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78화 (78/250)

78화. 너희가 요괴라고?

때아닌 운전 교습을 하게 되었다.

“브레이크를 뗀 상태에서 클러치를 천천히 떼다 보면, 차가 약간 움직이는 지점이 있어.

이때 클러치를 약간 떼고 있는 발을 멈춰!

이삼 미터 정도 주행하면, 클러치를 다 떼며 액셀을 한 번 살짝 밟아줘. 그 정도만 해도 20km 속도가 나와. 그리고 액셀을 밟으며, 속도에 맞춰 기어 변경을 하면 돼.”

“아유, 간단하네. 뭐.”

“퍽이나….”

아루에게 운전은 맡기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해보는 태월이다.

아루는 막내 이모의 면허증을 가지고 있지만, 태월은 나이가 되지 않기에 면허증도 없다.

다만 재능 중에 운전에 관련된 것이 있었기에, 이렇게 능숙한 것이다.

“운전 재능 생기면 나한테 넘겨줘. 멋진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거야!”

“그럼 그 재능 생길 때까지 연습만 해.”

“잉….”

쉐보레 서버번이 목적지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아루야, 정령 본체로 공간이동 해서 살펴봐.”

“응, 알았어!”

-쉬 리링! 쉬링!

“어머, 이게 언니 본체구나. 신기해.”

아샤가 그 불의 구슬을 조심스레 만져본다.

“어? 안 뜨겁고 따뜻한데?”

“호호, 온도는 내 의지로 조절 가능해. 일단 이동할게. 이동!”

눈앞에서 불덩이가 사라졌다.

그런데 10분도 안 되어, 아쿠가 알몸으로 변신한 상태서 땅에서 튀어나왔다.

“으아, 늑대 요괴야! 저것 좀 잡아줘!”

아쿠의 뒤를 따라, 땅에서 두 마리의 늑대가 나타났다.

“헉! 갑자기 웬 요괴?”

요괴를 상대해 본 적이 없던 태월은, 급한 대로 품속에서 염주를 꺼내 던졌다.

-쉬이익! 쉭!

그런데 잡귀들과 달리 그걸 피하며 달려온다.

다급해진 태월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신을 사용했다.

“가랏! 삼켜버려!”

늑대 둘은 몸을 틀면서 용케 피해냈다.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늑대 같았다.

그러나 도깨비가 급선회하며 다시 뒤를 잡아채자, 당황해하며 이번엔 피하지 못했다.

-슈 아악! 슈악! 꺼억! 깨갱!

도깨비가 한 마리의 늑대를 그대로 삼키더니, 그 옆을 지나던 늑대까지 물어버렸다.

몇 초 만에 두 마리가 다 사라진 것이다.

“헉! 요괴도 먹어 치우네?”

“아하하, 이것들이 까불고 있어! 어휴, 깜짝 놀랐네.”

아루가 허리에 손을 얹고 혼자 의기양양하다.

“어떻게 된 거야? 저것들이 거기 있었어?”

“무덤은 맞아. 긴 복도도 있고, 광장 같은 것도 있어. 그런데 중심에 들어가니 저것들이 있더라고. 한 마리면 어찌해볼 수 있는데, 양쪽에서 공격하니 정신이 없었어. 지진 않지만 이기기도 힘들더라.”

“그럼 누구 무덤인지는 확인 못 한 거네?”

“이제 요괴가 없으니, 다시 들어가 볼게.

뭐라도 가지고 나오려면, 이 몸 상태로 가야겠어. 공간이 있는 곳을 알았으니, 바로 그리로 가면 안전해.”

“그럼 왔다 갔다 하면서 외곽 끝을 표시해줘.

발굴할 때 미리 알고 있어야 효율적이잖아.

외곽 밖에서부터 건물을 지어 나갈까 해.”

“아직 무덤 전체 크기는 모르겠어.”

“그 바닥이 흙바닥이야?”

“아, 아니. 돌판으로 쫙 깔려 있더라.”

“오호, 그럼 그림이 꽤 나오겠는데?”

무덤이 발굴되면 그 무덤 공간 전체를 감싸는 건물을 지을 생각이다.

“누구 무덤인지도 아는 게 제일 중요하니, 디지털카메라를 가져가서 찍어와.”

태월이 가방 안에서 카메라를 꺼내 내민다.

태월이 꺼낸 디지털카메라는, 1991년에 출시된 모델명 코닥 DCS-100이다.

카메라 본체로는 그 찍은 걸 보진 못하지만, 연결된 장치를 통해 화면을 볼 수가 있다.

“알았어. 플래시 터트려서 잘 찍어 볼게.”

그런데 그 순간 문신이 움직였다.

-욱! 우웩!

문신이 무언가를 토해내고 있다.

-끼잉! 낑!

“헐? 이게 뭐야! 강아지 아냐?”

“어머, 언니, 너무 이뻐요!”

하얀 새끼강아지 두 마리를 뱉어낸 것이다.

