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81화 (81/250)

81화. 이르쿠츠크에서 한국으로

놀라는 마카르에게 새로운 질문을 한다.

“그 노선이 과거엔 왜 폐쇄되었죠?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멀쩡하게 잘 운행되고 있잖아요?”

“1915년부터 1956년까지는 잘 운행되었습니다. 그러다 안가라강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안가라강 변 쪽 철로가 물에 잠기게 되죠.

그때 그곳과 이어진 철로들이 어쩔 수 없이 방치되었습니다.”

안가라강의 급류를 이용하여, 수력발전소 몇 곳을 건설하였다.

이 덕분에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의 그 어느 곳보다도 전기요금이 싸다.

이르쿠츠크에서 쓰는 전기를 감당하고도 남아돌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 바이칼을 지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바이칼 남쪽으로 우회하는 노선을 새로 건설한 것입니다. 이르쿠츠크에서 슬류지안카로 와서 열차를 교체하게 됩니다.

이곳에서부터 1970년대에, 환 바이칼 관광열차가 첫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현재의 슬류지안카에서 앙가솔카, 포르트바이칼에 이르는 80km 구간이고요.”

“시베리아 횡단 열차 경로와 다른 곳이군요?”

“네, 슬로지안카에서 출발하는 노선이니까요.”

“환 바이칼 관광열차가, 관광객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요?”

“옛 시베리아 횡단 철도 구간 중에서도, 가장 특별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또 아슬아슬한 암벽도 지나고 호숫물이 스칠 듯이 지나가는 쾌감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곳이죠.

중간중간 정차지에 멈춰, 아름다운 마을 탐방을 즐길 수 있고요.”

“구간이 80km 정도인데 그렇게 정차를 자주 하면, 오래 걸리겠네요?”

“노후화된 선로 때문에, 열차 속도가 시속 20km입니다. 거기다가 정차역마다 30분에서 1시간을 마을 구경을 위해 쉽니다. 그러니 8시간은 걸리는 관광열차가 된 거죠.”

“그럼 이 회사를 매입합시다. 이왕이면 바이칼과 연계될 수 있는 회사가 낫지 않을까요?”

“네, 저도 조사하면서 이 회사 직원 복지가 제일 마음에 들더군요. 사주가 철학이 있는 분 같았습니다. 다른 회사 같았으면, 이 땅을 팔아버리고 돈이라도 더 챙겼을 겁니다.”

예닌토건은 부채 인수 조건으로, 55만 달러에 BATR의 품에 안겼다.

회사 이름을 ‘BATR건설’이라고 짓고, BATR(유)의 계열사로 등재했다.

BATR건설은 곧바로 칭기즈칸 무덤의 지역 일대를, 마을 건설을 위한 토목작업으로 둔갑시켜 진행했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도로부터 정비했다.

그리고 안드레이의 박물관도 위치를 선정했다.

그 박물관의 이름을 안드레이 박물관이라고 지으려 했는데, 당사자가 거절하였다.

세월이 지나면 또 바뀔 이름인지라, 의미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그 박물관 이름은 ‘BATR박물관’으로 정해졌다.

이 박물관의 옆쪽 100m 지점이, 칭기즈칸 무덤이 있는 곳이다.

“태월? 주지사에게서 연락이 왔어! 5월 21일 오후 2시 이르쿠츠크 공항 7번 게이트야.

안가라 항공 특별기인데, 4시간 사용 비용으로 5만 달러를 주기로 했어.”

“주지사가 힘을 썼는데도 5만 달러야?”

“원래는 10만 달러를 요구했는데, 대한항공 쪽을 연결해줬어. 요즘 알혼섬 관광 떠나는 한국 관광객이 꽤 있나 봐. 돌아올 때 그들을 태우기로 했어.”

“아, 여기 다시 올 때는 안 된대?”

“대한항공에서 임시노선으로, 6월 20일 오후 2시에 김포 출발! 물론 혼자 타진 않아.

관광객들과 함께 오게 될 거야.

대신 우리 회사에서 그 운행 비용 일부를 대기로 했어. 3만 달러야.”

“땡큐! 아쿠, 고생했어! 아우우, 고생 끝이다!”

“BATR 다리가 완공되고 그 무덤이 드러나면, 관광객이 많아져서 이르쿠츠크 공항과 직항로가 생길 수 있을 거야.”

‘BATR 다리’는 어제 착공식을 한, 알혼섬행 왕복 4차선 다리 이름이다.

