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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72화 (72/250)

72화. 미국에선 다 그렇게 하는 거야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여직원 공개채용은 안 하나요?”

“네? 왜요? 아시는 분이 있나요?”

“흐. 제 조카가 능력은 있는데, 이곳 경기가 좋지 않아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네요.

모스크바 대학 회계학과를 졸업할 때만 해도 기가 많이 살았었는데.

요즘 적성에 맞는 일자리가 이곳에 없다 보니, 모스크바로 다시 가려 하더라고요.”

“아하, 그럼 이번 주에 면접 보러 오라 하세요. 이름을 알려주시면 데스크에 연락해 둘 테니,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하하, 감사합니다. 적어 드리겠습니다.”

메모지에 조카의 이름을 써주고는, 사망신고서 양식을 가지러 갔다.

아쿠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작성을 해버렸다.

아쿠는 가방에서 전화국 기록지를 꺼내 그에게 내민다.

“거기 체크된 것이 집 전화와 선박사 간의 당일 통화기록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려요.”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처리하겠습니다.”

“아 온 김에 처리할 게 하나 더 있네요?”

“네, 말씀해보세요.”

“제 여동생 친구가 할머니랑 살다가 돌아가셔서 혼자가 되었어요. 보육 시설로 갈 거 같아서 제가 법적 보호자가 되려고요.

지금 집에 데려다 놓았는데, 같이 살 생각이거든요?”

“그럼, 낼 함께 오시기 바랍니다. 필요한 서류는 적어 드리도록 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구비서류가 적힌 메모를 받게 된, 아쿠는 개운한 마음으로 관공서를 나섰다.

차 안으로 들어가자, 뒤따라온 아카가 정령체에서 본체로 변신을 했다.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태월에게 설명한다.

“잘 처리하고 왔어. 이제 회사로 바로 가자.”

“어머? 언니 몸이 멋지네. 나도 얼른 커야 하는데, 성장이 더디네.”

“우리가 성장이 늦은 게 아니거든?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마음 느긋하게 가져.”

“응, 알았어. 태월, 여기 봐봐! 언니도 속옷 안 입잖아. 정령이나 영령은 속옷 불편하다니까.”

자기 할 말만 하고 차를 출발시키는 아쿠다.

아쿠의 말에 태월이 고개를 돌리다가 인상을 쓴다.

“아카? 옷은 마저 입고 말해. 보기 민망하네.”

태월의 표정과 말에 아카가 피식 웃는다.

“태월? 너 지금 몸에 문제 있는 거 알지?”

“응? 내가 왜?”

“너 지금 16살 한창 사춘기인데도, 여자 몸 보면 아무런 감정이 안 생기잖아. 그냥 민망한 정도일 뿐!”

“그거야 너희 본체가 인간이 아니니 그런 거잖아.”

“그럼 야한 여자 사진을 보면 어떤데?”

“그것도 진짜가 아닌데 느낄 게 어딨어?”

“정상적 남자라면 느끼거든? 너 남자치곤 음기가 많지? 그래서 그런 거 같더라. 그리고 내가 아루나 아쿠랑 달리 정령이 아닌 영령이야. 정신적으로는 내가 격이 더 높아. 그래서 내가 이런 조언을 하는 거야.”

“맞아! 태월이는 아루 언니랑 나를 봐도 그냥 눈 버린다고만 말해.”

아쿠까지 껴들었다.

“음, 스님 할아버지도 내가 음기가 많다고 하긴 했어. 그리고 달의 정기를 받아서잖아.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될 거나 있나? 난 이렇게 건강한데?”

“성별을 제외하면 너야 아주 건강하긴 해.

나쁘게 보면 넌 성호르몬에 문제가 있는 거야.

미국에서 보면 너 나이에, 벌써 여자를 사귀고 관계를 맺는 게 흔해.

한국에서도 조금 차이 있긴 하지만, 너처럼은 아니거든? 그냥 흘려듣지만 말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

“흠, 생각해볼게.”

“음양오행을 배웠다면서, 본인 몸엔 그 이치를 두지 않았네?”

“그, 글쎄….”

괜히 뜨끔해지는 태월이다.

말은 생각해본다고 했지만, 아카가 보기엔 건성으로 보였다.

***

회사에 도착하니, 바브르 법무법인 공동 대표인 드미트리 보이크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브르 법무법인과는 업무협약도 맺었다.

