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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64화 (64/250)

64화. 로비스트, 이고르 아브라모비치

러시아에서 알래스카를 판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해달의 남획으로 모피를 구할 수 없었다.

또 영국령인 캐나다와 접경하고 있어서, 러시아를 노리는 영국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러시아 정부의 막대한 빚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영국에 있는 유대계의 세계적 금융 가문인 로스차일드가에, 1,500만 파운드를 빚지고 있었고 금리도 연 5%의 고금리였다.

그래서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팔아 하루빨리 빚을 청산하고 싶었다.

그런데 살만한 구매력을 가진 곳은, 그 당시 영국과 미국밖에 없었다.

적국이나 마찬가지인 영국에는 팔면 안 되었기에, 동맹국인 미국에 팔게 된 것이다.

1867년 3월 29일 720만 달러에 매각하였지만, 700만 달러는 부채 탕감에 쓰였고, 실제 들어온 돈은 20만 달러였다.

“하하, 알래스카를 판 일은 두고두고 후회되는 사건이었지요. 그리고 알혼섬이 작은 땅도 아닌데, 그게 가능하려나요? 일단은 계좌개설부터 하러 가죠.”

가이드는 태월의 말을 그냥 농담으로 생각했고, 관공서로 향했다.

여행 가이드인 마카르의 안내에 따라 거주 등록 신고서 양식을 작성했고, 그 결과로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스베르방크(Sberbank of Russia)라는 러시아 국영은행이며, 러시아 최대 은행이다.

그 은행의 이르쿠츠크 지점에서 개설했다.

“나이가 미성년자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모님이 있어서 슬쩍 편법을 써서 된 것이지, 하마터면 헛수고할뻔했네요. 담당이 깐깐했다면, 통과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하하, 제가 조숙한 편이긴 합니다.

그건 그렇고, 마카르 씨? 진짜 알혼섬을 살 수는 없나요? 정 안 되면 일부라도요.”

“헛, 그게 농담이 아니었습니까? 그 땅이 관광자원으로는 최고긴 하지요. 부랴트족이 있는데, 섬 자체를 쉽게 팔려고 할까요?”

바이칼호에는 27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으며, 그중 가장 큰 섬이 알혼섬이다.

알혼섬의 면적은 730㎢이며, 평으로 환산하면 2억2천만 평이다.

대한민국의 부산과 맞먹는 면적이다.

1991년부터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은, 소련 붕괴 이후 엉망진창 경제 정책을 펴기는 했다.

1994년에 들어 옐친은 정부 재정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또 대외적으로는 러시아 경제의 국제화와 개방화를 가속화 하는 중이었다.

옐친은 러시아에 서방 세계와 같은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자본주의에 대한 준비가 안 된 러시아는, 그로 인해 경제가 거의 혼란이 오는 시기였다.

“가능한 방법은 없으려나요?”

“지금 러시아 자체가 조금 혼란한 시기라서,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긴 합니다.

루블이 아닌 달러라면요.”

“알혼섬이 이르쿠츠크의 영역이라면 주 관청에 가서 알아봐야겠네요? 가능하다면 모스크바행은 미뤄보도록 할게요.”

“주 관청에서야 형식적인 답변만 할 것이고요. 이럴 때는 로비스트가 필요한 법이죠.”

“아시는 분이 있으신가요?”

“이르쿠츠크에 꽤 거물이 한 분 계시죠. 먼 친척이긴 하지만, 일한 만큼 딱 받으시는 합리적인 분이시지요.”

“만나볼 수 있을까요?”

“그럼 일단 열차는 취소해놓으세요.”

태월은 역에 들러 해결한 후에, 곧바로 한국으로 전화를 했다.

상황을 대략만 설명하고 유동자금도 물어보았다.

다행히 달러는 과거 그림 경매로 번 3천7백4십만 달러를 예치해놓은 게 있었다. 그걸 회사자본금으로 돌렸던 게, 1/3쯤 남아 있었다.

정 부족하면, 아카가 만든 외국 법인과 합작 투자를 해도 될 것 같았고.

로비스트와의 만남은 4시간이 지나서 이루어졌다.

