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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84화 (84/250)

84화. 한국에서의 한 달 휴가

아루의 이야기에 태월은 황당했다.

“무슨 일인데 서 있기만 해도, 그런 걸 해줘?”

“옷 이쁜 거 입고, 사진도 이쁘게 찍어준대!”

“모델 사진 찍으란 소리네? 어떤 종류 옷 광고길래?”

“속옷 모델이라던데?”

“컥! 그런 걸 왜 찍어? 셋 다 그게 뭔지나 알고 찍어?”

“셋이 안 찍고 아샤만 찍는 건데?”

“누가 14살에게 속옷 입히고 모델 시켜? 설마 아루! 너 보호자랍시고 허락했지?”

“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태월은 뭐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한국에서 청소년 속옷 모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길거리 캐스팅으로 그걸 구하는 경우는 없었다.

아샤의 키가 한국 성인 여성 평균쯤은 되긴 해도, 얼굴만 봐도 아직은 어려 보인다.

“혹시, 아루? 전화번호도 줬어?”

“그럼, 당연히 줬지. 선물도 받는 판에….”

“어휴, 그 사람 명함 받았지? 이리 줘봐!”

아루가 내민 명함을 보니, 허리우드 프로덕션이라고 쓰여 있다.

전화번호만 있고 주소도 없고 개인업자였다.

“허리우드 같은 소리 하네. 아루? 이 사람 회사가 어디 있대? 주소가 없잖아.”

“회사는 인천이고. 우리가 바쁘다니까. 낼 빠르게 호텔서 찍는다던데?”

“어머? 그거 딱 보니 사기꾼이네!”

같이 듣고 있던 홍미연은 기가 찼다.

태월의 손에 있던 명함을 뺏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최 검사? 어 나야. 지금 불러주는 걸, 바로 적고 좀 알아봐 줘. 길거리에서 접근해서, 미성년자에게 모델 사진 찍자 했대. 그런데 장소가 호텔이야. 어? 러시아에서 온 어린 조카라서, 세상 물정 잘 몰라. 어 회사 이름은 허리우드 프로덕션 그리고 전화번호만 있어. 법인은 아닌 거 같아. 번호는….”

아루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라리사는 100년 전의 세상에서나 돌아다녔다.

그리고 둘 다 인간은 아니라서, 인간의 몸에 관한 창피함도 모른다.

아샤도 부모님 없이 자라서, 그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아루가 허락했기에 별생각 없이 응한 것 같다.

-따르릉! 따르릉!

저녁을 먹고 좀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어, 최 검사. 응? 낼 현장에서 처리 안 하고 바로 잡았다고? 그렇게 해도 돼? 뭐? 현상범이라고? 어머, 미성년자 음란 비디오? 어, 어. 그럼 굳이 우리가 안 가도 되지? 알았어. 아니야, 우리가 더 고맙지. 그럼, 수고해.”

홍미연이 전화를 끊고는 아루를 빤히 쳐다본다. 아직까진 자기 잘못을, 제대로 파악 못 하는 중인 아루다.

다만 라리사만 조금 눈치를 챘을 뿐이고.

“셋 다 내 방으로 들어와!”

홍미연에게 1시간 가까이, 사회에 대해 그리고 성 문화에 대해 교육을 받게 된 셋이다.

***

김포공항 출국장 앞에 태월과 설희, 아루, 아샤, 라리사가 모여 있다.

종종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들이 연예인인 줄 알고, 카메라로 몰래 찍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녀들 중 압권은 당연히 아샤와 설희다.

이들이 전부 나와 있는 이유는 한 가지다.

아카에게 미룰 수 없는 급한 미팅이 잡혀버렸다. 특별기로 와서 세 시간 후에, 그걸 타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출구가 열리고 아카가 젤 앞서서 나오고 있다.

태월 일행을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오느라고 수고했어. 아카!”

“아카? 오랜만이네?”

“수고는 뭐. 설희도 잘 지냈지? 흠, 안 보는 사이에 외모가 완벽해진 거 같은데?”

“아카 언니, 오자마자 간다고 하면 어떡해?”

“언니! 얼른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처음 뵙겠습니다. 라리사예요.”

“아루랑 아샤도 안녕? 응? 아샤도 확 달라졌네? 설희랑 둘이 뭐 좋은 거라도 했어? 아, 라리사 이야긴 들었어. 나도 반가워!”

일행들이 한마디씩만 하는데도, 꽤 소란스러운 분위기다.

