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러시아 법인 ‘바트르’
1991년 1월 고르바초프는, 1980년대 후반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한 물가 상승과 위폐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50루블과 100루블을 무효화하고, 1루블당 1달러로 가치교환 개혁을 단행했다.
1인당 최대 1,000루블당 1,000달러가 교환 가능했다.
그해 6월에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이 되고, 12월에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했다.
1992년 10월에는 100루블당 1달러가 가치가.
1993년 7월에는 1,000루블당 1달러가 되었다.
“앞으로는 점점 더 심해질 거 같습니다. 참담한 일이죠. 상대적으로 달러 가치가 점점 커지기에, 제 삼촌도 알혼섬 거래에 달러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르쿠츠크와 루블 화폐로는 그 섬 거래가 어렵다고 봐야죠.”
“일단 유한회사 등록부터 하겠습니다.
법인설립 대행을 할 신뢰 높은 변호사가 있습니까?”
“음, 알았습니다. 제가 연락해보겠습니다.”
20분 정도 지난 후에 도착한 곳은, 3층 건물에 있는 합동법률사무소다.
마카르의 지인이 이곳 공동 대표 중 하나인, 드미트리 보이코프다.
“어서 오십시오. 바브르 법무법인의 드미트리입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바브르는 이르쿠츠크주의 상징으로, 호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설립지는 어느 곳이고, 설립자와 대표이사는 어느 분이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 외 두 명이 더 필요합니다.”
“회사는 모스크바가 아니라, 여기 이르쿠츠크에서 할 것입니다. 설립자와 대표는 여기 알리사 양이 맡을 것입니다. 그리고 임시 이사 두 명으로 여기 마카르 씨와 드미트리 씨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 흔히 있는 일이니, 그 정도는 해드리겠습니다. 자본금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일단은 회사 설립 후에 자본은 미국과 한국에서 지분투자가 있을 것입니다.”
“아, 간단한 법인이 아니군요. 다국적이면 그것에 맞게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구비서류는 법인설립등기신청서, 설립 결정 결의서, 설립계약서 등기 수수료 영수증 등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해선 저희가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투자 자본금의 규모는 대략 알 수 있을까요?”
“정확한 건 아닙니다만, 대략 2천만 달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허 어, 모스크바가 아니라, 이르쿠츠크에서 그 정도의 규모라니…. 주지사가 알면 입이 찢어지겠군요.”
태월은 일단 이르쿠츠크주에 잘 보일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모스크바가 아닌 이곳으로 사업체 입지를 정한 것이다.
“다른 해외 기업은 드문가 봅니다?”
“지금 시국이 과도기라서 다들 눈치만 보지, 외자 유치는 어려운 상황이지요. 그리고 온다고 해도 모스크바로 오지 이곳은….”
“설립 시에 기본 요건만 갖추고 자본금은 달러로 가능하겠습니까? 루블화가 변동이 너무 심해서요. 그것에 따르다간 회사가 불안정해서, 미국 투자자에게서 긍정적 답변이 안 올 것입니다.”
“기본 요건만 루블화로 하시고, 해외 차입 자본은 달러로 되도록 조율해보겠습니다.
주의회에서도 긍정적으로 나올 것입니다.
달러가 부족한 러시아인데, 들어오는 복을 차버릴 멍청한 위인은 없을 겁니다.”
“법인 등록신청에 필요한 것은요?”
“등록신청은 설립자 정보, 정관 자본금, 관리회사 정보, 대표이사 정보, 업종코드가 필요합니다.”
“회사명은 ‘BATR’. 필요한 서류는 바로 작성 시작을 하죠.”
BATR은 Baikal+TW+RAON의 합성어다.
“우리 법무법인과 이름이 유사하군요.
Babr와 Batr, 바브르와 바트르. 우연의 일치인가요?”
“하하,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저희 회사명은 합성어입니다. 그런데 회사 설립이 다 완결되는 데 걸리는 기간이?”
“서류에 문제없다면, 일주일이면 됩니다.
그리고 법인등기 완료 시 발급받는 서류는 법인 국가 등기 증명서, 납세자등록증명서. 세무 당국이 날인한 법인설립문서.
그리고 법인 국가등기부 등본이 나옵니다.
