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75화 (75/250)

75화. 애라도 낳아드려요?

태월은 눈을 껌뻑이며 아루를 쳐다본다.

“나랑 아쿠가 할 수 있어.”

“어? 너희가 포커를 칠 줄 알아?”

“지금부터 배우면 되는 거지. 뭐가 문제야?”

“헐, 지금 배워서 전문 도박사를 이긴다고?”

어이없어하는 태월의 표정을 보고는, 아루가 픽 웃는다.

“그 사람 거의 사기 도박꾼이라며? 그런데 그게 대단해? 우리가 누군지 잊었어? 둘 중 하나만 정령 본체로 돌아가면 돼! 상대의 패를 우리가 다 볼 수 있는데, 지려야 질 수가 없지. 사기? 치라 그래. 그 순간 잡아내면 되지!

그리고 우린 변신이 가능해.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변하면 돼! 이왕이면 미인으로?”

“너희 위험하지 않겠어?”

“태월은 끼어들면 안 돼! 정체를 들키면 회사도 문제가 되고, 또 미성년자가 도박하면 큰일 나지 않아?”

아루의 이야기로는 승부는 결정이 났다.

다만 안전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서 바트르에 그 땅을 3배 받고 파는 거지. 그럼 그들은 의심을 못 하잖아.”

“안전은? 그게 젤 중요하잖아.”

“그건 태월이 준비해야지. 경호를 구하든가.

단, 우리가 고용한 걸로 해야 해.”

“그럼 괜찮네. 전문 인력을 쓰면 되겠지.”

“우리 안전은 그리 신경 안 써도 돼. 정령을 죽일 존재가 흔할까? 무슨 수로?”

“하긴 최악의 경우 정령 본체로….”

“태월! 그 도박사와 한판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봐. 그건 안 떠오르네.”

“그래, 방법을 찾아볼게. 그가 도박사라면 자주 가는 도박장이 어딘가 있겠지. 일단 포커부터 해보자. 컴퓨터로 되겠지?”

결국 셋은 포커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 외 도박장에서 흔히 하는 다른 도박의 규칙도 익혔고.

컴퓨터 모뎀을 통해 기본 자료를 모았고, 그걸 셋이서 연습도 했다.

“아, 뭐야? 벌써 122달러나 잃었네?”

“호호, 역시 난 이쪽으로 천재인가 봐!”

“그럼 언니가 100달러를 땄으니 당첨! 난 20달러 밖에 못 땄어. 결국 언니가 도박사로 결정 남! 그럼 난 수신호 연습을 해야겠어요.”

컴퓨터를 지금까지 하고 있던, 아샤가 아루에게 손짓한다.

“언니? 이 여자들 어때? 내가 수집했어.”

“오? 괜찮네? 강한 이미지에 섹시함?”

“여기 1번 여자 얼굴에 3번 여자 몸 어때?

그리고 헤어 디자인은 2번 여자.”

“오케이! 좋은데? 기다려봐.”

-쉬 리링!

“어때? 쥑이지?”

“아이, 언니! 엉덩이가 너무 크잖아! 좀 줄여.”

“얼씨구, 고만들 하고 다들 자. 나도 졸리다.

또 안방 가서 컴퓨터하지 말고 푹 자. 낼 지각하면 안 되잖아.”

태월은 셋을 방 밖으로 쫓아내고, 침대에 엎어져 잠을 청한다.

아샤의 방은 따로 마련했는데도, 잠을 잘 때는 꼭 안방에 가서 잤다.

이유를 물으니 언니들 냄새가 좋다고 했다.

정령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언니들! 빨리 나와. 나 학교 늦어.”

“어, 다 입었어! 자자, 가자!”

늘 비슷한 분위기의 부산스러운 아침이다.

아쿠와 아루가 회사로 가는 길에, 아샤를 내려주기에 벌어지는 장면이다.

며칠 내로 도박사를 판에 끌어들여야 하는, 고민이 생긴 태월이다.

‘삼 일 후면 한국에서, TW 건설의 최성국 사장이 오는데. 시간이 애매하네.’

가능하면 그 전에 해결하고 싶지만,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될지는 모를 일이다.

샤후르타 선착장에는, 알혼팀 현장 사무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태월과 알혼팀 절반이 여기로 출근을 한다.

“에릭 대리? 그 도박사가 자주 가는 도박장을 한번 알아보세요. 뭐 만나야 결판을 짓든가, 아니면 제외하든가 할 터인데.”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며칠 쫓아다니다 덕분에 그 운전기사랑 친해졌습니다. 술값 좀 쥐여주면 그 정도 정보는 줄 것입니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으니, 서둘러 주세요.”

