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음양사
두 명의 생존자들을 구하고 있던 소방관 하나가, 태월의 일행에게 소리친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보호하다가 죽었고, 아이들은 응급조치해서 심신 안정을 찾는 중입니다. 지금 그쪽에선 그럴 시간이나 되나요? 근처 병원엔 자리도 나지 않잖아요?”
“그래요? 음, 병원 자리가 모자란 상태긴 하지요. 그럼 그 부모 시신은?”
“저쪽에 있어서 곧 이리로 옮기는 중입니다. 혹시 시신 운구용 비닐 팩을 구할 수 있을까요? 일단 두 개가 필요한데.”
“아, 보디백(body bag)은 여유가 좀 있습니다만, 우리도 힘든 일인데 가능하시겠어요?”
“네, 그걸 생각하고 왔습니다. 시신 운구도 경험이 있으니 맡겨주세요. 시신은 도로 쪽 인도로 내려놓겠습니다.”
“네, 그래 주시면 감사드립니다.”
“소방관님이 저희를 따라와 주세요. 생존자들의 위치가 감지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처음 대면했던 그 소방관은, 태월의 특이한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나가타구 상세지도가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표시해 드릴 테니, 그곳을 수색하시면 될 것입니다.”
소방관은 지번까지 나온, 주변 지도를 하나 구해 태월에게 넘겨줬다.
30장의 보디 백을 받아온 태월은, 아이들 부모의 시신을 일행에게 처리시켰다.
아루는 그동안 주변을 넓혀가며 일대를 뒤져 나갔다.
새벽 6시경에 일어난 지진이라, 피해자의 대부분은 집에 있다가 화를 당한 것이다.
시간상 출근 전이거나 등교 전이었다.
시신보단 생존자들이 우선순위가 되는 이곳이다. 살아 있는 자들의 위치는, 소방관에게 알려주고 처리해나갔다.
“하루토 씨! 여기 생존자들이 있는 다섯 곳의 지번을 적어놨고, 기운의 건강 상태에 따라 순위를 매겨놨습니다. 빠르게 지원요청 해주세요.”
“아, 그, 그게 가능하군요. 알았습니다.”
우연일 수도 있으니, 아직은 반신반의 상태긴 했다.
그렇지만 어차피 생존 수색해야 할 임무가 있던 차에, 태월의 능력은 그들에겐 확실한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당연히 또 한 번의 생존자 구출이 되었다.
그때부턴 의심을 완전히 버리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하루토 소방관이다.
생존자를 구하는 일은, 태월 일행보단 소방관들이 더 효율적이다.
장비도 없었고 또 병원 후송도 책임져야 한다. 태월에겐 그럴 시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태월이 직접적으로 해야 할 일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이들을 소생시키는 역할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소생이야. 꾸물대지 말고 생존자들은 소방관에게 전부 맡겨. 그리고 시신 처리보단 소생 대상부터 선 순위로 진행해. 시신이야 저들이 나중에 처리하도록, 위치지정만 해주면 될 거야.”
“네, 마스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으니 부활이라고 할 순 있다. 그러나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영혼이 완전히 떠난 게 아니기에, 태월은 소생이라고 여겼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는 동안, 추가로 7명의 생존자를 하루토에게 표시해줬다.
태월 또한 12명의 온전한 시신을 살릴 수 있었는데, 20대가 9명이나 되었다.
조사를 나갔다 돌아온 아루가 보고를 했다.
“태월, 나가타구 와카마츠쵸로 이동해.
거기 인원이 제일 많아. 요기 잇쵸메 이치방 쥬욘고 11호 일대부터 진행하자.”
長田区 若松町1丁目 11号를, 펼쳐진 지도를 보며 표시해주는 아루다.
태월은 하루토를 찾아가 가야 할 장소를 알려준 후, 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
“아르세니! 하루토 소방관에게 말해뒀으니, 이쪽 초등학교 교실로 소생한 15명을 제이콥하고 같이 이동시켜.
제이콥은 그 자리를 지키며 이들을 보살펴.
그리고 아르세니는 하루토 소방관과 함께, 여기 이 주소로 다시 오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같은 교실에 모아 놓겠습니다.”
“네! 마스터.”
제이콥은 CIA 일본지부에도 일한 경험이 있었는데, 의대를 졸업한 엘리트이기도 했다.
