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성수대교 붕괴사고
최 검사의 완강한 거부에, 홍미연은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동생은 전에 내가 초능력 쓸 때도 처음에 안 믿었잖아?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잖아. 갈 곳이 많아! 우리가 심심해서 이러는 줄 알아? 일단 지켜보고 방어막이나 쳐줘. 살아나면 좋은 일이잖아!”
“그, 그거야 그렇지만…. 휴, 알았어요. 아직 보호자들에게 연락은 안 간 상태니, 빠르게 해야 합니다. 따라오세요. 그렇다고 아직 믿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안치소에 가니, 경찰 하나가 문 앞에 서서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미리 얼굴을 익혔던 것인지, 경찰은 그에게 거수경례를 붙인다.
“잠시 확인차 들어갔다가 올 테니, 신경 쓰지 말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 경찰은 미연과 태월을 사망자의 가족쯤 되는 줄 알고, 의심 없이 문을 비켜섰다.
시신은 남자 둘 여자 둘 총 4명이었다.
“엄마, 바로 시작할게요. 시간이 없어요.”
“최 검사? 방해만 하지 말아줘. 결과를 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휴,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어쨌든 알았습니다.”
태월은 테이블 위에 눕혀진 시신을 덮은 천의 얼굴 쪽만 열었다.
등에 메고 있던 죽통을 꺼내 열고는 허공을 향하게 했다.
태월이 들어서면서부터 귀신 셋을 이미 본 터다. 한 명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어쩌면 사고 현장에 있을 수도 있다.
태월이 모산파의 주술을 읊기 시작했다.
그러자 귀신으로 있던 영혼들이 죽통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조금의 저항은 있었지만. 체념하고 있었는지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되었다.
죽통에 영혼 에너지를 주입하니, 7개의 영혼 구슬이 통속에서 밖으로 나온다.
원래 4개의 영혼 구슬이 있었기에, 숫자가 7개가 된 것이다.
태월은 자신의 느낌을 믿고, 구슬 하나를 손에 쥐고 시신의 입에 물린다.
셋 중에 어느 것이 이들의 것인지 불확실했다.
다만 영혼의 느낌이 그리 유도하는 것 같았다.
두 개를 더 쥐고 다른 시신의 입에도 물렸다.
그리고 다시 주술을 읊었다.
최 검사의 눈에만 영혼 구슬이 보이지 않았고, 태월의 행동이 수상하다 여기는 중이다.
“어, 어어. 눈, 눈꺼풀이 움직였어!”
“쉿! 최 검사, 조용히 해!”
나머지 둘의 눈꺼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 검사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 이제 다른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죠! 한 분은 못 살렸습니다. 다른 곳은 늦을수록 확률이 더 떨어집니다.”
“그, 그래요. 가, 갑시다.”
머리를 몇 번 흔들더니, 나간 정신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최 검사다.
문을 열고 나서며 경계 중이던 경찰에게 한소릴 했다.
“4명 중의 셋은 살아 있잖아! 빨리 의사를 불러서 몸 상태 체크를 하라고 해! 멀쩡한 사람을 왜 죽었다고 한 거야?”
“네, 네? 서, 설마요!”
“안에 확인해보든가! 자넨 왜 확인을 안 했어? 하여간 난 말했으니 가볼게. 다른 데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뒤에서 그 경찰이 변명하고 있었지만, 그걸 무시하고 가는 최 검사다.
5분 후 그 병원은 비상이 걸렸다.
죽은 자가 셋이나 살아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익사 사고라서 가능한 일이다.
교통사고라면 부상의 경중에 따라, 혼을 다시 넣는다고 해도 살아나지 못할 수 있었다.
“강남 성모병원으로!”
홍미연이 최석준에게 목적지를 정해준다.
얼떨결에 차를 같이 타게 된 최 검사는, 좀 전의 일이 꿈인 거 같아 자기 허벅지를 꼬집고 있다.
“최 검사? 뺨이라도 대신 내가 때려줄까? 아주 찰지게 해줄 수 있는데.”
“돼, 됐습니다. 아픈 거 보니 꿈은 아닌 거 같은데…. 믿어지지 않네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그 말은, 전에 내가 범인 찾아줄 때도 들었던 거 같은데?”
