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이치코 무녀
‘아니, 얘는 또 왜 이래? 귀신도 없는데. 혹시 격이 달라져서, 영혼이 더러워진 것들도 되는 거 아닐까?’
하급신을 먹고 난 이후 여러 변화가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태월이다.
변신했어도 팔에 문신은 여전히 있었다.
‘에이, 틀리면 제대로 창피 당한 거로 치지 뭐!’
“치워버려!”
-슈 아악! 꿀꺽! 끄억! 컥!
악귀를 먹을 때와 매우 달랐다.
그 두 남자가 그대로 쓰러졌다.
몸을 먹진 않고 영혼만 삼켜 버린 것이다.
그 순간 한스는 당황하여 멍하게 서 있는, 모모카의 목덜미를 쳐 기절시켰다.
그리고 남자들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그들의 몸을 뒤지던, 한스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어? 마스터! 이놈들 숨은 쉬는데요?”
“흠, 신체를 통제하던 영혼만 삼켜 버린 거네. 이런 식이면 앞으론 여러모로 수월해지겠어.”
최근에 와서 태월은, 사람의 목숨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더라도 바로 살릴 수 있기에,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다.
“무녀도 소생 작업해야 하니, 바로 진행해.”
“네, 마스터!”
문신이 2분 정도 후에 두 남자의 영혼을 내뱉는다.
-우웩!
‘흠, 악귀나 악령의 영혼만 먹네?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은, 삼켜서 정화시켜 내보내고.’
문신의 진화된 비밀을 하나 더 알게 된 셈이다.
무녀의 영혼이 떠오르자, 문신으로 삼켜버렸다.
약간의 저항이 느껴졌지만, 문신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무녀의 영혼까지도 뱉어내자, 허공에 3개의 영혼이 둥둥 떠 있다.
그들의 입에 영혼을 하나씩 물리고 소생작업을 했다.
죽통을 쓰지 않고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제 죽통은 단순히 영혼저장소 역할이네.’
태월은 가면을 벗었다.
잠시 후 그들이 정신을 차리며 태월을 쳐다본다.
“너희 영혼이 바뀐 것은 느껴지지? 새로 태어난 것이다. 이제 그 몸의 기억을 스스로 받아들여. 그리고 영혼의 주인인 나를 마스터라고 호칭하면 된다. 알겠지?”
“네, 마스터!”
“너희가 가진 기억을 간추려 말해봐. 그리고 모모카는 의뢰에 대한 것도 함께 떠올려봐. 너희부터 말해.”
태월은 두 남자를 가리켰다.
“제 몸은 흑룡회 오사카지부의 지부장 타케루입니다.”
“제 몸도 흑룡회 단원 켄타입니다.”
“흑룡회 지부장이나 되는 사람이 이곳에 왜 있지?”
“찾고 있던 주술서가 나타났다고, 이치코에서 연락이 와서 온 겁니다. 본회의 주요 협력관계가 이치코였습니다. 그만큼 사안이 중요하기에 지부장이 동원된 것입니다.”
“흑룡회에서는 이 용병들이나 의뢰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용병에 대한 건 알고 있습니다만, 용병이나 그 당사자가 누군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흑룡회에서 주술서를 탐내진 않습니다. 과장됐다고 믿거든요. 그냥 주술서를 고대의 학문적 가치로 볼 뿐입니다.”
두 단체 간을 단순한 거래 관계로 말하는 타케루다.
“모모카? 이치코에서 흑룡회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나?”
“네, 학술적으로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했습니다. 저희 주술체계 보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식으로요. 괜히 진실을 말했다가는 경쟁자만 더 생길 뿐이니까요.”
“이치코에서 모모카의 위치는? 그리고 이 의뢰는 어디까지 알고 진행한 거지?”
“이 몸은 이치코에서 선임 장로입니다. 현재 이치코는 신녀파와 장로파로 대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중 장로파의 수장을 맡고 있습니다. 임무는 선대 때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한국에서 부활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용병들에게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이치코가 직접 나서면, 미코 쪽도 알아차리거든요. 그 부활 주술을 쓴 사람에 대한 것은, 용병들이 알아 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정확한 내용은 받지 못한 상황입니다.”
