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이 땅이 도박꾼의 땅?
태월은 자금 문제는 어렵지 않다 여겼다.
아직 마약왕 비자금이, 이번에 투자된 1,500만 달러 외에도 3,500만 달러가 남아있다.
“그럼 그쪽으로 연계해주세요. 바트르에 2차 자금 증자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겠습니다.
대신 국가 보증이어야 합니다.”
“오우! 좋아 좋아요! 그런데 바랴트 공화국에 투자할 자금 규모를 알아야, 그들과 협상을 할 수 있을 터인데….”
“일단 알혼섬 매입자금과 비슷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 2,000에서 2,500이군. 그럼 그렇게 알고 빠르게 추진함세.”
“오늘 중으로 중간 활동비로 10만 불을 지급하겠습니다.”
“빠듯했는데, 고맙소!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보겠소이다.”
이고르 아브라모비치와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고, 태월은 아카에게 오늘 이야기를 전했다.
증자로 2,500만 달러에 맞춰, 보낼 준비를 하겠다고 한다.
“아카? 그럼 지분에 변동이 생기겠네?”
“그게 지금 그리 의미 없잖아? 러시아 쪽만 20%로 묶어 두면 돼.
지분 변동 없이 지분만큼, 미국 RAON이 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될 거야.”
“오케이! 그렇게 아쿠에게 전할게.”
BATR의 공개채용은 120:1이라는 엄청난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태월도 면접에 참여하여, 영혼의 색으로 그들을 판단했다.
그리고 이십 일 정도가 지났을 때, 알혼섬 매입과 부랴트 공화국 공동개발 투자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알혼섬 내에서 살아가던 부랴트족을, 부랴트 공화국에서 잘 다독여 준 덕분이다.
덕분에 탈락한 공채 직원 중에서, 후 순위자들이 추가로 합격하는 진풍경이 생기게 되었다.
“자자, 오늘 알혼섬이 우리 땅이 되었다는 것에 파티해야겠지?”
“오우, 오우! 파티, 파티!”
“어째, 막둥이보다 아루가 더 아기 같네?”
“아루 언니 몸을 보면 저랑 비슷한데요. 뭐.”
“얘! 그럴 때는 동안이라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동안은 얼굴만 해당하는 거거든요? 몸 어린 걸 동안이라고 하진 않아요.”
“아휴, 아샤가 점점 날카로워지네.
아쿠? 너 동생 좀 공부 못 하게 해.”
아샤는 자신의 성을 버리고 알리사의 성을 선택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아샤라서, 기존의 성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아샤의 정식 이름은, 아나스타샤 바실리예프다.
‘하늘에 있는 안나도 기뻐하겠지?’
태월은 하늘에 있을 그녀 가족들에게도, 이렇게 안부를 전한다.
요리 사부인 아쿠를 따라 아샤가 주방을 어지럽히는 중이지만.
그래도 즐거운 파티 준비였다.
이고르 아브라모비치는 총 100만 달러를 받게 되었다. 알혼섬 매입과 부랴트 공화국 공동개발 사업을 성공시킨 대가로.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제일 바빠진 건 아쿠였다.
이르쿠츠크 주지사와의 만남과 협약식도 있었고, 부랴트 공화국과의 협정식도 해야 했으니.
“태월? 한국에 가는 건 또 한 달 미뤄야겠어요. 너무 정신없이 바빠! 아루 언니가 돕지만, 궤도에 올릴 때까진 태월도 도와줘야 해요.”
“아, 집에서는 슬슬 성화를 부리던데….
어휴, 할 수 없지 뭐. 딱 한 달이다!”
“응, 고마워요! 항구 쪽을 맡아주세요.”
“샤후르타 선착장과 도마 선착장? 내 생각은 음…. 장기적으로 보면 어떨까 해.”
“어떤 식으로요?”
“어차피 선착장은 기존 것을 그대로 쓰면 돼! 다만, 다리를 놓았으면 해. 샤후르타와 알혼섬 도마 선착장까지는 불과 1.5km에 불과해.
러시아 사람들이 알혼섬에 많이 가지 않는 이유도 선박들이 작고 대기시간이 길어 불편해서야. 알혼섬을 국제적으로 발전시키려면, 다리가 필수야!”
“이르쿠츠크의 도움 없이 하려고요?”
“그들은 지금 예산도 부족해 다른 것도 엄두 못 내는데 뭘 바라. 한국의 TW 건설을 동원하면 가능해. 자금의 절반만 내고, 나머진 분할 지불 방식으로 취하자고.”
