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뭘 또 이런 걸, 다
-삐걱!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일본의 과거 시대 장군 복장이 단 위에 세워져 있다.
투구 쪽 눈 위치쯤에서 빛이 생겨났다.
“장로가 여긴 웬일이지? 잘 때는 깨우지 말라고 신녀에게 당부했는데.”
“마이너스 에너지가 아닌 다른 에너지를 모아왔습니다. 영혼 에너지라는데….”
“어? 영혼에서 에너지를 추출했다고? 그걸 만들 수 있었어?”
“초빙된 주술사 하나가, 고대 주술법을 찾아내어 그게 가능했습니다.”
“오오! 왜 진작 초대 안 했지? 어쨌든 가져와 봐. 그게 순수한 에너지라면 상을 내리겠다!”
모모카가 옆을 바라보자, 태월이 앞으로 나서며 죽통을 열었다.
200개의 영혼과 영혼 에너지가 들어있다.
“그 통은 기이하구나? 순수한 영혼의 향이 강하게 나는군? 그런 방식으로 추출하는 거였나?”
고대 장군 복장을 한 하급신이 숨을 들이켜, 죽통 속의 것들을 먹어버렸다.
“흠, 특별한 맛이야. 잠이 다 깨네. 그런데, 장로? 모시는 존재가 바뀐 거 같은데? 또 다른 신이라도 생겼나? 아아, 긴장하진 말아. 혼낼 생각은 없으니. 신이 하나쯤 더 생기는 거야, 이 동네에선 흔한 일이지.”
모모카의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자네가 새로운 주술사? 흠 이상한데? 대체 뭐지? 빙의한 건가? 어라, 정령도 있었네?”
잡신이 아닌 하급신이라더니 한눈에 알아본다.
‘이거 대화 나눌 시간도 없겠어. 이럴 땐 선제공격이지!’
“가랏!”
-슈아악!
“모모카는 나가 있어! 아루야, 측면 공격!”
도깨비가 튀어나오자 깜짝 놀라는 하급신이다.
옆쪽에선 아루가 불덩이를 연속으로 집어 던졌다.
태월은 그사이에 모산파의 영혼 전이 술법을 읊조렸다.
정신없는 가운데, 하급신의 몸속에 있던 영혼 200개가 깨어났다.
“헉, 이 이게 다 뭐야? 으아아!”
하급신의 머릿속에 200개의 영혼이 각축전을 벌인다. 하나하나 따지면 하급신의 영혼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호랑이 한 마리가, 200마리의 들개에게 사냥당하는 형세다.
물리적 공격이 아니다. 몸을 차지하기 위해 개떼처럼 덤벼든 것이라,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도깨비가 삼키려 덤벼들고, 불 공격까지 이어졌다.
태월도 등 뒤에 멘 칼을 뽑았다.
영혼 에너지를 두르고 하급신을 베어갔다.
그런데 갑옷의 방어력이 대단하여, 상처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하급신이 도깨비의 공격을 피하려 할 때마다, 끼어드는 작전을 썼다. 중간중간에 밀교의 주박법을 펼치는 거로 바꾼 것이다.
비록 제대로 먹히진 않았지만, 잠시 멈칫거리게 할 수는 있었다.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내박인이 겹쳐지면서 전법륜인이 되어간다.
원래는 악령을 속박하고 무력화시키는 방법이었고, 하급신에게 통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영혼들의 정신공격을 당하고 있어, 빈틈이 생겨나고 있다.
“으아! 이것들이! 감, 감히!”
30분 정도를 그렇게 버티더니, 비틀거리기 시작하는 하급신이다.
정신이 피폐해졌고 한계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그러다 불덩이를 몇 방 더 맞고, 태월의 칼에 의해 상처도 생겨났다. 방어력이 확 떨어지며, 다리가 베어지고 무릎이 꿇려졌다.
그 순간 기회를 엿보던 도깨비가 그를 삼켰다.
-꿀꺽! 끄아아!
“하아, 하아, 이거 완전 중노동이네.”
태월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말이 30분이지, 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힘을 쏟아낸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인간의 신체로는 감당할 수 없는, 체력적 한계가 온 것이다.
“아, 나도 힘들었어.”
정령 본체의 상태인 아루도 태월 옆에서 쉬었다.
문이 열리며 모모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조용해졌길래요. 어? 그 신이 안 보이네요?”
