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아사코의 새로운 인생
아루의 다그치는 질문에, 자신의 영혼을 재확인하며 생각을 정리해보는 그녀다.
“음, 관 속 육신에 제가 들어온 건 확실한가요? 그게 맞는다면, 전 아사코예요.”
“어머 어머, 진짜 성공이네? 축하해!”
아사코에게 하는 축하인지, 태월에게 하는 축하인지 알 수 없는 아루의 말이다.
“아사코? 새로운 삶을 축하해. 아직 너의 신분증명서가 없어서 비행기는 못 탄다.
해저터널 열차를 타고 혼슈로 이동 후, 고베로 갈 생각이야. 몸에 이상은 없어?”
태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상태를 알렸다.
“아직도 이질적이긴 하지만, 적응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흠, 태월? 아직도 부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아루의 말대로, 아사코의 몸과 얼굴에서 묘한 부조화가 느껴지는 중이다.
“조각조각을 합체해서 그런가? 전체적으로 몸의 기운이 혼탁….”
태월이 가까이 다가가 살피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신이 꿈틀대더니, 그대로 아사코를 삼켜버렸다.
-슈아악! 꿀꺽!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아사코가 사라졌다.
“헉! 이게 무슨!”
“어, 어머! 그 문신 왜 그래? 아, 아사코….”
태월도 이 사태에 당황해한다.
문신이 지금까지는 산 사람을 삼킨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루와 태월은 서로를 망연히 쳐다볼 뿐이다.
아르세니는 차 밖에 나가 있어서 놀랄 사람이 추가되진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기다렸다.
“5분 지났는데 문신이 안 뱉네?”
이 상태로 비행기를 타고 떠날 수도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뱉어낸다면, 그땐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어이없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나 지났을 때 문신이 꿈틀거렸다.
-우웨엑! 툭!
문신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여자의 알몸을 토해냈다.
“헉! 나, 나왔다!”
“헙! 제, 제가! 사, 살아있는 건가요?”
아루의 외침과 아사코의 질문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아, 다행이네. 너무 놀랐어. 그래 아사코 다시 살아난 거야.”
아사코를 안심시킨 후 태월은 그녀를 빤히 본다.
“태월? 아사코의 분위기가 변했어! 자연스럽지 못하고 거슬리던 게, 이제 사라진 거 맞지?”
“응, 맞아. 몸에 혼탁한 기운이 있었는데, 완전히 사라지긴 했어.”
“조각을 떼어 붙여서 생긴 상태를, 문신이 악귀로 여겼나 봐! 그래도 이렇게 육체를 정화해주니, 결과적으론 완벽하게 더 좋아졌어.”
“그것만이 아닌 거 같아. 훨씬 어려졌는데?”
“그렇네. 이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던 아사코가, 스무 살쯤으로 보이긴 해.”
아사코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있었다.
“이질적이던 느낌이 이제 사라졌어요.”
“문신에 삼켜진 이후의 기억이 혹시 있어?”
“컴컴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나를 마구 헤집고 다녔거든요. 분해되는 느낌에 정말 무서웠어요. 그러다가 푸른빛이 생겨나더니, 제 몸을 씻겨줬어요.”
아사코의 이야기를 통해, 문신의 정화방식을 엿볼 수 있게 된 건 큰 소득이었다.
‘흠, 문신의 정화가 재구성인가?’
“아, 신발과 옷을 새로 구해야 하네?”
아루의 이야기에 태월의 생각이 멈췄다.
“아사코도 정령처럼 부끄러움을 못 느끼나?”
아루가 아사코의 몸을 훑어보면서 하는 말이다.
“음, 원래의 제 몸이 아니어서인지, 얼굴이 화끈거리진 않아요.”
“더 이뻐졌으니 좋은 거지 뭐. 태월? 이제 열차 타러 가야지? 가는 길에 옷과 신발을 사야지.”
태월이 외투를 벗어 아사코의 몸에 걸쳐주자, 아루는 자신의 모자를 벗어 그녀에게 푹 눌러 씌워줬다. 비구니 머리나 특별한 외모가 사람들 눈에 띄어, 시선을 끄는 건 좋지 않아서다.
