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칭기즈칸의 흔적을 찾아서
다음 날 태월은 예정되어 있던, 알혼섬으로 가게 되었다.
지도에 그려진 대로 유추해보면, 그 중심은 알혼섬이 맞았다.
당장 발굴할 상황도 안 되긴 하다.
부랴트 정부나 국민들이, 그 무덤 발굴을 두 눈 멀쩡히 뜨고 봐줄 리도 만무하고.
더구나 머나먼 이곳 러시아 연방인 부랴트 공화국에서, 한국으로 가지고 나갈 방도도 떠오르지 않는다.
무덤의 규모가 작다면 모르겠지만….
‘이건 개인이 하기엔 무리고, 회사를 통해 이곳 정부와 협상해야겠어. 발굴회사라도 만들어야 하려나. 사조님은 이걸 어디서 구했을까?
한국에 바로 가져오지 못한 특별한 상황이라도 생겼던 걸까? 그러고 보니 아는 게 하나도 없네.’
이젠 물어볼 스승도 없다.
칭기즈칸의 무덤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들이 몇 군데를 유추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칭기즈칸의 대외적 고향이라 불리는 다달 솜이다.
몽골 헨티주에서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동북쪽 끝, 다달 솜(군에 해당)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는 빈데르 솜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동북동 방향 400Km.
다달 솜을 조금 못 미쳐 있는 빈데르 솜도 몇몇 학자들이 주장하는 칭기즈칸의 고향이다.
빈데르 솜에는 오논강의 지류가 흐르는데, 그 앞에 언덕이 칭기즈칸의 탄생지인 ‘델리온 볼다크’이다.
세 번째는 울란바토르에서 동남동 방향으로 200Km에 있는 호두아르. 이곳도 역사가 숨어있는 땅이다. 재미있는 것은 호두아르에도 칭기즈칸의 탄생지라 알려진, 델리온 볼다크가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가 바이칼호의 부랴트족에게 알려진 알혼섬이다. 특히 그 섬의 샤먼 바위라고 알려진 부르한 바위 쪽이다.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폴로는 그의 무덤이, 부르한 칼둔이라는 곳에 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외 알타이산 기슭에 무덤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긴 했지만.
후보지 중에 제일 유력한 다달 솜에는, 몽골 부족 중에 부랴트족이 대부분 살고 있다.
바이칼호 주변에 살고 있다가, 러시아 혁명 무렵 이곳으로 이주해 온 것이다.
몽골 부족 중에 한민족과 제일 용모가 유사하고, 유전자도 일치하는 부랴트족이다.
칭기즈칸은 왜 자신의 무덤을 후세에 숨기려 했을까? 여기에는 자기가 일궈낸 제국을 지켜나가기 위한, 바람이 숨어있다.
초원 민족인 유목민에게는 땅을 빼앗긴다는 개념이 없었다. 적이 쳐들어와도 도망가면 그만인 것이다.
그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조상의 무덤을 빼앗기는 일이고, 그게 패배하는 의미였다.
그래서 칭기즈칸은 자신의 무덤이 적에게 훼손되어, 제국이 멸망할까 염려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마련했을 것이다.
세계정복에 바쁜 그들이, 칭기즈칸의 무덤에 투자할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었을까? 하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도 있었고.
알혼섬으로 가려면 결국 이르쿠츠크로 이동을 해야 했다.
“아루? TV 그만 보고 씻고 나와. 바로 알혼섬으로 갈 거야.”
“에이, 마저 봐야 하는데. 하여간 알았어. 금방 씻고 나올게.”
태월은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 출발 준비를 시켰다.
아침은 제일 만만한 음식인 부즈로 때웠다.
차로 4시간 달려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알혼섬에 가면 현금을 찾을 곳이 없습니다.
미리 이곳에서 여유 있게 찾아놔야 합니다.
그곳은 현금 외에 카드는 사용이 안 됩니다.”
다행히 이르쿠츠크는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가능한 곳이 많아 현금 찾는 게 어렵진 않았다.
“온 김에 여기서 식사를 하고 가죠? 아시는 데 있나요?”
“하하, 그럼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가이드가 10분을 소모해서 간 곳은, 의외의 식당이었다.
