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93화 (93/250)

93화. 이제 천도재를 해야지?

화장실이란 곳을 토리가 기억해내자, 태월은 그리로 이동했다.

“음, 화상도 심하고, 시신도 엉망이네. 그냥 영혼만 회수해야겠어.”

태월은 영혼 구슬을 수습하였다.

“아루? 여기 사토 유마의 시신이 거의 타버리긴 했는데, 손끝에 아직 지문이 있잖아.”

“흠, 시신을 화장시키는 게 낫겠어. 장례를 치러주지 뭐.”

태월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루는 사토 유마의 시신을 고열로 화장시켜버렸다.

얼마나 강렬했는지, 뼈까지 타서 재가 되어 가루만 남았다.

아루가 훅하고 불바람을 일으키자, 재마저 날아가 흔적 자체가 사라졌다.

영혼은 이미 토리에게 흡수되었는지라, 시신에 의미를 두진 않는 아루다.

다시 현장으로 이동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신 수습에 나섰다.

아루도 생존자를 찾아 지번을 기록해나갔다.

15명의 시신을 수습하고 그들 중 13명을 소생시켰다.

버스로 이동시키고 나니, 때마침 제이콥이 돌아왔다.

당연히 하루토 소방관과 함께 말이다.

“여기 생존자들 위치를 적어놨습니다. 9곳이니 바쁘게 움직이셔야 할 겁니다. 우선순위도 적혀있으니 참고하세요.”

손에 든 메모를 흘끗 보던 하루토는, 무전기로 동료들과 연락을 하고 있다.

태월 일행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생존자 확인과 소생작업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지진 발생 후 24시간이 지나가자, 소생 확률이 희박해졌다.

“태월?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아.”

“그래도 전혀 안 되는 건 아니잖아. 해보는 데까진 해봐야지.”

태월의 고집에 결국 두 시간을 더 이었지만, 초반 1명만 소생되었을 뿐이다.

“휴, 이젠 더는 안 되네.”

“그래도 벌써 소생만 100명을 넘겼어. 생존자 확인도 150명이 되었고, 그 정도면 최선을 다한 거지. 더구나 영혼 구슬도 죽통이 꽉 차서 더는 안 되잖아.”

영혼 구슬은 죽통당 100개가 최대치였다.

예비용으로 하나를 더 만들어왔기에, 그나마 200개를 수집할 수 있었다.

“수집기를 다음엔 몇 개 더 만들어야겠어.

미리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았는데.”

보기보단 만드는 게 복잡해서, 하나를 겨우 완성한 터였다.

“소생을 시키다 보니, 모산파에서 착각한 게 있었어. 이 죽통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모두가 새로운 영혼이 되는 게 아니야. 24시간 안에 자기 몸을 찾게 되면, 그 기억은 그대로 가지는 거였어. 모산파에선 강시에게만 써봐서 그런 결론을 냈던 것 같아.”

“한국에서도 그랬고 일본에서도 그랬긴 하네.”

아루의 말에 태월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오늘은 이만하고 쉬도록 하자. 푹 자고 나서 오후 5시경에 이곳에 다시 집결해.”

벌써 아침 8시가 넘었다.

무려 11시간의 강행군이었다.

학교 교실엔 대형텐트가 2개 설치되어 있다.

생존자를 찾아낸 고마운 마음에, 소방서에서 설치해준 임시막사다.

이불 대용의 침낭은 한국에서 미리 가져온 터였다.

“아루는 이제 변신하도록 해.”

“응, 알았어.”

차 안에서 인간 몸체로 돌아온 아루는, 옷을 주워입고 밖으로 나왔다.

일행들은 임시막사가 된 교실로 향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다들 잠에 빠졌다.

태월이 눈을 뜬 건 오후 3시쯤이었다.

늑대족의 호흡법을 1시간 정도 운기해, 신체의 컨디션을 끌어 올렸다.

5시경에 식사를 하게 되었다.

“노트와 펜을 준비했어. 여기다 적을게.”

아루가 하려는 일은 일종의 소원 접수다.

미련을 가지고 떠나지 못한 영혼, 즉 귀신들을 위한 기록이다.

“토리? 앞으로 공개적으로 사토 유마라고 부르마. 너는 아루와 함께 돕도록 해.”

“네, 마스터.”