“허허, 이고르 아브라모비치요.”

“대한민국에서 온 박태월입니다.”

“알혼섬을 사고 싶어 한다고요?”

“네, 관광자원이 아주 좋더라고요.”

실제 태월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칭기즈칸의 무덤이 탐나는 것도 있지만, 기운이 맑은 이 섬이 욕심이 난 것이다.

이고르 아브라모비치를 영혼 에너지로 바라보니 검은 쪽은 아니고 약간 붉은 빛이 돈다.

나이에 비해 열정이 넘치고, 성취욕이 강해 보였다.

“제정러시아 때 알래스카를 팔아먹은 일 때문에, 국민 정서상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나라 간에 일어난 거래였고요. 민간 부동산 취득도 이제 가능하지 않나요?”

“지금이야 가능은 하지요. 하지만 알혼섬 자체를 산다는 것 아닙니까? 더구나 거긴 부랴트 공화국의 정신적 고향인 곳입니다.

정상적으로는 힘들단 소리지요.”

묘한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은요?”

“외국자본 유치는 현재 이 나라에 꼭 필요한 일이 맞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그 섬을 통째로 팔았다 하면, 국민들은 대한민국에 넘긴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명분이 가미된 위장 방식이 필요합니다. 러시아에 법인을 세우되, 러시아인 대표가 있어야 하죠. 그 법인이 해외투자를 받아서 매입하는 식으로요.”

“그럼 다 해결되나요?”

“아니죠. 그러고 나서 그 부랴트족을 달래야 하죠. 그들이 신성시하는 땅을 영구임대로 선물하세요. 부르한 바위 주변 5천 평, 하보이 곶 주변 5천 평.”

“이미 마을이 형성된 곳은 정부 땅이 아니겠군요?”

“네 그 마을은 거래대상이 되지 못하죠.

섬 전체를 산다고 해도, 결국 정부 소유의 땅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미 사유지가 된 곳은 거래하든가 아니면 공생해야죠.”

“사유지가 많은가요?”

“알혼섬 전체 면적의 5%는 사유지일 겁니다. 뭐 점유가 오래되어 인정된 것까지 포함해서죠.”

“평야보단 산악지대가 훨씬 많던데요?”

“섬이란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현재 사용 가능 면적을 비율로 보면, 20% 정도도 안 되는 게 대다수입니다. 그나마 알혼섬은 효율이 더 높은 상태고요.”

한국에 있는 섬들은 10% 내외인데, 그에 비하면 훌륭한 것이다.

“알혼섬에 부랴트족이 많나 봅니다?”

“알혼섬 주민 전체는 2천 명에 불과하고, 그중 1,500명이 부랴트족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다 관광객인 거죠.”

“활용 가능한 땅은 비율이 적은데, 쓸모없는 땅도 같은 가격으로 되는 건 아니겠지요?”

“그런 식으로 계산해서는 섬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냥 알혼섬 자체를 얼마에 팔 거냐는 식의, 접근법이어야 합니다.”

“얼마 정도면 합당할까요?”

“알래스카를 팔았을 때 1㎢당 5달러였습니다. 총 720만 달러였죠. 그 당시의 화폐가치는 지금과는 천지 차이가 나긴 합니다. 이럴 때는 상징성으로 가야 합니다. 1㎢당 2만 달러.

알혼섬 730㎢의 사유지 5%를 뺀다면 약 700㎢가 됩니다. 그러니 1,400만 달러.

추가로 40만 달러는 보상금으로 내놓지요.

그 광대한 알래스카 면적과 비교하면 보잘것없지만, 가격은 720만 달러의 두 배인 1,440만 달러! 얼마나 거창합니까? 이르쿠츠크 시민들이 볼 때, 과거를 보상받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1,440만 달러는 한화로 약 130억이다.

“수수료는요?”

“60만 불은 받아야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기름칠을 쫙해야 하거든요.”

생각보단 요구액이 크진 않았다.

1,440만 달러의 10%인 140만 달러는 요구할 줄 알았다.

1994년의 러시아는 달러의 가치 수단이 높고, 자국의 화폐인 루블은 가치가 대폭락 중이다.

