진 후 다시 나왔었다. 그때가 20세 정도로 보였다.

그 후 하급신이 마실 마이너스 에너지를 정화해 복용시킨 다음엔, 18세 정도로 바뀌고.

그래서 부랴트족 태생 이민자의 자격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것이다.

그래도 친할아버지의 성이 신 씨였기에, 이름은 신아진으로 했다.

아진(妸辰)의 한자 뜻은 ‘아름다운 별’이다.

처음에는 아사코에서 간단히 줄여 아사라 지으려 했다.

그러나 다들 아샤와 헷갈린다는 의견과 굶어 죽음의 뜻도 있어서 제외했다.

그래서 그 담에 나온 추천 이름이 아진이었다.

태월이 생각해도 그녀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또한 일본에서 데리고 온 무녀 후보생들은, 전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다.

그녀들은 고아였기에 무리가 없었다.

러시아어로 이쁜 뜻의 단어들만 추려서 보내줬더니, 각자 알아서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른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바이칼리(Байкалы)’라는 성을 새로 만들어주었는데, 러시아어로 바이칼 사람이란 의미다.

러시아에 없던 성을 만든 것이다.

***

미국 여행 준비는 미국입국 비자로 인해 열흘 정도 걸렸다.

그것도 관광비자가 아닌 출장용 비자기에 이정도라고 했다.

이르쿠츠크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에서 미국으로 주 2회 운항하는 비행기지만, 일주일 전 예약했던지라 문제는 없었다.

태월 일행 7명은 셰레메티예보를 떠나, 미국 뉴욕으로 날아갔다.

태월, 아루, 아쿠, 아진, 아샤 그리고 늑대 족 사촌 남매 안드레이와 라리사 이렇게 7명이다.

“와, 여기가 말로만 듣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이네요. 미국 온 게 이제야 실감 나요.”

“뉴욕이 이래서 미국 최대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거야. 이곳이 뉴욕의 3대 공항 중 하나지.”

뉴욕에는 퀸스 지역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과 라과디아 공항 그리고 뉴저지의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이 있다.

출국장 밖으로 나가자, 아카가 일행을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흔들어 댔다.

“언니!”

“호호, 아루가 좀 더 컸는데? 다들 오느라 수고했어.”

“앗, 아루 언니에게 선수를 뺏겼다. 안녕하세요. 언니!”

“아샤는 날마다 더 이뻐지는구나.”

“어머, 아카 언니! 투시력 있어요? 선글라스 낀 건데 그걸 어찌 알아요?”

아샤는 이르쿠츠크역에 도착했던 그 당시보단 성격이 많이 바꼈다.

막내로 지내다 보니 어리광도 부리고 더불어 성격도 명랑해진 것이다.

“호호, 꼭 눈을 봐야만 아니? 척 보면 느낌이 쫙 오지.”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신아진입니다.”

“어머, 네가 말로만 듣던 그 아진이구나. 이거 아샤와 쌍벽을 이루는데?”

“출국장 앞에서 이러면 사람들 집중만 되잖아. 얼른 이동하자!”

태월이 그녀들의 수다를 끊고 장소이동을 시켰다.

벌써 사람들 시선이 모여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접근하여, 일행의 발걸음을 잡는 사람은 없었다.

선글라스의 위력이기도 했다.

“이 차를 타도록 해. 일단 숙소에서 잠시 쉬자. 10시간이나 날아온 건데 좀 힘들잖아. 간단히 요기할 건 차 안에 준비해뒀어.”

“언니 집에 가는 거 아녔어?”

“호호, 몬탁 해변으로 숙소를 잡았어. 거기가 숙소 앞이 바닷가야. 그러니 시간 낭비도 줄이고 좋잖아. 우리 집은 마지막 날 가서 놀기로 하자. 호호, 나도 시간 맞춰 휴가 낸 거거든!”

“우와! 바다로! 렛츠 고!”

“언니! 우리 수영복도 안 가져왔는데? 와서 사려고 한 거라고.”

“야 너희가 언제 옷 입는 거 신경 썼어? 그냥 벗고 수영해!”

“헐!”

“어머! 언니!”

헐은 태월이 낸 소리고, 어머는 아샤가 낸 소리다.

그 외는 남들 시선에 신경도 안 쓰는 일행이잖는가. 정령과 요괴 그리고 아사코였던 아진.

“호호! 농담이야, 농담! 누드 비치도 아닌데 설마 그러겠어? 수영복은 내가 눈썰미로 다 사놨거든! 그런데 아루 예상대로 역시나 둘만 깜짝 놀라네. 아루, 네가 이겼다.”

“호호호, 나 500달러 벌었다!”

“아휴, 이것들이 이딴 걸 내기하고 있냐?”

태월이 어이가 없어서 큰소릴 냈다.

“아카 언니? 언니는 어디에 걸었길래요?”

“음, 난 너희 둘에 아사코! 아니, 아진도 기겁할 줄 알았지!”

아샤와 아카가 수다를 주고받고 있다.

태월의 큰소리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같은 대상이 된 아샤마저 그러자, 태월은 로마 황제였던 카이사르가 된 기분이다.

‘브루투스, 너마저?’

셰익스피어 희곡에 나오던 대사로, 카이사르가 친구였던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할 때 외쳤던 말이다.

그렇게 태월은 여자들의 수다에 뭉개졌다.

몬탁은 뉴욕 옆, 롱아일랜드의 가장 동쪽 끝에 있다.

아카가 운전하는 차에 다들 올라타, 몬탁 해변으로 고고싱을 외쳤다.

1시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하였다.

