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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95화 (95/250)

95화. 140년간 동면했다고?

철조망 너머의 관에는 봉인들이 붙어 있었다.

“저 봉인을 누군가가 뜯으려 한 적이 있었는데, 당사자가 기절했습니다. 그 후 그 사람은 미쳤습니다. 저주를 받았지요. 선조의 유지를 지키려 보관하고는 있지만, 쭉 꺼림칙했습니다. 이제 가져간다고 하니, 오히려 속이 다 시원합니다.”

“저 관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이 료칸이 생길 때부터 보관되었습니다. 140년이 넘었네요. 그래서 지하는 그대로고, 지상만 증축해 왔던 것이죠.”

“철조망을 열어주세요. 그리고 잠시 나가 있으시면 됩니다. 아르세니는 밖에서 경비를 서도록 해. 혹시 모를 사태는 없어야 하니.”

“네, 마스터!”

“봉인된 채로 가지고 가실 건가요?”

료칸 주인의 말에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관을 들고 비행기를 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저 안에는 십중팔구 그녀가 있을 것인데, 신분증도 없이 통과는 어렵다.

“봉인 해제는 가능할 거 같습니다. 일단 끝나고 나서 어찌해야 할지 정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료칸 주인은 철조망의 문을 개방하고, 바로 자리를 비켜줬다.

“봉인을 어떻게 하려고?”

“요기(妖氣)보다 강한 힘으로 파기하거나 흡수해야겠지. 세월이 너무 흘러 봉인도 약해진 상태야. 지금은 악령 정도 수준밖에는 안 되네.”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요기 흡수!”

-슈아악! 후릅!

문신은 관을 삼켜 버리진 않고, 사탕 빨듯이 요괴의 기운만을 핥아먹고 지나갔다.

영혼 에너지로 부수려 했지만, 흡수가 더 나을 것 같아서다.

요기가 더는 안 느껴지자 봉인을 뜯어냈다.

그리고 관의 뚜껑을 열었다.

-끼이익!

차가운 기운을 관 속에 채웠었는지, 한기가 느껴졌다.

“140년이 지났는데도 겉으로 봐선 멀쩡하군.

생기가 없어 창백할 뿐, 미약하지만 숨을 쉬긴 해. 일종의 동면 상태야. 흠, 이쁘긴 이쁘네?

그런데 꼭 비구니 같네.”

“오, 설희급은 되네? 그런데 묘하게 자연스럽진 않아. 생기가 없어서일까? ”

“글쎄,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혼탁하고 인위적인 면도 있긴 해.”

“그런데 머리털이 하나도 없으니 이상해.”

“최소 생명 유지만 했으니 모발이 유지될 이유가 없었겠지. 몸이 돌아오면 다시 자랄 것 같은데?”

108개의 인간 신체를 조합했다고 하니, 따지고 보면 키메라와 비슷한 거다.

키메라는 유전자가 다른 신체들을 접합한 이질적인 생명체지만.

‘그 도깨비 요괴는 이 신체들을 어떻게 모았을까? 혹시? 에이, 설마 아니겠지.’

“태월? 그 여자 입에 물린 구슬을 봐. 거기서 한기가 흐르고 있어. 몸이 부패하지 않은 이유가 그 구슬의 힘 같은데?”

태월은 그 여자의 입에 물린 얼음 같은 구슬을 빼냈다.

“음, 진짜 얼음처럼 차가운데? 요괴들이 이 구슬의 정체를 알고 있으려나. 어쨌든 이 여자를 어떻게 하지? 죽통에 있는 영혼 구슬 하나를 사용하면 되긴 하지만.”

구슬을 빼내자 옷이 부스스하고 삭아서 떨어져 나갔다.

“한기가 이 옷의 내구성을 보존해줬었나 보네.

알몸이 됐는데 이거 어쩌지?”

“아이, 지금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맨날 우릴 보면서도 별생각 안 들면서.”

아루의 입에서 아카가 해줬던 말이 또 나올까 봐, 답을 피하는 태월이다.

“그런데 얘도 찌찌가 아샤만큼 부럽네? 에잇.

호호호, 그런데 얘 아래도 머리하고 같네?”

“으이그, 죽통이나 어서 내놔봐!”

“태월? 그러지 말고 여기 아사코는 어때? 이걸 지키려고 시달림도 많이 받았는데.”

