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70화 (70/250)

70화. 아나스타샤

아쿠의 백치미에 감탄을 멈춘 태월은, 그다음 일을 곧바로 진행했다.

“은행에 온 김에 알리사 아빠가 있었다는 보육원으로 돈을 보내자. 돈이야 내가 다시 줄 테니, 재산 유추해서 그만큼 보내면 될 거야.”

알리사 가족이 원했던 일은 이제 마무리된 것이다.

나머지 일은 아카가 와야 해결될 일들이고.

“바이칼호의 유람선 회사에 연락해서. 추가로 시신 인양된 것이 있나 확인하러 가자.”

“응? 그건 왜? 가족들 시신은 바이칼호 바닥으로 갔잖아.”

“우리야 그렇게 알고 있지만, 가족인데 찾는 시늉이라도 해놔야 기록에 남을 거 아냐.”

그제야 내용을 이해한 아쿠는, 태월이 건넨 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 유람선을 타고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신을 찾지 못해 장례식도 못 하고 있다는, 하소연 형식이다.

그리고 보상은 바라지 않으니, 사망 확인을 위해 협조를 부탁해놨다.

연락이 늦었기에 완벽하진 못했으나, 일단은 이렇게라도 해놔야 한다.

전화번호와 이름을 그 회사에 알려주었다.

“이제 전화국에 연락하여, 그 당시 유람선 회사에 연락한 적이 있는지 확인해야 해.”

“그냥 가면 돼요?”

“가족 증명서와 신분증만 가져가면 될 거야.”

집 전화가 등록된 전화국을 찾아가, 기록 열람을 신청했다.

운이 좋게도 그 당시 통화기록이 두 건이나 있었다.

아마도 운행 시간과 빈 좌석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통화기록을 출력해서 가지고 나왔다.

이르쿠츠크에서 제일 큰 보석상에 들러 3개의 목걸이를 주문했다.

심플하게 메인 보석만 있는 목걸이다.

루비와 아쿠아마린 그리고 사파이어.

지하 1층에서 발견한 그 보석들이다.

사파이어는 아카에게 깜짝 선물로 줄 생각이라, 보석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파이어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부정적 마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며, 행복을 추구하고 의지와 신뢰의 수호석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을 보니 다음 약속 시간 20분 전이었다.

오늘은 이래저래 꽉 찬 스케줄이다.

“마카르 씨, 괜히 쉬는데 오라고 해서 미안하네요. 그런데 얼굴이 좋지 않네요?”

“하하, 여행 가이드를 그만하라고 자꾸 그러네요. 밖으로만 싸돌아다니니, 늦은 나이에다 아이도 안 생긴다고요.”

“안정된 직장이길 원하나 보네요?”

“네, 뭐 그렇죠. 누가 몰라서 안 하나요? 보수가 마땅치 않으니 못 한 거죠.”

건물 관리를 맡아줄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하려던 참에, 이런 일이 생긴 거다.

“하하, 마침 잘되었네요? 집과도 멀지 않으니, 러시아 법인 ‘바트리’ 관리부서에서 일하실래요? 직책은 팀장급이고. 월급은 달러로 지급하겠습니다. 외국계 회사 과장급 월급 정도면 어떠세요?”

“하하, 정말이십니까? 저야 대환영이지요.”

“자, 그럼 본사 경비관리팀장으로 시작합시다. 그게 마카르 씨 부인이 제일 좋아할 만한 업무 같네요.”

경비관리팀장을 하면, 싸 돌아다닐 일도 그만큼 없게 된다.

“감사합니다!”

“자, 잘해봅시다. 삼 일 후부터 출근입니다.

그리고 함께 일할 관리직원과 경비팀부터 꾸려주세요.”

“네, 일할 사람은 넘칩니다. 신뢰 있는 사람으로 추리겠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이 지나자 바트르 본사 건물에 사람들이 생겨났고, 하루가 더 지나자 법인허가까지 승인이 났다.

“아 오늘 차를 한 대 살 생각인데, 추천 좀 해주실래요? 밖에 있는 알리사가 운전을 당분간 할 겁니다.”

“차종은요? 수입차겠네요?”

“차는 좀 커야 합니다. 최소 5인이 늘 타야 하니까요. 연예인들이 타는 밴도 괜찮을 거 같고요. 그런 게 이르쿠츠크엔 잘 안 보이던데.”

“메르세데스 벤츠 300 CE는, 92년도에 출시한 거라 작년에 러시아에 수입되었습니다.

밴으로는 쉐보레 서버번이라고 있는데, 7인승 차량이고 연예인 밴이라고 알려진 차량입니다. 최고급 밴입니다.”