외과를 전공하고 레지던트 시절에 응급환자를 자기 임의로 살렸었다. 그런데 오히려 소송에 휘말려, 감옥까지 가게 된 사연이 있다.
그 후 CIA의 도움을 받아 나오게 되었으며,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었다.
8명의 용병 중에 제이콥의 영혼 색이 그나마 깨끗하긴 했었다.
아루가 안내한 곳에 도착했을 때, 태월은 특이한 걸 보게 되었다.
“아루? 저게 뭐지? 불 속에서 뭐가 날아다니네? 불새?”
“아, 아야시비라 불리는 도깨비불의 일종이잖아. 여기 일본 오기 전에 일본 요괴 도감에서 본 기억이 나지?”
“아, 후라리비?”
“응, 일본에서는 저걸 후라리비라고 부르는데, 불의 하위 정령쯤 된다고 보면 돼. 흡수하려다가, 별로 영양가도 없는 것 같아 놔뒀어. 그리고 인간에게 별달리 해를 끼치지도 않잖아.”
“그럼 무시하지 뭐.”
“그런데 이 근처에 몇몇 요괴들이 출현해있어. 요 앞에 보이는 벽이, 누리카베라는 놈이야. 저놈 때문에 사람들이 꽤 죽었어.”
“아 벽 요괴? 지진과 화재 때문에 피해야 할 사람들을, 제때 피하지 못하게 벽으로 막는 짓을 했단 소리?”
“응, 제 딴에는 장난친 거겠지만, 죽은 사람들은 그게 장난이 아니잖아.”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바로 왼손을 들어 10m 떨어진 벽을 가리켰다.
“치워버려!”
-슈아악! 쉬아! 꿀꺽! 끼이악! 끼악!
도깨비 입이 거대하게 튀어나오며, 벽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요괴는, 살려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태월이다.
“다른 요괴들은 누군데?”
“가사도쿠로와 쿠비카지리!”
가사도쿠로는 살해당했거나 객사하여, 매장되지 못한 원혼들이 합쳐진 상위서열의 요괴다.
주로 밤에 딱딱 달그락달그락 되며 소리를 내고 걷다가, 사람을 발견하면 공격한다.
생긴 것은 해골 뼈다귀다.
쿠비카지리는 시체의 머리를 뜯어먹는 요괴인데, 굶어 죽은 자의 영혼이 변한 것이다.
대부분이 무덤가 쪽에 존재하며, 주로 여자 요괴가 많다.
“쿠비카지리는 왜 여기에 있지? 무덤가가 주 영역 아니야?”
“글쎄, 여기 사람이 많이 죽어서 출장 온 거 같은데? 아니면 이 일대 어딘가가 과거에 공동묘지였거나….”
“쿠비카지리는 하나만 있어?”
“다섯이던데?”
“그럼 이놈들이 스스로 온 게 아니네? 누군가가 이들을 식신처럼 부리는 것 같아. 아무래도 일본 음양사 중에 누군가 끼어든 거 아닐까? 아루가 다시 확인해봐. 뭔가 찜찜해.”
음양사는 원래 음양오행설이나 음양도를 믿는, 학자이자 술사 관직의 이름이었다.
중국엔 황하문명 시대 때부터 있었고, 한국은 삼국시대 때부터다.
조정의 안녕을 위해 음양오행설을 받아들였고, 신라의 관직 일길찬이 그 음양사 관직이었다.
일본은 6세기 헤이안 시대 때부터가 본격적이다. 음양도를 기반으로 점을 치거나 길흉을 파악해주는, 주술사 관직인 음양사가 있었다.
일본 음양사로 유명했던 인물로는, 10세기 헤이안 시대의 음양사 관료였던 아베노 세이메이가 있다.
“지금 일본 음양사가 남아 있었나?”
“메이지 유신 이후 미신으로 여겨, 관직이 폐지되었고 민간 유포도 금지되었어.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메이지 시대 법령 폐지와 함께 풀리긴 했어. 이미 거의 사라진 상태가 되긴 했는데, 아카 언니의 이야기론 한 군데가 남아 있대. 그런데 과거랑 다르다던데?”
“뭐가 달라졌는데?”
“천사 츠키미카도 신도라고 종교단체처럼 되었다는데? 그리 번성하지는 못했어. 요괴를 조정하는 자가 있는지 탐색해보고 올게.”
