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오니의 흑관
태월은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15m 정도 거리가 남았을 때, 왼손을 들었다.
“가랏!”
-슈아악! 슈아악! 컥! 끄억! 끄르륵!
머릿속으로 잡다한 영상들이 들어왔다.
고개를 몇 번 흔들어 떨쳐내곤, 울고 있었던 여자 귀신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인데 악귀들이 이러는 거지?”
“봉인된 육체가 하나 있어요. 그걸 뺏으려 한 거죠.”
태월은 순간 그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봉인된? 시신을 말하는 건가? 그걸 왜?”
“아, 140년간 봉인된 몸이 있어요.”
“어머, 썩었겠네? 그거 미이라잖아.”
아루가 언제 왔는지 옆에서 끼어들었다.
“저,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어요. 우연히 고서에 끼워져 있던 기록을, 할아버지가 발견했어요. 그리고 삼 년간 그걸 찾으러 다녔는데 결국 찾아내셨죠. 그렇지만 이미 몸이 병들어, 장소만 알려주시고 돌아가셨죠.”
“140년 된 뼈다귀 몸을 찾아서 뭘 하려고?”
“그게 보통의 몸이 아니라, 도깨비가 준 내기 선물이라고 하던데요?”
아루는 그녀의 말에 태월을 바라본다.
태월의 문신도 도깨비기에 쳐다보는 것이다.
“글쎄 내 문신이 일본의 오니는 아닐 건데. 이건 수천 년 전의 도깨비라니까. 그래서 그 도깨비가 무슨 내기를 했길래? 몸을 주었대?”
***
일본의 에도시대 홋카이도의 노보리베쓰라는 지역에, 염불귀상(오니보코라)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
오니보코라는 일본의 오니 즉, 도깨비를 뜻한다.
그곳에 와서 매일 기도를 올리는 순박한 산골 노총각이 있었다.
그곳에 있던 도깨비가 나타나, 그 노총각에게 내기를 걸었는데 지고 말았다.
노총각이 이기면 소원을 들어주고, 지면 평생을 사당에서 종살이를 해야 하는 내기였다.
간혹 인간에게 나타나 놀라게 하거나, 내기를 걸어 이기는 재미로 살던 도깨비였다.
“최근 10년간 져본 적이 없었는데, 아쉽게 되었군. 그래 자네 소원이 뭐지?”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여자와 결혼하게 해주세요.”
“어디까지 이뻐야 한단 소리야? 얼굴이나 마음만 이쁘면 안 돼? 소원은 정확하게 말해야 하고, 한 번 정하면 무를 수 없어.”
도깨비의 말에 노총각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잘못하면 얼굴만 이쁘고, 뚱뚱하고 엉망인 여자와 살게 된다.
‘괴팍하다는 도깨비니, 완벽한 걸 말해야겠어.’
“마음은 살다 보면 맞춰지겠지요. 제 소원은 정확하게, 얼굴하고 몸이 세상에서 젤 아름다워야 합니다.”
노총각의 소원이 접수되었는지, 하얀 기운이 도깨비에게 들어갔다.
“헉, 세상에서? 네가 아는 세상이 어디까진데?”
“우리나라와 조선 그리고 명나라요.”
도깨비는 과한 소원을 내뱉은 노총각을 빤히 쳐다봤다.
‘소원을 말했으니 들어줘야 하긴 하는데, 서역을 포함 안 시켜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놈 순진한 척하더니, 보통 놈이 아니네? 아, 이딴 내기에 내 등골이 휘겠군. 신이 아닌데 그런 완벽을 어떻게 하냐? 내가 고생하는 만큼, 너도 골탕 먹어봐라.’
“좋아, 소원이니 이뤄져야지. 3년간 기다려야 해. 원하는 대로 만들어오마.”
“네? 여자를 만들어오나요? 데려오는 게 아니고요?”
“뭘 따져? 그리고 어디 있는지 내가 어찌 알아? 그러니 시간이 걸릴 거 아냐?”
“네, 그, 그럼 3년간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도깨비는 그 사당에서 3년간 보이질 않았고, 노총각은 사당 옆에 움막을 짓고 지냈다.
3년을 하루 남기고 도깨비가 관을 짊어지고 나타났다.
“아이고 이놈이? 날 못 믿어서 여기다 집까지 지었냐?”
