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일단 살리고 보자!
태월 옆에 있던 최정국의 이마에 붉은 핏줄이 선다.
“야! 이 새끼들아! 사람 살리는 일이 해괴한 짓거리야? 그리고 고깃덩이? 야 C8, 너희 가족이 죽어도 그런 소릴 할래? 야! 우리도 이게 재밌어서 하는 일인 줄 알아? 이해가 안 되면 결과를 지켜보면 되잖아! 방해하지 말고 5분만 기다려!”
“저희도 궁금해서 기다리고 싶지만, 원칙은 그리할 수가 없는 일이죠. 시체 따위에게 우리 시간을 양보할 수 없지요. 차 경사, 박 경장! 얌전히 두 분을 모셔.”
“시체 따위?”
태월의 눈이 한 번 더 새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차 경사라 불린 경찰이 앞에 서서 태월을 막아선다.
태월은 입이 바짝바짝 탔다.
아카의 말과 달리 24시간이 멀었음에도, 벌써 여러 명을 구하지 못했다.
여러 변수가 있었겠지만, 영혼이 이미 사라진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슬쩍 깨문 태월의 표정은, 귀기 서린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순히 원칙만 고집하며, 생명을 경시하고 있는 눈앞의 경찰들이 악귀처럼 느껴졌다.
눈이 완전히 새파랗게 변하려던 찰나에, 태월보다 행동이 더 빠른 사람이 있었다.
최정국이 옆에 있던 이 계장의 품에서 권총을 빼내, 가까이 있던 박 경장의 머리에 총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동시에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따라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우리의 움직임을 막는 순간 너희도 죽고 나도 죽는다. 이 계장! 미안해. 이럴 수밖에 없어! 나 원래 이렇게 정의로운 놈은 아닌데,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보니 미치겠더라고. 오늘 끝마무리를 짓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그러면서 박 경장의 총마저 꺼내 왼손에 쥐고, 차 경사의 총은 허리춤에 꽂는다.
“나, 양손잡이야! 궁금하면 허튼짓해 봐! 바로 쏠 테니. 그리고 경위! 넌 내가 옷을 벗게 되어도, 너만은 그냥 안 둘 거야! 뭐 고깃덩이? 시체 따위? 혹여 내가 옷을 안 벗게 되면, 넌 진짜 X 되는 거야!”
안치실 앞에 도착한 태월은 홀로 들어갔고, 최정국만 남아 권총 두 자루로 버틴다.
오재수 경위는 설마 검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할 줄 예측 못 했다.
보는 눈이 많아, 위험을 무릅쓴 강제진압도 힘든 상황이다.
벌써 병원 측 사람들도 멀리 떨어져 웅성대는 상황이었다.
‘아, 이거 진짜 문제 생기는 거 아냐? 검사면 검사 일이나 하지 왜 날 들이받고 지랄이야.’
인질로 잡힌 차 경사와 박 경장만 죽을 맛이다.
뭐 이 계장도 시말서 감이지만, 의외로 그는 의연했다.
5분 정도를 버텼을 즘 문이 열리고 태월이 나왔다.
“4명이 살았습니다.”
“와! 제일 많이 살았네? 하하하! 어이 거기! 의사 양반들? 지금 4명이 살아났으니, 건강 체크 좀 하고, 부족한 건 보충 좀 시켜요! 이 계장 자네도 들어가서 눈으로 보고, 나중에 증인이나 서 줘!”
“네! 명에 따르지요. 일단 총부터 주시죠?”
“하하, 잘 썼어. 그리고 박 경장이라고 했나? 미안하게 됐네! 사람은 살려야 하지 않겠나?”
두 사람에게 총을 돌려주는 상황에 안에서는 벌써부터 시끄럽다.
“간호사들? 멀뚱히 잊지 말고 안에 들어가 봐요! 링거도 챙겨서 들어가도록 해요.”
이 계장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서 상황을 파악했다.
그의 눈은 정말로 숨을 쉬고 있는, 4명의 시체를 보게 되었다.
‘하하, 아이 씨, 눈물이 다 나오려 하네. 역시 의리의 최 검사님이셔!’
“어이! 경찰분들 다들 와봐요! 여기 살아난 사람이 넷이요! 이래도 당신들이 안 부끄럽소?
민중의 지팡이라며?”
