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알혼섬 진화 (2)
그다음 나올 말에 궁금해하는 아쿠의 표정이 묘해서, 태월은 그만 웃고 말았다.
“하하하, 대단한 의견은 아니야. 기대감이 너무 큰 거 같아서 말하기 좀 그런데?”
“그래도 해봐. 의견이 다양해야 더 나은 방식이 모이는 거 아니겠어?”
고개를 끄덕여준 태월은, 자기 생각을 꺼냈다.
“다리가 놓이게 되면 사휴르타 선착장과 도마 선착장이 유명무실해지지? 그걸 놀이공원 속에 확 포함해 버리는 거야.”
“어? 어, 그렇게 되면?”
“현재 우리의 땅은 사휴르타 쪽에 10만 평이 있어. 그리고 도마 쪽으로도 40만 평을 할당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땅만 50만 평에, 그 사이의 호수 공간까지 하면 상당히 큰 규모가 나오지.”
-짝짝짝!
아쿠가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는다.
“오, 호수에 대한 생각까진 못했었네. 그럼 자연스럽겠는데?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양 놀이공원이나 이르쿠츠크의 얼음 놀이공원과는 차원이 다르겠어.”
“이르쿠츠크에 있는 얼음 놀이공원은, 겨울에만 열리는 한시적인 거 아냐. 진정한 놀이공원으로 보긴 어렵지.”
“호호, 놀이공원 영역이 육상, 수상, 수중 전부 가능해졌네.”
“그런데 잠수함 시험가동은 다 끝났어?”
“응, 관광용이라서 일부를 덜어내고 밖이 보이게 해놨어. 비용이 좀 더 들긴 했지만, 그렇게 해야 관광용 아니겠어? 그리고 바이칼호를 두 바퀴 돌고 왔지.”
“또 다른 건은?”
“러시아 경제가 더 어려워져서인지, 아이들이 우리 쪽으로 많이 몰리고 있어. 러시아 중앙정부 입장에서도, 그런 아이들이 불법적인 곳으로 유입되길 바라진 않아. 훗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수가 있거든.”
“그래서 더 우리 쪽으로 홍보해주고 있다?”
“그런 셈이지. 그들이야 알혼섬 전체가 사유지가 되었다고 해도, 결국 러시아 영토라고 보는 거지. 태월은 알혼이 성장하려면, 최우선순위가 뭐라고 생각해?”
아쿠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빠지는 태월이다.
다 중요하다고 여겼을 뿐, 어느 게 더 우선 되어야 하는지는 고민해보지 않았다.
‘알혼섬의 첫 무기는 관광상품이지. 박물관과 천혜의 경관. 의료 쪽이야 성과가 당장 없는 것이고. 관광에서 제일 우선 되어야 할 것이….’
“아, 접근성이네? 알혼을 아무리 가꾼다고 해도, 접근성이 좋지 않으면 그게 장벽이 되네. 그럼 공항이 근처에 있어야 해!”
“호호호, 맞아! 지금 이르쿠츠크 공항과 4시간 이상이 걸려. 한국으로 따지면 거의 서울과 부산 정도가 되는 것 같아.”
“이르쿠츠크는 원래 군사 용도로 만든 비행장이라던데. 현재 국제선도 일부만 있고 대부분 국내선인 거고.”
“호호, 국제공항치곤 시설도 너무 초라하지. 관광객들의 서비스 불만도 많은 공항이잖아.”
“러시아 중앙정부와 딜을 해야 한다는 거군.”
“그게 먼저는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이르쿠츠크는, 러시아 시베리아 연방관구에 속한 연방주(州)야. 이르쿠츠크주와 딜을 하고 나서, 중앙정부에 분리나 이전 요청 식으로 하는 게 깔끔해. 그래야 중앙정부 입장으론 이르쿠츠크 공항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새로 추가되거나 이전된다 여기지. 인구 100만도 안되는 도시에 그들이 얼마나 신경 쓰겠어.”
“그래도 러시아에선 인구가 23번째라던데? 이르쿠츠크주의 면적만 해도, 한국의 7.7배라며?”
