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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100화 (100/250)

100화. 이름 없는 하급신?

캐비닛 안은 생각지 못한 공간이었다.

작은 신당이 차려져 있었다.

“어머, 연구소장이 무녀라고 하더니, 보도듣도 못한 잡신을 모시고 있었나 보네.”

아사코가 태월의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아사코! 뒤로 와!”

태월은 아사코를 뒤로 물리며, 자신도 한 발 뒤로 거리를 벌렸다.

아루가 청랑이라 이름 붙인 칼에 불의 기운을 두른다.

모셔진 것은 위패가 아니라, 뿔이 솟은 짙은 회색의 가면이었다.

“이곳에 몰래 모셨단 건?”

“태월? 느낌이 불쾌해지는 쪽으로 찌릿한 거 보면, 잡신 중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겠지?”

“맞아! 연구소장이 제1 사도였을 듯하네. 영혼 수집에 잠시 저항이 있었거든.”

귀면이라 부름직한 회색 가면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감히 정격신(定格神)인 나를 잡신 따위와 비교하다니!”

신의 명칭과 근원 또는 직능이 분명한 신을 정격신이라 하고, 신격이 미약하고 위계가 낮은 잡신과는 차이가 크다.

“신계에서 품성이 안 좋아 추방당한 거 같은데? 그러니 이런 데 쭈그리고 있지! 그런데 몸은 어디로 가고 머리만 있는 거야? 쫓겨났으니 소머리 국밥집이라도 하려고?”

가면의 뿔을 보고 빗대어서 하는 말이다.

긴장하곤 있지만, 여전히 빈정거리는 아루다.

혼자였으면 감당하기 힘들 것이지만, 태월도 있기에 하는 행동이다.

아카의 빠른 성장과는 다르게 아루는 아직 느렸다.

“네년은 인간이 아니라 정령이구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함부로 입을 놀리다니 겁을 상실했군. 오히려 잘됐어. 이참에 널 먹어서 신력이나 높여야겠다. 조금 부족했는데, 바로 중급신으로 오를 수 있겠어.”

결국 이 가면은 아직 하급신이란 소리다.

아루나 태월에겐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꼴에 여자 보는 눈은 높아 가지고! 잡귀야? 이거나 먹어라!”

어차피 상대가 이를 드러낸 이상 평화는 없다.

아루는 왼손에서 불덩이를 생성시켜 내던지고, 오른손의 칼로 가면을 공격했다.

“이 싸움은 우리에게 맡기고, 아사코와 너희는 연구원들을 제압해놔! 그 후에도 여긴 함부로 들어오지 말고, 주변을 조사해놔!”

태월은 그 말만을 남기고 싸움판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사코는 또다시 힘이 부족하여 함께하지 못하자, 입술을 잘근 깨문다.

결국 용병들과 함께 지시한 일을 수행하러 밖으로 나갔다.

“허, 네년이 어떻게 그 칼을 가지고 있지? 연결이 끊어져 이상하게 여겼는데.”

“몰라도 돼! 이 자식아!”

아루가 소리치며 공격의 강도를 높이자, 태월은 그 틈으로 가면에게 밀교의 주박술을 펼쳤다.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영혼의 에너지가 밧줄로 변해, 내박인으로 가면을 묶는다.

과거엔 주술법만 행했지만, 이제는 영혼 에너지를 주입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잠시 멈칫할 뿐 속박이 되지 않고 끊겨 나갔다.

‘헛, 이놈 일반적 악령보단 훨씬 강하구나.’

“암 크링크링! 암 크링크링! 암 크링크링!”

도인주를 읊으며 칼의 모양을 만들고 가면을 베어갔다.

그런데 큰 상처는 내지 못하고 자잘한 공격만 성공했다.

5분이 넘게 이어졌지만, 아루와 태월이 오히려 밀릴 뿐이다.

검은 연기가 창이 되어 태월과 아루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태월은 결국 오른쪽 허벅지가 관통되는 상처를 입었다.

밀교의 도인주로 만든 칼도 부러져 나갔다.

결국 태월은 등 뒤에 메고 있던 칼을 꺼내, 영혼 에너지를 둘렀다.

“어? 그, 그 칼은! 내 권속마저 소멸한 거야?

감히, 이것들이.”

“그 악령이 네 권속이었구나. 어쩐지 악취가 비슷하게 나긴 했어.”

“멍청한 놈! 영체가 가능한 존재가 아닌 너는, 그 칼이 오히려 약점이다! 잘 봐라!”

