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69화 (69/250)

69화. 숨겨진 지하 1층

공사업체를 부르려다가 시간 여유가 많기에, 태월 일행이 대리석을 들어내기로 했다.

아카를 기다리는 일 외엔 급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철물점에서 여러 가지를 챙겨왔다.

망치와 장도리 그리고 헤라 랜턴 등등을….

공구를 이용해 대리석 바닥을 해체해갔다.

그러자 3층 벽면에 아루가 그렸던, 그 2.5m 동일 크기의 철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도리를 이용해 틈을 만들고 조금씩 젖혀냈다.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가 되자, 계단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철판 지지봉을 계단에 세워 둔 거네?”

하중을 견디려고 지지봉을 세운 것 같았다.

안 그러면 이곳이 금방 드러났을 것이다.

태월이 발에 에너지를 두르고 몇 번을 걷어차자, 지지봉이 그제야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텅텅! 터 텅텅!

남은 철판마저 완전히 밀어내고 나니, 어두운 굴속 느낌의 입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루는 이 컴컴한 곳을 잘도 조사했네?”

“아 눈에 힘주고 다녔어. 그런데 중간중간 이상한 느낌도 들고 그러더라.”

“잡귀신은 하나밖에 없었어. 그리고 사념 같은 게 있던데.”

잡귀신이란 소리는 악령은 아니란 소리다.

“아 오래된 물건들이 있었나 보네.”

이 건물의 완공 시기를 보면 100년이 넘는다.

그래서 그 당시의 건축 도면은 남아 있지 않았다. 철물점에서 구한 랜턴의 불을 켰다.

“이거 오래된 전등도 있는데, 불은 안 들어오겠지?”

계단에 설치된 벽부등을 만지며, 태월은 아래로 내려갔다.

랜턴으로 계단 옆쪽 배전반을 발견하고 열어봤다. 전원을 위로 올렸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다.

“에이, 영화에서는 이럴 때 불이 쫙 켜지던데.

현실과는 너무 다르군.”

100년이 넘었는데 멀쩡히 등에 불이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구리선 자체야 문제없더라도, 동력은 이미 끊겼어야 정상이다.

300평이나 되는 지하 공간을 살피는 데 30분이나 지났다. 단순하게 살핀 게 아니라, 사념이 깃든 것까지 조사하다 보니 그리된다.

사념이 깃든 물건을 발견할 때마다, 문신이 알아서 사념만 먹어 치웠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2개다.

“저쪽 편 귀신 하나 남았네. 저 악귀는 왜 저리 숨어있지? 악귀답게 날뛸 것이지. 꼭 지박령처럼 행동하네. 주변에 뭐라도 있나?”

“악귀인데 사연을 제대로 말하진 않을 거고, 그냥 꿀꺽해버려!”

아루의 말에 동의한지라, 고개를 끄덕여 주는 태월이다.

-가랏! 꿀꺽! 컥!

15m는 될 거리였는데, 악귀는 저항도 제대로 못 하고 삼켜졌다.

대추보다도 큰 푸른색 보석 1개를, 렌즈에 비쳐 보며 감정하는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 아래는 유사한 크기의 3개의 보석이 더 놓여있었고.

그 뒤로 도굴꾼인 듯한 남자 하나가, 요리조리 눈을 돌리고 있다.

푸른 보석을 잠시 내려놓더니, 그 남자에게 손짓한다.

가까이 오자 옆의 간이 의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차를 한 잔 타서 그에게 줬다.

다른 보석을 들어 감정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차를 마시던 남자가 그대로 쓰러진다.

감정하는 남자의 미소가 그려지며, 태월의 얼굴로 바뀌었다.

“헐, 이 악귀는 재능을 줘도 기분 나쁘게 주네. 이번 재능은 보석 감정이야.”

“와, 여기 보석함이 있어. 그리고 사념도 있는데? 이거 빨리 없애줘.”

아루가 보석함 하나를 찾아내 가져오니, 문신이 입을 쫙 벌려 사념을 삼켜버렸다.

호기심에 곧바로 보석함을 열어보는 아루다.

그 안에는 태월이 좀 전에 보았던, 장면 속의 보석 4개가 들어있었다.

더불어 다른 액세서리도 보였고.

“여기 간이 전기시설부터 하고 다시 조사해야겠다. 오늘은 이만 철수 하자.”

“긴 칼 한 자루와 골동품 총 한 자루, 그리고 보석함 하나. 오늘의 모험은 끝!”