그 준공식에는 이르쿠츠크 주지사와 러시아 관광청장 그리고 부랴트 공화국 외교부장도 참여했었다.

“이제 사흘 후면 아샤도 방학이네? 아쿠만 바빠져서 한국도 못 가고 괜히 미안한데.”

“호호, 직항로가 생기면 자주 가게 될 건데. 뭘, 그리 신경 써. 한 달간 편안히 쉬다 와.”

이번 한국행에는 태월과 아루 그리고 아샤와 라리사가 동행한다.

바쁜 아쿠와 안드레이는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나흘이 지나자, 일행은 이르쿠츠크 공항으로 떠났다.

“아쿠 언니? 잘 놀다 올게! 오랜만에 고향 다녀오게 되네.”

아루가 관악산에 태어난지라, 자기 고향을 서울로 여긴다.

“언니, 저희도 잘 다녀올게요.”

“잉, 언니, 아쉽다.”

“호호, 다들 잘 다녀와! 다음에 같이 가면 되는데 뭘 또 그래. 얼른 들어가 시간 다 됐어.”

이산가족처럼 포옹들을 하느라고 난리인 그녀들이다.

이르쿠츠크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불과 4시간 만에 김포공항에 도착한다.

“참 멀게만 느껴지던 이르쿠츠크인데, 실감이 거의 안 나네.”

“와 여기가 한국의 서울?”

“아샤? 서울이긴 한데, 여긴 외곽이야. 자 이제 입국 절차를 밟으러 가야지.”

특별기에다가 인원도 적어서 절차도 간소했고, 시간도 그리 걸리지 않았다.

출구를 통해 나오니, 박승철과 조민희 그리고 홍미연과 홍설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하, 어떻게 함께 나와 계세요? 몸 성히 잘 다녀왔습니다.”

태월이 그들에게 고개 숙여 꾸벅 인사를 한다.

아루와 아샤 그리고 라리사도 엉겁결에 고개를 숙였다.

“어머. 다들 반가워요. 이모님도 고생하셨어요. 아들에게 이야긴 들었어요. 나머지 둘은 가족처럼 지낸다고 하던데, 이렇게 아름다운지는 몰랐네.”

조민희는 아루를 아직도 막내 이모로 알기에, 아샤와 라리나에게 하는 말이다.

“역시 아들은 아빠 닮아서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니까!”

박승철다운 덕담 같은 인사말이었다.

“태월아, 오느라 고생했다.”

“오빠? 신수가 훤해졌는데?”

“고생은요. 특별기 타고 와서 힘든 건 없었어요. 설희도 잘 지냈나 보네? 얼굴이 환해.

아 그리고 이쪽은 라리사와 아샤예요.”

“안녕하세요. 라리사예요.”

“처음 뵙겠어요. 아나스타샤예요. 잘 부탁합니다. 아샤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간단한 한국어로 인사를 하는 둘이다.

그 후 가족들이 긴 질문을 던지니, 대답을 못 하고 러시아 말을 하는 라리사다.

라리사가 러시아어로 하자, 다들 의아해한다.

“어머? 한국 사람 아니었어? 고려인 3세인가?”

라리사보고 하는 말이다.

“뭐, 혈통으로 보면 비슷하긴 해요.”

“그런데 라리사도 이쁘지만, 아샤는 진짜 아름답네. 푸른 머리에 푸른 눈, 진짜 요정 같아.”

“자자, 이럴 게 아니라 이동하죠?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네요. 바로 압구정 집으로 갈까요?”

“응, 그러자. 오랜만에 동생네 집에 가보게 되네.”

아샤는 낯선 태월의 가족을 보게 되어 긴장되는지, 태월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설희는 그런 아샤에게 장난기가 동해, 태월의 남은 쪽 손을 잡고 걸었다.

“아샤라고 했지? 나 누군지 알아?”

“네, 설희 언니요. 오빠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그런데 한국말을 꽤 하네? 발음이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헤헤, 몇 달간 열심히 배웠어요.”

진짜로 아샤는 한국에 간다는 허락을 받은 이후로, 모든 말을 한국어로만 했다.

당연히 한국어 스승은 아루였고.

두뇌가 좋았는지 아니면 열정 때문인지, 한국어 습득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다만 말을 하긴 해도, 아직은 글을 제대로 읽고 쓰진 못한다.

한국어 회화만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샤는 몇 살이야?”

“지금 13살요.”

