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71화 (71/250)

71화. 아카의 특별기

태월은 아카가 그런 걸로 실수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기요! 미국에서 오는 거로, 오늘 연락받았거든요? 국제전화로 그런 농담을 주고받을까요? 다시 확인해보세요!”

“잠, 잠시요.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으니, 예외가 있나 알아볼게요.”

안내 데스크에서 운항 배정을 재확인해보느라 분주해졌다.

“아, 손님? 정규 운항이 아니라, 미국에서 특별기로 한 대가 오긴 하네요?”

“혹시 특별기 승객 명단 확인 가능할까요?”

“음, 그건 지금 저희에게 넘어온 게 없네요. 죄송합니다.”

“그럼 오전 9시 30분 도착 비행기는 맞나요?”

“네, 그건 맞습니다. 특별기 전용 카운터를 통해 나갈 겁니다. 출구에서 기다리세요.”

결국 그 시간이 넘어봐야 아는 일이었다.

출구 앞으로 가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아샤는 더 자지 그랬어? 피로가 아직 풀렸을 리 없는데.”

“헤, 오빠, 이제 몸이 괜찮아졌어요.”

“우리 아샤가 옷 하나 바꿔입었는데, 천사가 되어 버렸어. 바티칸에서 모시러 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루의 진담 같은 농담에 아샤의 볼이 빨개진다.

아루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빛나는 변신이다.

회색빛 모피코트에 검정 털 부츠, 그거만 보이는데도 그렇다.

게이트가 열렸다.

제일 앞서 있는 여자의 모습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바하마 제도의 그 여자로 변신을 하지 않은 본체 상태였다.

미국으로 갔을 때가 겨우 3년이 넘었을 뿐인데, 그사이에 굉장한 성장을 한 거로 보인다.

이젠 20대 중반의 최절정 모습이다.

“아카? 오느라고 고생했어. 그런데 특별기라니? 그런 게 가능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아루가 달려가더니 껴안는다.

“언니! 보고 싶었어!”

“어머, 아루는 늘 변함이 없네?”

아루를 안은 채 등을 몇번 토닥인 아카는, 그 뒤쪽의 여인들과 시선을 맞추었다.

아카는 변신한 알리사 그리고 아샤의 실제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다.

“여기는 아쿠 그리고 얘는 우리 막둥이 아샤.”

“언니, 안녕하세요. 아쿠예요. 겉모습은 알리사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아나스타샤예요.”

“다들 반가워. 난 아카야.”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이동부터 하자. 사람들 시선을 너무 끄는 것 같아.”

특별기가 도착한 일부터 해서, 그를 마중하는 여자들의 화려한 면모까지.

공항 주변 이목을 끌기엔 충분했다.

딱 두 사람을 제외하곤 말이다.

태월은 연예인과 이동 중인 매니저 같았고, 이모로 변신 중인 아루는 이쁜 부랴트족 아줌마.

공항에 세워둔, 새로 산 쉐보레 서버번에 올라탔다.

“어? 이거 샀나 보네? 멋있는데?”

“하하, 태어난 지 석 달 정도 된 구루마지.

그런데 웬 특별기? 그거 국가원수나 세계적 기업 총수 아니면 대부호나 타는 거 아냐?”

“어? 나도 잘 나가는 대표라고!”

“아, 그러셨어요?”

“호호, 사실 농담이고. 내가 항공 쪽에도 투자한 것도 있고, 저 비행기 소유주와도 좀 친분이 있거든. 이참에 부탁해서 얻어탄 거야.”

“그 마약왕 비자금 건은 어찌 되었어?”

“귀신 말대로 사실이더라. 회사 위탁 자금으로 돌려놨어. 자본 규모가 확 뛰어서, 인지도 면에서도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차는 이르쿠츠크 시내를 향해 이동했다.

빌려온 비행기를 다시 타고 갈 생각이라는 아카의 말에, 다들 서두르는 중이다.

“미안 더 있고 싶지만 요즘 일이 아주 바빠.

이것도 하루 휴가를 내고 겨우 빠져나온 거야.

서운해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힝, 언니랑 놀고 싶었는데….”

“너희가 미국에 놀러 오면 되잖아. 나도 두 달 후에는 조금 한가해지거든.”

알리사가 겉으로 동안이긴 해도, 실제 나이가 31살이라는 것을 아는 아샤다.

