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4배 받고 8배 더!
한두 해 도박해본 것도 아니고, 흥분만큼 위험한 게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런 미하일 바르코프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약이 올랐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저 여자를 탈탈 털어 먹어버릴 생각에만 집중하자! 알았지? 미하엘?’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보는 그다.
“그럼 이제 둘만 남았으니, 시작합시다.”
“제가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 신자거든요? 판돈 시작은 두 배? 어때요? 좀 후들대죠?”
“흥! 겨우 두 배? 4배로 갑시다!”
“어머, 어차피 노 리밋인데, 뭐 그리 조급해요? 조루증 있으신가….”
농담이긴 한데 괜히 뜨끔해지는 미하엘이다.
“게임 중에 사담은 그만합시다. 시장 포커판도 아니고, 나 원 참….”
“자자, 두 분! 게임에만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패에서만 노 리밋 적용됩니다. 그 전은 판돈의 4배만 인정합니다.”
딜러가 충고 한마디를 던지고는 셔플을 했다.
양쪽에 시계방향으로 카드를 6번 돌린다.
하트 3을 내려놓았는데, 그다음 패에 스페이드 3이 붙어 버린 미하엘의 액면 카드다.
아루의 액면 패는 하트 4와 클로버 5.
볼 것도 없이 미하엘이 판돈의 4배를 넣었다.
아루는 콜만 하고 그것만을 받았고.
다음 카드에 미하엘에게 다이아몬드 3이 붙었다. 그리고 아루에겐 스페이드 4가 떨어졌다.
미하엘이 판돈 4배를 부르자, 아루가 그걸 콜로 또 받았다.
‘나는 3 트리플이고, 저쪽은 4 원 페어….’
다음 카드를 돌리자 미하엘에게는 다이아몬드 4가 나오고, 아루는 스페이드 5가 떨어졌다.
‘저쪽 4 트리플 가능성은 희박해졌고, 투 페어면…. 맥심으로 보면 저쪽은 풀하우스 난 포커네. 내 손에 다이아몬드 5가 있으니 확률은 더 줄겠군. 일단 4배만 가자.’
“이번에도 4배를 가지!”
쌓인 칩을 밀어 넣는 자신만만한 미하엘이다.
아루도 이번에 그냥 또 콜로 받는다.
첫판인데 벌써 쌓인 칩 액수만 해도, 무려 2만 달러다. 패 돌릴 때마다 8배씩 불어나니 저렇게 커지게 된 거다.
마지막 한 장이 돌아갔다.
판 위의 카드 끝을 살짝 들쳐 본 미하엘은 가슴이 짜릿했다.
‘흐흐, 2 풀하우스! 기다려라!’
“이번에도 4배!”
“호호호! 4배 받고, 8배 더! 이 맛이야!”
미하엘은 2시간 동안 1만 달러를 잃을 때 기억이 튀어나왔다.
총금액은 이 정도보단 작았던 것들이지만, 꼭 아슬아슬하게 지게 된 기억.
‘저년도 내가 포카나 풀하우스를 잡았을 확률을 계산했을 건데도? 저리 지른다고? 콜만 받던 초보가?’
2만 달러 판돈이 34만 달러가 되었고, 미하엘이 콜로 받으려면 16만 달러를 더 내야 한다.
’이거 첫판이 너무 커졌는데? 이런 순서는 바람직하지 못해.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것이 있었나?‘
“딜러 아저씨? 이런 하우스 사려면 얼마나 드나요?”
아루가 가방에서 수표를 꺼내며, 딜러에게 던지는 말이다.
“저, 저기 레이디? 게임 중입니다.”
‘헉, 하, 하우스?’
거기다가 수표까지 꺼내고 있었다.
저런 뻥카는 시장통에서나 쓰는 방식이다.
‘어제까지 헤매던 초보가 이런 판돈에 뻥카를 친다고? 100달러 딴것에 흥분하던 초보가?’
그런데 그 고민하는 순간 뒷머리로 싸늘한 느낌이 다가왔다.
‘싸늘한 느낌이 든다는 건,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의미겠지. 내 위기 감각이 나를 일깨우는군.’
“으음, 다, 다이!”
“오호호! 땡큐!”
아루가 중앙에 쌓인 칩을 서둘러 쓸어 오는 동작에, 그녀 앞에 놓여있던 카드가 바람에 휩쓸리며 뒤집어졌다.
“헉! 그, 그냥, 투 페어잖아!”
“응? 왜요, 투 페어면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전 그래도 양심은 있어요. 노 페어로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던데욧!”
