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알리사가 된 아쿠
태월과 아루는 딸랑 3개 있는 재능 중에서, 고르는 중이다.
“공간이동은 네가 귀신에게 활용 중이니, 그림자밟기를 주자.”
“흠, 알았어! 아쿠야, 이리 와!”
호기심이 생긴 아쿠가 아루 가까이 왔다.
“이 언니가 너에게 변신 능력을 하사하마!
아쿠는 고개를 드을라!”
뜬금없이 사극 흉내를 내보는 아루다.
“응? 나 고개가 원래 없는데?”
“......”
일일이 설명하자니 머리가 아파진 아루는, 그냥 아쿠의 몸에 손을 얹었다.
잠시 후에 아쿠가 부르르 몸을 떨더니, 빛을 확 내뿜는다.
능력이 전승되면 그 설명서도 같이 이동되는지, 18살의 소녀로 바뀌었다.
몸에 푸른색의 반투명 실크 같은 것을 걸치고 있다.
“어? 아루가 바뀌었을 때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데? 이거 그 정령의 힘 차이 때문이야?”
“내가 그랬잖아. 아쿠가 나보다 강하다고.”
“그런데 쟤 옷이 너무 민망한데, 상관없으려나? 바로 변신해야 하니, 그 방에 가서 큰딸 옷 좀 몇 벌 가져와.”
“응, 알았어. 이쁜 거로 가져올게.”
옷까지 갖추어지자, 아쿠를 보며 주문을 했다.
“아쿠야. 여기 건강 진단서 보면, 이 여자 키가 169.2야. 거기에 키를 맞추되, 얼굴에 특히 신경 써. 몸이야 더 찔 수도 빠질 수도 있으니 상관없지만, 얼굴은 완벽해야지.”
“응, 알았어. 잠시 기다려요.”
자세히 나온 사진 몇 장을 추려서 한참을 보는 아쿠다.
-쉬 리리, 쉬 리링!
공중에 있던 아쿠가 빛을 내며 몇 바퀴 돌더니, 알리사로 변해서 내려온다.
“야! 얘 속옷을 가져왔어야지.”
“아, 몰라 그냥 입혀. 나도 안 입거든? 정령은 그런 거 답답해한다고.”
결국 아쿠는 가져온 옷 중에 그나마 긴, 무릎 바로 위 길이의 원피스를 입게 되었다.
“이야! 이제 짝꿍이 생겼어!”
엄청 신이 나 폴짝폴짝 뛰던 아루는, 얼떨떨한 표정의 아쿠를 안고서 방 안을 빙빙 돌았다.
아루의 새해 소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리라.
“아쿠는 이 집의 주인이 되어야 해.
이 집의 큰딸로서 앞으로 살아가게 될 거야.
그리고 법인도 만들어야 하고, 그 후엔 아쿠가 원하는 바이칼호에서 주로 지내게 될 거야.”
“응, 나도 좋아요.”
“그리고 엄마와 여동생은 바이칼 여행 간 것으로 하고, 사망 신고를 내야겠지.
방법은 쉽진 않겠지만, 이 과도기적인 러시아엔 가능할 것 같아.
아 그리고 러시아어 그리고 부랴트어 재능과 사교댄스 재능을 주도록 할게.
그리고 엄마의 러시아 요리도 줄게.
그럼 좀 더 완벽한 알리사가 되겠지?”
“태월? 알리사 직장에 연락해놔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은 이미 다들 퇴근했을 거고, 낼 아침에 연락해야 할걸? 일단 재능 전이부터 하자.”
태월은 알리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4개의 재능을 머릿속 폴더에서 찾아, 그녀에게 넘겼다.
아카의 몸이 잠시 떨리더니, 네 번 연속 빛을 내뿜었다.
아쿠의 손을 떼려다, 문득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그리고는 아루의 손도 잡아 펴보았다.
“어라? 너희 둘 다 지문이 없네?”
앞으로의 시대는 지문이, 신분을 대신할 시대가 올 수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하기도 했다.
“아루? 지문은 만들 수 있지?”
“지문을 보게 된다면 그대로 카피는 할 수 있긴 해. 난 필요하면 이모 손을 보고 그대로 해 놓을게.”
“그런데 다른 사람들로 변신할 때마다, 초기화되어서 또 해야 하는 거 아냐?”
“음, 그건 아카 언니에게 자세히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결국 아카와 국제통화를 하게 되었다.
아카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하는 데 무려 30분이나 걸렸다.