신발도 없어져서 차 안에 있던 슬리퍼까지 신게 된 아사코다.
태월은 바바리걸이 된 아사코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아르세니? 열차를 타러 가자. 택시 승강장으로 갈 거니 앞장서.”
“네, 마스터!”
다행히 해저터널의 열차역에는 상점들이 있어 필요한 걸 구매할 수 있었다.
매장 내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나오니, 아사코는 한결 더 빛나 보였다.
얼굴이 변한 아사코를 위해 사진관을 찾아 사진도 찍었다.
급행요금을 낸다고 하니, 1시간 내로 완성시켜 준다고 했다.
“마스터? 열차는 1시간 30분 후에 출발합니다. 그 차가 막차입니다. 예매는 했으니, 그동안 식사하러 가시죠?”
그제야 오늘 음식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는 걸 인식하게 된 태월 일행이다.
-꼬르륵!
“호호호, 아사코가 배가 매우 고팠나 보네. 배꼽시계가 운다. 하긴 140년이나 굶었잖아? 태월 빨리 가자! 아사코는 죽부터 먹어야 해.”
한산한 식당을 찾아 들어간 일행은, 다양한 음식들을 주문했다.
“아사코는 가족들이 어떻게 돼?”
할아버지와 살았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그동안 다른 일로 바빠서 자세히는 듣지 못했었다.
“할아버지는 1940년에 조선에서 이곳으로 강제 이주 되었어요. 부모님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였고요.”
한국 교포가 많았던 동네여서인지, 그녀의 가족 또한 교포였다.
“오, 핏줄은 순수 한국인이네?”
“네, 일본 본토 사람과 다르게, 우리의 인권은 취약했어요. 신분 증명에 지문도 다 찍게 했거든요.”
“아사코? 너 깨어나기 전에 지문도 바뀌더라. 아마도 아사코의 원래 지문일 거야.”
“아, 그건 정말 다행이네요.”
“그래서 다른 가족들은 어찌 되었어?”
“집이 무너지면서 부모님도 돌아가셨어요.
아까 천도할 때 가셨는걸요. 그 악귀들이 부모님에게도 피해를 줄까 봐, 저는 자리를 따로 했던 거고요. 그 외 다른 가족은 없어요.”
식사가 끝나자 그 사진관에 들러 아사코의 여권 사진을 받아왔다.
열차 출발 시각이 다 되었다.
홋카이도의 하코다테서 출발, 25분 만에 혼슈의 북단인 아오모리에 도착했다.
이 세이칸 해저터널은 해저 아래 100m에 자리 잡고 있는데, 1988년 3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렌터카를 수배할 시간도 늦었기에 장거리 택시를 불렀다.
아오모리에서 니가타, 나가노, 교토를 거쳐 고베에 이르는 남북횡단이었다.
“오셨습니까? 마스터?”
“일은 좀 진행이 되었어?”
“네, 뿔뿔이 흩어져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보고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우린 좀 자야겠다. 이틀간 한숨도 안 잤더니, 다들 피곤해서 쓰러질 판이야.”
태월 일행은 교실의 막사에 들어가서 이틀간 못 잔 잠을 청했다.
푹 자고 오후에 일어난 태월은, 진행 상황 보고를 다 듣고 보완할 것도 의논했다.
그 후 아사코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이동했다.
차로 10분 정도를 오니 도착이다. 지척이었다.
지금까지도 이곳엔, 정부 지원업체들이 보이진 않고 있다.
“아루? 저 푸른 대문집이래. 내려앉은 곳에서 아사코의 시신을 찾아봐.”
고개를 끄덕인 아루는 옷만 남기고 정령 본체로 돌아갔다.
“찾게 되면 그 주변에서 신분증 증명될 만한 것을 찾아내. 그리고 신호 후에 밖으로 던져.
그다음은 말 안 해도 알겠지?”
고개를 끄덕인 아루는, 20여 분이 지나자 신호를 보내왔다. 근처로 가니 비닐에 싸인 무엇인가를 잔해 밖으로 멀찍이 날린다.