허름한 것은 문제 안 되지만. 입구 유리에 고려식당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는 것이다.
더구나 메뉴판은 한글로도 적혀있었고.
“여기 한국 사람이 운영하나 보죠?”
“아, 아닙니다. 고려인 3세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한국말은 전혀 못 합니다.
여기 한국 관광객들이 요즘 오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메뉴판을 만든 듯하네요. 메뉴는 마음에 드십니까?”
“하하, 자주 보던 메뉴들이 많네요. 북한식당이나 있을 줄 알았더니, 이곳에서 이 음식들을 보니 더 반가운데요?”
김치찌개, 비빔밥, 고기 채소볶음과 튀김 그리고 국수들이었다.
시켜서 먹은 것은 고기 채소 볶음밥과 홍합 채소 볶음밥에 국수 곱빼기.
그 고려인 3세 주방장이 추천하는 요리는, 고려인 전통 국수였다.
고려인 국수가 강추 메뉴인 이유는 먹어보니 알게 되었다.
볶음밥이야 국자로 꾹꾹 눌러가며 볶아서, 고슬고슬한 맛이 살아있는 한국식 전형적인 그 맛이다.
그런데 고려인 전통 국수는 굉장히 익숙하지만,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이북식 국수가 대다수 그렇듯이 고명이 굉장히 푸짐하게 올라가는 편인데, 각종 야채를 비롯해서 고기와 유부가 올라간다는 점이 독특하다.
국수는 냉국수인데 굳이 맛을 찾아보자면 냉짬뽕을 먹는 기분이지만, 그것보다 더 산뜻했다. 고추기름을 사용해 매운맛을 낸 게 특징이며, 기름진 맛보다는 산미가 더 느껴지기 때문에 깔끔하게 먹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칼칼하기 때문에 먹고 나면 입이 얼얼하고 열이 난다. 냉국수로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면 자체로도 소면이 아니고 가락국수 국수를 삶아 내기 때문에, 찰진 식감에다가 잘 불지 않아서 끝까지 쫄깃하게 먹을 수 있었다.
겨울에 바이칼호가 완벽하게 빙판이 되면, 알혼섬까지 차로 갈 수가 있다.
그 외의 시기엔 사휴르타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6~7시간을 가야 한다.
바이칼호의 얼음 도로는, 2월 5일부터 11일 사이에 개통이 된다.
2월 중순인 지금은 차를 타고 호수를 건너야 하는 시기다.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섬 후지르 마을까지는 거리가 290km다.
호수 빙판에 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개들도 그러고 있었다.
6시간이 걸려 도착한 후지르 마을.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여기저기 불들이 켜져 있다.
마을 실외 스케이트장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모여 아이스하키를 하고 있었다.
영하 30도가 넘는 이 추운 날씨에도 열심히들 놀고 있었다.
숙소는 통나무로 만든 듯한 곳으로 잡았다.
저녁도 먹어야 하기에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 중심 쪽에 마트가 하나 눈에 띄는데, 생각보단 그리 크지 않았다.
식당에서는 양고기를 곁들인 식사를 했는데, 그리 특이한 것은 없었다.
“여기 와서 느낀 것이지만, 러시아 전통음식 중에 많은 수가 혼합된 외래문화 같아요.”
“어떤 점이요?”
“어제 먹은 몽골식 만두도 그렇고.
유라시아의 영향이 짙은 거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식문화로 보면 유럽식이고요.”
태월의 말에 가이드도 고개를 끄덕인다.
“러시아가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지점이라서, 더 그럴 겁니다.
지금 먹고 있는 이 샤슬릭만 해도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먹던 숯불구이로부터 유래했거든요.”
“맛은 나쁘지 않은데요?”
“샤슬릭은 터키의 케밥과 비슷한 맛이라고 생각들 하더라고요.
제가 다른 한국분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네요.”
“난, 이거! 맛있는데….”
아루는 보르쉬라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러시아를 대표하는 전통 수프다.
보르쉬는 돼지등뼈, 양파, 양배추, 당근, 감자, 고춧가루, 후추, 소금 등등을 넣어 끓인다.