“천도를 포기해야 하는데? 자신의 몸이 아니라서 들어간다고 한들, 기억도 못 할 텐데?”

“그 도깨비 문신이면 가능하지 않아? 영혼 수집기인 죽통을 쓰면, 자기 몸이 아닐 경우 모든 걸 잊게 되는 건 알아. 그러나 그 문신으로 영혼 정화만 가능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거 같아. 좀 전 그 요기만 흡수하는 방식은 어때?”

“귀신의 귀기만 흡수하란 거네? 흠, 될 거 같긴 해. 아 그보단 아사코의 의견이 중요하지. 아사코? 실패하면 아사코의 기억은 사라져. 성공하면 지금의 기억을 그대로 가질 수 있고.”

“어차피 천도하면 환생할 때 전생 기억을 다 잊지 않나요? 실패해도 나쁘진 않을 거 같아요. 성공하면 더 좋고요.”

당사자의 의견이 그렇다니, 태월은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게 성공하면, 죽통의 효능에서 보관 기능을 빼곤 문신이 더 우수해지는 거네?”

“그래도 죽통이 대단한 거야. 그 원리를 몰랐다면, 태월은 그걸 아직도 깨닫지 못했겠지.”

아루의 말이 사실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태월이다.

왼손을 들어 문신에 의지를 전했다.

“귀기 흡수!”

-슈아악! 후르릅!

귀신의 모습이던 아사코가 사라지고, 그 대신 영혼 구슬이 허공에 떠 있다.

“아, 이런 식이구나. 이야, 문신이 한 단계 진화했네. 이거 꽤 효능이 높겠는데?”

“그건 혼자 나중에 생각하고, 영혼 이식부터 마무리 지어. 끝나봐야 제대로 된 결과를 알 수 있잖아.”

태월은 아사코의 영혼 구슬을 들어서, 관 속의 그녀 입에 물렸다.

그리고 모산파의 영혼 전이 주술을 읊었다.

잠시 후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태월은 코트를 벗어서 그녀의 알몸을 감쌌다.

그런 후 태월 홀로 문밖을 나와, 기다리고 있던 료칸 주인과 눈을 마주친다.

“봉인 해제도 잘 되었습니다. 단, 안에 있던 일은 모르시는 게 좋습니다. 저 관을 노리는 불순한 무리가 있었거든요. 우리가 나가고 나면 반드시 저 관을 태워버리세요.”

“아, 그 정도면 되는 겁니까?”

“차도 한 대 빌려주세요. 삿포로 공항에 세워 둘 테니, 언제든 찾아가시면 됩니다.”

“뭐, 당연히 그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차를 입구에 대기시켜주시고, 누구도 봐선 안 됩니다. 본 사람에게도 저주가 붙을 수 있습니다.”

“헙, 그럼 저도 다른 곳에 가 있겠습니다.

여기서 배웅 인사를 미리 드리도록 하죠. 선조의 유지를 지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가세요.”

저주란 소리에 기겁하는 료칸 주인이다.

이들은 그렇게만 알고 있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네,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태월이 아사코가 된 여자를 안고 나오니, 료칸 입구에 차 한 대만 덜렁 서 있었다.

“아르세니! 운전하도록 해. 바로 삿포로 공항 방향으로 간다. 가는 길에 시내 쪽에 들러서 가자. 옷을 하나 사야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가는 길에 들른 옷가게에서, 아루가 필요한 걸 사 왔다. 주섬주섬 입히는 것을 보니 또 하나를 빼먹었다.

“얘는 정령도 아닌데 왜 또 속옷을 안 샀어?”

“아, 맞네. 내가 안 입으니 깜빡했어. 그런데 그게 뭐 중요해? 겉으론 똑같은데 뭘.”

틀린 말도 아니기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태월이다.

“그런데 얘는 오래 걸리네? 140년간이나 동면 상태였으니, 신체 적응 기간이 더 필요한 건가? 어떻게 됐을지 결과가 궁금하네.”

“그것도 그렇지만, 얘 신분증이 문제네. 아사코랑 생긴 게 다른데, 우긴다고 아사코가 될 수도 없잖아.”

“140년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테니, 다른 사람과는 다른 경우잖아. 그 에너지라도 주면 어때?”

“일단 기운이 없어 보이니, 영혼 에너지를 주입해줘야겠다. 도움이 되겠지.”

