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일기공? 월기공?
태월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싸우다가 먹지도 못해보고 죽은 요괴도 있었죠. 그래서 지금은 잘 말려놓은 3뿌리는 남아 있네요.”
“그래서 그걸 노리고 요괴들이 싸운 거야?”
“구미호가 다시 안 나타난 이유도 있겠지만,
주인 없다고 여겨 서로 욕심을 부린 거죠.”
“너네도 욕심부린 건 같잖아?”
“아 한 뿌리만 먹으면 되거든요. 다른 요괴들은 더 가지려 욕심부린 거고요.”
“너희 이름은 뭐야?”
“전 십이랑이고 여동생은 십삼랑입니다.”
“헐, 무슨 이름이 그리 삭막해? 애칭 같은 건 없어?”
“인간 세상에 나올 때 쓰던 신분증은 있습니다. 제가 지금은 30살 안드레이 볼코프고, 동생은 25살 라리사 볼코프입니다.”
볼코프는 러시아로 늑대를 뜻한다.
그리고 실제로 있는 성이기도 하다.
“지금도 동안인데, 그럼 긴 세월 계속 신분증을 바꾼 건가?”
“자손의 이름으로 계속 만들어왔습니다.
신분 자체는 정상입니다.”
“여기에 박물관이 들어설 거야. 이곳에 둘이 지낼 집도 마련해줄 테니, 관리도 하면서 사는 건 어때? 아니면 세상에 완전히 나와서 살아도 되고.”
“저는 이곳도 좋습니다.”
“라리사는?”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거.”
라리사가 마지막으로 무덤에서 나올 때, 여러 가지를 들고 있기는 했다.
그중 작은 보자기에 싸인 목곽이다.
“이게 뭐지?”
“좀 전에 말한 그 말린 성령초 3뿌리예요. 전 이미 복용했기에 더는 필요가 없거든요.”
“응? 그럼 이건 아루랑 아샤가 먹어도 되나?”
아루가 고개를 흔들고 있다.
“이건 육체의 몸 구조를, 원래부터 가지고 있어야 효능이 있는 거 같은데?”
“네, 맞습니다. 귀신들도 이건 못 먹었거든요.”
“얘! 정령을 귀신과 동급으로 비교하다니, 듣는 정령이 기분 살짝 상하려 하네.”
“죄, 죄송합니다.”
아루가 눈에 쌍심지를 돋우자, 라리사가 빠르게 사과를 한다.
사람의 감정을 빠르게 닮아가는 중인 아루다.
“그럼, 아카, 아루, 아쿠는 소용이 없는 거네.
부모님도 나이 때문에 안 되겠고. 일단 두 뿌리는 설희랑 아샤가 먹으면 되겠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먹는 거야?”
“굳이 달여 먹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과자처럼 먹거나, 가루로 내어 물에 타면 됩니다. 위장에서 빠르게 약성 흡수가 되거든요.”
“이 박물관 관장은 안드레이가 맡도록 해. 누구보다 칭기즈칸을 더 잘 아니, 적임자로서는 손색이 없네. 전투종족이니 도둑도 잘 잡을 거고. 라리사는 섬 홍보 쪽을 맡으면 되겠어.
그런데 아샤에게 지금 먹여도 되나?”
“먹고 나면 수면에 빠지는데, 달리는 차 안에선 곤란합니다. 그리고 옷도 입지 못하죠. 노폐물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럼, 집에 가서 먹여야겠네. 그리고 둘 중 누가 운전할 줄 알아? 면허증은?”
“저희 둘 다 면허증도 있고 운전도 능숙합니다. 제가 운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둘 다 잠시 기다려. 알몸으로 운전하다간 변태로 소문난다. 내 옷을 줄 테니 그거라도 입어. 그리고 아루도 이제 옷 입도록 해.”
“옷은 필요 없어요. 저희 것도 가지고 나왔거든요?”
안드레이의 운전 솜씨는 꽤 좋았다.
덕분에 안전하고 빠르게 도마 선착장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런데도 벌써 밤 10시가 되어간다.
“차는 이렇게 가져다줬으니 되긴 한데, 배편이 끊겨서 오늘은 이곳에서 자야겠네.”
“이사님? 오늘 주말이라 집으로 돌아간 직원들이 있어, 저희 숙소에 빈방이 남습니다. 방 두 개 정도는 여유가 있거든요. 누추하지만 주무시기엔 불편하지 않을 겁니다.”