“초혼부 깃발을 사용할 거다. 너희 여섯은 깃발을 들고, 피해지역 6곳으로 흩어져. 각자 맡은 지역에 도달하면, 깃발을 세워서 여기 운동장까지 오도록 해. 초혼부의 기운에 이끌려 귀신들이 따라오게 될 거야.”

초혼부는 말 그대로 혼령을 부르는 부적이다.

크기를 키워 깃발로 만들어왔다.

“혹여 경찰이 수상히 여기면, 있는 그대로 말해.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깃발을 든 거라고.

위험 요소가 없기에, 그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을 거야.”

태월은 차 안에서 미리 준비해온 깃발 8개를 꺼냈다.

테이블을 설치하고 그 옆에 깃발을 2개 세웠다.

그리고 나머지 6개는 용병들에게 건넸다.

“힘들겠지만, 다들 힘을 좀 더 내보자!

오토바이를 빌려 이동하도록 해.”

“네, 마스터!”

“마스터! 푹 쉬어서 괜찮습니다.”

저녁 6시가 되자, 용병 6명은 고베시를 기준으로 흩어졌다.

이제 이들을 따라올 혼령들만 천도를 시키면 될 일이다.

시간이 흘러 자정이 다 돼 가자, 하나둘씩 복귀를 하고 있었다.

“옴마야? 인원이 엄청난데?”

아루의 놀람이 이상할 게 없는 게, 오토바이 하나당 따라온 귀신들이 최소 5백 명 이상이 되었다.

제일 피해가 컸던 고베시에서 올라온 아르세니의 오토바이 뒤로는, 2천 명이 넘은 귀신이 보인다.

그들은 고베시, 니시노미야시, 아시야시, 다카라즈카시 등 한신 지역에서 올라오는 인원이었다.

“최소 6천 명은 사망했단 소리네? 아루랑 토리는 준비해.”

“응, 난 준비 다 했어.”

“네, 마스터!”

테이블 위로는 천도재에 쓰이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대들을 천도시킬 인도자다. 지금부터 3줄을 서서 각자가 원하는 걸 말하도록 해라. 이승에서 가능한 일이면, 우리가 최선을 다하겠다.”

태월은 대인원을 통솔해야 하기에, 의도적으로 반말을 했다.

“정말 우리가 보이고 대화가 가능하단 소리요?”

“그게 안 되면 뭐하러 이런 고생을 해가며 초혼을 했겠는가? 의심하지 말라.”

사방에서 귀신들의 웅성거림이 퍼진다.

“저, 정말 우리 말이 들리나 보네?”

“무당도 아닌 것 같은데?”

“난 영안을 가진 영매술사며, 음양사이기도 하다. 여기 3명의 조장이 필요해! 그 조장에게는 불가능한 것만 빼고는, 무조건 소원을 들어주겠다. 자원자는 없나?”

“하하하, 어디서 어린놈이 사기를 치려고 해?

우리가 보인다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염원을 풀어준다고? 그럴 능력이나 되나?”

“맞아! 어디서 깝죽거리고 있어? 사기를 귀신에게 치는 놈도 다 생겼네?”

의도한 듯, 반쯤 열린 상의 사이로 용 문신이 보이는 왈패들이다.

고베시 나다구에는, 일본 최대 야쿠자 파벌인 야마구치구미의 총본부가 있다.

1915년 야마구치 하루키치가 고베시 효고구 니시데마치에 야마구치 구미를 창립한다.

그래서 고베시는 무역도시이자, 야쿠자의 원류라고 칭하는 도시다.

야마구치 구미는 예전부터 명절 때마다, 지역주민을 위해 떡이나 떡국을 대접하는 행사를 치러왔다.

지역 인심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오후부터 야마구치 구미에서는, 경찰과 소방 기능이 거의 마비된 이곳에서 민간 지원을 하고 있다.

식음료뿐만 아니라, 아기용 기저귀나 생리대까지 포함된 생필품을 지역주민에게 나눠주고 있다.

그래서 고베시에는 야쿠자들이 많이 눈에 띄는 편이다.

‘저놈들 악귀에 가깝네? 상대할 가치도 없어.’

“가랏!”

왼손을 내밀었다.

-슈아악! 꿀꺽! 크억! 컥!

시건방 떨며 분란을 조성하려 했던 왈패 둘이 소멸하였다.