딜러는 아루에게 좀 황당해했다.
‘결국 뻥카인 것은 같은데, 뭐가 양심적이란 것인지…. 뭐, 이것도 포커의 묘미이기도 하고. 우와 이런 판은 근래에 보기 힘들었는데. 그런데 진짜 초보가 맞나? 미하엘 씨 얼굴이 시뻘게지고 부르르 떠는 건, 처음 보네.’
미하엘의 뒷머리가 싸해진 건, 그의 뒤에 떠 있는 아쿠의 작품이다. 그걸 모르고 본능의 경고라고 착각한 건 미하엘이였고.
포커 게임은 계속 진행되었고, 첫판의 심리적 후유증과 4배 판돈은 미하엘에게 치명타였다.
4배씩만 따라가다가 아루가 지르면, 10판 중에서 2판만 겨우 이겼다.
‘이젠 어느 게 뻥카인지 진짜인지도, 구별마저 되지 않잖아. 아 미치겠네! 인제 와서 그만둘 수도 없고. 속임수는 분명 아닌데….’
기사를 시켜 가져온 부동산 등기 절반이, 아루에게로 벌써 넘어갔다.
‘초보 노름꾼이나 할 실수를, 벌써 몇 번 하는 거야. 뒷머리는 왜 자꾸 싸늘해지는 거야?’
위기라고 여겨서 빼면 뻥카고, 싸늘해지는 걸 무시하면 이번엔 진짜 메이드 카드였다.
본능의 감각이 뒤엉켜버린 미하엘이다.
그 감각으로 지금까지 도박판에서 잘 살아남았던 것인데, 이제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손기술을 써서 뒤집어야겠어.
설마 걸리진 않겠지?’
걸리면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이곳을 관리하는 마피아를 직접 상대해야 한다.
그 결과는 뻔한 것이고….
‘저년이 카드 경력은 분명히 없는 건 맞아.
이런 속임수는 누구도 본 적 없을 거고.’
카드 한두 장을 바꾸기엔 문제가 많았다.
카드 수량 문제도 있고, 원위치시키는 것도 혼자서는 위험이 컸다.
“저기 딜러!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지?”
“그럼 5분만 휴식 취하겠습니다.”
잠시 후 화장실을 다녀온 미하엘은 새로운 요구를 했다.
“딜러! 카드를 교체해주게!”
“아저씨? 카드 벌써 4번째 바꿨거든요?”
“흠흠, 그건 게스트의 권리 사항이네.”
“어휴, 그럼, 그렇게 하세요. 달라지지도 않던데, 진짜 조루인가….”
“이, 이….”
“미하엘 씨? 어느 카드로 할까요?”
“흠, 이번엔 제가 직접 고르도록 하겠네. 그래도 되겠지요? 너무 운이 안 따르니….”
“뭐, 그렇게 하십시오.”
미하엘이 4개의 카드 세트를, 허리까지 숙여 가며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카드 한 벌을 두 손으로 집더니, 냄새를 맡고 있다.
“이 카드에 행운의 냄새가 나는군. 이거로 바꾸겠네.”
게임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번 판은 분위기가 달랐다.
미하엘이나 아루나 맥심으로 질러댔다.
“4배 받고 4배 더!”
“좋아요! 받고 8배 더!”
“오케이! 받고 8배 더!”
.
.
받고 더 받고 더 받고….
아루가 지금까지 딴 걸 다 걸고도, 더하여 수표까지 털어냈다.
끝장을 낼 분위기였다.
당연하게도 미하엘은 가지고 온 부동산으로도 한참 모자랐다.
남아 있는 재산 전부에 대해 목록을 작성하고, 대기하고 있던 변호사의 공증을 거쳐 도박장에서 보증 섰다.
10분도 안 걸리는 일이었고 다들 능숙했다.
아마도 이런 유사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처분 시 20%의 몫은 도박장에서 가져간다. 딱 80%의 시세로만 계산하는 것이다.
도박장이 보증까지 서게 되자, 책임자까지 나와서 지켜보고 있다.
“자 이제 가진 것의 맥심이 되었습니다.
이번 승부로 결과는 끝이 납니다.
순서에 따라 미하엘 씨부터 공개하세요.”
자신만만한 미하엘이 히든카드를 뒤집었다.
“King 포커입니다.”
“와! 킹, 킹 포커!”
“헉! 역대 최고 큰 판을 미하엘 씨가.”
주변에 있던 경비들이 놀랐는지, 수칙도 잊은 채 목소리를 냈다.