그와 함께 2층의 회의실에서 정관 변경을 했다. 그리고 자본금과 투자 지분도 조정했고.

“다국적 기업 BATR는 러시아 BATR가 20%의 지분을, 미국 RAON이 1천5백만 달러로 48%의 지분을 갖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TW가 1천만 달러로 32%의 지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렇게 지분이 나뉘었지만, 결국은 태월의 지분이다.

한국 TW는 태월이 대리 참석한 것이다.

셋이서 기념사진도 멋지게 찍었고.

오늘의 공적인 일정은 이제 끝났다.

쉐보레 서버번은 알리사의 집으로 향했다.

“조금 늦었네? 벌써 저녁 6시야.”

“뭐 도착이야 오래 안 걸리니 괜찮아.

밤 11시에 이륙하는 거면, 3시간 후에는 공항으로 출발해야겠네.”

“그래야지.”

“아, 핸드폰 매장에 좀 들러야 해.”

“핸드폰은 왜? 고장이라도 났어?”

“아니 아샤에게 주려고, 삐삐도 없던데 이참에 사주려고. 오늘 신형이 들어온다고 했거든? 매진되기 전에 사야지.”

“흠, 이달 2월에 출시된 건 노키아밖에 없을 건데?”

“오? 역시 정보통신은 잘 아네. 맞아. nokia 2110! 최초 벨소리까지 탑재돼있고, 검은색만 있던 핸드폰에 컬러를 입혔지. 빨강으로 사줄까 하는데?”

“괜찮네. 좋아할 것 같은데?”

중심가에서 제일 큰 매장에 들러, nokia 2110폰을 구매했다.

빨강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었는데, 늦지 않아 다행이었다.

개통은 1시간 후에 된다고 했다.

집에 들러 아루와 아샤를 태우고, 호텔 뷔페식당으로 왔다.

러시아에 온 이후로 처음 와보는 뷔페다.

“아샤야 많이 먹어!”

“저 이런 데 처음 와봐요. 와 음식이 200가지가 넘는다더니 정말 많네요.”

“많이 담지 말고 조금씩 담아서 맛만 봐. 그리고 그중에서 입맛에 맞는 걸 더 먹어.”

“네, 알리사 언니. 그런데 알리사 언니 애칭이 아쿠예요?”

“으응. 맞아, 아쿠.”

“다들 그렇게 부르니 저도 아쿠 언니라고 할게요. 괜찮죠?”

“그렇게 해. 그리고 내일 나랑 관공서 좀 가야 해. 법적 보호자 신청하려는 거야. 그리고 이제 학교도 다녀야 하잖아? 너 중등학교 3학년 3학기 편입이지?”

“네, 전 6살에 시작했으니 맞아요. 그리고 고마워요. 아쿠 언니.”

1930년대에 만들어진 러시아 교육제도의 틀은, 초·중·고교 교육은 무상교육이다.

의무 교육 기간은 11년이다.

6~7세에 의무 교육을 시작하여, 17세 전후에 고교를 졸업하게 된다.

초등학교 3~4년, 중등학교 5년, 고등학교 2~3년이다.

고등학교부터 두 가지 진로가 있는데, 기술학교와 일반 학교를 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교육기관은 9월 1일부터 학기가 시작되면 6월에 종료된다.

그리고 1년이 2학기가 아니라 4학기다.

여름 방학 기간은 무려 3개월이다.

“아샤는 9일간 전학 유예 기간이니, 모레부터 학교를 나가지?”

“네, 이곳까지 오는 것도, 5일 가까이 걸렸는걸요. 전학생 중에는 제가 긴 편에 속해요.”

“응? 3학년이면 졸업반 아니야? 13살에 벌써 졸업? 월반했어?”

태월의 의문에 아쿠가 알려준다.

“여기 교육제도는 한국이랑 기간이 전혀 달라요. 초등도 2~3년에 졸업하는 거고, 대신 중학교는 5년제예요.”

“호호, 아샤는 해산물을 좋아하나 봐? 가져온 게 거의 해산물 파티네.”

“고기도 좋아하는데, 해산물을 쪼금 더 좋아할 뿐이에요.”

식사를 어느 정도 다 했는지, 후식들을 가져온다.

태월은 가방에서 상자 4개를 꺼냈다.

“오늘 내가 주는 깜짝 선물이야.

이 푸른색 상자는 아카. 붉은색은 아루. 하늘색은 아쿠 그리고 이 하얀 상자는 아샤 거야.”