“절 찾기 쉬워지라고 이렇게 한 건데요?”
“퍽이나! 하여간 여기 관이나 열어. 세상에서 젤 이쁜 여자를 가져왔으니.”
“아니 시신도 아닌데 웬 관에 넣고 다녀요?”
“그럼 내가 가마라도 태워 다니리?”
도깨비의 불퉁거리는 면박을 뒤로하고 관을 열었다.
“아, 저, 정말 이쁘네요?”
“소원은 그대로 지켜졌어. 에잉, 너 때문에 3년간 쏘다니고, 내 요력의 절반을 소모해서야 이뤄낸 일이다. 10년은 조용히 쉬면서 보충해야겠으니, 넌 원래 자리로 돌아가!”
도깨비에게 절을 넙죽넙죽하고 일어난 노총각은 여자를 관에서 꺼내려 했다.
“어? 숨은 쉬긴 하는데, 잠자고 있는 건가요?”
“어, 쭉 잘 거야. 아직 영혼이 없거든.”
“그럼 주, 죽은 거잖아요!”
“야! 살아있잖아? 만지는 데 지장 없거든?
그리고 그 여자 만드는 데 3년간 108명의 몸이 사용되었어! 고생한 건 생각 안 하고.”
“만, 만든 거라고요?”
화들짝 놀라는 노총각이다.
“그럼 네가 말한 조건을 어찌 달성해? 젤 이쁜 부위들로 내가 다 짜 맞춘 거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영혼을 넣는 방법을 몰라. 그러게 대충 소원을 말하지, 왜 그랬니? 어쨌든 내가 인심 쓰는 김에 불로불사의 몸으로 만들었거든?”
결국 그 노총각은 3달 후 화병으로 죽게 되었다.
‘아이참, 뭐 이런 일로 죽고 그러냐? 이건 다른 사람이 같은 소원을 말하면, 바로 줘야겠군. 관도 찾아와야지.’
결국 도깨비는 그 관을 자신이 아는 장소에 보관시켰다.
그 사당엔 10년이 지났음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깨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
“하하, 무슨 동화 같은 이야기네?”
“요괴야 늘 보면서 뭘 그래?”
“크, 뭐 그렇긴 하네. 그런데 저놈들은 왜 그걸 가져가려 한 건데?”
“악귀 두목이 여자 귀신이래요. 그 속에 들어갈 생각이라던데요. 정치인들을 홀릴 생각이더라고요.”
“흠, 단순하게 빙의를 하려 한 거군. 그런데 왜 하필 정치인이야?”
“전쟁이 일어나야 혼령이 많이 생긴다고.”
“헐,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네.”
“그런데 그 악귀 두목이 장소를 대충은 알아요. 정확한 지점을 몰라서 절 데려가려 한 거고요.”
사건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끝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언젠가는 찾아낼 수 있다는 거잖아?”
“네….”
“그럼 그 일도 반드시 해결해야겠네. 일본에서 일으킬 전쟁이면 한반도 쪽일 테니. 일단 천도를 다 시켜야 하니, 넌 나중에 하자. 그런데 이름이 뭐지?”
“아사코예요.”
이곳이 재일 한국인이 많은 지역이라서인지, 태월의 말에 귀신들 감정이 격앙되어 있었다.
“자자, 이 일은 내가 제대로 처리할 테니, 믿고 마음을 편히 해! 휴식 끝! 다시 시작한다.”
접수는 밤새 계속 이어졌고, 아침 8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자!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가능한 소원은 전부 이뤄질 것입니다. 이제 천도를 진행합니다.”
처음으로 존댓말을 하는 태월이다.
태월은 목소리에 영혼 에너지를 실었다.
“옴 아모카 바이로자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
옴 아모카 바이로자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
옴 아모카 바이로자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
6천 명가량이 모인 영혼들에게 광명진언을 세 번 읊어주었다.
반딧불 세상이 펼쳐진 것처럼 아침의 공간을 수놓는다.
‘다들 저승에서 좋은 곳을 선택받기를 바랍니다.’
반딧불 세상에서 수천의 빛줄기가 태월에게 쏟아졌다.
숫자가 많아서인지 한 시간 정도 머릿속으로 영상들이 들어오는데, 초당으로 변해갔다.