“하하, 그래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도마 선착장에는 아직 숙박 시설이 없다.
곤란하던 차에 잠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숙소는 방을 두 개 배정받았다.
태월과 안드레이가 하나를 쓰고, 나머지 방은 세 여자가 쓰게 되었다.
그런데 방에 같이 있게 된 안드레이가, 할 말이 있는지 머뭇거렸다.
“저기 실은 그 성령초 복용할 때, 그냥 먹는 것보다도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호흡법을 익혀 복용하는 것이, 성능으론 훨씬 가치가 높아집니다.”
“호흡법? 단전호흡 같은 거?”
“음, 그냥 들숨 날숨으로 하는 그런 단순 호흡법이 아닙니다. 중국과 인도 그리고 고려의 무예를 모아, 2백 년 가까이 다듬은 것이거든요.
늑대족은 전투종족이라, 많은 전투 경험을 통해 그 호흡법을 더 발전시켜 나간 것이고요.”
“응? 혹시 호족이라고 들어봤어?”
“여우족요? 그 종족은 두 갈래예요. 우리랑 근원이 같은 반 요괴인 여우족과 인간 술법사인 호족.”
태월도 몰랐던 이야기라 흥미가 생겼다.
“아는 여우족이 있어?”
“백 년 전에 잠깐 본 적은 있는데, 그 후에 소식은 못 들었습니다. 아까 말한 구미호도 그 여우족 장로들이거든요?”
“호족과 여우족이 무슨 연관이 있나?”
“여우족에도 술법들이 있었거든요. 그 술법들을 호족이 쓴다고 들었습니다. 숭배하는 신이 같다는 소리도 들은 거 같네요.”
안드레이에게 더는 호족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호흡법이 이름이 뭔데?”
“이름은 일월기공입니다. 남자는 해와 같은 양의 기운을, 여자는 달과 같은 음의 기운을….
즉 남자는 일기공을 배우고, 여자는 월기공을 배웁니다.”
태월은 만월의 기운으로 인해, 음이 넘치고 양의 모자란 상태다.
안드레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동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르쳐준다고?”
“네, 그게 그 성령초 흡수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음양의 조화를 위해서도 좋은 거고요.”
“혹시 다른 요괴들도 이런 호흡법이 있나?”
“있기는 합니다만, 조잡하고 부작용이 많습니다. 저희는 인간 세상에 떠돌던 무공서 1백 권을 모아, 그걸 2백 년간 연구하고 검증했습니다. 장점을 취하고 부작용은 제거해서, 재창조한 것이지요.
아마 효율과 순도 면에서는 최상일 겁니다.
도사들도 감탄하고 욕심을 부렸지만, 어림없는 일이죠.”
안드레이 말만 들으면 천하제일 호흡법 같긴 했다.
“좋네. 그런데 이런 보물을 우리에게 가르쳐도 돼? 바라는 건 없고?”
“이제 운명적으로 같은 식구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좋은 건 나눠야 하지요.”
“오, 생각이 바람직하네? 좋아, 알려줘!”
그렇게 해서 태월과 아샤는, 일기공과 월기공을 배우게 되었다.
아루는 옆에서 따라 해보려 했으나, 몸 내부가 아직은 인간이 아닌지라 잘되지 않았다.
태월은 설희에게도 가르치고파서, 일기공뿐만 아니라 월기공 지도도 받았다.
“한 가지를 배우는 것보다, 양쪽을 다 배우니 이해가 더 빠른데?”
“음양의 이치가 숨어있어서 그렇게 되긴 합니다.”
태월이 배운 황서윤 스승의 음양오행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두 가지를 다 배운 것인데도, 아샤보다 빠른 진도를 보였다.
원래 이해력과 암기력이 비범했었으니, 그 영향도 컸겠지만.
“그런데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 그런 게 없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각 단전을 형성할 때마다,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생명까지도 잃기도 하죠.
일월기공은 단전이 없는 게 아니라, 온몸이 전부 단전입니다. 그래서 흔히 무공에서 말하는 하단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건 내부의 기운밖에 쓰지 못하잖습니까?”
“내부의 기운을 쓰지, 그럼 어떤 기운을 또 쓰는데?”