“운항비 받던 것을 통행료 받는 식으로 가면 되겠네요?”
“그렇지, 그럼 회사와 관광객 서로 윈윈이지.”
TW 건설도 해외 수주 경력이 쌓이니 좋은 일이다. 더구나 공장 같은 걸 짓는 게 아닌, 다리를 놓는 일이다.
여기서 얻은 노하우가 다른 곳에 크게 쓰일 것이다.
부랴트 공화국에서의 건설 수주와도 연계가 될 것이고.
지금 당장은 부랴트 공화국과 자원개발과 바이칼호 관광 개발에 협정만 한 상태다.
건설 쪽은 진척 상황에 맞춰 연계하기로, 구두상 예약되어 있을 뿐이고.
-띠리링! 띠리링!
“하하, 엄마! 잘 계셨지요? 미안해요. 한 달 미뤄야겠어요. 저번에 얼핏 이야긴 해드렸는데, 이제 다리를 놓아야겠어요.
네 맞아요. 알혼섬 도마 선착장까지 잇는 다리요. 최성국 사장이 직접 왔으면 좋겠는데요?
네, 그럼요. 이게 잘 진행되어야, 부랴트 공화국으로 건설이 진출하지요.
네, 그럼 열흘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태월은 사후르타로 발 빠르게 넘어갔다.
알혼섬 매입 때 이미 중요 부지를 확보하긴 했어도, 주변까지 넓혀야 할 상황이라 모자란 감이 있었다.
사실 그 당시 호숫가 쪽 부지는 국가 땅이라서, 손쉽게 불하받을 수 있었지만.
알혼섬 개발 소문도 돌아서 가격이 상승하고 있었기에, 더 오르기 전에 확보해야 했다.
현재는 20% 정도 상승 폭까지 오른 상태다.
다리가 놓일 거라는 건 대외비이기에, 아쿠와 태월만 아는 사실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몇 배는 뛰었을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개발부 알혼팀의 에릭입니다.”
“아 어서 오세요. 에릭 대리! 지금부터 할 일은 이 지도에 붉게 그어진 땅을 매입해야 합니다.
아마 20% 정도는 오른 상태이니 그 가격 그대로 주고 빠르게 매입하세요.
버티는 사람들에겐 이면 계약을 해서라도, 25%에 맞추시고요.”
“네, 그럼, 저희 팀원과 함께 진행하겠습니다.”
태월도 놀지는 않고 파란 금이 그어진 땅들을 사러 다녔다.
생각보다 태월에게 호의적인 땅 주인이 많았는데, 이유는 그가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더 높은 비중의 이유는, 그를 부랴트족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러시아어를 저리 잘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이다.
게다가 간간이 부랴트어를 쓰기도 했고.
“이사님 현재 일주일간 작업 진척도입니다.”
에릭 대리가 가져온 지도에는, 제일 큰 땅만 남기고 나머진 다 완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땅이 없으면 다른 땅은 애매해진다.
“이 땅이 진행 안 된 이유가?”
“접촉하던 원주인이 전문 포커 도박꾼에게 털렸습니다. 그런데 새로 땅 주인이 된 자가, 가격을 3배를 부르고 있습니다.”
“30%도 아니고 3배? 그 사람이 그 도박꾼인가요?”
“네, 그 사람이 재산도 꽤 되는데, 어리숙한 재산가들을 털어먹고 다녀서 불린 거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케이스지요.”
“그런데 어떻게 그리 잘 압니까?”
“동네 쉬쉬하는 소문이 그렇더라고요.”
“이 동네 땅이 많은가 보네요?”
“저희가 매입한 땅을 빼고 나면 거의 그 사람 땅이라고 합니다. 원래부터 땅 주인은 아니었고요. 사서 늘린 것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사기도박으로 대지주가 되었단 소리가 있습니다.”
태월 입장에서는 인제 와서 그 땅을 포기하면, 지금까지 산 땅이 아깝게 된다.
“시간도 되었으니 일단은 오늘 퇴근들 하세요. 수고들 많았습니다.”
“네, 이사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태월도 택시를 불러 퇴근을 했다.
아쿠와 의논이 필요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루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
대신 아쿠와 아샤가 한창 저녁 준비 중이다.
“오빠! 오늘 고생하셨어요. 씻고 앉으세요. 아루 언니도 30분 정도면 도착하신대요.”
아루가 관리 업무 쪽을 돕다 보니, 퇴근이 자주 늦다. 아쿠랑 다른 파트를 맡고 있기에, 둘의 퇴근 시간이 같지 않았다.
“아샤랑 아루 둘 다 수고하네? 오늘 저녁은 유난히 냄새가 진한데? 고기?”
