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러시아로
“잠깐, 흑룡회의 단원들이 이 시간에 왜 몰려나가지? 그리고 무녀 후보생들은 왜 데리고 가는 거야? 이런 보고는 들어온 게 없었는데?”
“어이, 신녀 수호 부 대주? 그런 걸 우리가 어찌 알아? 위에서 시키니 하는 것인데. 그런데 신녀는 어딜 두고 혼자 여기에 있는 거야?”
“오사카 지부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산책 중이었는데, 당신들 움직임이 포착되었어. 아이들의 신분 서류까지 사라졌더군!”
태월이 아루를 쳐다보자, 호흡기를 덮쳐 산소를 제거했다.
“어? 어어! 컥!”
문신을 움직여 소생작업을 빠르게 마무리 지었다.
“이 여자는 차에 그냥 싣고 가! 나중에 깨어나면 교육해 돌려보내.”
3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소란은 없었다.
혼자 이 인원을 막으려고 나선 게, 오히려 이해가 안 될 정도다.
“이 여자는 원래 겁이 없어?”
“네, 좀 사차원 광신도입니다. 신이 자신의 몸을 보호해준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검술이 대주보다 높습니다. 그걸 믿은 것 같습니다.”
“일주일 후 고베에서의 마지막 정리를 하고, 다음 날 특별기를 타게 될 거야. 자, 이제 돌아가자!”
태월은 새벽 2시가 다 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일행을 해산시키고 아이들은 교실 막사에 묵게 하였다.
소생자들을 위한 막사도 여러 동 만들었던지라, 숙박의 여유는 있었다.
가방 사용법을 알아내느라 1시간 가까이 흘러갔다.
그래서 소득은 있어서 머릿속으로 떠올려 넣거나 뺄 수 있었다.
가면과 비슷한 원리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난 태월은 토리를 불렀다.
“무녀 후보들이 20명 생겼는데, 이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지?”
전날에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알려주는 태월이다.
“고아원이나 보육원에서의 기록도 남아있을 겁니다. 그리고 일본 전 지역에서 영력 감응도가 높은 아이들을 선발한 거라서, 오래지 않아 무녀들의 눈에 띌 것입니다.”
“러시아로 데려가야 하네? 흠, 승객 명단 기록이 남을 건데? 그리고 한두 사람이 보게 되는 것도 아니고. 안전하게 데려갈 방법이? 음.”
그때 태월의 시야에 눈에 익은 것이 들어온다.
“저거 수면 캡슐이잖아? 왜 저게 남았지?”
“구형이라서 중고시장에 처분할 것들입니다. 부피가 작은 신형으로 이번에 교체했습니다.”
“저게 밀폐되더라도, 안에서 산소 공급기만 정상 작동하면 건강에 문제가 없지?”
“네, 환기 장치도 있어야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합니다.”
태월의 머릿속으로 컨테이너 한 동에 설치한, 20개의 신형캡슐을 그려 보았다.
“흠, 사실은 내가 거기 주신의 물건이었다는 공간 왜곡 가방을 발견했어.”
태월은 자신의 계획을 꺼내놓자, 토리가 환하게 웃었다.
“와, 그럼 누구든 이동이 가능해지네요?”
“뭐 산소 탱크만 제대로 체크해 놓으면, 문제는 없겠지.”
“20피트 컨테이너 한 동에 4층 5열이면 딱 적당합니다.”
“그럼 바로 주문하고 작업을 시켜. 급행료를 지불하면 가능할 거야.”
“네, 마스터!”
“러시아로 가야 할 사람들 다시 한번 체크하고, 가져가야 할 품목들도 확인해봐. 정리한 자산들은 달러로 바꾸고 있지?”
“네, 여러 곳으로 분산 환전하고 있습니다.”
태월은 토리와의 일을 마무리 짓고 아사코에게 향했다.
수련을 시작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기세가 꽤 날카로웠다.
그러나 아샤나 설희처럼 성령초를 복용해서 기본 영력을 높여놓은 것이 아니기에, 바닥을 자주 보였다.
“잘돼 가고 있어?”
“아, 오셨어요?”
“씻고 나오도록 해. 부족한 것을 채워야겠어.
이왕 씻는 거 옷도 갈아입고 나와.”
태월의 말뜻을 이해 못 한 아사코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시키는 대로 씻으러 갔다.