“시간 없어! 이제 인사는 그만들 하고, 식사하면서 이야길 하자. 공항 근처 식당 예약해뒀으니, 빠르게 이동!”

일식집에 도착한 태월 일행은 룸으로 안내되었다.

“일단 이 뒤편만 읽어봐.”

아카는 본질이 영령이어서인지, 중국어 재능 이전을 시키지 않았는데 알아서 다 배워놨다.

지식 탐구가 영령이 가야 할 기본이라고 여기는 아카다.

아카는 음식이 나올 동안 빠르게 읽어 나갔다.

깊이를 가지지 않고 전체를 이해하려는 방식이다.

음식이 테이블 위에 올랐을 때쯤, 책을 내려놓는다.

“무슨 내용인지는 어느 정도 이해했어. 일단 동생들과 즐겁게 식사부터 해야지?”

“그래, 이 순간을 즐기자고.”

다시 시끌벅적 수다를 떨기 시작하는 그녀들을 보면, 간혹 사람으로 바뀐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회 종류와 초밥 그리고 생선튀김 종류들이 나왔기에, 식사 시간은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 영혼을 봐야겠는데?”

태월은 뒤쪽에 놓아둔 죽통을 앞으로 옮겨 개봉했다.

영혼 에너지를 사용하니 죽통에서 살짝 빛이 난다. 그 후 영혼들이 탈출구를 찾아 나오더니, 허공에 둥둥 떠 있다.

“흠, 아루가 붉은 구슬이긴 해도, 이 영혼의 붉은 거와는 속성이 다른 거야. 아루는 불이라서 붉은 거고 이건 감정의 색이야. 살아 있을 때 열정이 지나치게 넘쳤나 보네.”

“그럼 다른 색들은?”

“검정은 심보가 고약한 이기적인 성향? 그리고 저기 노란색은 따뜻한 성향 그리고 저기 파란색은 쾌활한 성향이야. 문제는 저 하얀색이지. 백지상태야.”

“응? 바보?”

“그런 게 아니라 빈 노트 같다고 해야 할까? 쟤는 내가 데리고 가야겠어.”

“응? 뭐 하려고?”

“어차피 저 하얀색을 생명체에게는 써봤자, 태월 말대로 백치 생명체를 만들 뿐이야. 영혼으로서는 존재 가치가 없지. 그래도 지식을 전해주는 대로, 감정의 저항 없이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게 저 영혼의 장점이거든. 컴퓨터를 통해 지식을 흡수시킬 생각이야.”

“응? 그렇게 하는 이유가 따로 있어?”

“인공지능을 만들까 해. 현재의 기술로는 이론 정도밖에 형성 못 했지만, 백색 영혼을 이용하면 될 거 같아. 그래서 내가 부리나케 달려온 거야.”

감정도 없고 현재는 생각도 없다고 하니, 태월이 보기에도 생명체에는 못 쓸 것 같았다.

그래도 마음은 찜찜했다.

“그리고 태월이 전화로 알려준 것과 다른 게 있어. 이 수집기에 보관된 영혼을 넣게 되면, 사람이 바뀌긴 해.”

태월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런데 사고로 죽은 지 24시간 안에만 발견하면, 몸 근처에 있는 영혼은 대부분이 떠나지 않고 있어. 주술을 이용해 수집한 후, 바로 그 몸에 사용해봐. 나이 들어 죽은 몸에는 넣어봤자, 몸의 기능이 다한 거라 안 돼.”

“넋들임이랑 비슷해지네?”

“글쎄, 문신이랑 유사한 기능 하나가 이 포집통에 있어. 정화를 시키지 못하는 반쪽짜리지. 그래도 이 통 안에 모은 영혼을 생명체에 넣으면, 귀속되게 하는 기능은 있잖아.”

“도깨비 문신은 영혼을 삼켜서 에너지를 모으는 거고, 이 죽통은 영혼을 수집해서 재활용하는 거네.”

도깨비 문신보단 강력하지 못하지만, 문신이 못하는 재활용기능을 가지고 있긴 했다.

“이 백치 영혼을 잘 활용하면, 이 영혼도 좋은 거고 나도 조금은 여유가 생길 것 같아.”

아카가 한가해질 수 있다는 말에, 다들 환호하고 수다스러워졌다.

아카가 특수한 금속의 재질로 만든 통을 하나 꺼낸다.

태월은 영혼 에너지를 사용하여, 공중에 떠 있는 백색 영혼을 그 안에 넣어줬다.

“귀속은 태월로 인식하겠지만, 나도 같은 영역에 속해 있는 거고. 그러니 성장하더라도 이 녀석은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할 거야.”