“그 밴을 지금 볼 수 있을까요?”

“하하, 물론입니다. 달러만 주면 다음 날 바로 출고도 가능할 겁니다.”

태월 일행은 마카르와 함께 수입차 전시장으로 왔다.

남자의 로망인 검은색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외형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검은색이 뭐가 좋아? 난 이 색이 더 맘에 들어. 아쿠는 어때?”

“언니, 나도 검은색은 싫어요.”

시승해보니 안전과 안락함을 중시하는 연예인들이, 반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고 쾌적했다.

전시된 차량은 하얀색이었는데, 달러로 계산한다고 하니 즉시 팔겠다고 한다.

회사 명의로 차를 그 자리서 구매했고, 마카르가 차량 등록을 위해 뛰어다녔다.

아카도 곧 올 때가 되었고, 식구도 늘어나기에 이 정도 크기의 차량은 필요했다.

지원관리팀장이 된 마카르의 감독 아래, 지하와 4층의 골동품들을 옮겼다. 그리고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은 아샤의 도착 예정일이고, 내일은 아카가 오는 날이다.

이르쿠츠크 기차역에 태월과 아루 그리고 아쿠가 마중 나와 있다.

-삑! 삐이익!

저 멀리서 기적을 울리며,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들어서고 있다.

열차 승객들이 출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5분 정도가 지날 즈음에 회색 솜 코트를 입은 소녀가 들어서며 두리번거리고 있다.

눈썰미가 좋은 태월은, 그녀가 아샤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눈빛이 밤하늘의 별이 수놓아진 것 같았다.

그런데 태월보다 빠른 사람이 있었다.

“아샤! 여기야, 여기! 어서 와!”

“아, 알리사 언니!”

둘이 서로 달려가 부둥켜안는다.

아쿠가 아샤를 안고 빙빙 돈다.

‘하아, 저것도 아루가 아쿠에게 했던 행동인데, 또 그걸 그대로 하네. 창의성이 없어 창의성이…. 기술 점수로는 모방성 99점, 창의성 0점.’

태월이 점수를 매기는 사이 아샤는 그들에게 왔다.

“여기는 우리의 대장 태월! 그리고 저기는 언니는... 아루 언니.”

아쿠가 아루를 소개해 주다 말고, 말을 흐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금 아루의 모습이, 현재 40대 아줌마였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나스타샤예요.”

“어서 와요.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면 돼요.”

“안녕? 네가 아샤구나. 어머 너무 이쁘게 생겼네. 아쿠, 아 아니, 알리사랑 많이 닮았어.”

“네, 감사합니다. 태월 오빠! 그리고 너무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루 이모!”

“헉! 이, 이모….”

혼자서 멍해 있는 아루를 뒤로하고, 셋은 차로 먼저 향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루가 헐레벌떡 따라왔고.

그들이 먼저 향한 곳은 식당이었다.

멀리서 힘들게 온 아샤를 위한 배려다.

“아샤 먹고 싶은 건 마음껏 시켜. 우리 대장은 돈이 많거든.”

“응 맞아. 아샤는 부담 하나도 안 가져도 돼.”

두 여자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마음의 부담이 줄어들었는지 이것저것 시킨다.

그래 봤자 가격은 얼마 하지도 않는다.

러시아는 규정상 식당 입구에 메뉴와 가격을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해 놓는다.

“그린 보르쉬, 샤슬릭, 올라디 쿠리느예….”

“오. 잘 시켰네. 언니는 솔랸카하고 삼사.”

아샤는 배가 꽤 고팠었는지, 입을 오물거리며 3개를 시켰다.

그린 보르쉬는 소고기를 우려낸 국물에, 채소와 달걀이 들어간 수프다.

샤슬릭은 그릴에 구워낸 꼬치구이인데 양, 소, 돼지고기가 쓰인다.

솔랸카는 훈제 고기 수프고, 삼사는 양념 된 양고기가 들어간 삼각형 모양의 수제 빵이다.

“오 여긴 치킨처럼 생긴 게 있네. 난 이거와 보르쉬! 아루는 뭐 드시려나?”

“그럼 나도 보르쉬에 블린치키 스 마솜.”

블린치키 스 마솜은 밀가루 반죽 피로 싼 소고기 요리로, 고기만두를 순대처럼 만든 거다.

식사하는 아샤를 보니 그나마 깨끗한 것을 입고 온 듯한데, 그리 따뜻해 보이지도 않고 꽤 허름했다.