학교 검도장에 마련된 샤워 시설은, 지진으로 수도관 일부가 끊기며 물이 풍족하진 않았다. 그나마 혼자 씻는 정도의 물만 가능했다.
“발전기는 잘 돌아가고 있나 보네? 온수에 문제는 없었지?”
“네, 춥진 않아요.”
“신들이 영력을 쉽게 높이려 마이너스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잖아.”
“네, 한 통 얻으셨잖아요. 그거 정화 시키려고요?”
“그것도 있고. 이치코 본부에서 또 하급신 하나를 만났어. 소멸시키고 두 개를 얻었거든.”
“와, 이제 하급신 정도는 충분히 감당되시네요? 위험하지 않았나요?”
태월은 품속에서 두 개의 통을 꺼내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직도 벅차긴 한데, 공략할 쉬운 방법을 찾았어. 시간을 질질 끄니, 쉽게 무너지더라고. 먼저 나부터 테스트해볼게. 자신은 있는데 혹시 모르잖아?”
아사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온다.
태월은 금속 통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문신이 튀어나오며 통 속의 회색 젤리를 흡입했다.
도깨비 문신에 의지를 전달한다.
-후르릅!
‘네가 먹을 게 아니라, 내가 먹을 거다. 정화만 시켜서 다시 담도록 해!’
처음엔 멈칫하기만 하던 문신은 결국 태월의 의지에 응했다.
금속 통에 푸른색이 도는 젤리 구슬을 내뱉는데, 회색 때보다 양이 절반쯤 줄어있다.
푸른 젤리 구슬을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진한 액체처럼 변하며, 목을 타고 매끄럽게 넘어갔다.
운기 자세를 취하며 늑대 족의 호흡법에 몸을 맡겼다.
푸른 기운들이 코와 입 밖으로 들락날락했다.
경험이 많았던 태월은 30분 정도가 지나자, 기운을 자유롭게 수발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30분 후가 되어서 눈을 떴다.
“흠, 몸이 충만하네? 늑대 족의 호흡법으론 몸 자체가 단전이라더니, 제대로 느껴보긴 처음이군.”
“저, 저기, 오른쪽 옆머리 일부가 파랗게 변했어요.”
“뭐? 웬 파란색?”
아사코의 말처럼 머리칼의 오른쪽 측면 일부가, 멋 내기 염색한 것처럼 파란색을 띠었다.
태월은 몸이 끈적였기에 일단 씻으러 들어갔다.
나올 때는 마땅한 옷이 없어서, 사범이 입었을 법한 허름한 도복을 입게 되었지만.
두 개의 금속 통을 꺼내 개봉했다.
‘이번에도 욕심부리지 마라. 정화만 시키고 뱉어내!’
-후르릅!
회색의 젤리들이 다시 파란색 젤리 구슬로 교체되었다.
“이번엔 옷을 완전히 망칠 수 있으니. 안 쓰는 연습복으로 미리 갈아입도록 해.”
아루와 같은 가치관을 가져서인지, 그 자리서 훌러덩 벗고 갈아입었다.
“에구, 다른 사람들 있을 땐 신경 좀 쓰도록 해. 다 큰 처녀가 훌러덩이 뭐냐?”
“몸이 바뀌고 나서 그런 것에 무뎌졌나 봐요.”
태월은 파란색 젤리 구슬을 빼내, 아사코의 입에 넣어주었다.
“꿀꺽 삼켜! 그런 후 호흡법을 시작해. 첫 기운의 리드는 내가 해줄 테니 걱정할 건 없어.”
태월은 아사코의 등에 손을 대고는, 기운의 경로에 따라 영혼 에너지를 밀어 넣어줬다.
이제부터는 아사코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태월은 몰입하고 있는 아사코를 지켜보다, 비스듬히 기대어 잠이 들었다.
‘음, 이게 무슨 냄새지?’
잠결에 시궁창 냄새 같은 게 코를 자극했다.
실눈을 뜨고 상황을 살피니, 아사코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몸의 껍질을 벗기고 있다.
“아사코? 영력이 몸속의 노폐물과 삿된 것을 없애서, 그게 밖으로 나온 거야. 에구 그렇게 한다고 없어지나? 따라와! 아루를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샤워실에 들어간 태월은 아사코의 몸을 타월로 문질러 댔다.
“아, 이거 쉽지 않네?”
아샤와 설희 때는 같은 여자가 해줬기에 문제는 없었는데, 태월은 아주 서툴렀다.