태월의 조금 염려스러운 표정을 봤는지, 안심을 시켜 준다.

아카는 그렇게 세 시간 정도를 함께하다가, 특별기를 타고 다시 뉴욕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태월은 죽통에 새겨진 부적을 탐구하느라, 하루를 더 홍대 쪽에서 지냈다.

다음 날 저녁 압구정 집으로 돌아오니, 조민희만 있었다.

“아들! 그 문화재 기증으로 인해, 우리 회사 이미지가 굉장히 좋아졌어. 이거 홍보비로 따져도 몇십억은 번 셈이야. 정부에서 감사장도 주더라.”

“오호, 잘되었네요? 이번에 러시아로 다시 가게 되면, 그곳에 보육원을 대대적으로 운영할 생각이에요. 러시아 꽃제비가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뭐, 좋은 일이니 반대를 하진 않을게. 그래도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너도 많은 걸 느낄 기회가 되었으면 해.”

“네, 잘해볼게요. 엄마도 여기서 하시고 있잖아요?”

태월의 말대로 TW에서는, 고아나 소년 소녀 가장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실천 중이다.

“갈 때 우리가 실행 중인 커리큘럼을 줄 테니, 운영할 때 참고를 해봐.”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아빠는 또 술 드시러 가셨나 봐요?”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뭐. 그래도 아들 오는 날이니 일찍 올 거라 하던데?”

그날 박승철은 조민희의 말대로 일찍 들어왔다. 아침 일찍….

그리고 아침밥은 못 얻어먹고 일터로 나갔다.

남은 기간 아샤는 라리사와 함께 아루를 따라, 서울 구석구석 쏘다니고 문화생활도 즐겼다.

휴가를 끝낸 그들은 대한항공 특별기를 타고, 이르쿠츠크 공항에 다시 돌아왔다.

“호호, 여름은 역시 러시아가 좋아. 한국 너무 더워요!”

“이번 여름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고의 폭염이래잖아. 무려 38.4도야.”

“저, 저기, 아쿠 언니가 와요.”

멀리서 아쿠가 손을 흔들면서 오고 있었다.

“아쿠? 별일은 없었어?”

“다들 잘 다녀왔나 보네? 여긴 뭐 별일이라기보단, 조금 긴장 상태지. 내일 오후 무덤이 드러날 거야.”

“언니도 잘 있었어요? 호호호, 우린 그동안 서울을 탐험하고 왔지요.”

“흠, 아직까지는 안드레이가 잘해주고 있나 보네. 다들 이동하자.”

비행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다들 피로함은 못 느꼈다.

다음 날 태월은 알혼섬으로 아루와 함께 넘어왔다.

“안드레이? 준비가 다 되었어?”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이제 한 시간 후에 드러날 것입니다. 포크 레인이 근처까지 닿았거든요. 그런데 저들은 그냥 둬도 되겠습니까? 그 칭기즈칸 무덤에서 나온 물품 하나를, 발굴했다고 좋아들 하는데.”

그들이란 건 미국, 러시아. 한국의 고고학 발굴팀이다.

새로 건설되는 마을 중앙 쪽에 대수롭지 않은, 부장품 하나를 캐어내곤 저리 호들갑 중이다.

실제론 안드레이가 꺼내서 거기에 놔뒀던 것이고, 이를 근거로 그들을 초청했었다.

“미리 일부를 보여 줄 때, 학술적 성과 외엔 지분에 대한 참여는 없는 것으로 계약했잖아.

모든 경비를 회사에서 지불하기로 한 거고.”

이 공사 현장과는 30m 떨어진 곳에서 헛짓 중인 발굴팀이다.

그 외 마을 부지들은 거의 토목공사가 완료되어있었다.

인력을 짧은 시간에 대거 투여했던 결과다.

BATR건설 중장비가 총동원된 상태였었고.

-덜컹! 끄르륵!

“야! 멈춰, 멈춰! 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잖아? 스톱!”

안드레이가 포크레인 기사에게 소리를 냅다 치고는, 파인 땅으로 내려갔다.

“여기 뭔가 있습니다! 유적 같아요!”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자, 고고학 발굴팀이 그곳으로 움직였다.

“어, 거, 거기! 감독관! 노터치! 손대지 말고 기다려! 우리가 확인해볼게. 다들 물러서요!”

미국 발굴팀장이 몸을 굴리다시피 하며 내려선다.

이제 이 알혼섬은 전 세계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러시아와 부랴트 공화국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태월도 예상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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