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격변의 알혼섬
다른 문제가 무엇일지는 아쿠도 궁금하다.
“또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부랴트 공화국이 그냥 있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러시아를 비난하려 할 것입니다.”
영토는 러시아에 속하긴 하지만, 부랴트 공화국도 거기에 관련이 깊기에 저러는 거다.
잘못하면 우방인 부랴트 공화국에서, 거센 항의가 올 판이다.
부랴트 공화국 하나의 문제라기보단, 다른 연방에도 공격당할 빌미가 생길 수 있다.
그리되는 걸 러시아 정부는 원치 않았다.
“그러면 이렇게 하세요. 러시아 정부에서 저희와 협상을 했고, 러시아 정부가 강력하게 주장했다고요. 그래서 부랴트 공화국에 5%의 지분을 얻게 해준 거로요.”
“아, 그런 방법이라면 정부에서도 환영할 겁니다. 사실 관광객이야 일시적으론 많아지겠지만, 앞으론 그게 얼마나 가겠습니까? 국민들에게 보여줄 체면이 필요했습니다.”
알혼섬에 대해 BATR가 내다보는 미래와 러시아 정부가 보는 미래는, 이렇게 극명하게 달랐다.
“중국은 정부에서 충분히 감당하실 수 있겠지요? 칭기즈칸 무덤에, 자신들도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나올 수 있잖아요?”
“그리 따지면 부랴트 공화국의 권리가 더 앞서지요. 칭기즈칸은 한족이 아니라 몽골족이니까요. 중국 민족의 뿌리는 한족이고, 몽골족은 자신들을 정복한 오랑캐나 마찬가지죠. 뭐 지금은 중국 안에 몽골도 들어있긴 하지만요.
정부 입장에선 중국의 몽골보다는, 부랴트 공화국의 손을 들어 줘야 하죠.”
우호연방을 챙겨야 하는 러시아다.
“그럼, 중국은 러시아 정부가 막아주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러시아 영토에서 일어난 일인데, 중국의 눈치를 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얼마 전 북조선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사건에, 중국의 행동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요.”
그 말은 국가의 체면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북한에는 친중파와 친러파가 존재한다.
김일성은 7월 8일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그럼, 러시아 정부 10%, 부랴트 공화국 5%! 이제 더는 없는 것이지요?”
“하하, 그렇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장관께 보고하러 가겠습니다. 협약식은 이번 주 내에 갖도록 하죠.”
“말이 나온 김에 다른 건도 있습니다.
BATR건설에서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에 바이칼 관광열차와 관련된 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리스트비얀카 선착장에도 있고요.
그래서 말인데 지금 일주일에 두 번밖에 운행 안 하는 관광열차를, 저희가 활성화하면 어떻겠습니까? 운용권을 주셔도 좋고요.
그리고 리스트비얀카의 바이칼호 관광사업에도 투자하고 싶습니다.
관광객이 많아지는 만큼, 러시아에 돈이 많이 모이지 않겠습니까?
국민들이 좋아할 것입니다.”
이르쿠츠크와 상의해도 될 일이지만, 중앙정부와 직접 하는 게 훗날을 위해서 좋은 것이다.
언제 고위공무원과 이런 자리를 또 만들 수 있겠는가.
기회가 왔을 때 밀어붙여야 한다는 게, 태월의 지론이고 그에 동조하는 아쿠였다.
“이거 생각도 못 해본 제안이군요.
외화가 늘어나면 좋은 일이긴 하죠.”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개방이 외화를 불러들인다는, 선전용으로도 좋을 듯합니다만.”
“흠흠, 나쁜 제안은 아니군요. 그럼 이 건은 담당 부서와 협의를 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운용권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제대로 운행되는 관광열차는 아니지 않습니까? 일주일에 두 번이면 생색내는 정도인 거고요. 시속 20km를 달리는 것도 선로가 노후화돼서인데 보수도 거의 안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보수도 제대로 해서 안전을 확보하고, 하루에 4회 정도로 운행해 볼까 합니다. 그만큼 저희가 자금 투자를 많이 해야 할 일이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세금으로 그만큼 걷히니 나쁘지 않잖습니까?”