칭기즈칸의 무덤부터 시작해서 알혼섬 이야기. 그리고 비자금과 러시아 채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리사와 지문 이야기.
“그래서 변신술에서 지문의 효율적 적용 방법이 궁금하다는 거지? 별거 아니네.”
“아카, 뭐 좋은 해결책이 있어?”
“음, 폴더를 활용하면 될 거 같은데? 예를 들어 변신 폴더를 만들고, 막내 이모를 1번에 저장. 그럼 이모로 변신할 때마다, 그 폴더에 있는 모든 정보가 함께 진행될 거야.
지문 정보가 입력된 상태라면, 그것도 같이 진행되겠지?”
“아, 폴더가 키였어. 역시 아카는 이런 쪽으론 대단해. 그런데 넌 요즘 잘돼가고 있는 거지?”
“응, 유망기업들 지분도 많이 해놨고, 슈퍼컴퓨터도 곧 완성돼. 기대해도, 좋아!”
“러시아 채권 관련해서, 한국인이 취급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아카가 대신해 줄 수 있을까? 넌 그래도 미국인으로 되어 있잖아.”
“알았어. 그건 여기서 처리를 해줄게. 그리고 그 비자금과 채권을 함께 처리한 후, 그걸 라온에 지분 투자해 늘려놓는 건 어때?
그리고 이 기업이 알혼섬 투자에도 참여할게.”
미국 법인인 라온의 실질적인 주인은 태월이다. 비록 아카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닌 영령이기에 금전적인 욕심은 없다. 다만 성취욕은 사람보다는 강했다.
명목상으로는 아카 55%와 태월 40% 그리고 설희가 5%를 가지고 있다.
1990년 2월 초, 바하마 제도 은행 통장의 90억의 자금으로 시작된 라온 법인이다.
벌써 설립된 지 4년이 넘었고, 총자본은 1,800억이 넘어서고 있다.
4년 만에 20배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더 큰 성적을 거둘 수 있었지만, 소득이 당장 나오지 않는 미래가치기업에 한 투자가 반은 된다. 바로 장기간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온은 현재 비상장 기업이다.
그리고 1년 후에 다국적 기업으로,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럼 그렇게 해. 일단은 러시아 법인을 먼저 만들 테니, 거기로 투자해줘. 아쿠도 볼 겸 또 채권도 가져가야 하니, 시간을 내서 와.”
“그럼 열흘 내로 시간 만들어 볼게.”
한국으로도 전화를 걸어, 조민희와 홍미연에게 간략한 상황을 설명하고 안부도 전했다.
워낙 어른들이나 할 일을 종종 저질러서, 이젠 그리 놀라지도 않는다.
아루는 아쿠에게 폴더 활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더불어 그동안 겪은 인간사회의 경험담과 더불어,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시키는 중이다.
태월은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숙소 대신 오늘 내려준 곳으로, 장소를 변경하였다.
그리고는 아루와 함께 묵었던 숙소로 가서 짐을 다 챙겨왔다.
그 시간 동안 아쿠는 큰딸의 일기장을 읽으며, 그녀의 기억을 머릿속에 입혀나갔다.
짐을 가져오자, 아쿠가 새로운 정보를 알린다.
“알리사가 여행을 떠날 때, 그곳의 고용계약이 끝난 후였어요. 프리랜서로 일했었대요.”
“아, 그럼 다행이네. 괜히 행방불명 되었다고 신고했을까 봐, 걱정됐었는데.”
태월이 둘째 딸의 일기장을 찾아 읽고 있을 때, 둘은 변신을 풀고는 이 방 저 방을 보물찾기하듯 돌아다녔다.
“야! 너희 옷 좀 입고 다닐 수 없니?”
“아 불편해! 아쿠. 너도 불편하지?”
“응응, 이게 편해.”
아루는 그나마 몸이 어려서 신경을 안 썼지만, 아쿠는 18살의 정도의 몸이라 좀 달랐다.
둘을 그냥 거실서 TV를 보게 하고는, 큰딸의 방으로 태월은 건너왔다.
이곳에 컴퓨터가 있기에 온 것이다.
안나의 친구인 아샤의 정보를 찾기 위해서다.
두 딸은 이 컴퓨터를 같이 썼기 때문이다.
생소한 러시아어 자판이지만, 몇 번 연습하니 금방 익숙해졌다.
‘아샤랸 이름이 아나스타샤의 애칭이었네.
그리고 1981년생이면 만으로는 13살.
할머니랑 사는 아이네. 부모님은 안 계시나?’