태월은 안드레이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우주에서 내 몸 자체가 하나의 단전이 됩니다. 외부의 기운을, 필요에 따라 끌어쓸 수도 있단 소리죠.”
“헉, 그런 건 한 번도 생각 못 해 봤네?”
“그러니 도사들이 탐을 낼 수밖에요.”
태월 생각에도 이론으로만 보면, 대단한 기공이었다.
“그럼 너희는 외부기운을 자유자재로 쓰는 중이야?”
“아직은 흉내만 내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잖아요.”
태월도 그 정도까진 바라지도 않았고, 음양의 조화 정도만 되도 만족한다.
그렇게 일월기공의 배움이 시작되었다.
“이야, 이거 좋은 게 하나 있네? 밤새 수련했는데, 피곤은 고사하고 활력이 도는데?”
“너무 급히 가려 하진 마세요.”
“알았어. 그런데 아샤는 어찌 되었을까? 라리사가 그 성령초 먹이는 걸 도우러 가긴 했는데.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 수가 없네?”
“아직 자고 있을 겁니다. 아마 점심경쯤 되어야, 일어나리라 예상됩니다.”
약효의 체득을 위해서,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긴 했었다.
“셋 다 같이 자고 있나?”
“그럴 리가 없지요. 몸속 노폐물이 심하게 나오니, 악취로 인해 밖에 있을 겁니다.”
“그럼 우리끼리라도 아침은 먹어야지. 씻고 나올 테니, 저쪽에도 준비하라고 해.”
“네, 그리 전하겠습니다.”
도마 선착장에는 벌써 관광객들이 들어서고 있다.
일요일이라서인지 아침인데도 관광객을 상대하는 노점상이 보였다.
그들은 알혼섬이 기업체에 팔렸음에도, 그전처럼 변함없이 장사하고 있다.
따지면 그들은 불법 점유이긴 하지만, 당분간은 그대로 둘 생각이다.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서 막아버리면, 관광객에게도 아쉬울 것이다.
태월 일행은 그 노점상 앞, 간이 테이블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
“러시아 미국 한국 이렇게 세 나라의 고고학 발굴팀을 불러야겠어. 그전에 주변을 다 드러내자고. 괜히 발굴팀에서 쓸데없는 지분을 요구하게 해선 안 돼. 그들의 목적은 순수한 학문적 발굴이어야 해.”
“그것만 해도 대부분은 만족할 것입니다. 역사적인 발굴에 참여한 전적이 되거든요.”
“러시아의 토목건설사를 하나 인수해야겠어.
규모는 굳이 클 필요는 없고, 무덤 발굴 후에도 틈틈이 알혼섬에서 활용할 수준이면 되니.”
“발굴 전까지는 비밀을 요하는 것이니, 외주보단 그게 좋겠습니다.”
“이 일은 박물관 관장을 해야 할 안드레이가 책임지고 해봐! 회사는 우리가 구할 테니, 공사 감독만 잘하면 돼.”
“네, 알겠습니다.”
위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안드레이가 해야, 목적물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해. 그래야 러시아 정부의 의심을 피할 수 있지.”
“새로운 마을 건설을 하려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하겠습니다.”
태월은 안드레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마을을 건설하려면 그 일대를 전부 파야 하니, 그만큼 발견의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고.
“그런데 둘은 긴 세월 무덤 안에서 뭘 했어? 너무 지루하진 않았나?”
“100년 전까진 틈나는 대로 세상을 많이 떠돌아다녔습니다. 숨겨진 무덤들도 많이 탐험하러 다녔고요.”
“응? 탐험한 후에 그 무덤은 어떻게 하는데?”
“그냥 괜찮은 것 한두 개만 가져오고 덮었습니다. 수집하는 재미로요.”
“그럼 그 물건들 전부를, 칭기즈칸 무덤 안에 쌓아둔 거라고?”
“아 거긴 칭기즈칸과 같이 다닐 때 얻은 것만 두었고요. 나머진 은행 비밀금고 여러 곳에, 분산해 두었죠.
기회 되면 한자리에 모아 놓으려 하긴 했는데, 장소가 마땅하지 않아서요.”
“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때? 박물관을 하나 더 만드는 거야. 칭기즈칸 박물관 옆에.”
“아,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주 볼 수 있으니 나쁘진 않네요.”
-꺄악!
안드레이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들려오는 비명이 있었다.
일행들 전부 벌떡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