현재 일본의 음양사라고 하는 이들은, 과거 츠치미카도 가문의 영지였던 후쿠이 지역에서 활동한다.
20여 분 후에 나타난 아루가 호들갑을 떤다.
“진짜 있었네? 경찰 복장을 한 놈인데. 진짜 경찰은 아닌 것 같아.”
“그럼 그놈부터 해결하자. 아르세니는 동료들과 여기 적은 지번부터 확인하고, 온전한 시신을 수습해놔! 다녀와서 소생시킬 테니.”
아루를 따라가니 으슥한 뒷골목이다.
진짜 경찰이라면 난리가 난 이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느라 바쁘지, 여기 사람도 없는 골목을 지킬 이유가 없었다.
“이봐! 넌 누군데 여기서 얼쩡거리고 있지?”
“하하, 당신은 경찰 행세를 하면서 여긴 왜 있지? 진짜 수상한데? 너 허접스러운 요괴를 부리는 가소로운 음양사지?”
“뭐? 이, 이놈이 날 어떻게 보고! 가, 가소롭다니! 내가 바로 그 유명한 전설의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의 환생이다.”
“환생이고 뭐고 간에, 왜 요괴들을 부려서 사람들을 죽게 했지? 그리고 시신을 훼손하는 쿠비카지리는 왜 끌고 온 거야?”
“네놈 따위가 그런 걸 알 필요는 없어. 다만 그들은 숭고한 희생을 한 것이야. 수상한 네놈부터 없애서 식신 명단에 추가해주마.”
식신은 음양사가 부리는 귀신을 뜻하며, 일본에서는 시키가미라고 부른다.
“정체를 물었는데, 나를 죽이겠다고? 넌 그냥 두면 안 되겠구나. 새로 태어나게 해주마!”
“하하하, 하룻강아지로군! 소환!”
-휘리링! 휘링!
태월의 앞쪽으로, 쿠비카지리 다섯과 가사도쿠로 해골 요괴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불길 속에 있던, 도깨비불인 후라리비까지 나타났다.
“놀랍지? 더 기다려!”
그는 품속에 종이 부적을 꺼내 허공에 뿌렸는데, 종이는 일본 무사들로 변신했다.
‘이놈 단순한 음양사가 아니네?’
‘태월? 저놈 소환력은 도깨비불이 에너지 역할인 거 같아. 아까까진 굳이 필요 없었는데…. 도깨비 문신으로 공격을 진행할 때, 내가 저 불을 흡수해버릴게.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니니, 태월도 몸조심해.’
아루의 텔레파시에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오랜만에 긴장감이란 걸 느꼈다.
‘늑대족이 육체적 바탕에서 요괴가 된 거라면, 내 앞의 요괴들은 혼령이 오염되어 만들어진 합성 요괴. 오염된 영혼 따위는, 내 문신에겐 최고의 맛난 먹잇감이 될 뿐!’
부적으로 만든 무사들이 칼을 휘두르며, 태월을 공격해 들어왔다.
몸을 뒤로 한 발짝 움직여 피하고, 연달아 주문을 읊었다.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밀교의 주박법의 첫 단계 내박인으로 무사들을 묶었다.
“암 크링크링! 암 크링크링! 암 크링크링!”
2단계 도인을 읊조리자, 영혼의 칼이 만들어져 그들을 공격했다.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나먁삼만다 파즈라 단샌 다마카라샤 다스와트야 훔 트라타 캄 맘!”
내박인을 두 번 연속 읊자, 전법륜인이 만들어지며 무사들을 무력화를 시켰다.
무사들을 스치며 왼손을 내밀었다.
“멍청한 놈! 지금 네가 선발대로, 나를 간 보는 여유를 부릴 때냐?”
자신의 무사들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묶이고, 상대는 그사이에 뛰어 들어오자 깜짝 놀라는 음양사 아베노 다이키다.
“가사도쿠로 출격! 나의 걸작! 쿠비카지리 5중 영혼 합체!”
해골 요괴 가사도쿠로가, 몸을 허공에 띄우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뒤의 쿠비카지리 요괴들의 합체 형태가 심상찮았다.
태월이 왼손을 들어 올리려는데, 원귀들의 영혼이 소용돌이치며 태월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