태월이 영혼 에너지를 아사코에게 밀어 넣어주자, 몸에 생기가 많이 돌아왔다.

“어머? 얘 봐봐. 머리털이 아주 조금 자랐어. 까까중처럼 변하네. 어? 지문도 바뀌는데?”

“그래? 그건 이상하네. 아카가 이런 현상을 알려나? 일단 물어보자.”

태월이 공항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린 후, 아카에게 곧바로 전화했다.

-띠리링! 띠리링!

“응, 나야. 아 다름이 아니고….”

태월은 일본에서 오늘 일어난 일에 관해 설명했다.

그전에도 통화를 했기에 영혼들 이야기는 전부 알고 있다.

다만 140년간 동면했던 여자 이야긴 하지 않았기에, 지금 설명하는 것이다.

“영혼과 아카식 레코드? 문신이 그럼 진화된 게 맞네? 그걸 그대로 인식하게 해준다니.

어, 알았어! 또 연락할게.”

태월이 전화를 끊자, 아루가 쳐다본다.

“뭐라고 그래?”

“아카식 레코드에 존재가 등록되잖아.

그럼 영혼도 같이 인식되잖아. 그때 신체 인식이 현재는 지문이 1순위고 홍채가 2순위야. 그 외에 음성, 손금, 정맥분포가 있긴 하지만.”

“그럼 영혼으로 인해 등록되었던 지문이 생겨났다고?”

“영혼 에너지 때문이라고 하네. 그게 영혼을 각성시켜서, 등록된 신체 인식을 몸에 심는 식이라고 해. 일종의 재발급?”

“그전엔 그런 게 없었잖아.”

“문신이 진화된 게 맞을 거라 하네. 그래서 영혼 에너지도 순도가 높아진 거고.”

“그럼? 아사코는 전면 성형수술 받은 게 되잖아? 키도 다를 거 같은데? 눈동자도 다를 거고.”

“일본은 본토 사람에겐, 지문 같은 걸 찍어서 신분증 안 만들거든. 해야 한다는 강요도 없고. 그런데 홍채를 누가 찍겠어? 아, 경찰 쪽으론 지문이 등재되어 있긴 하겠다. 그리고 키가 더 커졌는데, 변경을 안 했다 우기면 되는 일이고.”

아사코의 원래 신체 키는 158 정도였는데, 바뀐 몸은 165 정도다.

“옛날엔 여자들이 키가 더 작았을 텐데? 그 도깨비 요괴는, 왜 이 여자 몸을 크게 해놨을까? 내기에 져서 성깔을 부린 건가.”

“뭐, 그 노총각이 남들보다 장신이었을 수도 있잖아. 그에 맞췄을 수도 있지.”

아루가 그새 또 심심한지, 아사코의 옷을 들춰본다.

“어머, 얘 봐봐! 아래도 조금 났어.”

-딱!

“아야! 우이씨.”

“그만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르세니도 있는데…. 그나저나 아사코는 언제 깨어나려나?”

아사코가 깨어나지 않기에, 별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태월과 아루였다.

“저기, 마스터님! 그럼 공항보단 열차를 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열차는 신분 검사를 그리 빡빡하게 안 하거든요.”

“여기 홋카이도가 섬인데 열차가 다녀?”

“아, 모르셨군요. 홋카이도에서 혼슈, 53.9km를 연결한 해저터널 열차가 있습니다.”

세계 최장길이의 일본 해저터널 공사가, 착공 19년만인 1985년에 완공되었다.

일본 북부 쓰가루 해협의 바다 밑을 가로질러, 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세이깐 터널 공사였다.

폭 11m, 높이 9m로 열차 운행을 위해 만든 본 터널과 보수를 위한 자재수송에 쓰일 작업 갱으로 나누어져 있다.

일단 유사시에 보급로로 활용하려는 군사적 목적도 함께 있었다.

이 당시 일본 철도건설공단이 투입한 비용은, 약 7천억 엔으로 한화로는 2조 1천억 원이었다.

“으, 으으음….”

“어? 깨어나나 보네? 우리가 보여?”

아루가 아사코를 빤히 쳐다보더니, 눈을 껌뻑이며 손을 흔들었다.

“여, 여기는….”

“여기가 어딘진 조금 이따 알 거고. 급한 건 그게 아니야! 너 누구니? 이름은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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