그것만 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럼 진행해주십시오. 미국에서는 열흘 내로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지분 정리를 다시 하는 걸로 하지요.”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태월은 수수료와 필요한 금액을 미리 위탁하고, 알리사는 관련 필요서류까지 끝냈다.
바브르 법무법인을 나와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 향한 곳은, 이르쿠츠크의 중심가에 있는 부동산 업체다.
“이곳에 3층에서 5층 정도 건물 하나를 매입했으면 합니다. 좋은 건물 나온 것이 있나요?”
“잘 찾아오셨습니다. 이르쿠츠크에서 저희처럼 매물이 많은 대형 부동산 업체는 드물죠. 그런 건물은 지금 나온 것이 5곳입니다.”
“지금 매물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4곳을 둘러보았지만, 가격이 싼 대신에 너무 건물의 규모나 위치가 애매했다.
“유명한 업체라기에 제일 먼저 방문했는데, 썩 구미에 당기는 매물은 없네요.”
“눈이 높으시군요? 아직 실망하기는 이릅니다.
항상 마지막 물건이 주인공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규모가 좀 큽니다만….”
“일단 보도록 하죠. 주인공이라면서요?”
부동산 업체가 데려간 곳은 3층이긴 한데, 부지가 상당했다.
“이거 상업용 건물이라기보단, 저택 느낌도 나는데요? 원래 뭘 하던 곳입니까?”
“그래도 이 건물이 허가상 상업건물입니다.
1층 상가가 있는 저택이 어디 있습니까?”
업자의 말대로 앞에서 보면 저택이 아니라, 상가 겸 3층 상업건물이다.
그러나 이 건물을 뒤에서 본다면 저택이 맞다.
뒤쪽으로 커다란 정원이 있고 그곳에 저택 입구가 있다.
“특이한 건물이군요. 이거 왜 이리 지었죠?”
“이탈리아 건축가가 지은 것인데, 지은 지는 좀 되었지만, 앞으로 100년은 충분히 갈 겁니다. 석조건물로 내구성이 굉장하거든요.
대지면적도 2,000㎡나 되고, 연면적은 3,000㎡ 가까이 됩니다.”
대지면적이 2,000㎡는 즉 605평이다.
연면적이 900평이면, 1층 상가를 제외하고도 600평이 사무실 용도란 소리다.
충분하고도 넘치는 크기다.
그리고 이르쿠츠크주의 중심지에 있기에 향후 부동산 가치도 상당히 오를 것이다.
그리고 교통편도 다른 곳보다는 상당히 좋다.
“이 건물 가격이 어떻게 됩니까?”
“루블이 아닌 달러로 계산하신다면, 확 깎아 드릴 순 있습니다.”
이르쿠츠크의 시내에서도 루블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흠, 달러로는 얼마까지 됩니까? 달러 구하기도 어렵지 않나요? 웃돈을 줘야 겨우 가능할 건데….”
“그래서 확! 깎아 드린다고 한 것이거든요.
20만 달러는 받아야 하는 건데, 급해서 10만 달러에 가능합니다. 그 이하는 불가능하고요.”
“8만 달러에 일시금으로요.”
“아, 안 됩니다. 일시금이면 9만 달러에….”
“아뇨! 8만 달러에 일시금 그리고 소개료로 2천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잠, 잠시만 기다리세요. 바로 주인과 통화해보겠습니다.”
부동산업자가 전화하러 나간 사이에, 가이드 마카르가 정보를 준다.
“이 건물이 튼튼한 것도 맞고, 시세보다 싼 것도 맞습니다. 제가 알기로 3년 전만 해도 30만 달러로 이걸 사려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안 팔아서 못 샀지만요.”
“흠, 잘되었네요. 이참에 투자라 생각하고 매입해야죠.”
달러를 들고 흔드니 결국 계약이 진행되었다.
모스크바는 그나마 버티지만, 이런 중급도시인 이르쿠츠크는 힘든 시기였다.
“100평은 알혼섬 홍보관으로 쓰고, 남은 200평 중 50평은 손님들 휴식공간. 나머지 150평은 분리해서 한국상품 판매장으로 쓰면 되네.”
계약을 마치고 나오던 태월의 중얼거림이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이 건물이 지하층도 있고 4층도 있다는 거. 느낌으론 그랬어요.”
아쿠의 말에 태월은 깜짝 놀랐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등기상에도 지하랑 4층은 존재하지 않는데?”