“아, 그거야 초능력이니 그럴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이건 다르잖아요. 부활이라니?”
“저기 최 검사님? 이건 부활이 아니라, 그냥 밖으로 나와 있던 혼을 다시 넣은 거예요.”
“죽은 자를 살려 놓고는, 뭘 그리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겁니까?”
“오늘 하루 계속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일일이 설명한다 해서 바로 이해될 리가 없잖아요.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늘 존재해 왔었거든요. 과학적 증명만이 세상의 진리는 아니에요.”
살린 자가 그렇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오전엔 사망자가 48명까지로 집계되던데, 왜 오후엔 32명이죠? 죽은 자가 살아나기라도 했나요?”
홍미연이 최 검사를 보고 하는 말이다.
“하하, 그 또라이들! 부상자인데 사망자명단에 넣기도 했고. 또 사망자가 이중으로 보고돼서 그런 오보가 나간 것입니다.”
“부실 공사와 사후관리 소홀로 벌어졌다는 건 맞아요?”
“네, 쉬쉬하지만 사실입니다. 과적 차량을 제한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묵인한 결과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당산철교를 폐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같은 공법으로 그것도 부실하게 지은 모양입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겠군요.”
“서울시의 방만한 운영이 일단 문제 되었으니, 서울시장 경질이 오늘 있을 겁니다. 그 후에 관계자들이 줄줄이 처벌되겠지요.”
강남 성모병원엔 남자 하나만 있었다.
빠르게 영혼 구슬을 물리고 빠져나왔다.
차는 이제 강동 가톨릭 병원으로 향했다.
이미 한 번 경험이 있던 지라, 최 검사는 빠르게 진행을 해줬다.
세 명의 시신이 있었으며, 그중 하나는 훼손이 심해 살리지 못했다.
영혼 구슬만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멀지 않은 곳에 강동 성심병원이 있다.
그곳에서도 빠른 처리로 1명을 소생시켰다.
차를 타고 방지거 병원으로 향했다.
“아, 세 번째 보는 거지만, 여전히 꿈을 꾸는 것 같네요. 하, 이것 참…. 믿긴 믿어야 하는데,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요.”
“찰지게 꼬집어 줄까?”
홍미연이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보이자, 기겁하는 최 검사다.
과거에 제대로 당해본 것 같다.
“헛, 됐습니다. 믿, 믿는다고요!”
“방지거 병원엔 여고생 둘과 여자분 하나 그리고 남자 둘이네.”
“이거 우리가 간 다음에 사람들이 살아난 게 결국 들통날 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안 돌아가네요.”
“그 사망자 숫자 오보처럼 하면 안 되나?”
“한둘도 아니고 어떻게 전부 그럽니까?”
거기에 대한 대책은 태월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인제 와서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뭐? 벌써 유가족이 찾아왔다고? 아 이런 난감할 때가….”
방지거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6시였다.
성수대교 붕괴로 차들이 다른 곳으로 몰리다 보니, 이동 속도가 느려진 탓이다.
사망한 여고생의 가족이 시신을 보고 오열하고 있었다.
어머니인듯한 여자는 넋이 반쯤 나가 있었고.
“저 잠시만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저는 사건 조사차 나온 서울지검 검사 최정국입니다. 다른 병원서도 호흡이 멈춘 분 중에 깨어난 분도 있습니다. 5분만 시간을 주세요. 확인해보겠습니다.”
“어, 어느 병원에서 그런 일이 생긴 거죠?”
“강남 시립병원과 강동 가톨릭 병원입니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자리부터 비켜주세요! 따님 살리고 싶지 않습니까?”
“제, 제발! 사, 살려만 주세요.”
“자, 바로 나가세요. 늦으면 방법이 없을지 모릅니다.”
“다들 나가! 우리 딸 살아야 해! 어서!”
심리가 정상적이라면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일이다. 현직 검사가 의사도 아닌데,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시간이 없기에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이는 최 검사다. 그도 반쯤은 해명의 기회를 포기했다.
5분 정도가 지났을 때, 안치소의 문이 열렸다.
“어, 어떻게 되었나요?”
“다섯 분 중에 세 분은 살아 있으십니다.”
“저, 저희 딸은요?”
“여고생은 둘 다 살아 있습니다.”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안치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어머니다.
그 뒤를 가족들이 뛰어들었고.