“오, 언니! 이 펜션 멋지네요?”

“호호, 9일간 빌렸으니 맘껏 써! 일단 오늘 먹을 것은 사 왔으니, 일단 푹 쉬자. 그리고 내일은 같이 장 보러 가는 걸로.”

“쉬고 나서 자정쯤에 해변 산책하는 걸로 하지. 그렇게들 알고 있어.”

태월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10시간 비행이었지만, 체력으론 그렇게 많이 피곤한 사람들은 없었다.

더구나 셋 빼곤 본질이 인간이 아니기에 멀쩡했지만, 쉴 땐 쉬기로 한 것이다.

시간도 밤 9시라서 애매하기도 했고.

“오빠? 자정이에요. 일어나요.”

“어? 내가 잠깐 졸았나 보네.”

“호호호, 2시간이 잠깐이에요? 오빠 혼자 잔 거거든요.”

아샤의 말에 놀란 태월은, 시계를 보곤 후다닥 일어났다.

“어, 진짜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빨리 씻고 나올게.”

자정에 맞이하는 몬탁의 해변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몸이 들뜨고 상쾌해졌다.

아직 이곳은 늦봄이지만, 러시아에서 온 일행들에겐 그곳 여름 날씨 정도다.

“저기가 몬탁 등대인가 봐요.”

“불 켜진 등대가 이쁘긴 하네요. 200년 된 등대치곤 관리 잘한 것 같다는.”

몬탁 등대는 1796년에 세워졌는데, 이 시간엔 출입제한이 된다.

“롱아일랜드의 동쪽 끝을 알리는 상징 지역이 바로 이 몬탁 해변이야. 한인들도 1월 1일 새벽에 해맞이하러 많이 와. 여기서 대서양까지 나가는 대형 낚시 배도 많은데, 참가하는 한인 낚시꾼이 꽤 되거든.”

“언니는 여기서 낚시 해봤어요?”

“뭐, 소통적 개념으로 몇 번 참가해보긴 했어. 낚시마니아가 아니다 보니, 바다와 접하는 재미 이상은 못 느끼겠더라. 그래도 너무 바쁘게 살기만 하다 보니, 이곳에서 주는 여유로움이 쉼터가 되는 듯해서 앞으론 종종 오려고.”

“한국인들 많이 만나봤어요?”

“매년 롱아일랜드 서폭 카운티에는 집값이 저렴하면서도 치안율이 높아서 인기가 많아. 인구의 80%가 노령층 백인들인데, 지금은 아시아인들이 매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야. 그래서 한인들도 많은 거지.”

미국에서 카운티라는 것은, 한국으로 따지면 기초 지방자치 단체인 군(郡)의 개념이다.

“한국인은 주로 여기서 무슨 일을 하길래요?”

“뉴욕에서도 여기 서폭 카운티엔 세탁과 청과 업이 많지. 뉴욕주립대 쪽 스토니브룩 쪽으론 교수 의사, 간호사, 약사 같은 전문직이 늘고 있어.”

다들 이곳이 초행이라 아샤에게 하는 질문이 많았다.

가끔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아진 언니는 원래로 보면 대학도 졸업한 건데, 이제 학력이 없어졌잖아요? 그럼 다시 또 다니나요?”

“그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부분이라면, 다시 따야겠지. 이제 미성년자가 되어, 운전면허도 없어졌는데 뭐.”

지금 서류상으론 태월이 1979년생, 아진도 1979년생, 아샤만 1981년생이다.

즉 둘은 17살이고 아샤는 15살이라, 아샤가 아진에게 언니라고 하는 것이다.

“언니는 그래서 오빠 따라 모스크바 대학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건가요?”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 딴 후에나 가능한 일이야. 지금은 모시려고 따라가려 한 거고.”

“응? 모시다뇨?”

아샤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 같이 걷던 다른 이들을 쳐다봤다.

“아, 아진이 말이 이상했지?”

아루가 아샤에게 하는 말이다.

아샤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루는 라리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건 같은 개념인 라리사가 잘 설명해줄 거 같은데? 모신다는 의미를 우리보단 잘 알 거야.”

라리사는 아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인간의 마음엔 서툴지만, 아진의 말뜻은 이해가 돼. 나나 아진은 태월 님의 문신에 삼켜진 적이 있어. 그렇게 되면 영혼의 귀속이 생기거든. 그 의미야. 귀속되었으니 주인이잖아.”

“아, 그러고 보니 나 빼곤 다 귀속된 거잖아요? 하여튼 그런 의미란 거죠? 간단한 내용이네요?”

“글쎄 그게 간단한 건진 잘 모르겠네. 남녀가 사귀거나 혹은 결혼해 산다고 해도 이별을 하잖아? 그런데 영혼의 귀속은 그게 안 돼. 하여간 단순한 이성적 의미는 아니야.”

“으, 아루 언니 설명 때문에 더 헷갈린다. 뭐 그래도 뜻을 알았으니 이해하려 노력할게요.”

태월도 귀속의 의미를 알고는 있지만,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었다.

괜히 쓸데없이 앞서나가는 생각들이라 여길 뿐이다.

“시답잖은 이야긴 그만하고, 저기 배가 한 척 떠나려 하는데 따라갈까?”

야간 낚싯배 같은 느낌을 주는 선박에 불이 켜있고, 남자 두 명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태월의 말에 일행들은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아저씨! 낚시 떠나는 배인가요? 우리도 탈 수 있나요?”

막내인 아샤가 헐레벌떡 뛰어가 물어보는 중이다.

-휘이익! 휘익!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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