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무덤을 전 세계에 알리다
무덤이 발견된 지 세 시간이 지났을 무렵, 헬기를 동원한 신문기자가 나타났다.
굴착기가 대부분을 파헤쳐놨기에, 무덤의 입구는 어렵지 않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발굴팀은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간 상태다.
알혼섬에 있던 굴착기가 총동원되었다.
절반은 입구 앞쪽의 땅을 파면서 넓혀나가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무덤의 옆쪽과 뒤쪽을 파내려갔다.
“선을 따라서 파라고! 절대 선을 넘지 마! 오늘 제대로 파는 거야! 오늘 본사에 두둑한 보너스를 요구했어! 그러니, 다들 힘내라고!”
안드레이가 땅 위로 깃발을 사방에 꽂고 다녔다. 그리고 깃발과 깃발들 사이에 형광 페인트를 뿌려놨다.
다들 마음이 들떠서, 이 일이 이상하다는 걸 못 느끼고 있다.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유적의 규모를, 감독관이 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것이다.
“그리고 제일 빠르게 성과를 내는 조는, 조원당 100달러를 특별수당으로 내주겠어!”
확성기를 통한 안드레이의 공언에, 기사들은 난리가 났다.
“와우! 보, 보너스! 야 다들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니콜라이! 넌 그만 쉬고 얼른 움직여!”
“야 우리 조가 젤 뒤졌어! 한스? 조금 뒤로 빼서 파! 위치가 겹치잖아!”
유적 발굴 전문가가 봤다면 분노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고 있는, 굴착기를 몸으로라도 막았을 그들이다.
발굴팀이 전부 안으로 들어갔으니 망정이지, 남아 있었다면 이렇게 파는 게 불가능하다.
빠르게 완성할수록, 무덤에 대한 BATR의 권리는 커질 것이다.
그 후 두 시간이 더 지나자 해외언론사까지 모여들었다.
“여러분! 여러분! 세기의 정복자라고 일컫는, 칭기즈칸의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는 러시아 이르쿠츠크의 알혼섬입니다.
제 뒤로 유적의 입구가 보이시나요?
안으로 이미 진입한 발굴팀 외엔, 아직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칭기즈칸의 무덤인지 아냐고요? 부장품들 몇 가지가 밖으로 나왔거든요.
더 자세한 사항이 나오는 대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CNN의 토마스 존슨이었습니다.”
CNN을 필두로 ABC, NBC, BBC, TBS의 방송사. 그리고 AP, Reuers, UPI, AFP 통신사들이 입구 좌측에서 진을 치고 있다.
New York Times, USA Today, The Times, Le Monde, Die Welt, Financial Times의 세계적 신문사들은 입구 우측에 자리 잡았다.
한국의 특파원도 언뜻언뜻 보이긴 했었고.
BATR의 발 빠른 조치로, 무덤 입구의 경호가 삼엄하였다.
“낼 아침에 전면 개방하세요. 아마 낼 오후쯤엔 러시아 정부에서 시비를 걸러 올 겁니다.
언론에 BATR의 독자 발굴이었음을 강조하시고, 이 땅도 사유지임을 널리 알리세요.”
“그 정도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는 체면 차릴 수 있게, 지분 양도는 해야 하죠. 그리고 부장품 자체를 일절 매각하지 않고, 박물관 전시용으로 못 박을 겁니다.”
“지분은 어떻게 하려고요?”
“러시아 정부에 10%, 부랴트 공화국에 5% 나머진 전부 BATR 지분입니다.”
언론사 중에도 러시아와 중국은 젤 늦게 알게 하였다.
미국과 유럽의 언론사들이, 제일 먼저 자리 잡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중장비 기사들은 3교대로 밤새 쉬지 않고, 무덤 밖을 파 내려갔다.
“헐, 감독관님? 이게 대체 어찌 된 것입니까? 우리가 안에 들어간 사이에 유적지 밖을 완전히 밀어버렸군요? 더구나 이렇게 정확하게요?”