“세금이야 걷히긴 하지만, 관광객으로 버는 건 결국 BATR가 되지 않습니까?”
“러시아에서 버는 만큼 사회에 환원할 생각입니다. 알혼섬에 대학 규모의 대대적인 보육원을 신설하겠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사회적으로 고아들의 문제가 심각하고, 러시아 또한 그렇지 않습니까?”
“대학 규모? 그럼 5천 명 이상을 수용하겠다는 뜻입니까?”
“네, 처음에는 그 정도고 몇 년 후엔, 두 배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 아주 좋군요. 그럼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도록 독려하겠습니다.”
정부 선전용으로 써먹을 일이 또 생겼기에, 오늘 방문이 흡족한 내정부 차관 블라디미르였다.
“박물관과 관광열차 및 여객선 보호를 위해 러시아의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자체적으로 경비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개인 휴대 무기 소지는 불가피하고요.”
“흠, 그럼 경비대의 인원들만 예외적으로, 무기 소지를 허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물관을 제대로 지키려면 어쩔 수 없지요.”
“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이제 식사하러 갈까요?”
한 번에 많은 걸 줄줄이 엮어 얻어내는 BATR의 묵직한 발걸음이다.
아쿠가 알아서 강하게 대처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태월과 합의한 사항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BATR 기업은, 러시아와 그리고 부랴트 공화국이 함께했다.
칭기즈칸 박물관 협정식을 기자들이 모인 곳에서 가졌다.
이에 중국이 강력한 항의를 했지만, 타국의 일에 열을 올리지 말란 식으로 러시아가 대응했다.
***
협정식이 있은 지 한 달 후, 바이칼호 관광열차 운용권과 유람선 운행권 협상이 진행되었다.
“50년 운용권은 BATR에서 수용하기 힘듭니다. 그동안 들어갈 개발비용에 대한 회수가, 적절치 못하다고 봅니다.”
“그럼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영구 임대면 더 좋고요. 그게 안 되면 관련된 역들과 선로 부지를 저희가 매입하겠습니다.”
영구 임대의 강수를 던진 후, 진짜 원하는 건 뒤에 붙였다.
“영구 임대는 특혜 조치로 오해받기 쉬워서 힘들 겁니다. 역과 선로를 매입하는 게, 현실성이 더 있을 거로 봅니다.”
“그럼 구매 비용에 대해, 이번 주 안으로 협상을 해보도록 하죠. 그건 그렇게 하고, 바이칼호 유람선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관광용 잠수함을 사고 싶습니다.”
“리스트비얀카에는 이미, 러시아 민간기업들이 운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점 운행권은 불가합니다. 그리고 알혼섬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은 독점 가능합니다. 군사용이 아닌 잠수함은 가능하긴 합니다만, 비용이 꽤 나갑니다.”
“알혼섬이야 BATR의 소유이니, 그건 문제가 없겠군요. 그럼 리스트비얀카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은, 신규업체로 들어가겠습니다. 잠수함 중에 지금 운행하지 않는 것도 꽤 되는 걸로 아는데요? 선수끼리 너무 그러지 맙시다.”
협상하러 온 담당 공무원은, BATR 관계자가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푹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 그건 서류를 접수하시기 바랍니다. 검토 후에 한꺼번에 처리하도록 하죠. 그럼 열차 건과 잠수함 건은 금액 산정해서, 이른 시일 안에 다시 오겠습니다.”
일주일 후 협상단이 다시 모였다.
역과 선로들의 부지는, 현재의 땅값으로 보면 그리 비싸지 않다.
매입금액이 적어, 러시아 정부에서는 그 일대의 땅까지 매입하라는 권유를 했다.
“좋습니다. 총 150만 달러에 매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수함은 어찌 됐나요?”