머리에 통증이 생기고 멍해졌다.
그리고 영혼 에너지도 한계를 넘어섰는지, 문신 쪽으로 넘어갔다.
10분 정도가 더 지나자, 문신의 입에서 뭔가를 토해냈다.
맑고 푸른 영혼 구슬이 허공에 생겨났다.
태월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천년 묵은 투명해파리와는 전혀 다르네? 그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고, 그때는 수만 명이었잖아. 지금 영혼 구슬이 오히려 더 빛나는데?”
“혹시, 몸을 떠난 지 오래된 영혼과 신생 영혼 차이가 아닐까?”
“영혼의 격이나 힘은 아카가 확실히 높아. 다만 이 영혼이 더 맑고 투명해.”
“뭐, 도깨비 문신 능력이 더 발전했을 수도 있잖아.”
확인해 볼 방법은 없었기에, 생각은 일단 거기서 멈추었다.
태월은 뒤로 몸을 돌려 마지막 남은 영혼을 바라본다.
“이제 그리로 가볼까? 아사코?”
“홋카이도까지 가야 해요.”
“헐, 북해도네. 거의 극과 극이군. 홋카이도는 나와 아루 그리고 아르세니가 동행한다. 한스와 테일러는 불러들여. 토리와 나머지 일행은 내가 다녀올 동안, 소원 접수된 것들을 처리하고 있도록 해. 토리가 변호사니까, 법률적으로 잘 처리하리라 믿는다.”
“네, 마스터! 염려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결국 이치코 무녀의 처리는, 북해도 일로 인해 순서가 뒤로 밀려버렸다.
고베에서 간사이 공항까지 가서,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홋카이도의 신치토세 공항으로 날아갔다.
신치토세 공항은 일명 삿포로 공항이라고도 부른다.
이곳 공항은 북아메리카나 유럽에 가장 가까이 있는 공항이다.
러시아로 가는 것도 제일 거리가 가깝긴 하지만, 아직 이르쿠츠크 공항과는 직항로가 없다.
공항에서 택시를 탔다.
“이제 노보리베쓰에 있는 료칸을 찾으면 돼요.”
료칸은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온, 다다미가 깔린 일본 전통 여관을 뜻한다.
노보리베쓰는 태평양 기슭에 위치한 지역이며, 북동부에 온천들이 자리하고 있다.
목적지가 바로 그 방향이다.
“노보리베쓰 온천지의 제일 오래된 료칸으로 갑시다.”
“아, 거기요? 네, 알았습니다.”
유명한 곳인지 택시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가 내려준 곳은 생각과는 달랐다.
오래된 목조건물쯤으로 생각했는데, 외형은 현대식이다.
“중간에 새로 지었나 보네? 그런데 이 료칸 이름이 일치해?”
“네, 맞아요.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이곳이, 그 도깨비에게 은혜를 입어 생기게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도깨비를 신으로 모신다네요. 암호를 대면 그 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나 봐요.”
태월이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가자, 30대 여자가 고개를 내밀어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숙박을 위해서 오셨나요?”
“여기 사장님 계신가요?”
“아, 아버지는 위층에 계세요. 약속이 있으셨나요?”
“아, 아닙니다. 물건을 찾으러 왔습니다.
오니의 흑관이라고 하면 아실 겁니다.”
“어? 몇 년 전에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지금 오신 건가요? 그분은 노인분이었는데?”
“네, 그분의 부탁으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노령이라 거동이 힘들거든요.”
“아하, 일단 아버지께 말씀드릴게요. 여기 잠시 앉아 계세요.”
10분 정도 기다리자, 70대는 넘어 보이는 노인이 그 여자와 함께 내려왔다.
“어서 오세요. 흑관을 찾으러 오셨다고? 암호가 어찌 되나요?”
“다 네 탓이다! 누굴 탓해!”
“하하, 네 맞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그런데 쉽게 수긍하시네요? 선대로부터 내려온 거면 조심스러우실 건데.”
“저희야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니, 본 적이 없으신가요?”
“와보시면 압니다. 가시죠.”
태월 일행은 주인을 따라갔는데, 그 건물의 지하였다.
그곳에서 다시 외진 복도를 지나니 검은 문이 나타났다.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는데, 요기가 느껴졌다.
불을 켜니 눈앞에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헛? 이게 다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