“아까 그 사악한 기운은 사라졌는데?”

아루가 강아지들의 몸을 꾹꾹 눌러본다.

태월이 영혼 에너지로 검사했는데, 맑은 색에 가까웠다.

“어? 삿된 기운은 이제 없긴 하네. 도깨비가 너희들 삼킨 후 뱉던 때와 같은 현상이네.”

정화를 시켜서 내보내는 문신의 능력이, 다시 발휘된 것이다.

“얘네들도 요괴면 변신술은 기본이잖아?”

“그 무덤에서 나온 걸 보니, 얘네들 중국 쪽 요괴일 거야. 가방에 요괴 도감 있지? 함 찾아봐. 정체가 궁금하네.”

태월이 각종 자료를 모아서 수제작으로 만든 도감이 있다.

대단한 내용은 없고, 그냥 전해져 오던 기록이나 고서적에 나온 것들이지만.

가방을 다시 뒤져, 노트를 하나 꺼내 펼쳤다.

“음 중국 쪽이면 이건가 보네.”

“중국 북송 시대에 편찬된, 태평광기란 책에 나오는 당나라 때 요괴인 늑대인간?”

태월이 가리킨 글을 아루가 읽었다.

“얘 꼬맹이들아? 너 사람으로 변신할 줄 알지? 못 알아듣는 척 해봐야 소용없어! 나도 요괴 정수를 흡수해서 잘 알거든?”

태월이 무릎을 구부려 강아지들과 눈을 맞춘다.

“해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변신해봐!”

문신에 들어갔다 오면, 자신도 모르게 태월에게 귀속이 된다.

거역할 수 없는 본능이 작용했는지, 둘은 사람으로 변했다.

-휘리릭! 휘릭!

“어머? 강아지가 아이도 아니고, 어른으로 바로 변하네?”

아루의 말처럼 강아지가 한 바퀴 휙 돌더니, 그 자리에서 20대 초중반의 남녀로 변했다.

여자 쪽의 미모는 상당했다.

외형상으로 둘은 한국인을 닮은 부랴트족이다.

아샤의 눈은 아까부터 초롱초롱하다. 요괴란 건 이야기책에서나 등장하기에 신기한 것이다.

“응? 너희는 남매야?”

“친남매는 아니고 사촌입니다.”

“이야, 요괴도 사촌 간이 다 있구나. 잘 나가던 집안이었나 봐?”

“당신은 요괴도 아닌데, 정말로 요괴 변신술을 쓰네요?”

“응, 나는 정령이야. 그리고 요괴들의 정수를 흡수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내가 너희보다 서열이 더 높은 거 맞지? 인정 못 하면 남은 삶이 피곤해질걸! 그렇게 살래?”

짝다리 짚고 손가락을 까닥이는 아루다.

“아, 아닙니다. 누나라고 하면 되나요?”

“호호, 얘가 또 싹싹하니 성격도 좋네. 얘! 너는 왜 대답 안 하니? 내 몸이 어려 보여서 꽤 만만한가 봐? 찌찌 크면 다야?”

“어, 언니라고 부를게요.”

아루가 요괴 둘을 데리고, 열심히 서열 잡기를 하고 있다.

“너희 둘은 누가 위야?”

“5년 먼저 태어나서 제가 오빠이긴 해요.”

“너희 그 늑대인간 요괴 맞지?”

“네, 맞습니다.”

대충 내용은 다 알았기에, 태월이 나섰다.

“저 무덤은 누구 무덤이지?”

“층지스한!”

“헛? 진짜였네?”

성길사한(成吉思汗)의 중국식 발음이 층지스한, 즉 칭기즈칸이다.

“너희 종종 인간 세상에 나왔었나 봐? 러시아말을 할 줄 아는 거 보니, 그런 거 같은데?”

“자주는 아니고 반년에 한 번 정도요.”

“그 무덤엔 요괴가 너희뿐이야?”

“원래는 더 있었는데, 싸움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게 우리 둘이죠.”

“늑대에서 강아지로 바뀌었는데, 문제없어?”

“아직 다른 건 모르겠고, 머리가 아주 맑아진 것 같아요.”

“저도요.”

“그런데 둘은 추위를 안 타나? 홀랑 벗고 있는데 멀쩡하네?”

“덥고 춥고는 인간 몸 상태서는 어느 정도는 느낍니다. 늑대 상태서는 못 느끼고요. 다만 지금은 그리 춥진 않고요.”

‘변신 본체여서 그런가? 요괴도 정령처럼 창피한 건, 모르나 보네.’

“혹시나 해서 묻는데 내가 말을 놓으니 불편한가?”

“아, 아닙니다. 귀속 상태이기에, 오히려 이게 더 낫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태월은 돌직구를 던졌다.

“너희 칭기즈칸과 무슨 관계야?”

“전우였어요. 뭐 끈끈한 사이까진 아니었고요. 용병 같은 거죠.”

“그럼, 아루를 도와서 내부 지도 좀 만들자.