“저, 정말! 숨을 쉬고 있어! 간호사! 간호사!”
살아났지만, 아직 체력이 미약하여 숨만 쉬고 있는 상태다.
살아나지 못한 둘은, 장기에 심한 훼손이 생겨 방법이 없었다.
“한양대 병원으로 가요!”
“엄마? 퇴근 시간이라 차가 너무 막혀요.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할게요. 검사님하고 저만 가면 될 거 같아요.”
“오토바이라니?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
“바이크 선수권에 가서 입상할 정도 실력은 돼요. 시간이 늦으면, 앞으론 손도 대지 못할 분들이 생겨나요.”
“오토바이가 어딨어?”
“바로 한 대 사면 돼요. 이럴 시간도 아까워요. 검사님 저랑 같이 가실 거죠?”
“그, 그래야지. 사람의 생명이 걸렸으니.”
태월은 근처에 있는 오토바이 가게에 들러, 그곳에서 보유한 젤 성능이 좋은 걸로 구매했다. 헬멧 두 개도 샀고.
“자, 뒤에 타세요!”
“운, 운전 조심해서 해!”
“하하, 걱정을 마세요. 안전하게 모실게요.”
-부르릉! 부릉! 부아앙!
태월은 신호를 거의 무시하다시피하고 달렸다.
중간에 경찰차가 제지했지만, 최 검사가 신분증을 보이며 급한 사고가 있음을 알렸다.
20분 만에 한양대 병원에 도착하는 기록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여기는 아직 보호자에게 연락이 안 간 상태였다.
일남 일녀 두 명이 있었고 다행히 둘 다 살려내었다.
-부아앙!
민중병원으로 향했다.
이곳엔 한 명의 시신만 있었고 다행히 가족은 없었다. 하나의 생명을 이어나가게 했다.
순천향 병원에 2명, 동아병원에 1명, 중앙병원에 2명, 중대 부속 용산병원에 3명, 혜민병원에 1명.
4곳을 다녀서 7명 중 4명만 살릴 수 있었다.
“아 정말 힘드네요. 그런데 오토바이를 어디서 배운 거죠? 굉장한 솜씨던데요?”
“아, 뭐. 러시아에서 배운 겁니다.”
사실은 재능으로 얻게 된 것이라, 마땅히 말해줄 게 없어서 둘러대는 태월이다.
군포에 있는 한라병원으로 향했다. 이곳이 마지막 병원이다.
연락이 왔는데 그곳에 5명의 시신이 있다는 정보였다.
다른 곳보다 인원은 더 많았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겨버렸다.
“왜 경찰들이 포진하고 있죠?”
“그, 글쎄. 누가 문제를 일으켰나?”
태월과 최정국 검사가, 병원 앞쪽에서 오토바이의 시동을 껐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타나더니 멈추라고 한다.
“멈, 멈춰요. 최 검사님! 저 이 계장입니다.”
“어? 자네가 웬일이야?”
“검사가 수사관 하나 대동 안 하고 이게 뭡니까? 그건 그렇고 피, 피하셔야 합니다.”
“왜? 누가 폭동이라도 일으켰어?”
“아, 그게 아니라, 검사님을 잡아들이라는 부장검사의 명이 떨어졌습니다.”
“어? 내가 왜?”
“시신이 있는 병원마다 다니면서, 해괴한 소동을 일으켰다면서요?”
“뭐? 해괴한 소동? 이런 어떤 놈이 그런 개소릴 해!”
두 사람이 대화하던 중인데, 갑자기 조명이 그들에게 비친다.
“거기! 최정국 검사님이십니까?”
“그래, 내가 최정국이다. 이 라이트 안 꺼?”
“저희에게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저희를 따라가시죠?”
“야! 지금 안에 살아야 할 사람이 다섯이야! 5분만 기다려줘. 그럼 내가 따라갈게.”
“안 됩니다! 바로 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청년! 자네도 우릴 따라오게.”
“다섯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이에요! 5분만 시간을 주세요!”
태월이 간청하다시피 그들에게 양해를 요구했다.
“고깃덩이나 다름없는 시체 따위에게, 무슨 해괴한 짓거리를 또 하려는 거지?”
“고깃덩이? 시체 따위?”
태월의 눈이 새파랗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