이 계장의 말에 몇몇 경찰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놀라서 다들 밖으로 나와 허둥댄다.
“지, 진짜 살아 있어! 시, 시체가 살아 있어!”
“어이? 말을 바로 하지? 원래 시체가 아니었던 거잖아! 가족들이 들으면 당신 멱살이 남아나겠어? 그리고 내가 우리 검사님이랑 대화 나눌 때 녹취한 거 모르지? 너희 이제 큰일 났다.”
“그거 불법 녹취 아닙니까?”
“법정에서 쓸 게 아니라서 상관없어.”
얼굴이 시커메지는 오 경위다.
-띠리릉! 띠리릉!
오 경위의 핸드폰으로 벨소리가 울린다.
“네, 오재수 경윕니다. 네, 앞에 있습니다. 네? 위에서요? 네, 알았습니다.”
전화를 끊은 오재수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전달 사항을 전한다.
“지금부터 저 두 사람을 연행한다. 위에서 내려진 명령이야! 책임은 내가 진다. 연행해!”
경찰들은 기분이 영 찜찜했지만, 직속 상관의 명이기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최 검사와 태월도 순순히 응했다.
이미 살릴 사람은 살렸기에, 굳이 이들과 다투고 싶진 않았다.
둘이 경찰의 경계하에 경찰차로 돌아가는데, 뒤에서 의사들이 뛰쳐나온다.
“이들은 심정지를 당한 지, 벌써 12시간이 넘었소! 어떻게 이들이 살아날 수 있지요? 어떻게 가능한 것이오! 말을 좀 해주시오!”
“신이 그들을 부르지 않았던 탓이 아니겠소?”
최 검사는 별거 아니란 듯이, 태월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이 계장의 눈은 최 검사의 시니컬한 모습에 반한, 첫사랑의 소녀 같은 눈빛이다.
경찰서로 가긴 갔지만, 마지막 목적지는 검찰청이었다.
“최 검사? 자네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사람 살리는 데 동참하는 짓을 했지요.”
부장검사를 대하는 최 검사는 까칠했다.
검찰조직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
“직권남용에 직무유기 아닌가?”
“직권남용은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일을 말하긴 하지만, 독직 폭행이나 독직 가혹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기에 기각결정밖에 나지 않습니까? 형법 제7장 제123조와 124조에 다 나와 있는 일인데요. 판례 또한 그래왔고요.
또 직무유기는 형법 제122조 동법 제56조 동법 제57조에는 해당이 없고, 동법 제58조 직장이탈금지 의무 위반은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할 일은 다 한 상태였기에, 이는 직무 태만일 뿐 직무유기는 또한 아니게 되지요.”
“자네는 자네 아버지만큼 고지식하군.”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무 태만에 따라 정직 2월을 내리겠네.”
직무유기가 되면 파면 사유가 된다.
두 달간 푹 쉬게 생긴 최 검사다.
“휴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전히 깝죽대는군. 자네 그러다가 제대로 다칠 거야. 지켜보도록 하지.”
태월은 경찰서에서 미성년자 무면허 운전으로, 소년보호처분이 내린다는 이야길 들었다.
원동기 면허가 만 16세 이상부터 가능하기에, 아직 1년이 모자랐던 태월이다. 소년보호처분 10가지 중 2호에 해당하는, 수강명령 100시간이 주어질 거라고 담당 경찰이 조언을 해줬었다.
원래는 동승했던 최 검사도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 당시 경찰은 검사까진 무리라 보고 태월에게만 집중했다.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소장이 접수되었어.”
“무면허 의료행위요? 누가 그런?”
“살아나지 못한 가족 하나가 그랬다는군?”
“제가 뭘 했는지도 모르잖아요? 시술한 것도 아닌데….”
“누군가 부추긴 거야. 시신에 무슨 의료행위야. 앞뒤가 안 맞잖아. 그런데 CCTV에 얼굴 다 나왔을 건데, 문제 되진 않겠어?”
“흐, 그건 안 나올 거예요. 영혼 에너지를 얼굴에 둘렀었거든요. 러시아에서도 테스트해봤었고요.”
“호, 그거참 쓸모가 많은 능력이네. 부럽다.
어쨌든 힘내고, 빠르게 한국을 빠져나가. 외국에 있다 보면, 잠잠해질 거야.”