그리고 외곽을 이 땅 위에 표시해야 하니, 아루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 할 수 있겠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저도 할게요.”

“자자, 둘 다 나를 따라와!”

그 둘에게 아루가 손짓을 한다.

아루의 몸이 사라졌고 뒤이어 두 남녀도 사라졌다.

그들이 땅 위에 올라올 때마다, 태월은 흰 천이 감긴 강철 팩을 그 자리에 박았다.

텐트 고정용으로 쓰는 그 팩이다.

한 시간 정도를 하고 나니, 대략적인 위치가 만들어졌다.

어두웠지만 호족의 특성상, 어둠이 문제가 되진 않았다.

락카를 가져와 강철 팩을 따라 선 표시를 해놨다.

“이거 거의 천 평은 넘겠는데?

아루? 이제 다했으니, 그만 올라오라고 해.”

“응, 나도 다 카메라로 찍었고, 지도 작성도 끝났어. 데리고 나올게.”

아루가 그들을 데리고 나오자, 함께 차 안으로 들어갔다.

카메라에 장치를 연결, 화면을 재생해보았다.

원래 원나라 황제들의 입관과 부장품은 검소한 편이다.

부호나 귀족들보다도 검소하였고, 초원의 민족답게 실용성을 중시했다.

또 무덤을 파헤쳐지는 것을 막고자, 비밀스러운 밀장을 하고 봉분도 쌓지 않고 비석도 세우지 않았다.

대체로 염할 때의 의복도 담비 모피나 가죽 모자 그리고 장화 정도뿐이다.

입관 후 검붉은 도료로 칠하고, 밖은 세 줄의 황금 테를 두른다. 또 관 밖에는 겉 널을 쓰지 않았다.

부장품도 간단하다.

금주전자 둘에 잔 하나 그리고 사발 접시와 숟가락 하나가 전부다.

“응? 부장품이 다른 원 황제와 다른데? 사후에 수하들에 의해 더 생긴 건가?”

“다 나오진 않았지만, 통로의 벽화들도 많이 있었어. 정복하던 기록을 남긴 것 같던데.”

아루의 부연 설명이다.

13세기 페르시아의 역사가 주바이니(1226년~ 1283년)는 ‘세계 정복자 역사’라는 사서를 썼다. 그 저서에는 ‘여인 40명을 선발해 구슬과 옥, 장신구, 미포 장식으로 치장했다. 귀한 의복을 입힌 후 말에 각각 태우고 칭기즈칸의 영혼과 함께하려고 출발하였다’라는 기록이 적혀져 있다.

결국 원 황제들과 달리 순장을 했다는 뜻이다.

“너희는 칭기즈칸과 함께했으니, 많은 걸 알겠네? 그의 뿌리는 어디에 있어?”

“저희도 전부는 알지 못합니다. 단지 발해를 세운 고왕 대조영의 아우인 반안군왕 대야발의 19대손이란 소문이 들리긴 했지요.”

1240년경에 출간된 몽고비사((蒙古秘史)에 그의 족보에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있긴 했다.

“그런데 장식품들도 많고 금괴와 보석도 있는데? 원 황제들이 이런 부장품을 쓰나?”

“아, 그건 우리들이 가져다 놓은 것인데요?”

“엥? 그건 왜 여기다 둔 거지?”

“여기가 제일 안전하잖아요. 그리고 정복 전쟁을 할 때, 그곳에서 생긴 전리품 중 일부를, 저희가 빼내서 여기다 가져다 놨었죠.”

“요괴도 물질적인 것을 밝히나?”

“그냥 취미였는데요? 모으는 재미로 한 거죠.”

“너희 것이기도 하고, 또 다르게 생각하면 칭기즈칸 것이기도 하네?”

“뭐 그렇긴 하죠. 그런데 그건 왜요?”

“이 물건들로 박물관을 지어서, 있던 그대로 두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뭐, 모은 게 사라지는 건 아니니, 저희는 상관없어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너희도 그렇고 다른 요괴도 그렇고. 왜 하필 칭기즈칸의 무덤에 있는 거야?

진짜 단순하게 숨어 지내기 좋아서?”

“여긴 767년 전에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이곳의 기운이 좋다고 구미호들이 성령초를 옮겨놨거든요.”

“구미호? 아니 그게 여기서 왜 나와? 그리고 성령초가 뭐지? 불 밝히는 초? 아니면 풀?”

“약초이긴 해요. 그런데 구미호들이 아주 귀하게 여기는 보물이지요. 최상의 체형으로 바꿔주고, 혈관도 튼튼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피부도 좋아지고, 탄력을 평생 유지해주고요. 또 목소리도 한층 더 맑고 촉촉해집니다. 아 참고로 남자용은 아니고, 여자 몸도 성년이 넘은 나이엔 별 효과 없지요.”

“시골 장터의 만병통치약 같은 멘트네?

그럼 요괴들이 한 뿌리씩 다 먹었으면 이제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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