태월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가족들이나 자신이나 이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용병들 입장에선 알아낸 대상자의 정보를 당장 넘기는 건, 손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의뢰의 결과가 지연될 경우, 이치코에서 직접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고베에서의 일도 토리가 소생자들을 단속했다. 그래서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사실을, 소생자들 스스로가 감추고 있었다.
자신들 생각으로도 그걸 알린다면, 실험체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또 영혼의 주인이 허락지 않는다고 들었고.
“미코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해봐.”
“원래 미코는 민간의 공수계로 소수 집단 단위로 흩어져 있었는데, 100여 년 전부터 연합 식으로 조직을 꾸렸습니다. 이치코와는 오랜 세월 경쟁 관계이고요.”
“17년 전 당시 한국에서 호족들을 공격했지? 누가 주도한 짓이지?”
“선대의 신녀가 지시한 일입니다. 그 실패로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몇 년 전에 노환으로 죽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이치코가 두 파로 갈라진 것입니다.”
“흑룡회도 그 당시 함께 한 거로 아는데?”
“그 당시 흑룡회의 참여자들 절반 이상이, 한국에서 죽었고 임무도 실패했습니다. 그 일로 파견 책임자는 문책을 받아 처단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 몸은 수련생이었네요.”
호족의 직접적인 원수들은,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는 소리였다.
“이치코 본부에 흑룡회 닌자들이 많이 있던데? 단순 호위라고 보긴 어려웠어. 다른 이유도 있나?”
“그들은 오사카지부 단원이 아닙니다. 흑룡회의 다른 지부들에서 이송 때문에 온 것입니다. 고아원이나 보육원에서, 순결하고 단정한 아이들을 찾아내 이치코로 데려온 것입니다.”
“흑룡회가 이제 그런 일도 하나? 닌자 조직이라며?”
“요즘은 음지로 정보조직도 겸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이치코의 의뢰입니다.”
“이치코에 금역이 있는 걸로 아는데, 거긴 무엇이 있는 거지?”
타케루와 이야길 나누다가 모모카에게 고개를 돌렸다.
“신당을 말씀하시는 거면, 모시는 신들이 있습니다. 늘 강림하진 않지만, 종종 신녀를 통해 말씀을 내리는 걸로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응? 신이 하나가 아니었어?”
“네, 여럿입니다. 주신은 따로 있지만, 강림한 적은 아주 오래전 일이라고 합니다.”
“강림하는 신은 상급신? 중급신?”
“그런 신 정도는 드뭅니다. 거의 하급신이죠. 그래도 그 흔한 잡신은 아닙니다.”
일본의 잡신 숫자는 인도와 더불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무려 800만이라고 하니 엄청난 것이다.
그중 대부분이 실존하지 않는 존재겠지만.
인구의 80% 이상이 불교 신자인데, 그중 70%가 신사나 사당의 신자이다.
즉 종교를 두 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의 절이 1,650여 개, 신사만 400여 개다.
일본에서 기독교는 0.7%에 불과했다.
“하급신끼리 사이가 좋나 봐? 같이 모셔진 거 보면.”
“특별한 경우를 빼곤 대부분 경쟁 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급신 한 분만 강림해 있는 터라, 별 소란은 없지만요.”
“그 신이 내려준 임무라도 있나?”
“마이너스 에너지를 모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신격이 높아져, 믿고 따르는 자에게 더 많은 은혜를 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신도 중에 정치인도 있는데, 현재 그들을 이용하는 중입니다.”
“하하, 그놈도 악신이구나. 벌써 둘이나 그런 짓을 하고 있었군. 사회적 혼란을 자주 발생시키려는 건가?”
“네, 사건 사고도 자주 일어나게 하고, 그걸 언론에 과장되게 터트리면, 대중들에게 마이너스 에너지가 생성되죠. 그걸 모으는 중입니다.”
모모카의 말에 문득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게 있는 태월이다.
‘아, 그러고 보니 마유키가 준 걸 잊고 있었네. 격이 달라진 소생 방식으로 보면, 문신에 의해 정화처리 되겠어.’