“하하, 아샤야? 한국은 만 나이로 계산 안 해. 넌 한국 나이로는 14살이야. 설희랑 두 살 차이.”

“아하 14살이구나. 그런데 너 정말 이쁘다.”

“헤, 그런데 언니는 더 이뻐질 거예요.”

“응? 무슨 소리야 그건?”

“어휴, 그런 게 있어. 나중에 말해줄게. 어서 가자, 어른들이 기다리셔.”

압구정동 태월의 집은 오늘 8명의 수다로 시끌벅적했다.

칭기즈칸의 무덤과 늑대족 사연을 제외하고는, 러시아에 있었던 일과 부랴트 공화국에서의 일을 말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전하고 에피소드까지 겸하니, 천일야화 같은 일들이 되어 버렸다.

하룻밤을 보낸 태월은 저녁에 홍대로 향했다.

모친 홍미연과 동생 설희에게는, 못다 한 말과 해야 할 일도 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의 무덤? 그걸 발견했다고?”

“네, 거기서 늑대족과 인연이 생긴 거예요.”

“늑대족 외에도 여러 요괴족이 있다는 이야길 전해 듣긴 했어. 라리사가 늑대족이라니 정말 신기하네.”

홍미연이 라리사를 요모조모 살핀다.

“그런데 여우족 장로가 거기에 있었다니, 많이 아쉽긴 하네. 우리도 그들과 연락이 끊긴 지 꽤 되었거든.”

“직접 보신 적이 있나요?”

“난 보진 못했고, 전대 장로님들은 보셨지.”

“하여 거기서 나온 성령초를 설희에게 복용시킬까 해요.”

“여우족의 보물이 우리 설희에게까지 닿다니.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로구나.”

“엄마에겐 소용이 없다니 아쉽긴 해요.”

“호호, 난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그리고 늑대족의 보물 중 하나를 얻었어요.

일월기공이라는 호흡법인데, 설희는 월기공을 익히면 돼요.”

성령초에도 놀라더니, 일월기공이란 소리에는 더 놀라는 홍미연이다.

“아 아, 나도 장로 한 분에게 그 이야긴 들었다. 긴 세월 그걸 보완하고 있었다던데, 그게 완성이 됐었구나. 외부의 기운까지도 끌어 쓴다는 말도 있던데, 사실이냐?”

“그런 내용이 있긴 해요. 아직 배운지 얼마 안 됐고, 그 정도가 되려면 오래 걸릴 거예요.

이걸 배운 후에 복용하면, 효능이 많이 올라간다고 해요.”

“일월기공을 이렇게 막 전해도 돼?”

홍미연은 그게 의아한 듯 라리사를 쳐다본다.

“오빠와 제가 태월 님에게 귀속이 되면서, 직계가족에게는 가능해졌어요.

다만 호족 자체에 전승이 되어선 안 되고, 혈연이 아닌 경우도 안 되고요.”

결국 박승철과 조민희도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제야 이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홍미연이다.

“그런 제약이 없다면 늑대족이 너무 억울할 뻔했네. 그러니까 태월을 중심으로, 그 후손은 전승이 가능하단 소리지?”

“네, 두 분도 전승은 못 하지만, 배울 순 있어요. 제가 따라온 이유도 그중 하나고요.”

“어휴, 난 또 내가 민망하게 가르쳐야 하나 했는데, 정말 다행이네. 그럼 그때 월기공도 배우게 놔둔 이유가, 후손이 나에게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한 거네?”

“네, 그렇습니다.”

홍미연과 홍설희에게 라리사는 월기공을 전수하였다.

자정까지 이어졌고, 그 후 비어있던 손님방 중 한 곳에 자리를 깔았다.

옷을 벗은 설희에게 성령초를 복용시키고, 라리사가 그녀의 기운을 유도했다.

방 밖에는 미연과 태월 그리고 아샤가 있었다.

아루는 오랜만에 보는 삽사리들과 노느라 바쁘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조금 지쳐 보이는 라리사가 나온다.

“라리사 수고했어. 너도 좀 손님방에서 쉬어.”

“조금 있다가 쉴게요.”

“라리사 언니? 진짜 궁금한 게 있거든요.”

아까부터 혼자 뭔가를 생각 중이던 아샤였다.

“응? 뭔데? 편하게 말해.”

“난 태월 오빠랑 혈연도 아닌데, 어떻게 월기공을 배울 수 있었죠?”

“응? 뭔 소리야? 태월 님 반려자 될 사람 아녔어?”

“뭐?”

“어? 제, 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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