“하하, 시원시원하시네요. 음 잠수함은 내부의 군사적 용도는 다 떼어내면, 반값에 가능은 합니다.”
“잠수함 자체가 중고인데, 무슨 반값 타령입니까? 그 반값에서 30%를 제하도록 하지요.”
“음, 그럼 20%까지만….”
“그러죠. 그럼 이제 다 된 것입니까? 잠수함 관련 담당자를 보내서, 내부 해체 시 감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관광용이니 필요한 부분은 그때 또 서로 협의하도록 하죠.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BATR는 생산된 지 불과 5년밖에 안 된, 잠수함 2대를 헐값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소련연방 해체 후 많은 잠수함이, 가동을 중지한 상태였다.
협상이 잘 끝나 모든 게 순조로울 즈음, 한국에서 급보가 날라왔다.
한국 시간으로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에 대형 사고가 터졌다.
한강에 위치한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가 무너져내린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태월은 이르쿠츠크 공항으로 가서 비행편을 알아봤고, 특별기 형식으로 다시 한국으로 날아왔다.
한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이번 한국행은 급히 이루어지느라, 홀로 넘어온 것이다.
기다리고 있던 홍미연은, 태월을 태우고 성수대교 참사 현장으로 향했다.
“석준이 형 다시 보네요.”
“하하, 다시 보는 건 좋은데, 분위기가 영 좋지 않네.”
“엄마? 뉴스를 정확히 접하지 못해서 그런데, 지금 어느 정도 상황이에요?”
“10번과 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50m가 붕괴해 버린 거야. 17명이 다치고 32명이 사망했어. 그중 버스 추락의 사망이 무려 29명이야.”
“제, 제가 몇 명쯤은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현장보다는 사망자 안치소로 먼저 가주세요.”
“설희에게 이야긴 들었다만, 그런 게 가능하다니 엄마도 놀랍더구나. 그런데 시신이 아직은 전부 회수되지 않았을 거야.”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죠.”
“잠시 기다려봐. 연락을 좀 해보마.”
홍미연은 몇 군데 전화해보더니, 최석준에게 위치를 알려준다.
“지금 강남 시립병원에 4명이 있어. 일단 거기부터 가고 그 후에 다른 곳을 가자. 총 13군데 병원으로 나뉘어 있어.”
“휴, 시간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죽었을 사람이 살아난다면, 너에게 문제는 없겠니?”
“역사가 조금 바뀔 수 있고, 또 업장이 쌓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피하고 싶진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죠.”
“강남시립병원에 최 검사를 일단 오게 했어. 우리끼리 가서는 시신을 손댈 수 없잖니.”
“그건, 잘하셨어요.”
최 검사란 사람은, 전에 아샤의 모델 제의 건 때에 도움받았던 그 사람이다.
“어떻게 아시는 사이인데요?”
“살인사건을 도와준 적이 있었어. 죽은 자의 입을 빌려 범인을 찾게 해줬지.”
영매술을 통해, 귀신이 된 피해자의 진술로 범인을 알아냈다는 의미다.
“최 검사도 처음엔 믿지 못하다가, 그런 일을 한 번 더 해줬더니 이젠 인정하고 있어. 뭐 사이코메트리 초능력자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초능력 세계라고 믿는다는 건, 다른 이능력도 믿을 수 있단 소리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강남 시립병원에 도착하자, 최 검사란 사람이 마중 나와 있었다.
“최 검사? 직접 보는 건 일 년 정도 된 거 같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하하, 누님도 참. 저야 뭐 술병만 나지 않으면 건강한 편이죠. 그런데 이쪽 청년은 누구?”
“호호, 내 아들이야! 잘생겼지?”
“흐흐, 잘생기긴 했네요. 그런데 아드님이랑 여긴 왜?”
“지금부터 어쩔 수 없이 보게 되겠지만, 아들은 나보다 더 초월자야. 죽은 지 몇 시간 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살릴 수도 있어.”
“헉, 그게 무슨 말도 안…. 죄송하지만, 전 그냥 돌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