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알혼섬 진화 (1)
마카르는 러시아로 넘어왔을 때, 여행 가이드를 해줬던 그 인맥 넓은 남자다.
지금은 BATR에서 주요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암에 관련해서는 예전 홍미연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일이 겹쳐 임상시험을 해보지 못했다.
“가능성은 있지만. 시도해보지 않았어. 결과는 알 수가 없단 소리야. 어떤 암이고 어느 정도 진행된 건데?”
“급성 골수암이고 3기래. 그런데 미련하게 그걸 모르고 지나쳤나 봐. 현재 의학 수준으론 어렵나 봐. 그래서 요즘 마카르가 휴가를 내고 간호를 하고 있어.”
급성 골수암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말한다.
골수에 신생물이 생겨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적혈구의 생성을 방해하는 질환이다.
골수에서 발생하여 말초 혈액으로 퍼져 전신으로 가게 된다.
발생한 후 치료하지 않으면 1년을 버티기 힘들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완치가 가능한 병이었다.
급성이니 빠르게 중추신경계와 뇌 신경계도 침범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골수암에서 급성은 시간과 관계가 없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골수나 골수아세포가 20% 이상 차지하는 경우를 뜻하는데, 정상적인 경우는 5% 미만이다.
골수암은 종양 같은 것이 없는 비고형암이다.
“음, 이 건은 한국에 연락해보고 판단하자.
일단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해야지.”
태월은 전화를 걸어 창고 위치를 확인한 뒤 그리로 향했다.
소생자 25명과 용병 8명이 눈을 껌뻑이고 있다. 창고에 모이게 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소생자 25명 중 11명은 마유키와 연구원들이다.
“공간은 충분하군. 자, 다들 놀라진 말고. 하긴 남들이 보면 다시 살아난 건데, 이런 것도 이상할 건 없겠네. 다들 가운데를 비워두고 벽 쪽으로 붙어!”
태월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구석에 내려놓고 이미지를 떠올렸다.
-슈우욱!
“헉! 컨, 컨테이너가!”
“마, 마스터!”
20피트의 컨테이너가 허공에서 솟아나, 빈 창고에 갑자기 등장했다.
컨테이너에 수면 캡슐을 설치하고, 아이들을 그곳에 재운 건 이들도 몰랐다.
그 주도를 토리가 했고, 20명에게 소생에 대한 교육도 철저히 했다.
그래서 특별기에 탄 사람 35명이, 러시아로 오는 인원 전부인 줄 알았다.
“안에 수면 캡슐이 있을 거야. 거기 아이들이 자고 있거든? 조작법은 아주 간단해. 캡슐 오픈을 누르면 다 끝나. 다들 깨워서 이리로 모이게 해.”
아이들이 컨테이너 밖으로 나오자, 그걸 통째로 다시 가방에 넣었다.
-슈우욱!
“헐, 오빠! 진짜 신기하네.”
무녀 후보생 20명은 잠이 덜 깬 상태였다.
눈앞에서 컨테이너가 사라지자, 아이들은 아직도 꿈인 줄 착각했다.
중학생 나이를 아이들이라 표현하는 게 적합하지 않았지만.
“하하, 가면 이후로 최고의 보상이지.”
“이거 활용이 무궁무진하겠는데?”
“여기 20명은 부랴트 공화국 출신으로 바꿀 수 있지? 이름은 각자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라고 해.”
“응, 아직 전산화도 안 되어 있어서, 부랴트 공화국 쪽은 얼마든지 가능해.”
“준비하라던 차량은?”
“24인승 미니버스 세 대와 자가용. 오느라 피곤했을 테니, 좌석 여유는 있어야지.”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앞장서서 창고를 나섰다.
아쿠가 전에는 태월에게 존대를 했었다. 그러나 태월이 아루나 아카와 서로 말을 놓고 지내는 걸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래서 그녀에게도 허용해주었다.
공항에서 곧바로 사휴르타 선착장으로 직행을 했다.
알혼섬은 태월에게 그만큼 편안한 곳이다.
선착장에는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전 세계로 칭기즈칸 무덤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의 수가 급증한 것이다.
그리고 와본 사람들은 알혼섬의 절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두 가지의 이유로 소문이 더 빠르게 퍼지면서,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배는 30분마다 출발하고 있었다.
“이제 이 배를 타고 건너면, 우리의 영토가 나온다. 다들 이곳이 그대들이 새로운 고향이다. 알았나? 배고프더라도 조금만 참아. 환영의 만찬을 준비해뒀으니.”