아루의 신나 하는 모습에 태월이 픽 웃는다.

“크, 이게 무슨, 모험 씩이나?”

“허클베리 피~인 헝글베리 피~인 허클 허클베리 피~인, 앞니 빠진 허~클 씩씩한 소년. 유유히 흐르는 미시시피강~ 저 멀리~ 증기선이 부웅~붕! 아름답고 평화로운 우리의 고장! 모험의 꿈 뗏목에 가득 싣꼬~ 주근깨 소년 허클이 찾아~온다. 개구장이 허클은 우리의 친구~ 골목대장 허클은 정다운 친구!”

아루가 갑자기 만화영화 허클베리 핀 노래를 한다.

“허클베리 피~인 허클베리 피~인 허클베리 피~인 우리의 친구~ 허클베리 피~인 허클베리 피~인 허클 허클베리 피~인.”

그 뒤를 따라 아쿠가 후렴구를 부르고 있다.

러시아 TV에서 틀어준 것 같은데, 한국어 노래는 아루가 부르는 걸 아쿠가 들었을 것이다.

아쿠야 그렇다고 쳐도, 아루는 지금 겉으론 40대 아줌마다.

남들이 봤으면 어이없어했을 장면이다.

태월은 마카르에게 연락해서, 공사업자를 소개받았다.

반나절이면 된다기에 주소를 알려줬고, 두 사람이 지하에 전기를 설치하고 4층의 벽도 제거해줬다.

공사 시간 동안 태월과 둘은, 사념이 사라진 세 가지 물건을 함께 살피는 중이다.

“이 유럽 총은 장식용인가? 너무 화려한데? 사념이 깃든 걸 보면 살상을 많이 했을 확률이 높네. 이 칼도 특이하고….”

금으로 세공되어 있고 보석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40cm 길이의 오래된 유럽식 총이었다.

물결무늬를 이루는 검날이 있는 장검은, 손잡이 하단에 다이아몬드가 하나 박혀 있을 뿐이다. 별다른 장식이 없었다.

그리고 검날의 광채는 죽어 있지만, 손질만 더 하면 다시 살아날 것 같았다.

태월이 총과 검을 살피는 동안, 아루와 아쿠는 보석함을 열어 그 안의 물건을 꺼내놨다.

“호호, 큰 보석이 4개야. 그리고 목걸이 팔찌 반지는 세트고.”

“어머, 이쁘다. 마음에 쏙 들어.”

아쿠가 웬일인지 보석 하나에 욕심을 부린다.

푸른 물빛을 담은 아쿠아마린이다.

“아쿠에게 목걸이로 만들어서 선물로 줄까?”

“응? 정말요? 조, 좋아요.”

“앗, 나도 그럼, 이걸로 목걸이 해줘.”

아루가 손에 집은 것은 붉은색 루비였다.

“그래, 그럼 아루도 만들어줄게.”

‘그러고 보니 물과 불이라서 자신에게 맞는 보석을 택하네? 아카도 이번에 오면 고르라 해야겠네. 남은 건 사파이어 1개와 다이아몬드 1개네.’

보석을 살피는 데도 감정사의 재능이 작동하는지, 여러 가지 정보가 머릿속에 나타났다.

크기와 결정체만 봐도 대단한 가격이 매겨질 보석들이다. 그러나 그 가치보단, 이 셋이 더 소중한 태월이다.

죽을 때까지 함께할 동반자가 아니던가.

1층부터 3층까지 세세히 구경하며 시간 보내다 보니, 공사가 다 마무리되었다.

지하에 전원을 올리니 사방이 환해진다.

“우와, 여기 오래된 장식품들이 많네? 원주인이 누구였을까?”

아루의 감탄에 태월은 잠시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그 악귀가 감정하던 장소도 여기였다. 그리고 보석함도 여기 있었고.

“아까 잡은 그 악귀가 원주인일 거야.”

“악당 하나 잡았다고, 이런 호사품들이 주어지다니. 이거 다 팔 거야? 아깝네.”

“음, 알혼섬 관광회사가 될 건데, 여길 박물관으로 삼으면 되겠다.

그리고 4층에 있는 물건들과 지하에 있는 물건을 합치면, 얼추 모양이 나오겠는데?”

“나도 팔긴 아까우니 찬성!”

“나, 나도!”

“이 건물 완전 보물섬이야. 이 정도면 건물값의 수십 배는 넘겠어.”

“허클 베리 피~인….”