“어, 소멸시켰어. 우리가 이겼지!”
“어머, 역시 마스터네요. 이제 신녀파는 끝장이네요.”
“그 마이너스 에너지 모은 걸 찾아와.”
“네, 마스터!”
모모카가 문밖으로 다시 나갔다.
아루는 비어있는 죽통 속을 보고 있다.
“태월? 영혼 200개는 다시 나올까?”
“이미 정화되어 있던 영혼들이라, 먹이로 쓰진 않았을 거야.”
“여기 쓸만한 게 있나 돌아보고 올게.”
아루까지 자리를 비우자, 태월은 늑대 족의 호흡법을 시작했다.
소진한 체력과 기운을 보충하려는 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신과 싸운 장소라 신력도 허공에 많이 흩어져 있었다. 그걸 최대한 흡수하려는 생각이다.
20분 정도가 지나자, 모모카와 아루가 다시 나타났다.
“마스터! 2통이나 있었습니다. 신녀가 무리했나 봅니다.”
모모카가 내미는 캔맥주만 한 금속 통 2개를 받아들었다.
“태월? 난 가방 찾았어!”
“어? 아루 님! 그건 열 수가 없을 건데요?”
“안에 들어가 봤는데 넓었어.”
아루가 허공에 띄워서 가져온 건, 등에 메는 가죽 배낭 같은 것이었다.
그걸 공간이동으로 들어가 봤단 소리다.
“저게 뭔데 그래?”
“사라진 주신의 물건이었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신물인지라 훼손하진 않고, 그냥 보관만 하고 있었지요.”
“저게 없어지면 난리가 나나?”
“주신 쪽을 신경 쓰는 사람은 장로파밖에 없어서, 저만 모른 척하면 모를 겁니다.”
태월은 가죽 배낭을 열어보려 했지만, 모모카 말대로 열리진 않았다.
“태월? 전에 호족 창고에서처럼, 영혼 에너지에 반응하는 거 아닐까?”
아루의 말에 태월은, 영혼 에너지를 가방에 주입하고 열어보았다.
-스르륵!
“어? 아루 말이 맞았네. 영혼 에너지가 만능열쇠군. 신의 기운과 연관이 있는 건가?”
팔을 넣어보니, 어깨까지 들어갔는데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
“공간이 왜곡되어 있나?”
“내가 들어가서 재볼까?”
“그래, 물건도 있나 살펴봐.”
아루가 가방 안으로 사라지더니, 5분 후 다시 나타난다.
“짠! 이거 하나밖에 없었어. 그리고 공간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두 개 쌓은 크기 정도야.”
20ft면 2.4m*6m다. 즉, 가방 내부 크기가 5m*6m 정도란 소리였다.
그리고 아루가 가져온 건, 벽돌 두 개 크기의 은괴 같은 것이었다.
“은인가? 은값이 얼마 하지 않을 건데, 신이란 사람이 이건 왜 넣어둔 거야?”
“그거 엄청 가벼운데? 은이 가볍지 않잖아.”
태월은 그 금속을 들어보니, 아루의 말대로 무게감이 별로 없었다.
“대체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신기해서 던졌다 놨다 하고 있었는데, 문신이 꿈틀댔다.
문신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팔목에서 팔찌가 드러났다.
팔찌를 따라서 빛무리가 일며 한 바퀴 돌았다.
“어? 웬 팔찌가 내 팔목에 있지? 이 빛은 또 뭐야?”
태월이 팔찌를 만져보려는데, 피부 속으로 사라지며 문신으로 바뀌었다.
“태월? 그게 대체 뭐야? 엄청 존재감이 강하던데? 혹시 문신이 중급신 격으로 변한 거 아닐까?”
“문신의 정체가 팔찌였나? 이 팔찌가 나에게 왜 있는 거지? 음, 기운이 확 바뀐 건 맞아. 거의 중급에 가까운 신격에, 이번에 또 하급을 흡수했잖아. 이제 완전한 중급으로 진화한 거 같은데?”
진화한 문신이 이어서 토악질한다.
-우웨엑! 툭!
삼켜졌던 영혼들이 다시 나타났다.
태월은 죽통을 열어 200개를 회수했다.
“태월? 바닥에 뭐가 떨어져 있어.”
매미 날개처럼 얇은 것이 뭉쳐있었다.