“네, 마스터!”
20명의 소녀는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는 동안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그녀들 특유의 나이대 수다가 시작된 것이다.
뭐 그 수다는 다 일본어였지만.
“아루가 저들에게 부랴트어와 러시아어를 가르치도록 해.”
“호호, 꼬맹이들을 내가 잘 가르쳐 볼게.”
아루는 겉으로 봐선 18세 정도 되어 보인다.
태월이야 실제 나이는 17세지만, 몇 번 몸이 변하면서 20살 청년쯤으로 보이는 상태고.
알혼섬의 도마 선착장은 개발이 한창이다.
다리가 놓이면 이곳의 선착장 활용은 줄어든다. 그러나 다리가 끝나는 지점과 불과 100m 거리에 불과하기에, 이곳에 알혼섬 관리 본부를 짓고 있다.
지하 2층 지상 9층의 건물이며, 바닥 평수만 500평에 연면적 5천 평이 넘는다.
유럽의 유명한 설계사무소를 통해 미적 감각을 높였다.
그 옆에는 임시사무실로 컨테이너 두 동이 놓여있다.
“위성전화기 줘봐. 안부 겸 암 치료 관련하여 한국에 연락을 해봐야겠네.”
아쿠가 가지고 있는 전화기는, 아카가 보내온 인공 통신 위성을 이용한 전화기다.
국제통신 불량이 많은 이곳 알혼섬의 비상 전화기로 쓰이고 있다.
-띠리릭! 띠리릭!
“잘 계시죠? 네, 네. 이제 알혼섬에 도착했어요. 회사는 별일 없고요? 네? 음악방송국요? 3월 1일요? 하하, 뭐 나쁘진 않네요. 잘하셨어요.”
1995년 3월 1일 케이블 방송 시대가 열리면서, 다양한 방송국들이 한국에 생겨났다.
그전에 이미 이 방송국들은 준비하고 있었고, 개국을 3월 1일에 했을 뿐이다.
그중 TW에서 공들인 음악방송국의 최대 주주가 되면서, 내부적으론 이미 인수가 된 상황이다.
태월도 방송국 이야기를 얼핏 듣기는 했지만, 이곳 상황도 바빴기에 신경을 쓰진 못했었다.
조민희와 전화를 끊고는 홍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이제 러시아로 넘어왔어요. 아, 다른 게 아니라요. 우리 임원중에 마카르라고 있는데, 그의 아내가 암에 걸렸어요. 전에 그 임상 관련해서 의견 나눴던 게 생각나서요. 하긴 거리상 문제가 있긴 하네요. 그럼, 여기서 진행하는 게 더 낫겠네요? 하긴 호기심 많은 병원이야 많긴 하겠죠. 네, 알았어요. 또 전화할게요. 설희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태월이 전화를 끊자, 아쿠가 다가온다.
“태월? 차라리 여기 알혼섬에 의료재단을 하나 세울까? 인구도 많이 늘릴 예정인데, 병원도 필요하잖아. 거기다 제약회사도 만들고. 또 이번에 온 연구원들도 생명과학 쪽이라며?”
“흠, 그럴 바엔 기존의 병원과 제약회사를 사는 게 어때? 이번에 일본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충분하지? 가져온 게 또 있으니 부족하면 그걸로 보태. 하여간 신규로 뭘 하려면 여긴 까다롭더라.”
“응, 그럼 요건만 갖춘 곳을 사서, 알혼으로 이전 설립하면 되겠네.”
환영회를 겸한 식사 자리는 푸짐했다.
새로 온 사람들이 일본에서 살던 사람들인지라, 입맛에 맞게 일식 요리사도 준비해뒀다.
무녀 후보생 20명 중 17명이 일본인이다.
그러나 연구원들을 제외한 14명의 소생자는, 재일교포가 많이 사는 고베시 나가타구 출신이다.
그래서 대부분 재일교포 청년이었고, 러시아로 태월을 따라온 것이다.
“아쿠는 부랴트 공화국 고위층과 친분이 생겼지?”
“응, 거기 공동개발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리되지.”
“그럼 이들의 국적 취득을 부탁해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알혼섬이 러시아 권역인데, 부랴트 공화국 국적을 받을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생김새 때문에 그런 거라면 신경 안 써도 돼. 부랴트족 중에도 러시아 국적인 사람들이 꽤 되거든. 칭기즈칸 박물관 일로 러시아 고위층 인맥이 여럿 생겼잖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럼 아이들 출신지만 부랴트로 만들고, 국적은 러시아로 한다는 거지?”