“러시아 땅을 생각해봐. 이르쿠츠크주는 러시아 면적의 4.3%에 불과해. 그리고 시베리아로 따져도 6번째 인구밀도야. 여기 이르쿠츠크는 과거에 유배지였어. 동시베리아의 중심지긴 해도, 그만큼 낙후되어 있었지.”
이르쿠츠크는 이르쿠츠크 강과 합류하는, 안가라강 연안을 따라 형성된 도시다.
‘데카브리스트 난’에 가담했던 청년 장교, 귀족, 예술가 등이 유배되었었다. 그 이후로 이곳은 유배지로 계속 사용되었다.
1825년 12월 14일에 세르게이 트루베츠코이 공을 지도자로 삼고, ‘헌법’을 외치던 반란이 있었다.
즉, 입헌 군주제의 실현이 그들의 목표였다.
데카브리스트는 ‘12월 당원’이란 뜻이다.
“알혼섬 안에 공항을 짓겠다고 하면 반대하겠군. ”
“이르쿠츠크 공항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가까이 있는 안가라 저수지 때문에, 연중 대부분, 안개가 끼는 특이한 기후가 나타나. 날씨가 나쁠 때면, 비행기가 브라츠크 공항으로 우회하여 착륙해야 해. 그리고 활주로도 하나밖에 없어서, 거의 전세편 노선밖에 없어.”
“시내와 불과 8km밖에 안 떨어진 단점도 강조하고? 관광객이야 좋겠지만, 시민들 대부분이 주거 환경 면에서 좋아하진 않지.”
“호호호, 잘 아네?”
“로비스트 이고르 아브라모비치 패를 한 번 더 써야겠네. 부랴트 공화국처럼 공동개발 방향으로 잡는 게 좋겠어. 지분은 비슷하게 가더라도, 운영권은 가져와야 해. 러시아는 관광객을 위한 서비스 정신 자체가 너무 미흡해. 잘못하면 우리가 도매금으로 넘어갈 거야.”
“그게 효율적일 거 같네. 태월도 바쁘니까 진행은 내가 해볼게. 현재 공항의 단점들을 강조하고, 새로 생길 공항은 장점을 팍팍 띄우면 될 것도 같아.”
“오케이,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그럼 다른 안건은 없지?”
“응, 크게는 그거 두 가지였어. 다른 건 전에 계획한 대로 하면 되는 일이고. 아, 헬기도 두 대 구매하기로 했어.”
“응? 그건 어디서 구하는데?”
“호호호, 어디서긴 대물용 무기류를 제거한 군용이지.”
“크, 실력 좋네. 그럼 그거 타고 비행장 다니면 되겠네.”
“알혼섬 정찰에서도 써야 하고 다용도야.”
인간 세상에 적응 잘하고 있는 아쿠라고 생각하니, 괜히 흐뭇해지는 태월이다.
각종 특수차량에 대한 운전 재능도 있는 태월이기에, 헬기도 몰아보고 싶었다.
“아쿠가 맡은 일이 너무 많은 거 아냐?”
“나도 혼자 일을 하진 않는데 뭘. 아 그리고 일본에서 재능은 많이 늘었겠네?”
“휴, 그거 목록 정리하는 데만 꼬박 반나절 걸리더라. 생전 처음 보는 능력이 왜 이리 많은지. 원.”
“나한테 도움 되는 건?”
“아, 경영학과 심리학을 넘겨줄게. 그리고 의학 관련도 몇 개 생겼는데, 필요해?”
“오, 경영학 그것만 줘. 의학? 호호, 그래서 말인데, 태월은 병원을 소유한, 의료재단 인수작업을 준비해줘. 어차피 마카르의 아내 일과 연관도 있는 거잖아.”
“알았어. 바브르 법무법인에 알려서, 기초조사부터 시키지 뭐. 그리고 마카르 팀장은 오늘 저녁에 만나볼게.”
태월은 전화로 바브르 법무법인에 업무 전달을 한 후, 마카르에게 전화를 넣었다.
“하하, 잘 지냈죠?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상심이 크시겠어요. 음, 다름이 아니라 그 일과 관련되어,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길 하도록 하죠. 아, 그건 또 그렇네요. 그럼 제가 찾아가야죠. 네, 네 알았습니다.”
마카르가 아내의 간병을 하는 중이라, 태월이 직접 가야 할 상황이었다.