“입구부터 쭉 일자로 쳐 내려가니, 벽면이 다 보이더라고요. 어쨌든 유적지 훼손이 없었으니 상관없지 않나요?”
“그, 그렇긴 합니다만….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자 이제 유적지랑 거리를 띄웠으니, 본격적으로 넓혀가겠습니다. 다른 용무는 없으시죠?”
“아, 네. 뭐….”
발굴단장이 항의하기엔 시기적으로 너무 늦어, 거의 완성 돼 버린 외부 작업상황이었다.
아침 9시가 되자, 발굴단장과 BATR 관계자인 안드레이가 인터뷰 단상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유적지 발굴을 맡은 선임 단장 윌리엄입니다.
발굴 성과에 대해 발표를 하기 위해, BATR 관계자와 함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칭기즈칸의 무덤은 이곳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할 관련 부장품들도 많이 존재하고, 유럽 정벌 시에 획득한 전리품도 상당히 존재합니다. 질문은 5가지만 받겠습니다.
그리고 10시부터 언론사에서는 통제에 따라 무덤 내부로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발굴한 지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입장이 가능하단 소리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CNN의 토마스입니다. 러시아의 영토로 알고 있는데, 국가 주도 발굴이 되지 않았네요?”
“그건 제가 대답할 문제이군요. BATR의 마을 건설단 단장 안드레이입니다. 이곳이 러시아 영토는 맞지만, 알혼섬은 BATR라는 다국적 기업의 사유지입니다. 합법적 거래로 이 땅을 취득했습니다. 다른 질문을 해주십시오.”
제일 먼저 양손을 번쩍 들고 흔들어 대고 있는,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기자였다.
“네, 거기 안경 끼고 파란 모자 쓴 여기자님 질문하세요.”
“AP통신의 아즈라엘입니다. 이 칭기즈칸 무덤이 어떻게 발굴되었죠? 이미 알고 있었나요?”
“보시다시피, 이곳에 마을을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초기에 유물 두 점이 공사 중에 보이기에, 그걸 발굴팀에 보냈었고요. 그런데 두 점의 유물이 나온 곳에선 더는 출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원래 목적대로 마을 공사를 이어갔고요.
그러다 어제 점심경쯤 땅을 파던 굴착기에 의해, 우연히 이곳이 발견된 것입니다. 아마 이곳에 마을을 건설하려 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지나갔을 겁니다. 다음 질문 주세요. 네, 거기 하얀 모자 쓰신 분!”
“New York Times의 애덤스입니다.
하하, 눈에 띄는 모자를 쓴 보람이 있군요.
BATR가 다국적 기업이라면, 어떤 국가들이죠?”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입니다.”
한국이란 소리에 키 작은 한 남자가 껑충껑충 뛰며, 손을 흔들어 댄다.
눈에 띄려고 저러는 것이다.
“네! 거기 동양 기자분!”
“동아일보의 조석호 기자입니다. BATR에 한국 지분이 있다기에 많이 놀랐습니다. 대체 어떤 기업이죠? 그리고 유물은 공개 후 경매할 생각입니까?”
“미국은 RAON기업이고 한국은 TW기업입니다. 그리고 경매는 없습니다. 이곳의 유물은 무덤 그대로 박물관의 전시품이 될 것입니다. 자, 다른 분?”
그 외 2가지 질문을 더 받고 나자, 10시가 되었다.
“자, 이제 저희 BATR 직원들의 지시에 따르셔야 합니다. 입장 후 유물에 사진은 1m 거리를 두고 찍으시고, 유물에 손대는 분은 바로 강제 퇴출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언론사는 앞으로의 일정에 참여하실 수 없습니다.”
엄중한 경비들의 경계 속에서 입장이 시작되었다.
내부엔 이미 전등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그 인파 속에 태월도 끼어 있었고.
‘흠, 벽화들이 꽤 많네? 아루 말대로 정복 전쟁을 그렸군. 전기시설도 이 정도면 임시로 쓰기엔 부족함이 없네. 안드레이가 고생했겠어.’