그래서 저렇게만 요구한 게 아닐까 싶었다.

“갑자기 해결책이 떠오르신 건 아니죠?”

대화가 너무 매끈하게 이어지기에, 조금 놀란 상태의 태월이다.

“세 시간 정도 투자해서, 해결법에 대해 미리 연구를 좀 하고 온 것입니다.”

대화 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러시아 법인을 만들 때, 대표의 성별이나 나이가 문제 될까요?”

“흠, 요즘은 성별 정도야 크게 문제 될 것이야 없지만, 나이는 최소 30대는 돼야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왜 믿을 수 있는 러시아 지인이라도 있습니까?”

“하하 네, 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로비에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까요?”

“최소 한 달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의뢰 수락서 작성 가능할까요?”

“허허, 원래 이런 건 쓰지 않는 것이지만, 조카의 안면도 있고 하니 그러도록 하지요.”

가까운 변호사실을 방문하여 의뢰 수락서란 것을 작성 후 공증받았다.

그리고 미화 6만 불을, 로비스트인 이고르 아브라모비치에게 10% 계약금으로 지급했다.

아마 그 돈으로 로비 경비로 당분간 충당할 것이다.

미화 6만 불은 한국에서 보내온 것이다.

이고르 아브라모비치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마카르 씨? 잠시 저녁도 하면서 이야기 좀 긴히 나눌까요? 아시는 곳 있나요?”

“네! 알겠습니다. 안내하겠습니다.”

태월을 전보다 더 깍듯하게 대하는 가이드다.

동원 가능 자금 규모가 그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 했던 탓이다.

유럽식 레스토랑 분위기였는데, 오리 훈제랑 양 갈비를 시켰다.

원래는 오늘 저녁이면 가이드가 끝나야 하는데, 연기되는 바람에 집으로 전화를 한다고 나갔다.

아마 저녁 식사를 가족과 함께하려 한 건데,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하는 것 같다.

그 잠시 시간에 태월은 아쿠에게 의견을 묻는다.

“아쿠? 심심했지?”

“아니,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괜찮았어.”

“아쿠는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이 좋아? 아니면 태어난 그 호수가 더 좋아?”

“사람들이 많아서 재밌긴 한데, 여긴 물이 없어서 편하진 않아. 그래도 사람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노력해 볼게.”

“그럼 다시 그 호수 근처에서 살게 해주면, 거기 있을 마음도 있는 거지?”

“응, 좋아.”

식사가 나올 즈음에 가이드도 돌아왔다.

삼십 분 정도를 말없이 식사에 열중하는 셋이다. 태월은 생각을 정리하느라 그런 것이고.

아루는 아카랑 텔레파시로 대화 중일 거고.

눈치를 보던 마카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까 하실 말씀이?”

태월의 상념도 깨어난다.

“법인 만들 때 도움을 좀 주십사 해서요.

그리고 혹시 최근에 이르쿠츠크에서 대규모 인명사고가 난 적은 없나요?”

“아, 몇 달 전 바이칼호에서 유람선이 침몰한 적이 있습니다. 관광객에 마이너스적인 정보라, 언론을 통제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죠. 그때 생존자는 없었고, 시신만 20구 정도 인양했을 뿐이죠. 나머진 바이칼호 바닥에 사는 ‘에피슈라’라는 새우 비슷하게 생긴 동물플랑크톤에 의해 분해되었을 겁니다.”

“아 들어봤습니다. 그게 시체도 분해해 버리나 보죠?”

“에피슈라는 바이칼 호수 생물량의 80~90%를 차지할 만큼 번성해, 호수를 오염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분해해 버립니다.”

“혹시 내일 시간 된다면 그리로 가줄 수 있나요?”

“아, 거긴 왜 가시려고?”

“바이칼호의 장단점도 미리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애매한 답변에 고개만 갸웃거리는 가이드다.

그래도 고객이 원하는 일이니, 갈 생각이긴 했다.

“혹시 그 당시 탑승객 명단 좀 구할 수 있을까요?”

“아, 아니, 그걸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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