다른 폴더를 하나 더 여니, 그곳엔 둘이 찍은 사진들이 몇 장 있었다.
안나와 같이 있는 소녀는, 물의 정령인 아쿠와 느낌이 비슷했다.
아카와 아루 그리고 아쿠가 영령과 정령이긴 해도, 생김새는 다 다르다.
물론 요괴의 변신술로 따진, 본체의 외모로 보았을 때 이야기다.
아카가 수많은 영혼의 합체로 태어난 영령이라서 그런지, 혼혈에 가까운 백인 미녀라면.
아루는 한국에서 태어나서인지 한국 미녀에 가깝고, 아쿠는 러시아에서 태어난지라 러시아 쪽 백인 미녀를 닮았다.
러시아 민족은 185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러시아인이 79.8%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 외 타타르족 3.8%, 우크라이나인 2%, 바슈키르인 1.2%, 추바슈인 1.1%, 체친인 1%, 아르메니아인 0.8% 그 외 소수민족이 있는 셈이다. 그중 고려인은 0.1%로 10만 명 정도이다.
‘그런데 안나가 죽은 것을 어떻게 알리지?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을 것인데….’
태월은 자기 나이를 제대로 인식 못 하는 중인데, 아나스타샤랑 불과 2살 차이다.
그런데도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태월은 아카도 기다려야 하고, 알혼섬의 진행 과정도 이곳에서 지켜봐야 한다.
처음엔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올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 긴 여정을 또 반복할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 났다.
비자 기간도 넉넉했기에 이런 생각도 가능한 것이다.
“통신 자료로는 법인 종류가 많긴 한데, 결국 유한회사나 개방형 주식회사를 해야 하려나.”
러시아의 회사 법인은 합명회사 합자회사 유한회사 주식회사들로 구분이 되어 있다.
그러나 합명회사와 합자회사는 거의 유명무실하다고 나와 있다.
유한회사는 사원 수가 50명을 넘어서면, 또 안 되는 제한이 있고.
주식회사는 두 가지며, 현재는 그 명칭이 개방형 주식회사(3AO)와 폐쇄형 주식회사(OAO) 두 가지가 있었다.
‘나중에 필요하면 바꾸더라도, 우선은 유한회사로 가보자.’
유한회사는 최저 정관 자본금이 1만 루블이고, 개방형 주식회사는 10만 루블이었다.
루블 가치로는 결국 얼마 되지 않는다.
태월이 모뎀으로 연결된 컴퓨터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이에도, 아루와 아쿠는 밤새 드라마를 보며 낄낄대었다.
그러다 조용해지기에 나와보니, 거실에서 엉켜 자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지, 저러고 자네?’
아루는 불의 정령이라 춥지 않은 거고, 아쿠는 물의 정령이라서 춥다는 게 문제가 안 된다.
그 차가운 바이칼호에서 태어났으니….
‘원래 물과 불은 상극 아닌가? 둘이 저리 껴안고 자다니….’
태월은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며, 안방으로 와서 잠을 청했다.
***
아침 아홉 시가 되어 태월의 알람이 울렸다.
눈을 뜬 태월은 거실로 나가, 아직도 부둥켜안고 자는 둘을 깨웠다.
영혼을 보는 태월의 입장에선, 그 둘의 알몸은 그리 노골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둘의 실체가 인간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단지 시선을 피했던 이유는, 야해서가 아니라 그냥 보기 민망해서였다.
“얘들아 일어나. 얼른 씻고 나가서 아침도 먹어야지. 마카르 씨가 곧 올 거야.”
어째 어린 두 딸을 키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아침 풍경이다.
둘이 씻고 나자, 변신을 바로 시키고는 옷도 정해줬다.
“잘 주무셨습니까? 어? 다른 분도 계시네요?”
“하하, 전에 이고르 아브라모비치 씨랑 있을 때 말하지 않았습니까? 러시아에 지인이 있다고요.”
“아, 법인 이야기 할 때였죠. 지인이 이렇게 가까운 데에 있을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젊어 보이는데요?”
“알리사가 꽤 동안입니다. 그리고 하는 일이 있는지라 바빴는데, 이제 한가해져서 보게 된 겁니다.”
“안녕하세요? 알리사 바실리예프예요.”
“와우, 대단한 미인이십니다. 마카르 아브라모비치입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탔다.
“회사 설립을 하려는데 지금 루블 가치가 어떻게 되죠?”
“지금은 1,000루블당 1달러입니다.”
“숫자로 보면 차이가 크네요?”
“3년 전만 해도 1루블당 1달러였습니다.”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