“네, 바로 나가보겠습니다. 그 기사가 도박사를 데려다주고, 아침 먹으러 늘 가는 단골 식당이 있습니다.

아마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에릭의 말대로 진짜 한 시간도 안 걸려, 그 도박장이 레이더에 잡혔다.

‘에릭 이 사람 의외로 이런 쪽으론 유능한데?’

“대리님은 지금 그 도박장 주변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가실 건가요?”

“흠, 그럼 잠시 기다리세요.”

태월은 밖으로 나와 아루에게 연락을 했다.

“어, 레이더에 잡혔어. 급한 일만 처리하고, 둘이 이리로 넘어와. 오늘은 놀기만 할 거니까. 평소 실력대로 하면 돼.”

평소 실력이란 게 말 그대로, 초보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아루가 태월에게 100달러나 땄지만, 태월이 워낙 못 쳐서 딴 거다.

그러니 아루가 여전히 초보인 것은 맞다.

“마카르 팀장님? 혹시 경호업체 아는 곳 있습니까? 신용 있고 입김이 강한 곳요.

비용이 많이 들어도 상관없고요, 딱 이틀만 고용합니다.

아, 그럼 두 번째 그 경호팀을 소개해 주세요.

아뇨 오늘부터 해서 내일까지요.

도박장에 갈지도 모르니, 그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하, 제가 도박하는 게 아니고요.

고객 한 분이 그럴 거 같아서요.

여자분인데 혼자서 그런 곳은 위험하잖아요?

네, 그럼 그쪽에 연락해서 이리로 오게 해주세요. 제가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리야라는 고객이에요.

우리 회사는 드러나면 안 됩니다.”

마카르는 역시나 이르쿠츠크에서 마당발이었다. 지금 소개해 준 경호팀은,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 출신들이다.

흔하게 보는 어깨 경호원들이 아닌 전문가다.

소련이 해체되고 나서, 서방의 돈들의 러시아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 분위기를 타고 러시아 전역에, 도박장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시절이다.

“네, 그럼 두 시간 후에 보기로 하죠.”

2시간이 지났을 즈음, 태월이 기다리고 있는 도박장으로 아루와 아쿠가 먼저 도착했다.

아쿠는 이미 정령 본체 상태다.

아루의 오늘 모습은 30대 초반쯤 되는, 도발적 섹시함을 갖춘 돈 많은 남자의 세컨드 분위기다.

하얀색 모피코트에 속에는 붉은 드레스를 갖춰 입고 있었다.

입에서는 살짝 술 냄새가 나는데, 음주를 한 것처럼 위장했을 뿐이다.

그리고 10분쯤 지났을 때, 정장을 걸친 두 명의 경호원이 도착했다.

그중 조장인 듯한 한 명은 마른 체형인데, 눈빛이 잘 벼린 칼날 같았다.

태월이 눈치를 주자, 아루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마리야예요. 제 경호로 온 분들이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마리야 양의 신변을 이틀간 지켜줄 빅토팀의 파벨입니다.

이쪽은 제 동료 네스토르고요.”

“어머, 반갑습니다. 믿음직스럽네요.

그리고 부탁이 있어요. 마리야 양 대신에, 이틀간만 호칭을 아가씨라고 불러주세요.

그 호칭에 익숙해서요. 그럼 잘 부탁드려요. 촌동네에 온 김에 도박장이란 데를 한번 가보려고요. 괜찮겠죠?”

“아가씨, 아무런 염려를 안 하셔도 됩니다.”

아루는 도박장 입구로 보이는 곳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아루가 연습해 본 것은 세븐포커가 전부다.

정령 본체로 들어온 아쿠는, 태월이 말한 왼손등에 작은 거미 문신이 있는 자를.

포커 룸 중 한 곳에서 찾아냈다.

그 룸에는 3개의 포커판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한 곳에 그나마 빈 자리가 있었다.

그곳에 가만히 앉았다.

목표로 한 자와는 다른 테이블이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오늘은 그냥 눈도장만 찍으면 될 일이다.

전통적인 러시아 미인이라 칭할 수 있는 여자가 나타나자, 등장 때부터 주변 시선이 몰려왔다.

“이 판 껴도 되겠죠?”

“하하, 당연합니다. 자리만 있다면, 누구나 낄 수 있죠.”

“딜러? 한눈팔지 말고 얼른 패나 돌려.”

물론 개중에는 도박판에 미쳐, 여자에 관심 없는 사람도 끼어 있기 마련이고.

아루는 아쿠의 신호에 따라 열심히 하기는 했으나, 좋은 패에서는 요령이 부족해서 많이 따지 못했다.