수술도 불가능하다기에, 마카르는 자택 간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시간이 4시간은 남았기에, 병원과 연구소가 자리할 위치를 알아보러 나갔다.
두 군데의 적합지를 찾아, 관련 부서에 상세 조사를 시켰다.
그러다 보니 저녁때가 되어, 마카르의 집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엔 병원과 협력하여 진행하려 했지만, 그랬다간 시기를 놓칠 듯해 마음을 달리 먹은 것이다.
그래서 당장 치료가 안 되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는 결과는 얻고 싶었다.
“에구, 많이 수척해졌네요?”
“일본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무사히 아주 잘 다녀왔지요.”
“아내의 상황에 비하면, 수척한 건 아무 일도 아닌 거죠. 종종 어지럽고 피곤하다고만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기를 놓쳤습니다. 크흑….”
“늦었다고 생각하는 건 섣부른 판단입니다. 아직 우린 시작도 하지 않았거든요?”
“네….”
별로 동의하지 않는 반응의 마카르다.
축 처진 어깨와 우울한 표정에 피부도 푸석푸석해 보였다.
얼굴 또한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지, 눈은 충혈되어 있고 입술은 말라 있다.
“눈빛이 흐리네요? 이러다 먼저 하늘로 가게 돼요. 일단 환자 좀 보러 갑시다.”
“아, 알았습니다.”
태월이 귀신을 볼 줄 알고, 영혼을 다룬다는 건 마카르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건 영적인 능력이다. 그 능력이 육체적 병세와는 상관없다는 것, 정도쯤은 아는 마카르다.
고치진 못하지만, 정신은 맑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희망. 그게 마카르가 태월에게 갖는 바람이다.
“NK세포라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비정상 세포를 인지하고 그 세포를 제거하는 세포죠. 자연살해세포(Natural Killer Cell)로 체내 1차 방어작용 세포입니다. 선천면역이죠.”
“네….”
“그걸 활성화하여 수치를 높이려고 합니다. 이론상으론 가능성이 있지만, 저도 확신은 못 합니다. 하지만 서로 최선을 다합시다. 보호자가 그렇게 넋을 놓으면 환자도 의지를 잃게 됩니다. 설혹 성공확률 1%라도 다르게 생각해보세요. 성공하거나 못하거나 둘 중 하나죠? 그럼 50%나 같잖아요!”
“아, 그, 그렇네요. 희망이 많군요.”
“그리고 비밀입니다만, 1%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하하, 네….”
“간과 골수에서 성숙하는 NK세포는 다른 면역세포의 증식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사이토카인이나 케모카인도 분비하죠. 제가 오늘따라 의학 전문가 같지 않나요?
믿음 팍팍 가지시고 함께 가봅시다.”
“좀, 다른 것 같긴 합니다.”
태월이 습득한 의학 재능 두 가지, 거기에 담겨있던 전문지식이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음울한 집안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아내가 아프다 보니 집안 치우는 것이, 등한시된 것이다.
죽고 사는 문제에 직면한 마카르 입장에선, 이 집안 정돈이 의미 없을 것이다.
침대에는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잠든 여인이 누워있었다.
입술도 파리하고 안색도 붉은 기가 전혀 없어 보인다.
태월이 눈에 에너지를 두르고 보니, 그녀의 영혼 색이 옅어 거의 무채색을 닮아가고 있었다.
‘흠, 거의 체념인가? 보통 사람들의 색과는 다르네. 골수암이니 암세포들은 고정된 곳에 있진 않고, 혈액을 따라 전신에 퍼져있을 것인데.’
골수암도 그렇게 보면, 혈액암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에너지를 두른 눈에도 그 암세포의 흐름은 보이질 않았다.
백혈병이니 백혈구가 있을 거라 여기겠지만. 실제로 백혈구란 건, 적혈구와 혈소판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일컫는 용어일 뿐이다.
백혈병(白血病)의 白은 피가 하얗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얄 정도로 많다는 의미다.
백혈병 세포가 많고 붉은 적혈구의 양이 적다.
‘뇌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많으니, 그나마 안전한 간에 시도해보자.’
간에 해당하는 부위에 영혼 에너지의 기운이 스미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