“아루랑 둘이 고생하는 것 같아 내가 특별식을 만드는 중이지.”
무얼 만드는지 아쿠가 의기양양하다.
“호호, 기대하셔도 좋아요!”
아샤는 이르쿠츠크에 온 지 두 달이 되었는데, 몸이 많이 바뀌었다.
말랐던 몸도 살이 올랐고, 피부는 더욱 좋아졌다. 하루하루가 즐거운지 표정도 밝다.
오븐에서 훈제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고기 같았다.
조금 기다리니 피곤함에 지친 아루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루, 오늘 수고 많았어.”
“태월도 고생했어. 일은 많이 진척되었다며?”
“잘 되긴 했는데 아직 미완성이야.”
“언니도 얼른 씻고 나와요. 이제 특별식의 맛을 봐야지!”
“호호, 무슨 특별식이길래? 얼른 씻고 나올게.”
사실 아루는 씻을 필요도 없다. 불의 정령이라서 자체적으로 해결되지만, 습관이 되었다.
아루가 나올 시간에 맞춰, 상 위에 여러 가지 요리가 놓인다.
“어? 이거 샤슬릭이잖아. 특별요리가 이거?”
조금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태월이다.
“호호, 실망하긴 이르지! 이게 그 유명한 러시아 불곰 꼬치구이라는 거예요!”
“응? 곰 고기로도 꼬치구이를 만드나?”
“그럼 우리 바실리예프 집안의 비전 요리!”
“비전? 이거 그냥 양고기 대신 곰고기 꿰면 되는 거 아냐?”
“고기마다 다 특징에 따라 구워야 하고, 또 준비 방식도 다르거든? 그리고 이 소스는 우리 집안의 비법이에요.”
아쿠가 물의 정령인데 무슨 집안 타령일까.
‘우리 바실리예프’라고 하는 아쿠의 언행에, 괜한 웃음이 나오는 태월이다.
아루도 그렇지만 아쿠도 어느새 인간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큼직하게 썬 고기에 후추와 소금 그리고 각종 향신료로 간을 한 후, 꼬치에 꽂아 훈연하는 게 샤슬릭이다.
“이상한데? 고기만 바뀌었지 밖에서 파는 거랑 비슷한데?”
“그럼 집에서 칼국수 만들면 밖의 칼국수랑 겉으로 다를 게 뭐가 있어요?”
“음, 뭐 그리 말하니 틀린 말은 아니네. 항복! 잘 먹겠습니다.”
태월도 한 점 떼어 먹어보니, 아쿠가 자신만만할 만했다.
“오? 이거 풍미도 좋고 육즙이 넘치네? 곰고기라 해서 노린내라도 날 줄 알았더니. 꽤 맛있잖아?”
“호호, 그러니까 우리 바실리예프 가문 비법이라니까. 아루 언니는 어때?”
“응. 정말 맛있어. 아쿠! 이거 먹다가 밖에서 사 먹으려면 못 먹을 거 같은데?”
“이 수프도 먹어보세요. 이건 제가 언니에게 배워서 한 거거든요.”
“오, 원래 수프부터 먹어봤어야 하는데, 아쿠의 특별식이 궁금해서 순서가 바뀌었네.
응? 아샤가 꽤 요리 재능이 있는데? 담백하면서도 깔끔해.”
“어, 정말 괜찮은데? 아샤의 첫 요리 합격!”
태월과 아루의 칭찬에, 아샤가 부끄러운지 몸을 배배 꼰다.
이렇게 바실리예프의 특별식과 아샤의 수프가 빛나는 저녁 식사였다.
“그러니까, 그 도박사가 그 땅 주인이라 이거지? 정보가 흘러갔을 리는 없고, 도박사라서 그런지 눈치로 때려 맞춘 거 같은데?”
“나도 그래서 좀 찜찜해하고 있지. 아쿠 생각은 어때?”
“그래도 결국은 사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 도박사가 3배에도 안 팔 거 같은데요?”
“응? 아쿠야, 왜?”
아루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음, 나도 아쿠 생각과 같아. 이거 떠보는 것 같아. 우리가 3배에 응하면, 생각이 바뀌었다고 더 부를걸?”
태월의 말까지 보태지자, 아루는 그제야 끄덕였다.
그러면서 손뼉을 딱 하고 친다.
“이러면 어때? 그 사람 도박사라며?”
“전문 포커 도박사라던데?”
“그럼 한 판 붙자 해!”
“헐. 나보고 포커를 치라고? 나 포커를 해본 적도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