그래서 무려 한 시간이나 씻어주게 되었다.
온몸이 울긋불긋하다.
“하하, 사방에 멍이 들었네? 미안!”
“괜찮아요. 그런데 저 머리가 자랐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이젠 단발이야. 그런데 아사코도 나처럼 옆쪽 일부가 파란 머리네? 푸른색 구슬이라서 그리된 건가?”
태월은 아사코의 몸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 주다가, 문득 아카의 이야기가 머리에 떠올랐다.
‘어? 진짜 아사코의 몸을 이렇게 주물럭거렸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안 생긴다고? 이거 문제가 큰 거 아닐까?’
아예 느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만지면 살결이 부드럽고 기분이 좋다는 정도다.
‘그렇다고 어딜 가서 대놓고 의논할 만한 내용도 아니고.’
옷을 갈아입고 샤워실 밖으로 나오니 아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둘이 살림이라도 차린 거야? 왜 이리 오래 있어?”
“하하, 내가 서툴러서지 뭐.”
“어, 그런데 둘이 커플로 멋 내기 염색이라도 한 거야? 왜 둘 다 머리가 그래? 아사코는 머리가 엄청나게 자랐네? 혹시 나 몰래 뭐 먹인 거 아냐?”
“아사코가 영력이 부족한 듯 보여서, 마이너스 에너지를 정화해서 먹였어. 그래서 이렇게 된 거고.”
“아사코를 얼마나 팬 거야? 맘 놓고 때려잡은 느낌인데?”
“헙, 뭘 또 그렇게까지. 하나 남았는데 아루가 복용할래?”
“흠, 아쉽지만, 에이 너무 아쉽네. 정신계 에너지는 나 같은 자연계 정령에겐 도움이 안 돼. 인간이야 뇌를 활성화해서, 몸을 변화시킬 수 있으니 더 크게 도움 된 거고. 더구나 신의 영력과 관계있잖아?”
‘아카에게는 도움이 되려나? 나중에 물어봐야겠네.’
일주일이란 시간은 금방 흘렀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떠날 날이 다가온 것이다.
“토리! 재단 운영 잘하고! 제대로 일본을 바꿔봐.”
“네. 저의 특기가 있잖습니까? 멋진 토리가 되겠습니다.”
요즘 토리가 고베 대지진의 영웅으로 국민들에게 이름을 떨치고 있다.
정치권에서 러브콜할 정도다.
지금은 당장 재단과 고아원 보육원 등을 챙겨야 할 때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기업들도 꾸려야 하고, 정치권도 기웃댈 요량이다.
이제 제법 농담도 던질 줄 아는 토리다.
이번에 러시아로 떠날 사람은 총
무녀 후보생 20명과 소생자 25명, 태월과 아사코 그리고 용병 8명 총 55명이다.
무녀 후보들은 태월이 메고 있는 가방 안에 들어가 있지만.
외부적으로 볼 땐 35명이다. 아루야 정령 본체로 변해 있으니 패스다.
“팔레트가 1개네? 호호.”
태월이 하나를 제외하곤 전부 가방 속에 넣어 버렸다.
오사카의 간사이 공항에서 출발한 특별기는 4시간이 걸려 이르쿠츠크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와, 거의 두 달 만이네?”
“50일이거든?”
“아사코 러시아라서 좀 춥지?”
“뭐 북해도보다 조금 더 추울 뿐인데요. 뭐.”
공항 출구로 나오니 아쿠와 아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르세니, 공항 근처 창고 하나를 수배해놔. 그리고 나머진 소생자들과 함께 그 창고에서 대기해.”
“네, 마스터!”
용병들과 소생자들이 목적지로 이동을 했다.
“오빠! 힝 왜 이리 오래 있었어!”
“다들 신수가 훤한데? 혹시, 아사코?”
“네, 안녕하세요.”
“나는 선배니까 말 놔도 되지?”
“호호, 그럼요.”
“아루 언니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 홀랑 벗는 거 잘한다고.”
“컥! 아니, 그건 또 뭐야?”
아사코는 아무런 놀람도 없는데, 아샤만 놀랐다. 태월은 에구 또 시작이네 하고 혀를 찰 뿐이고….
“태월? 혹시 그 문신이 암 같은 것도 해결할 수 있나?”
“뭐?”
“마카르의 아내가 아픈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