“조용! 누가 떠들랬어! 딜러? 마무리해야지.”
도박장 책임자의 강경한 목소리에 다들 조용해진다.
“아, 아. 다음은 레이디가 오픈해주세요.”
“호호? 저요? 전 오픈하고 말고 할 것이 없어요. 이제 끝났는걸요.”
아루는 싱긋 웃으며 앞에 쌓인 물건들은 자기 쪽으로 다 당겼다.
“아, 아니! 레이디! 뭐, 하시는 겁니까?”
“뭘 하긴요? 몰수패니까 제가 이긴 거죠.
저기 미하엘 씨 안쪽 상의 주머니를 뒤지세요.
거기에 똑같은 카드 한 벌이 더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카드는 정교하게 표시된, 위조 카드입니다. 확인해보세요.”
아루의 말에 다들 놀라서 미하엘과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다.
“무, 무슨 모함이야! 그 카드나 뒤집어!”
“책임자님? 뭐 하시나요? 일단 확인부터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경비! 저기 미하엘 씨, 품을 뒤져!
미하엘 씨? 실례였다면 나중에 정중히 사과하도록 하죠.”
경비 둘이 달려와서 미하엘의 몸을 뒤지려 하자, 미하엘은 강하게 몸부림쳤다.
그래봤자 근육으로 다져진, 경비 둘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또 여차하면 나서려고, 아루의 경호원 둘도 자세를 잡고 있었고.
“책임자님! 정말 카, 카드 한 벌이 있습니다.”
“헉, 저게 어떻게 유입되었지? 다들 몸 검사 어떻게 한 거야? 나중에 사유서 쓸 준비나 해!
그리고 미하엘을 끌고 나가서 가둬놔!”
경비들에게 지시하고는 뒤로 돌아서서 아루를 쳐다봤다.
“이곳의 책임자로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게 하여 죄송합니다. 책임질 게 있으면,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뭐, 결과적으로는 제가 피해받은 건 없으니, 이 정도로만 할게요.”
“하하, 정말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딜러? 뭐 해? 여기 레이디 분 소유가 된 물건을 다 챙기고, 변호사와 동행시켜드려.”
“호호, 고맙습니다. 그럼 제가 오늘은 바빠서 나중에 또 뵙도록 하죠.”
아루가 딜러가 챙겨준 가방을, 경호원들에게 일임하고 룸 밖으로 나섰다.
“저기! 잠시만요. 정말 궁금해서 그럽니다만, 미하엘의 속임수를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우리 딜러도 몰랐던 것 같아서 말이죠.”
“제가 귀가 민감하거든요? 그런데 미하엘 씨가 화장실 다녀올 때 구두 소리가 달랐어요.”
“네? 그게 무슨?”
“왼쪽 신발 뒤축에서 빈 공명 소리가 났거든요? 그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그리고 카드를 굳이 허리 숙여 가면서까지 바꾸고, 냄새도 맡는 게 수상했었어요.”
“의심만 했지, 증거는 없었던 상태였네요?”
“호호, 그럴 리가요. 이 카드가 그전 카드랑 느낌이 묘하게 다르길래, 살짝 기울여서 보니 미세한 표시들이 있던데. 이거 그거죠? 타짜들이 쓴다는 그 공.장.목! 컴퓨터에서 포커를 익힐 때, 누가 쓴 글을 본 적이 있거든요.”
“와우, 대단하시네요! 전직 KGB 현장 요원이라 해도 믿겠는데요? 딜러? 그 카드 바로 확인해봐!”
딜러가 카드 한 장을 집어 빛에 비춰 보더니,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다.
“맞습니다. 변조된 카드네요. 그런데 카드를 통째로 바꾸는 속임수는 처음 봅니다.”
“미하일의 소문이 안 좋더니, 저런 비밀이 있었군. 속 시원히 알게 되어 후련합니다.
전 또 내부 공모자가 있었나 하여, 마음을 졸였거든요.”
“미하엘 씨가 작성한 부동산과 재산 목록 부분에 대해선, 변호사와 협의할게요. 그리고 그 몫으로 20%를 대신 드리면 되죠?”
“네, 아까 그 변호사와 함께 처리하시면 됩니다. 그럼 오늘의 대박 축하드리고, 또 한 번 감사드립니다.”
“네, 그럼 진짜로 가보겠습니다.”
아루가 룸 밖으로 나가자, 딜러가 조심스레 책임자에게 다가왔다.
“흐, 그런데 굉장한 액수인데,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요?”
“자네? 죽으려면 혼자 죽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