태월이 주워들어 펼치니, 2m는 됨직한 길이의 스카프였다.
“이건 또 뭐람? 가면 때도 그러더니, 뭔가를 꼭 남기네?”
“마스터!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가셔야 합니다.”
벌써 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태월? 가방이 눈에 너무 띄는데?”
아루의 말에 태월은, 정체 모를 그 스카프로 가방을 감쌌다.
“등산 가방처럼 되지 않네? 스카프 색이 너무 밝아서 여전히 눈에 띄는군.”
태월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가방의 겉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 진짜 등산 가방으로 변했어. 색도 눈에 잘 안 띄는 회색이야. 헐, 이거 가면처럼 변신 가능한 스카프?”
“신기하긴 하네. 어쨌든 어서 나가자. 살피는 건 돌아가서 해도 충분해. 아, 그리고 모모카는 이곳에 남아서 해야 할 게 많아.”
“네,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다녀온 후에 신이 없어졌으니, 아마 의심하며 제게 따질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하려는데?”
“일개 장로인 제가 신을 어찌 소멸시킵니까? 그들도 그건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신계로 잠시 다녀온다는 말을 남겼다고 할 겁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군. 아, 그리고 내가 지시해 놓은 일들도 잘 마무리하도록 해.”
“네, 마스터! 걱정하지 마십시오. 철저히 해 놓겠습니다.”
돌아서려다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어, 멈추는 태월이다.
“아, 맞다. 그 흑룡회의 다른 지부 단원들이 데리고 온, 무녀 후보들은 어떻게 키워지는 건데?”
“자발적으로 들어온 무녀 수련생과 달리, 그들은 철저히 사육됩니다. 못 견디고 병신이 되어, 버려지는 경우가 절반쯤 되고요.”
“아니, 그런 몹쓸 짓을 하다니. 원하지도 않는데 그런 짓을 해? 이대로 가서는 안 되겠어.”
“그런데 강제로 신을 받은 상태기에, 정상적으로 크기 어렵습니다.”
“나 원 참, 할 수 없네. 그들도 소생자로 만들어야겠어. 그편이 그 애들을 위해서도 더 좋을 거야.”
“네, 그러면 되겠네요. 그럼 그 흑룡회 단원들을 하나씩 유인해 올까요?”
“그래, 그렇게 해줘.”
“태월? 두 명씩 오라고 해. 그 정도는 불덩이 두 개로 한 번에 가능해.”
5번을 반복하자, 9명의 흑룡회 단원들은 소생자가 되었다.
이제 흑룡회 각 지부에도 아군이 생긴 것이다.
“마스터! 이 아이들입니다.”
스무 명의 소녀들이었는데, 대략 10대 중반쯤은 되어 보였다.
“아니 얘들은 무슨 마약이라도 먹었어? 왜 눈빛이 흐리멍덩해?”
“비슷하긴 합니다.”
“아루? 얘들 반응도 그리 없는 것 같다. 빨리 마무리해 주자.”
“응, 알았어. 얘들아, 이리로 와서 줄을 서!”
질식을 시킨 후 곧바로 소생작업을 진행했다.
문신의 격이 높아져서인지, 전보다 작업은 수월했다.
깨어나는 것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스무 명이나 사라지면 문제가 되지 않나?”
“비밀 수련장에 새벽에 입교할 애들이었습니다. 그 문은 한 달 후에 다시 열리고요.”
“그럼 한 달 후에는?”
“그때 정도면 제가 신녀파를 무너뜨렸을 겁니다. 흐지부지하게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다신 이렇게 잡아 오는 일이 없도록 해. 자진 입교하는 사람도 많잖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흑룡회 단원들은 이 아이들을 태우고 우릴 따라와!”
“네, 마스터!”
모모카 그리고 흑룡회의 타케루와 켄타는 이치코 본부에 남겨 두었다.
그들을 통해 이치코와 흑룡회의 행보를 계속 파악하기로 한 것이다.
“자, 이제 돌아가도록 하자.”
“네, 마스터! 그런데 너무 허무하네요? 전투를 대판 벌일 줄 알았는데.”
“17년 전 주모자들은 다 죽었다잖아. 지금 사람들은 관련도 없다는데, 죽일 순 없잖아. 상황이 이런데 어쩌겠어.”
“어? 그런데 저기, 정문을 가로막고 서 있는 여자가 누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