사방엔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유물에 손을 대려는 간 큰 사람은 없었지만, 너무 가까이 가려는 사람은 생겨났다.
그럴 때마다 경비들이 즉각 제재했다.
“32번 번호 다신 기자님? 한 번 더 규정 어기시면 퇴출하겠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되어 가까이 찍다 보니…. 주의하겠습니다.”
벽화들을 찍느라 그런 장면들이 좀 생겨났다.
석관이 자리 잡은 석실로 들어서니, 다들 긴장을 하는지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린다.
석관은 반쯤 열려있다.
“이 유골이 칭기즈칸입니다. 더 정확한 DNA 검사와 연대측정 검사도 하겠지만, 함께 발견된 기록물에도 증거는 나와 있습니다.”
플래시가 폭죽놀이처럼 사방에서 터졌다.
30분간 무덤 개방을 한 덕분에, 칭기즈칸의 진짜 무덤으로 알려지며 세상에 퍼져나갔다.
전 세계의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전부 이리로 몰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덤의 입구는 다시 닫혔고, 경비인력은 두 배 이상 더 늘었다.
태월의 예상대로 오후엔, 러시아 정부에서 고위공무원이 군인들과 함께 방문하였다.
“난 내정부 소속 차관 블라디미르요.”
“네, 반갑습니다. BATR 선임대표인 알리사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저희 이사 중 한 분인, 태월 박이고요. 그런데 왜 군인을 대동하셨죠? 위압감을 보이고 싶었나요?”
아쿠는 회의실까지 따라온, 군인 복장의 두 명에게 인상을 찌푸렸다.
“하하, 뭔가 오해가 있으신데, 저들은 내무군이라는 내정부 소속의 경호대입니다.”
러시아의 내정부는 한국의 내무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행정부서다.
내무군도 그 부서의 일원이긴 하지만, 전시에는 국방부의 지휘를 받는다.
내정부가 경찰업무도 담당하고 있고, 과거 수련 시절부터 연방 행정 업무 전체를 관장하는 조직이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와는 달리, 경찰이나 군대의 성격을 가진 강력한 정부 기관 중 하나다.
“네, 뭐 그렇다고 해두죠. 그런데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까?”
러시아 정부에서도 BATR를 상대하기가 껄끄러웠다.
다국적 기업이고 게다가 미국과도 관련이 깊으니,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전 세계가 이번 일을 다 알아버렸다.
“흠흠, 알혼섬이 비록 사유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러시아의 영토 내에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 섬을 판 것에 대해 알래스카를 판 것과 같은,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어차피 팔지 않았다고 해도, 그 무덤은 영원히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우연이 겹쳐져서 마을 건설하다가 발견되었으니까요.”
“그거야 훗날 우리도 그곳에, 마을 건설을 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잘도 그랬겠습니다. 그렇게 신경 쓴 지역이라면, 알혼섬이 저렇게 낙후되지 않았을 겁니다. 진부한 이야기 말고 본론을 말씀하시죠?”
알리사의 몸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내면은 정령이다. 인간들이 내보이는 압박감 같은 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전혀 위축감을 들어 하지 않는, 그녀를 보는 블라디미르는 입이 썼다.
“뭐, 우리도 국가 체면이란 게 있는 거지요.”
“다국적 기업이긴 하지만, 러시아 기업이기도 하지 않나요? 뭐가 더 필요한가요? 세금도 꼬박꼬박 잘 내고 있었고요.”
“음, 명분이 필요합니다. 지금 러시아 경제 분위기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블라디미르 말대로 지금 러시아 경제는 위험 상태다. 국민들의 불안감이 최고로 고조되어있고, 어쩌면 도화선만 생긴다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거기에 박물관을 지을 겁니다. 혹시 모를 외부의 압박을 쭉 막아주는 조건으로, 10%를 드리겠습니다. 다른 협상은 없습니다. 그 정도면 체면상 충분하지 않나요?”
“음, 그걸로 되진 않습니다.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