6천 명 가까이 되는 귀신들은, 눈앞에 있던 귀신 둘이 소멸하는 걸 직접 보았다. 그래서인지 절반쯤은 두려움에 떨었다.

“또 의심하는 자는 없나? 그럼 내가 영혼을 소멸시켜주지! 영혼이 소멸한 자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며, 환생 자체도 불가능하다. 분란을 일으키는 자는 그리될 것이다. 이제 조장 지원자는 나서라!”

영혼이 소멸한 터라, 다들 주저하는 분위기에서 3명이 나섰다.

“우리가 하겠소. 맡겨주시오. 대신 소원은 꼭 들어주리라 믿소!”

“영혼을 다루는 자는 허언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셋은 서로 아는 사인가?”

“그렇소. 같은 조직에 있었소.”

“조직이라면 고베시에 자리 잡은 그곳을 말함인가?”

“그렇소이다.”

조장 셋이 앞으로 나서자, 어수선하던 질서가 잡히고 줄이 생겼다.

“주목! 접수대 앞에서 이름과 출생 연월일을, 그리고 신분을 증명할 방법을 말해. 그 후 소원 접수한다. 인원이 많으니 구구절절은 빼고, 용건은 간략하게 해!”

태월이 그들 모두가 들리도록 영혼 에너지를 실어 외쳤다.

일본에서 주민등록번호란 건, 인권을 말살하는 장치로 여겨 국민 반대가 심했다.

법률로 제정은 되어 있지만 강제적이지 않다.

그래서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함께 존재한다.

신분 증명은 운전면허증이나 학생증 혹은 다른 면허증이나 여권으로 증명하는 식이다.

주민 관리 시스템은 각 자치단체에 따라 다르지만, 구청에서 발급해주는 주민표라는 것도 있다.

“난, 1조 조장을 맡은 다카하시 이부키요.

이왕 이승을 떠난 것, 가족에게 주지 못한 재산은 이분들에게 드립시다. 그 돈의 절반으로 이재민을 돕는 게 어떻소? 공덕도 쌓고, 말이죠.”

절반쯤 되는 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한 1조 조장이다.

“그럼, 이렇게 하겠다. 남길 재산을 줄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돌아가도록 할 것이다. 사회에 기증하겠다면, 절반은 이재민을 돕고 절반은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해 보육원을 짓겠다.

영혼을 걸고 약속하지!”

“조, 좋습니다! 남겨질 아이들을 도와주세요!”

“우린 가족들 전부가 이렇게 되었소. 사회에 기증하겠소.”

“우리 가족은 살아있지만, 보험금 수령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것이오. 말하지 못한 재산이 있는데 그걸 이곳에 기증하겠소. 좋은 데 써주시오.”

봇물 터지듯이 쏟아지는 소리에 정신이 없는 태월이다.

“그런 건 접수 때 이야기해! 다들 정숙하고 이제 시작해!”

소리를 실어 퍼지게 한 후, 태월도 접수 준비를 했다.

“다나카 히마리예요. 쇼와 30년 11월 12일. 운전면허 넘버는 309023196210예요. 은행 비밀금고 넘버는…. 소원은….”

쇼와(소화) 30년은 1955년을 의미하는데, 이 당시 일본에선 그들의 연호를 썼다.

쇼와(소화)는 1926년~1989년의 연호다.

헤이세이(평성)는 1989부터다.

일본 운전면허 넘버의 12자리 숫자에는 비밀이 있다. 앞에 두 자리는 면허증 발행한 공안위원회 코드 넘버다.

3, 4번째 숫자는 면허취득 연도고, 5~10번 숫자는 개인정보다.

12번째 숫자는 재교부 발행 횟수고 11번째가 위조구별 번호다.

세 시간 정도 접수대에 열중하는데, 음식 냄새가 났다. 용병들이 간단한 음식을 조리해 온 것이다.

“이것 드시고 하세요. 저희 건 따로 만들었습니다.”

“하하, 고마워.”

수프와 토스트였다.

허기를 달래며 먹고 있는데, 줄 끝쯤에서 소란이 있다.

누군가 울고 있는 소리도 들린다.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보니, 안 보이던 악귀들이 보였다.

5명의 남자 귀신들이,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귀신을 잡아끌고 있다.

그 다섯 명은 한눈에 보아도 영혼의 색깔이 시커멓다.

“저놈들 뭐지?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리고 우는 저 여잔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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