실제로 태월은 그 건물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산 것이다.
단지 부동산업자의 영혼이 탁하지 않기에, 그냥 반쯤은 믿고 샀다.
더구나 가이드 마카르의 조언도 있었고.
단지 중개업자와 협상 중일 때, 심심했던 아쿠가 건물 안에 몰래 들어가 본 것이다.
숨겨진 공간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지만, 오늘은 늦었기에 일단 알리사의 집으로 향했다.
가이드는 며칠간 쉬기로 하고, 아카가 오는 날 다시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바브르 법무법인에 회사 설립 장소에 관련된 문서를 보냈다.
더불어 건물 등기작업도 병행시켰다.
이제 숨겨진 공간이 있다는, 그 건물을 조사하러 갈 시간이다.
알리사가 댄스학원에 다닐 때 쓰던 차는 소형차였다.
그래도 셋이 타는 데는 지장 없기에, 그걸 타고 이동했다.
“3층부터 조사해보자고. 어딘가에 위로 올라가는 출입구가 있지 않겠어?”
이 건물을 밖에서 보면, 3층 창문 위 지붕이 유난히 높기에 4층이 있을 법도 했다.
그러나 3층에 올라가 봤지만, 드러난 출입구는 찾지 못했다.
“내가 조사해볼게. 공간이동을 하면 가능할 것 같아.”
-쉬 잉!
3층 공간의 정중앙 자리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아루다.
10분 정도나 흘렀을까, 아루가 다시 나타났다.
“입구는 저기 왼쪽에 있어. 공간은 100평 정도고, 집으로 사용했던 것 같아. 안 쓴 지 오래되어 거의 창고 느낌이 되었지만.”
앞장선 아루를 따라 태월과 아쿠가 따라갔다.
아루가 대리석 벽면을 몇 번 두드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벽 너머가 비어있는 공간이야. 이쪽에 출입구 계단이 있어. 내가 떼어낼 위치를 표시해줄게.”
가방에서 매직펜을 하나 꺼내 벽에 선을 긋고 있다. 2.5m는 되어 보이는 정사각형이다.
“안에 별다른 상황은 없다고 하니, 이제 지하를 찾아보자고.”
1층으로 내려온 일행은, 아루의 공간이동을 통해 다시 지하 출입구를 찾아냈다.
“이야, 이거 던전 탐험에 딱 맞는 능력이네? 어? 어? 그럼 칭기즈칸 무덤도 가능하단 소리잖아?”
“아래가 비어있다면 가능하지만, 흙만 있다면 몸이 끼어버릴 텐데?”
“공간이 있는지만 확인되면, 다른 문제는 없다는 거지?”
“응, 내 몸만 들어갈 공간 이상이면 돼.”
“어? 너 정령 본체서 그 요괴 능력은 못써?
그게 된다면 땅속이라 해도 몸이 끼일 일은 없잖아.”
“응? 그건 잘 모르겠는데? 되려나?”
-쉬 리링!
아루는 변신을 해제하고 불의 정령 본체로 돌아갔다.
어른 주먹 한 개 반만 한 크기로. 과거보단 성장해 있었다.
주변에서 어른거리더니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10초 정도 흐르자 다시 나타나서는, 곧바로 이모로 변신했다.
“헤헤, 본체로도 되는구나.”
“아루, 어서 옷이나 다시 입어.”
변신 때 옷을 다시 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이게 귀찮아서 변신하기 싫더라.
아무도 없는데 그냥 이렇게 다니면 안 돼?”
“나도 있거든? 난 안과 가기 싫으니 어서 입기나 해.”
“으아, 귀찮아!”
퉁퉁거리며 주섬주섬 옷을 집어 들자, 아쿠가 입는 걸 돕는다.
“아유, 우리 이쁜 아쿠? 언니 도와주는 거야?
앞으로 너는 내가 다 책임질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 알았지?”
‘그런데 도울 거나 있나? 원피스 하나에 외투 하나가 전부인데.‘
이번 지하 출입구는 찾기가 쉬웠다.
1층 계단이 있는 곳과 연계된 지하 계단이라, 같은 장소에 있었다.
“이 건물 지을 때 공사했던 사람들은 다 알 건데, 왜 지하가 없는 걸로 등록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