“응, 그렇게 하려고.”
“그래, 알았어. 이제 다들 숙소를 정해주도록 해. 사업적 이야기는 낼 오후에 다시 하자. 난 좀 쉬어야겠다.”
태월은 오랜만에 푹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난 태월은 아사코를 깨워, 러시어와 부랴트어의 재능을 넘겨주었다.
“오전에 알혼섬 견학 일정이 있으니 거기에 합류하도록 해. 난 박물관을 좀 다녀와야 하거든.”
“네, 알겠어요.”
태월은 차를 몰아 BATR 박물관에 도착했다.
관광객이 이른 아침인데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다. 개장이 오전 10시라서 그런 것이다.
“라리사? 잘 있었어?”
“호호, 네. 잘 다녀오셨나요?”
“뭐, 정신없었지. 박물관에 전시할 물건들을 좀 가져왔거든? 서재로 가자.”
“네, 몇 점이나 되길래요? 차에 있나요?”
“하하, 아냐. 곧 보게 될 거야. 일단 움직여.”
갸웃거리는 라리사를 데리고 서재로 갔다.
“여기에 내려놓으면 되나?”
“그, 그렇긴 한데. 뭘 내려놓는다는 건지.”
태월은 등에 멘 가방을 내려놓았다.
“에이, 그 가방 안에 있었네요? 몇 점 되지 않을 거 같은데.”
태월이 이미지를 떠올려 그것이 밖으로 나오게 했다.
-슈우욱!
“헛, 이 팔레트들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거죠? 그리고 양이 상당하네요?”
“일본에서 얻은 신의 물건이 이 가방이야. 컨테이너 두 개 분량을 넣을 수 있어.”
“어머, 그 정도면 신기라 불릴 만하네요. 밀수에는 최고의 도구네요?”
“헐, 라리사는 밀수를 또 어떻게 알아? 해본 적 있어?”
“안드레이 오빠랑 골동품 가져온 게, 다 밀수로 한 거잖아요. 세관을 통하지 않으면 밀수라고 하던데요?”
“하하,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음, 나도 밀수한 거네.”
“이것들은 어디서 난 거예요?”
“악령이 뭔가를 꾸미다가 나에게 소멸하였어. 그놈이 모아 놓은 걸 가져온 거야. 아, 맞다. 골동품 목록 서류도 있을 거야.”
“아, 다행이네요. 이거 다 감정받아가며 하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거든요.”
“그거 일본어로 된 거거든? 내가 일본어 재능을 하나 넘겨줄게.”
태월은 라리사의 손을 잡고 재능 하나를 부여했다.
빛이 하나 생겼다가 금세 사라졌다.
“이번에 일본어 재능이 너무 많이 생겼어. 어학원을 차려도 될 정도야.”
“호호, 그럼 오빠에게도 하나 주고 가세요. 일본 관광객들이 좀 늘었다고 해요.”
“오. 여기도 관광객들이 이정도면 거긴 더하겠군. 직원도 늘었던데?”
“그럼요. 상주 직원만 10명인걸요. 칭기즈칸 박물관은 15명이에요.”
“오늘은 안드레이에게 들렀다가 바로 갈게. 두 달간 밀린 일이 너무 많아졌어.”
“네, 저도 출퇴근하는걸요. 이따 밤에 봬요.”
태월은 안드레이에게 일본어 재능을 부여해주고는, 도마 선착장에 있는 임시사무실로 향했다.
“용케도 점심시간 딱 맞춰왔네?”
“관광객들이 많아서 대화를 길게 나누진 못했거든.”
“의논할 건 몇 개가 되는데, 식사하면서 해.”
아쿠가 테이블 위로 도시락 두 개를 꺼내 올렸다.
“오, 웬 도시락이야?”
“호호, 내가 솜씨 좀 부렸지.”
“이야, 이거 한국식 모둠전이잖아. 눈이 호강하겠어.”
태월이 전을 하나 입에 물고 맛을 음미한다.
“놀이공원을 하나 지으면 어떨까?”
“음, 놀이공원이라…. 뭐, 있으면 좋긴 하겠지. 어디에 지으려는데?”
“알혼섬에 짓거나 아니면 사휴르타 선착장 뒤쪽을 대량으로 사들여야지.”
“글쎄, 가격이 많이 올랐을 거라, 실효성이 적지 않을까?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