거기다가 40대는 되어 보이는 아루까지, 아카에게 언니 소리를 하니 많이 놀라고 있다.

“큰언니가 엄청나게 동안이시네요.”

“하하, 그, 그렇지? 미국의 의술이 워낙 좋잖니. 돈 많이 들인 거야.”

“......”

지금 상황에서 마땅한 변명거리가 없기에 하게 된 말이지만, 태월로 인해 분위기가 썰렁했다.

그래서 화제를 돌렸다.

“국채는 찾아서 이 차에 바로 싣고, 갈 때 비행기에 실음 되는 거지?”

“응, 그게 최선일 거 같아. 국채는 내가 잘 해결해볼게. 러시아 내부에선 힘든 일이거든.”

국영은행인 스베르방크 이르쿠츠크 지점이다.

“이곳은 알리사가 다녀오도록 해. 아까 말한 대로 하면 문제는 없을 거야.”

“응, 알았어요. 어렵진 않으니, 해볼게요.”

태월은 알리사에게 메모를 하나 건넸다.

비밀번호 343911, 암호는 xx-xxx가 쓰인 메모 쪽지다.

그리고리 씨의 제정러시아 채권을 찾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태월은 얼마 전에 첫 거래계좌를 만들었기에, 자신이 찾으면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알리사의 뒤로 은행 경비원이 박스를 카트에 싣고 나왔다.

차의 뒷문을 열어주니, 거기에 실어준다.

“자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볼까?”

식사는 간단하게 하기 위해 햄버거 가게로 갔다. 오늘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다.

“아루는 아샤를 데리고 집에 가서 쉬고 있어.

회사 일도 빠르게 마무리해야 하니, 지루할 거야. 아샤, 알았지?”

“네, 그럴게요. 그럼 아카 큰언니는 오늘 또 못 보네요?”

“아니야. 저녁은 먹고 갈 거니까, 저녁때 볼 수 있을 거야! 아샤와 아루는 이따 보자.”

“네, 그때 뵐게요.”

“네, 언니.”

집은 멀지 않았기에 데려다주었다.

“일단 관공서부터 가야 해. 아쿠가 지문이 없어서, 새로 지문을 넣어야겠어. 그리고 여행 알리바이도 만들어야지. 망각과 빙의를 잘 활용하면 되겠지?”

“그럴 생각이야. 바로 가자.”

차 안에서 아카가 변신 본체가 아닌 영령 본체로 돌아갔다.

아쿠는 치마의 허릿단을 더 올려, 허벅지가 드러나게 꾸몄다.

관공서에 도착해 관련 부서를 찾아낸 아쿠는, 면허증을 내밀며 신분증 재발급을 요청했다.

“사진도 5년 전 거였는데, 새로 바꿔야 하는 거지요?”

“아, 당연히 바꾸셔야죠. 그리고 주소가 이르쿠츠크가 아니군요? 이사 오신 건가요?”

“네, 이사 온 지 한 달 되었을 때, 엄마와 동생이 유람선을 탔고 그 배가 침몰했거든요.

시신 인양 기회를 놓쳐서 찾을 수 없다고 하네요. 그 배를 탄 행적은 나와 있고요.”

“일단 사망 확인은 당장 가능한 게 아니니, 일단 이것들부터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원본에서 교체해야 하니 가져오겠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옆에 앉아서 도움을 주시면 안 될까요? 서류작성은 서툴러서요.”

“그, 그럼, 작은 회의실이 있습니다. 흠 흠, 거기서 작성하는 것을 도와드리도록 하지요.”

“커피도 한 잔 가능할까요?”

“아, 물, 물론이지요.”

담당 남자 직원은 알리사의 외모에 반쯤 녹아 있었고, 더구나 허벅지살까지 보이자 정신을 못 차린다.

더구나 옆에 앉아서 도와달라고까지 한다.

원래는 창구 자체에서 해도 되는 돼, 회의실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주소도 바꿔야 하는 건 맞다.

이사 온 지 한 달 되었을 때, 여행 후로 미루다 보니 바꾸지 못한 것이다.

담당 직원이 원본 서류와 커피를 챙겨 다가오자, 옆에 있던 아카가 나섰다.

그리고 그에게 자연스레 빙의했다.