“노래는 그만! 이 건물 관리할 사람부터 필요하겠다. 지금부터 사진기를 가져와서 다 찍어놔야 해. 4층도 다 찍고! 일이 많아.”

“악덕 사장! 물러가라!”

“물, 물러가세요.”

“......”

3시간이나 걸려 사진을 다 찍었으니, 이제 나가면 현상부터 맡겨야 한다.

종류별로 메모지에 번호를 적어, 골동품과 함께 찍었다.

식사를 간단히 하고, 알리사의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밤 10시가 넘어섰다.

’아무래도 마카르 씨와 상의 좀 해야겠다. 이제 슬슬 사람도 뽑아놔야 하는데.‘

정령 둘도 오늘은 피곤한지 12시쯤 되니 자러 갔다.

태월은 내일 스케줄을 체크만 하고는, 바로 꿈나라 여행을 떠났다.

아침 일찍 일어난 태월은, 마카르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해놨다.

이제 안나의 친구인 아샤의 일을 해결해야 했다.

계속 미루다간 바쁠 때 잊어버릴 듯해서다.

“아쿠? 안나의 친구 아샤에 대한 일을 이제 해결해야 해. 친자매만큼이나 정을 줬던 거 같던데 말이야. 그대로 전해주기엔 너무 찜찜한데….”

“알리사의 일기장을 보니 그녀와 만난 적이 있었어요. 여동생만큼이나 마음에 두고 있었나 보더라고요.”

“그럼 아쿠가 연락해봐. 앞으로도 본인이 알리사잖아?”

“아, 제가 사람에게 위로해주는 방법을 잘 몰라서요.”

“그냥 언니처럼 다독여봐. 아루가 아쿠에게 하던 것처럼.”

“네….”

태월은 일기장에 적혀있던 집 전화번호를 찾아내서 전화를 걸었다.

아직은 학교 방학이 좀 더 남은 시기라서, 아샤가 집에 있을 듯해서다.

알리사의 목소리를 들어봤던 아쿠인지라, 변신 때부터 그리했기에 문제는 되지 않을 터다.

또 두 자매가 집에서 노래하며 녹음했던 것도 있었고 비디오도 있었다.

-띠리링! 띠리링!

“안녕? 혹시 아샤니? 응, 안나 언니 알리사야.

그, 그래 잘 지냈지? 아, 안나? 그, 그게….

실은 안나 일도 있고 해서 전화한 거거든?

엄마와 안나가…. 바이칼 여행을 가는데. 배가 침몰해서…. 헉! 진, 진짜야. 가족 일을 가지고 누가 농담해!”

전화 건너편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비명에 이어 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그, 그만 울어. 안나를 보고 싶다고? 바이칼? 오고 싶으면 오면 되지만, 너희 할머니는 어쩌고? 뭐? 저번 달에 돌아가셨다고? 한 달 후 보육원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사진으론 나이가 많아 보이긴 했는데, 결국 돌아가신 거다.

“아, 울지 마. 언니도 가슴이 아파! 앞으로 너는 내가 다 책임질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 알았지?”

듣다가 이상한 말이 나왔다.

아니 이상한 말이라기보단. 데자뷰다.

어제 아루가 아쿠에게 했던 말을 다시 겪는 태월이다.

아쿠가 몇 마디 더 대화 나누더니, 전화를 끊었다.

“아쿠? 아샤에게 했던 말이 무슨 말이야?”

“응? 난 태월이 하란 대로 한 거거든요?”

“내가 아샤를 오라고 시켰다고?”

“그 말이 아니라, 아루 언니가 나한테 하듯이 하라며. 그래서 했는데요?”

“헐! 그걸 그럴 때 쓴다고?”

“아, 몰라. 몰라요. 아샤가 너무 불쌍해. 그리고 1시간 후에 교통비도 보내줘야 해요.”

감정적으로는 아쿠에게 뭐라 할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이 집 가족에게 도움도 받은 처지에, 홀로 된 아샤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으니.

“휴, 뭐 잘하긴 했는데, 앞으론 그런 경우 상의를 하도록 해. 좀 놀랐네.”

“응? 아까, 상의했었잖아요?”

“......”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아쿠다.

은행으로 가서, 알리사의 통장에 있던 돈을 아샤에게 보냈다.

아샤의 법적 보호자는 알리사가 맡기로 했다.

“그럼 내가 이제부터 아샤의 엄마야?”

“......”

법적 보호자 중에 엄마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있는 법이다.

“아쿠? 넌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었거든?”

“그럼, 아샤가 제일 큰 언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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