“그럼 신교파는 지금 하급신을 따르는 건가? 강림의 말을 전했다는 걸 보니.”
“네, 장로파는 정통적인 주신 쪽이고, 새로 신녀가 된 이는 강림한 그 하급신 쪽입니다.”
신녀는 젊은 무녀 층의 지지를 받으며, 그들에게 신의 이적을 직접 보여주는 현실파였다. 그녀들의 입장에선, 주신은 신화나 전설 속 존재일 뿐이었다.
“마이너스 에너지를 모은 건 어디에 두던가? 모으는 족족 그 하급신이 흡수하나?”
“그 사당 안에 있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이너스 에너지도 풍족한 게 아니라서요. 늘 비축분을 모아놔야 하거든요. 그래야 요구할 때 바로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이치코도 무녀들이 돌아다니면서, 그걸 주술로 끌어 모아오는 방식인가?”
“네, 맞습니다.”
“혹시 이름 없는 신이라고 알아?”
“음, 그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모으는 방식이 같았기에, 그 연구소와 연관된 곳이 이치코가 아닐까 해서 물은 거였다.
마유키가 전해준 그 마이너스 에너지는, 정체불명의 외부자들이 주기적으로 제공한 것이다.
그 금속 통 하나를 가득 채우려면, 무녀들 100명이 1년 이상 모아야 한다고 했었다.
“그 하급신이 없어져야 마이너스 에너지를 안 모으겠군. 그 에너지를 다른 식으로도 활용하고 있나?”
“네, 다른 신은 그런 요구가 없었는데, 그 하급신만 유난히 집요합니다. 다른 활용을 생각할 수량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모으기에 바빴단 소리다.
‘운이 따랐던 거지만, 어쨌든 신격이 없을 때도 중급에 가까운 신을 해치웠어. 이젠 문신도 하급신 격을 갖췄으니 충분하겠지? 나와 아루까지 합세하니 가능할 거야. 정 안되면 문신으로 버티게 한 후 도망가지 뭐.’
사명감에 불타서 그 하급신을 처리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그런 존재는, 악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기에 없애려는 것이다.
접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신녀나 관련 인물로 변신을 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하급신에겐 들키겠지만, 그 전 단계까지는 방해물이 없을 터였다.
“모모카는 그 신당 안에 들어갈 수 있어? 타케루도 호위로서 출입 가능해?”
“자주 가진 않았지만, 갈 수는 있습니다. 다만 호위는 1인만 가능합니다.”
“그럼 내가 켄타로 위장하면 되겠군. 켄타는 한스가 데리고 있도록 해.”
“네, 마스터!”
“모모카? 이 찻집 수상하던데?”
“아, 이치코의 비밀 아지트 중 하나인데, 장로파에 속해 있습니다.”
그제야 그 여점원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모모카는 잘못된 의뢰인 것으로 처리해.
한국에서 일어난 일은, 원래 살아있던 사람이 산 것뿐이라고. 그리고 그 모산파의 주술책도 실패작이었고, 진본도 이미 소실되었다고 해.
그게 용병들이 보내온 결과라고 하고. 한국의 호족들은, 17년 전에 피해가 막심하였어. 그나마 남아 있는 종족 보존을 위해, 한국을 떠나 유럽으로 피난 갔어. 알아듣겠지?”
“네, 이해했습니다.”
“자 이제 그 신을 찾아서 가볼까? 당분간 난 켄타야.”
“네, 마스터!”
일행은 다시 이치코의 본부로 향했다.
켄타로 변신한 태월은,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고 신당 앞에 갈 수 있었다.
금줄이 쳐진 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경비를 서던 이들이 모모카에게 고개를 숙인다.
“신녀는 오전에 다녀갔었나?”
“네, 늘 같은 시간에 머무시다가 갔습니다.”
“한 시간 정도 머물 테니, 어느 누가 와도 방해하지 말도록 해.”
“예, 선임 장로님!”
장로가 밤 10시가 되어 나타난 건 의외였지만, 따질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기에 경비는 넘어갔다.
모모카와 켄타로 변신한 태월은, 어느 문 앞에 서게 되었다.
강림하는 신이 모셔져 있다는 그 장소 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