테이블 위에 하나씩 올리며, 그녀들에게 건네줬다.

“지금 풀어봐도 돼?”

태월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카부터 상자를 개봉한다.

“어머? 언니 사파이어네? 호호, 그럼 우리 것은 루비랑 아쿠아마린이겠네?”

“음, 태월, 사파이어 마음에 쏙 들어. 땡큐!”

아루랑 아쿠도 자신의 상자를 개봉했다.

“어머, 그 보석들이 이렇게 이쁜 목걸이로 변신을 했어.”

“호호호, 난 빨간색이 좋아. 아샤야! 너도 선물 풀어봐. 너는 상자 크기가 좀 다르네?”

아샤가 하얀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 빨간 핸드폰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나 저런 색 핸드폰은 처음 보는데, 새로 나온 신형인가 봐? 노키아?”

“진짜 나도 바꾸고 싶다.”

한국의 핸드폰이 이곳에선 잘 터지지 않아서, 셋 다 같은 기종의 폰으로 샀었다.

불과 한 달 차이밖에 안 나지만, 그때는 저런 핸드폰이 출시되지 않았었다.

태월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따다단다! 따다단다! 따다단다따!

아샤의 핸드폰에서 노키아 벨 소리인 대왈츠가 울려 퍼진다.

1902년에 스페인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작곡한, 솔로 기타 모음집의 곡 Gran Vals에서 발췌한 멜로디이다.

“어머머, 핸드폰 벨 소리가 너무 이쁘다.”

“아샤야, 거기 뜬 번호가 오빠 번호야. 잘 저장해놔.”

“오, 오빠, 정말 고마워요. 잘 쓸게요.”

“어머, 아샤 울먹이는 것 좀 봐. 너 이런 데서 울면 남들 다 흉본다.”

처음 받아본 선물이고, 처음 생긴 자신만의 핸드폰이었다.

“태월? 목걸이는 원래 선물 주는 사람이, 목에 직접 걸어주는 거야.”

그런 걸 잘 몰랐던 태월은 머릴 긁적이며 일어섰다.

아카부터 시작해 아루와 아쿠까지 목에 걸어주었다.

그런데 아카의 목에 걸어주고 나자, 아카가 돌아서서 뺨에 뽀뽀를 해줬다.

그러자 아루와 아쿠까지 그걸 따라 한다.

분위기가 그리되자 머뭇거리던 아샤까지 다가왔다. 살짝 뒤꿈치를 들고 이마에 쪽하고 소릴 만들어 냈다.

“음 음, 외국에선 다 이렇게 감사 표시를 하는 거야.”

태월도 미국영화에서 그런 걸 본 것 같기도 해서, 고개를 끄덕여 준다.

이르쿠츠크 국제공항을 향해 다 함께 이동했다.

이별이 아쉬워서 다들 따라온 것이다.

채권을 어떻게 가져갈까 궁금했는데, 그냥 출입국 관리소에 가서 유가증권으로 신고하고 당당히 비행기에 실었다.

채권 출처에 관해 물을 만했건만, 미국소속의 특별기여서인지, 그리 꼬치꼬치 묻진 않았다.

그리고 눈물 줄줄 흘리는 여자들이, 3명 추가되었을 뿐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가 야식집 앞에서 멈춘다.

“언니? 우리 저기 매콤한 꼬치구이랑 만두를 사갈까? 속이 허하네.”

“이게 다 아카 언니가 떠나서 마음이 허해서 그런 거야. 이럴 땐 화끈한 걸로 채워주는 게 좋긴 해. 아샤도 먹을 거지?”

“네, 저도 매운 건 좋아요.”

“언니 사는 김에 보드카도 한 병 살까?”

“오, 알혼섬의 그때가 떠오르는군. 좋아!”

결국 술까지 곁들인 야식이 시작되었다.

물론 아루랑 아쿠만 술을 먹고, 태월과 아샤는 음료를 먹긴 했다.

드라마 이야기로 시작해서, 시간이 지나 취기가 더 오르자 만화영화 노래도 불렀고.

그러다 제일 먼저 졸기 시작한 아샤는 안방으로 갔다.

자정이 다 되어 태월도 방으로 들어왔고, 나머지 둘도 안방으로 자러 갔다.

거룩하고 조용한 그런 밤이 이어졌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으악! 으아악!

저 비명이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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