그 후 열기가 그 잔해 속에서 올라왔다.
비닐을 풀어보니 아사코의 운전면허증과 여권이 있었다.
아루가 옷을 다시 입고 나타났다.
“태월? 아사코의 시신은 소각했어. 이제 아무도 아사코가 죽은지 모를 거야. 아사코 부모 시신은 저 벽 틈 사이로 꺼내놨어.”
“아르세니! 두 분 시신을 소방서에 넘겨서 신원확인 시켜놔. 며칠 내로 장례를 치러야지.”
아르세니가 벽체 틈 쪽으로 가서, 버디 백에 시신을 수습해 나왔다.
시신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아사코는 버디 백을 열고는 오열을 하고 있었다.
이미 죽은 것을 봤음에도, 다시 슬픔이 복받쳐 오른 것이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통곡이 잦아들었다.
“그래, 이제 기운을 내! 좋은 데 가셨으니 가슴에 묻고 일어서.”
“네, 가시는 걸 봤는데도, 직접 보니 가슴이 먹먹하네요. 이제 가요.”
“그래. 고베 도심 산노미야에 위치한 고베시청 청사로 들어가자. 사진도 변경해야 하니까.”
시청은 내진 설계로 8.1의 강진에도 견디게 지어졌다. 도착해서 살피니, 겉으로 봐선 파괴된 시설은 그리 없었다.
총무국 총무과가 제일 번잡했는데, 그곳에 들어가니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태월은 그곳을 지나쳐 여권을 담당하는 부서를 찾아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태월의 뒤에 가려져 있던 아사코가 툭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아사코입니다. 저희 나가타구 와카마츠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나가타 구청이 지금 반파되어 제 역할을 못 하기에 왔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돌아가셨기에 신고도 할 겸, 여권 갱신을 위해 왔습니다.
장례가 끝나면 친척이 있는 러시아로 가야 합니다.”
“아, 연, 연예인이신가 보네요?”
“아니에요. 가능하겠지요?”
담당은 태어나 처음 접하는 여인의 미모에 말을 살짝 더듬었다.
‘이 여자 뭐지? 연예인보다 더 이쁘네?’
사실 대지진으로 정신이 없는 시기에, 여권이나 갱신을 하러 온다는 게 상식적이진 않았다.
“제가 연예인이 되려고, 성형수술을 하러 도쿄에 갔다 온 사이에 지진이 일어났어요.
천만다행으로 저는 화를 면했지만,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집에 가보니 완전히 주저앉아 있었어요. 시신을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미인의 슬픈 눈을 접한 담당 직원은 자신의 잘못도 아님에도 연신 고개를 숙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그게 그분들이 원하시는 것일 겁니다.”
장례식장에서나 쓸만한 위로의 말을 하는 공무원 사카이다.
“화장을 하고 바로 친척들이 있는 러시아로 가야 해서 그래요. 지금 상황에 여권 갱신이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도 힘드네요.”
“뭐, 사정이 그러시다니, 직접 처리해 드려야지요.”
여권의 사진을 받아 든 사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굴이 많이 다른데요?”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했잖아요. 외국인 등록령으로 지문이 남겨져 있을 겁니다. 그러니 제 지문과 대조해보세요. 그게 제일 확실하겠죠?”
1952년 샌프란시스코조약 발효 시점에 ‘외국인 등록령’을 실시하였다.
조선인과 대만인은 당분간 이 칙령을 적용받는 외국인으로 본다는, 일본 정부의 결정이 일방적으로 생겨났다.
“흐음, 재일 한국인이시군요. 네, 그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지요.”
일본 혈통이 아니란 소리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사카이다.
결국 지문 대조가 진행되었고, 지문 일치 판정까지 얻어냈다.
여권의 사진이 교체되었고, 시청에서 확인서까지 받아냈다.
그 후 바로 관계기관까지 가서 구청의 확인서까지 첨부되면, 운전면허증 재교부 신청이 손쉽게 가능하리라 봤다.
“그럼, 도쿄에 있는 성형외과를 알려주세요.”
“......”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 태월과 아사코다.
‘이 자식은 왜 또 이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