상대를 끌고 가야 하는 심리전에서, 허점을 보이며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초보인 게 여실히 드러났다.

실력을 숨긴 게 아니라, 진짜 초보라는 걸.

상대의 패를 알고 있음에도, 제대로 따지도 못하는 아루다.

그래도 두 시간 정도가 흐르자, 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미하일 바르코프는 경호원을 둘씩이나 데리고 다니는, 그 미인에게 아까부터 눈길이 갔다.

입은 옷부터 시작해서 가방까지, 명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

‘어디 돈 많은 영감의 애첩쯤 되는 것 같네.

그런데 포커도 잘 못 치면서 도박장엔 왜 온 거야? 오늘 저들에게 호구되어 주려고 온 건가? 아 저 자리에 끼어야 했는데 아쉽군.’

미하일이 보기에 지를 땐 과감하게 배팅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설펐다.

또 기권할 때는 깨끗이 물러나야 함에도, 꾸물꾸물 따라간다.

매끄럽지 못한 전형적인 초보 호구였다.

그저 도박의 재미에 한발 걸친 그런 호구.

“파벨? 이거 가져가서 칩으로 좀 바꿔 와요!”

“아가씨, 벌써 3천 달러나 잃었는데요?”

“그냥 바꿔 오라면 바꿔 와요. 몇 푼 되지도 않잖아?”

그리고 3시간쯤 되자 본전도 찾았고, 더구나 3백 달러 정도를 따게 되었다.

심리전에 조금 눈을 떴기에 그런 것이다.

상대 패를 다 알면서, 이 정도밖에 못 딴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고.

“호호호, 역시 실전이 훨씬 재미있는 거였어. 파벨? 이 칩 좀 챙겨. 처음 해보니, 허리가 아파서 더는 못하겠어.”

“네, 아가씨.”

“본전 빼고 남는 3백 달러는 파벨에게 주는 선물이야. 갈 때 애들 선물이나 좀 사다 줘.

오늘 딴 거 봤지? 내일 또 와야겠어.”

“네, 감사합니다.”

파벨이 생각하기에, 잠시 아가씨 놀이에 따라준 것 치곤 큰 금액이었다.

자기들 이틀 치 수익보다도 컸으니.

아루가 일어서서 나간다.

호구를 제대로 털지 못한 아쉬운 눈들이, 그녀 등에 머무른다.

다음 날 비슷한 시간에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미하일 바르코프는 자신의 테이블에 앉고 있는, 그 여자를 보며 속으로 환호했다.

‘흐흐, 오늘 이 판에 내 편이 끼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해 봤을 거다. 오랜만에 제대로 건졌어. 크크크, 탈탈 털어주마. 그 명품 옷들도 다 벗겨서 가져가겠어.’

속옷만 입고 떠나갈 그녀 몸을 떠올리면서, 즐거운 상상에 빠져보는 미하일이다.

이 도박장에서는 현물로도 딜이 가능하기에, 해보는 상상이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부동산 귀금속 등등.

그런데 미하일의 생각대로 잘되지 않았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오히려 자신이 1만 달러 가까이 잃은 것이다.

자신이 좋은 패를 들면 한 번 정도만 따라가다 죽어버렸고, 서로 붙게 되면 묘하게 자신보다 조금 높았다.

그리고 둘이 치는 판이 아니기에, 변수가 생겨 흐름이 자꾸 끊기는 상태였다.

자신의 파트너도 제대로 대응 못 해 일찌감치 떨어져 나갔다.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가씨? 조금 큰판 어떻습니까? 노 리밋!”

‘노 리밋(no-limit)’ 즉, 한도 없이 치자는 고액포커 방식이다.

“홍, 제가 오늘 운이 엄청나게 따라오는데, 감당할 수 있으시려나? 현금이 그만큼 있으세요? 저 보기보다 간 큰 여자예요.”

“하하, 여기 도박장은 현물로도 받아줍니다. 감정사가 따로 있고 시세의 80%로 쳐줍니다. 어때요? 아가씨께서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잘못하면 옷까지 홀랑 다 털리고, 알몸으로 가야 할걸요?”

“어머? 이 아저씨가 누구 몸을 넘봐요?

현금 동원은 얼마든지 가능하거든요? 아저씨나 집까지 안 털리게 정신 바짝 차려요. 거기 두 쪽만 달랑 남아, 개평 달라고 칭얼대지 마시고. 그리고 아저씨 옷은 저렴해서 안 받을게요.”

이마에 살짝 핏줄이 비치고 약이 바짝 오른 미하일 바르코프가, 그녀를 째려봤다.

“어머? 뭘 그리 사랑스럽게 쳐다봐요?

애라도 지금 낳아드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