가면이 아루의 공격을 무시하고, 태월에게 쏘아져 왔다.

한 발의 불 공격에 맞아 비틀거리면서도 감행한 것이다.

-쉬 이익!

태월이 들고 있던 칼 속으로, 가면이 영체로 변해 스며든 것이다.

그런데 태월의 칼이 스스로 움직여, 태월의 목으로 다가오다 말고 부르르 떤다.

그 순간 왼쪽 손목의 문신이 입을 쫙 벌리더니 칼을 집어삼켰다.

-슈아악! 꿀꺽!

“이, 이것들이 뭐야…. 끄아악!”

일이 너무 허무하게 진행되어버리자, 황당해진 태월과 아루는 서로를 쳐다봤다.

“어머, 저 칼 속에 이미 다른 주인이 있는지 몰랐나 봐? 저러면서 누구보고 멍청하대?”

“칼을 에고로 만든 게 최고의 행운이었어. 쩝, 내 공격이 잘 안 먹히더라고. 이 정도면 좀 위험했어.”

“날 보고도 먹잇감으로 여긴 걸 보면, 단순한 하급신은 아닌가 봐. 하긴 곧 중급이 된다고 떠벌리긴 했지만. 어? 저기 저년이 깨어난다.”

태월이 돌아보니, 연구소장이 누운 상태로 눈을 뜨더니 두리번거리고 있다.

태월은 상의 오른쪽 팔을 뜯어내, 허벅지를 감싸 묶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제 정신이 들었냐? 그 몸의 주인은 소멸하고 넌 새로 태어난 것이야. 네가 가진 기억은 몸의 기억인 거고.”

자주 이 멘트를 써먹다 보니, 가끔은 태월 자신도 진짜처럼 여겨졌다.

“아, 그렇게 된 거군요. 뭔가 괴리감이 느껴졌었거든요. 저를 태어나게 해주신 분인가요?”

“그래, 마스터라고 부르면 된다.”

“네, 마스터!”

“그 몸에 있는 기억을 말해봐. 이곳이 만들어진 목적. 그리고 어떤 단체와 연관된 곳인지. 그리고 하급신도 있던데 그와 악령들은 뭐지?”

“신, 신은 어찌 되었나요? 악령들은요?”

“전부 소멸시켰어! 이제 편하게 말하면 돼.”

“네, 마스터! 잠시만요.”

머릿속 기억을 정리하는 중인지 몇 분간 가만히 있는 연구소장이다.

“제가 여기 연구소장이네요. 무녀로 있다가 어느 날 꿈속에서 다른 신을 영접하게 되네요. 그 후 변절하고 그 신을 모시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곳은 그 신의 권속이던 악령이 주관하여 만든 곳이네요. 연관된 회사는 저도 모르고요.

연구소장도 모를 정도면 비밀이었나 봐요.

그 신은 원래 신계에서 죄를 지어 하급신으로 강등당했고요.”

“이름이 뭔데? 뭐 하는 신이지?”

“최소 중급신 정도는 되어야, 잊힌 이름을 되찾는 격이 생기나 봐요. 반년 정도면 중급으로 올라설 거라 했고요. 100년 걸렸다고 해요.”

“그럼 강등 전에는, 최소 중급이거나 상급 정도는 되었단 소리잖아?”

“중급은 아니고 상급 이상이었던 거 같았어요.

상급신 이름도 가볍게 불렀거든요.”

“쩝, 그나마 신력이 하락해서 우리가 운 좋게 이긴 거군.”

“그리고 그 악령들은 저처럼 무녀였었다고만 알아요. 첫째 악령은 제1 권속이었는데, 이름 없는 신의 30% 정도 힘을 받았다고 했어요.”

“헐, 그럼 신력 30%가 없는 상태서 우릴 상대한 거잖아.”

입맛이 쓴 태월이다.

“이 연구소 목적은?”

“숨이 끊어진 자의 목숨을 되살리는 일이에요.

살아나긴 해도 영혼은 다르지만요.”

태월은 그 말에 식겁했다.

“그, 그래서 몇 명이나 했는데?”

“사람에겐 성공 못 했고요. 동물들까지만 성공했어요. 최근 실험실에 살아난 자들을 잡아 왔네요? 영혼이 귀속되어 있어서 아직은 알아내진 못했고요. 중급신이 되면 그걸 해지할 수 있다길래 가두고만 있어요.”

“사람을 살려서 뭘 하려고 하는데?”