할머니랑 살았었다고 하니, 여유는 그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구김이 없는 것을 보니, 천성이 밝고 맑은 것이다.

태월의 영혼 에너지로 봐도, 그녀는 설희만큼이나 깨끗했다.

단지 조금 말라 보이는 게, 가난한 삶의 흔적 같았다.

‘잘 먹이면 나아지겠지. 일단 옷부터 사야겠네. 그곳을 가면 되겠네.’

1994년의 이르쿠츠크엔 우리가 아는 백화점은 없다. 그냥 쇼핑센터 같은 곳일 뿐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태월은 아샤에게 조언을 해줬다.

“아쿠랑 산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같이 산다는 의미야.

너보단 언니들이고 오빠니까, 부담을 느껴선 안 돼.

아샤가 우리의 눈치를 본다면, 우리 또한 마음이 편하지 않겠지?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오빠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그러니 앞으론 쭈뼛거리거나 눈치 같은 거 보면 안 돼. 우린 이제 패밀리야.

아샤는 앞으로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될 거야. 알았지?”

“네, 당당하게….”

주먹을 꼭 쥐는 모습의 아샤가 귀엽게 느껴졌다. 아샤의 머리를 손으로 살짝 쓰다듬어 주는 태월이다.

“나도 그거 해줘요.”

엉뚱한 아쿠가 자신의 머리를 들이민다.

피식 웃음이 난 태월은 그녀 요구대로 해줬다.

“이제 옷 사러 갈 거야. 아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옷을 살 거야.”

“야호! 난 하얀 원피스.”

“어머, 난 빨간 코트를 사야지.”

“아샤는 오빠랑 팔짱 끼고 가자.”

“네? 네….”

아샤의 부담을 줄여주려고 하는, 태월 나름의 배려다.

쇼핑센터에 도착한 일행은 아샤의 옷부터 샀다.

방한용 모피코트부터 부츠 2켤레 그리고 털장갑도 2켤레.

원피스 3벌에 티셔츠 5장과 긴 양말 10켤레.

“어머머, 요정 같아요. 언니도 초월급 미인이신데, 동생분도 그렇네요.”

가는 곳마다 저런 찬사가 이어졌다.

아루도 막내 이모의 외모로 변신했기에, 어느 정도 미인 축엔 속했다.

그런데 그 둘로 인해 그리 주목은 받지 못했다. 단지 부랴트족의 이쁜 아줌마 정도로 여길 뿐이다.

“아샤? 힘들지? 이제 속옷 파는 데만 가면 돼. 셋이 같이 다녀와. 난 여기서 기다릴게.”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속옷 파는 곳은 태월이 따라가기 민망해서다.

아루와 아쿠가 인간 자체가 아니다 보니, 쇼핑 시간이 그리 길지가 않을 거란 건 착각이었다.

“아샤가 오늘 피곤하니까. 아이 쇼핑은 금지야. 바로바로 사도록 해.”

태월의 말에 그제야 빨라지는 아루와 아쿠다. 30분 만에 둘의 옷을 사고, 태월은 10분 만에 정장 한 벌을 샀다.

옷 가격은 생각보다 더 저렴했다.

쇼핑 후엔 아샤가 피곤해 보여,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태월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봤기에, 그 피로감을 모를 수 없다.

아샤를 홀로 재울 순 없기에, 결국 여자 셋이 안방을 쓰기로 했다.

킹사이즈 침대를 사야 할 상황이 온 것이다.

씻고 나온 아샤는 새로 산 옷도 입어보지 않고, 바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결국 그날은 아샤 혼자 편히 자게 놔두었다.

***

이르쿠츠크 국제공항에 도착할 거라는 연락을 받고, 태월 일행은 그리로 향했다.

“응? 언니가 미국서 오는 거 아니었어?”

“맞는데. 왜?”

“나 컴퓨터에서 봤는데, 모스크바 공항은 있어도 이르쿠츠크엔 미국 직항로가 없다던데?”

“갈아타고 오는 거 아닐까?”

태월도 미국에서 이르쿠츠크 공항 도착이라니, 조금 이상하긴 했었다.

중간 기착지를 이용하면 불가능한 건 아니기에 그러려니 해본다.

공항에 도착하여 안내 데스크에 물어보니, 그런 경로도 없다고 했다.

불가능하진 않은데 많이 돌아가야 해서, 티켓팅을 하지 못한단다.

“갈아타고 올 수도 없다고요?”

“네. 아직은 노선이 다 열리지 않았거든요.”

“네? 그럼 올 수가 없다는 거네요?”

“네. 노선이 없다니까요.”

“헐, 이게 대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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