영령 본체라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은 상태기에, 별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아쿠는 원본에 나와 있는 손가락들 지문을 빠르게 스캔하고, 그걸 근거로 지문을 흡사하게 완성해 버렸다.

그리고 적힌 기록들을 꼼꼼하게 암기했다.

커피를 서류에 부어버리고, 잔은 직원은 손에 쥐여준다.

아카가 그의 몸에서 빠져나오며 망각을 건다.

잠시 멍하게 있는 직원을 향해 아쿠가 말을 걸었다.

“어머 어머, 어떡해! 커피를 쏟으셨네요?”

정신이 돌아오면서 자기 손에 있는 잔과 쏟은 커피를 번갈아 본다.

‘헉! 내, 내가 쏟은 건가 보네?’

아쿠가 호들갑을 떨면서, 테이블 위에 있던 휴지로 원본 위 커피 물을 닦는다.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어, 어떡해요?”

“어, 어차피 여러 가지를 새로 변경해야 하니, 이참에 새로 작성하는 게 낫겠습니다.

커피와 작성지도 새로 가져오겠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는 조금만 낮춰주시고요.”

문책이 생길까 봐 서둘러 봉인하는 그다.

커피가 쏟아진 이 원장도 누가 보면 안 되는 일이다.

결국 지문부터 시작해서, 기록들은 새로 작성되었다.

“이 망가진 원부는 이대로 두나요?”

“아, 아닙니다. 바로 파쇄기에 넣을 겁니다.”

“저기…. 사망신고서도 작성해야 하는데, 요령을 몰라서요. 도와주실래요?”

축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며 쳐다보는 아쿠다.

가족의 사망을 신고해야 하는, 민원인의 슬픈 심정을 이해 못 할 리 없다.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자신의 대민 봉사 정신을 알아달라는 듯이 위로를 던진다.

“흠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힘내십시오! 신고서 용지는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작성은 자필로 하셔야 하고요.

사망한 곳의 주소와 증인이 필요합니다.

제가 담당은 아니지만, 유관 업무다 보니 처리를 돕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4달 반 전에 있었던, 바이칼호 유람선 사고 아시죠?

죽은 사람이 백 명은 되는데, 시신 인양은 불과 20구였고요.”

“아, 저도 듣긴 했습니다. 사망 증명 때문에, 보험사와도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전 보험금에는 그리 관심이 없어요. 시신이 없어 사망 신고가 안 되면, 그냥 행방불명 신고를 하나요?”

“그 사고 자체가 시신 인양에 문제가 있긴 했어요. 그 배를 탄 걸 증명하실 수는 있고요?”

“전화국에서 당일 그곳 선박사와 통화한 기록이 두 건 있어요. 그리고 제게도 그 배를 탄다고 했었고요. 유람선 타는 곳에선 신원확인을 하지 않잖아요.”

“흠, 그거야 그렇지요. 그 기록지를 저에게 주시고, 주변 이웃 2명만 증인으로 세우세요.”

“사망에 대한 증인이 아니라, 일종의 보증인을 말하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수장이 되었을 텐데, 그걸 본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죠.”

“그 사고 당시가 이사 온 지 한 달째라서, 아는 이웃은 없었어요. 그럼 보증이니 저희 직원을 세우면 될까요?”

아쿠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민다.

명함에는 BATR(유) 대표 알리사라고 적혀있기에, 믿음이 더 올라갔다.

“회사 대표시군요. 낯선 이름인데 새로 설립되었나 봅니다?”

“다국적 기업이에요.”

“헛, 규모가 큰가 보네요? 어느 정도가 되길래 다국적 기업이….”

“미국과 한국의 자금을, 이곳 이르쿠츠크에 투자 유치했습니다. 오늘 미국에서도 그 일로 특.별.기가 이르쿠츠크 공항에 도착했고요.

자금 규모는 1차로 2천5백만 달러입니다.”

“헙! 특, 특별기요? 거기다 이, 이천오백만 달러가 모스크바가 아니라 우리 주에요? 주지사님이 들으시면 굉장히 놀라시겠는데요?”

“그런데 제가 얼마 안 될 보험금에 신경 쓸 리 없잖아요? 회사는 나중에 확인해보시고요. 그리고 지금은 바빠서 다시 들어가 봐야 합니다.”

“그럼! 서류만 작성하시고, 내일까지 직원을 보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저, 저기 그런데, 혹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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