최석준은 태월의 어깨를 툭툭 치며 힘내라며 독려를 해준다.
태월의 피곤한 감정과는 다르게, 다음 날 언론에서는 폭탄이 터져 버렸다.
성수대교 희생 사망자 20명의 생명을 다시 살린, 신의 은총을 지닌 소년 성자가 있었다.
그걸 행하기 위해 무면허로 오토바이로 이동했었고, 그 소년을 경찰이 잡아들여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또 시신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 가족 중 하나는, 그 소년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소장을 접수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소년을 데리고 같이 다녀준 의인 최정국 검사는, 직무 태만을 이유로 2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들을 막아섰던 경찰 간부의 시신 비하 발언인, 고깃덩이와 시체 따위라는 표현이 신문의 전면을 덮었다.
신문사마다 동시에 투고되었던 내용이기에, 신문에 싣지 않으면 더 이상한 상황이 되었다.
뒤늦게 TV 뉴스에서까지 그 내용이 나왔다.
그런데 최정국 검사의 얼굴은 나오는데, 태월의 얼굴은 흐릿할 뿐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CCTV에 나온 사진을 실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자신의 상관에게 팬심을 가진, 이 계장의 작품이었다.
살아나게 된 20명의 가족 100여 명은, 검찰청과 경찰청 앞에서 시위했다.
-사람을 살리려 자신을 희생한 의인들에게 이게 무슨 처벌이냐? 법이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이라는 것이냐?-
이런 글귀가 적힌 표지를 들고 있는 노인들도 있었다.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게 되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32명이던 희생자가 12명이 되었어요.
나라에서 보훈 훈장을 줘도 시원찮은데, 대체 이게 어찌 된 것입니까?
경찰청장! 그리고 검찰 총장! 할 말 없습니까? 그대들이 지시한 것입니까?”
“헉! 아닙니다. 저희가 그럴 리가요.”
“그럼 경찰에서 그리했다는 말이군요?”
“저희도 일선에 있던 간부가 저지른 일로 알고 있습니다. 본청 자체에서는 오히려 표창을 주려고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검찰 총장! 그 검사는 왜 정직 처분받았지요? 이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음, 그게….”
“그게 뭐요? 설마 검찰 총장도 허수아비입니까? 아직도 실권을 잡지 못하셨나요?”
“아, 절대 그건 아닙니다. 내부 간 알력이 있었나 봅니다. 철저히 조사해서 발본색원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이 알고 보니, 전에도 국가 훈장을 받은 적이 있다고 비서실에서 알려왔더군. 베니스 비엔날레 그랑프리를 했다는데, 올림픽으로 따지면 금메달이라고 했소. 그런데 고발에 형사처분까지? 제정신들이오? 지금 둘에게 가해진 모든 것을 철회하시오. 알았소?”
“네,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조사를 제대로 해서 원인도 알아내서 해결하시오.”
-똑똑!
노크 소리가 나자 경호실 직원이 문을 연다.
그 사이로 비서실장이 다급히 다가왔다.
“저기 대통령님, 미국 대통령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받아보시겠습니까?”
“흠, 이리로 돌리시오.”
핫라인으로 온 게 아니기에, 굳이 가서 받을 필요는 없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네, 우리야 별일이 있습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네? 초대요? 글, 글쎄요. 저도 아직 만나지 못했는지라. 일단은 만나본 후에 전해주겠습니다.”
몇 마디를 더 나눈 후에 전화는 끊겼다.
“허, 백악관에서 그 소년을 초대하겠다는군요. 너무 속셈이 뻔해. 한국에 나와 있는 CIA가 발 빠르게 움직였어요. 오늘부터 그 소년에 대한 것은, 일체 비밀로 하시오. 괜히 드러내서 소중한 인재를 뺏길 순 없지 않소. 경찰과 검찰에 접수된 이번 문건들도 다 폐기하세요.”
그 후에도 다른 나라에서도 전화가 이어졌다.
로마 교황청부터 해서 바티칸까지.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이란 쿠웨이트 등등.
그리고 한국의 의학계에서도 이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태월은 그다음 날 검찰청 이 계장으로부터, 모든 고소 고발 건이 취하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대한항공을 통해 발 빠르게 한국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 뒤를 쫓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