“전쟁이나 정치적 혼란 혹은 전염병 같은 걸 통해 마이너스 에너지를 모으려 했어요. 그걸 진행할 정치인들이 필요했고요.”

“마이너스 에너지로 뭘 하는데?”

“신력을 높이는 데 썼어요.”

“악신이나 하는 짓 아니야?”

“중급신만 되려 했기에 플러스든 마이너스든 가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마이너스 에너지가 모으기 더 쉽거든요.”

“이야, 이거 그냥 뒀으면 진짜 큰일 날뻔했네. 또 다른 남은 악령은 없고?”

그때 문신이 부르르 떨더니 토악질을 했다.

-우웨엑! 땡강!

칼 한 자루를 딸랑 내뱉었다.

“응? 이게 다야?”

태월이 입맛을 다시며 칼을 주워 들 때, 문신이 갑자기 요동을 친다.

“어? 문신의 그림이 바뀌는데?”

“어머, 우리들처럼 성장하는 거 같은데? 전에는 소년 도깨비 정도였는데, 지금은 청년 도깨비쯤?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신격 같은 게 생겼어.”

아루의 말대로 막 성인이 된 도깨비 느낌이다.

“중급에 가까워진 하급신을 먹어서 격이 생긴 것 같아.”

“헐, 그럼 내 문신이 이제 최소 하급신 급은 된 거네? 웬만한 악령은 이제 손쉽겠어.”

“호호! 태월, 축하해!”

“감축드리옵니다. 마스터!”

“그 이상한 사극 드라마 말투는 빼.

그런데 다른 악령은 없나? 확인 좀 해보게.”

“네, 악령은 없고 악귀는 좀 있어요.”

“아, 맞다! 악귀! 헐, 깜빡했네. 내가 바로 없애고 올게.”

태월은 이 건물 지하에 악귀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급신을 맞닥뜨렸을 때, 다급한 나머지 아사코와 용병들을 밖으로 내보낼 생각만 했다.

비록 연구원들 제압이라는 명분을 던져줬지만.

“아사코와 용병들이 감당하기 벅찰 거야. 다녀올게. 너는 이곳에 대해 자세히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해.”

“네. 마스터!”

“같이 가!”

태월과 아루는 밖으로 나와 기감이 젤 활발하게 잡히는 곳으로 뛰었다.

“휴,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네? 다들 물러서!”

“네, 마스터!”

태월은 왼손을 높이 들고는 한 바퀴 휘둘렀다.

“쓸어버려!”

-슈악! 크, 큭, 윽, 읍, 억

10여 명은 될 듯한 악귀들이 순식간에 문신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와! 입이 엄청 더 커졌어! 악어 저리 가라야! 어? 아사코는 왜 입술을 깨물고 있어?”

“아, 아니에요.”

“자 여기 의무실이 있을 거야. 다들 그리로 가자. 상처 소독은 해야 할 거 아냐.”

“저기, 마스터! 안 다치셨어요?”

“하하, 보기만 이렇지, 괜찮아. 내가 특수 체질이거든. 그런데 넌 안 하던 웬 마스터 타령이야? 넌 개인비서인데 사장님이라고 하든가 아니면 편하게 오빠라고 해도 돼!”

“네, 오빠.”

“얼씨구! 둘이 잘 논다! 아사코가 나이가 더 많거든?”

놀리려고 하는 아루를 못 본 척하고는, 의무실로 앞장서 가는 태월이다.

“연구원들은 어떻게 됐어?”

“그들을 다 제압해서 가둬두고 나오다가, 악귀들과 맞닥뜨린 겁니다.”

“소생자들은?”

“대략 위치만 알아냈습니다.”

“시간 여유가 좀 있으니, 몸부터 응급처치해.”

“네, 마스터!”

의무실에서 소독약만 바른 태월은, 젤 상처가 가벼운 용병에게 소생자 두 명을 찾아내 데려오도록 했다.

연구 소장실로 다시 오자, 서류 몇 장과 함께 작은 금속 통을 내민다.

“이 통은 뭐야?”

“마이너스 에너지를 응축해 놓은 겁니다.”

“뭐? 이게 왜 있어?”

“그 신이 열흘 후에 흡수하려던 겁니다. 그전에 흡수했던 걸 소화 못 했기에, 열흘 미뤄졌던 것이죠.”

“이걸 나보고 마시라고? 마이너스라며?”

“좀, 광폭해지긴 해도 큰 힘을 얻으실 겁니다.”

“뭐? 광폭? 그거 반쯤 미쳐 있단 소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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