빨간색이 도는 수프로 완성되는데, 맛은 감자탕 느낌이 난다.
거기다가 추운 날씨라서 그런지, 마요네즈를 뿌려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르쉬는 보드카를 부르는 음식이죠. 양고기와 곁들여 먹으면 칼칼하니, 겨울엔 최고의 요리입니다.”
태월도 그 맛이 궁금해서 한번 떠먹어본다.
“오, 진짜 좋은데? 담에 나도 이걸 시켜야겠네.”
“그런데 보드카? 그게 뭐죠? 술 이름인 거 같은데. 자동차는 아닌 것 같고.”
러시아어를 이제 알긴 하지만, 어떤 종류의 술인지는 전하지 않은 듯했다.
“그 안동소주랑 비슷한 거예요.”
가이드도 있기에 존대를 하는 태월이다.
“그럼 난 어른이니 한잔해도 되는 거네?”
“하하, 그럼요! 미성년자도 몰래 마시는데, 어른이면 못 먹게 할 리가 없지요. 저도 오늘은 운전을 더 하지 않을 것이고. 저도 한잔하겠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보드카를 먹게 되었다.
어른의 모습으로 있는 아루를, 말리기 쉽지 않아진 탓이다.
‘에구,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그런데 술자리가 길어지고 있다.
“이거 그 크바스라는 술보다 훨씬 기분이 좋은데요? 가이드 씨 한 잔 더 줘봐요.”
“이거 보기보다 술이 세십니다? 반병을 벌써 다 드셨네요. 그래도 한 병을 넘으시면 안 됩니다. 내일 여행을 제대로 못 할 수 있거든요.”
“네, 네….”
결국 그날 밤 문제가 생겼다.
술은 의외로 세서 구역질은 안 했지만, 기분이 좋은지 밤새 노래를 했다.
“카피카피룸룸 카피카피룸룸 카피카피룸룸 카피카피룸룸.
일어나요, 바람 돌이 모래의 요정”
거기에 율동까지 더해서….
‘모래 요정 바람 돌이’부터 시작해서 ‘날아라 슈퍼보드’ 등등.
그것도 만화영화에 나오는 걸로다가 메들리를 만들어서….
덕분에 잠을 제대로 못 잔 태월이다.
아침 식사는 해장해야 한다는, 가이드를 따라서 보르쉬를 먹게 되었다.
“하보이 곶으로 먼저 가봐 주세요.”
무덤은 지도상으로 볼 때, 하보이 곶에 도착하기 전쯤에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알혼섬 최북단에 있는 하보이 곶은 부랴트어로 송곳니를 뜻한다.
처녀 바위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데, 바위를 호수 쪽에서 보면 여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남편을 따라 똑같은 궁전을 지어달라고 소원을 비는 여인에게 신 탱그리가 과욕에 대한 벌을 주었다.
‘세상에 사악함과 질투가 있을 때까지 바위로 있을 것이다.’라며 바위로 만들었다고 한다.
후지로 마을을 떠나 부르한 바위를 거쳐 하란취로 갔다.
거기서 다시 삐시안카 그리고 사간후순을 지나서, 하보이 곶에 거의 다다를 즈음이었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죠? 허리가 아프네요.”
“하하, 그러죠. 사실 2월에 여기 눈이 이렇게 적게 내린 건, 아주 드문 일입니다. 보통은 눈이 과하게 쌓여서, 중간쯤에 되돌아가기에 십상이거든요.”
태월이 내린 곳은, 하보이 곶으로 가는 길에 있는 평원을 지난 언덕 쪽이었다.
고대 시대의 지도 수준으로 보면 정확히 맞아떨어지진 않겠지만, 지도상은 이 주변이다.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이 주변의 지형들을 세세히 찍었다.
나중에 지도와 자세히 대조해보기 위해서다.
“아니, 사람도 안 찍고? 온통 눈밭만 있는데 뭘 찍어? 나 좀 찍어줘!”
“하하, 알았습니다. 그럼, 거기 바위 쪽으로 가서 서세요.”
몇 장을 찍어주고 있는데. 가이드가 다가왔다.
“독사진을 찍으면 추억이 약하지요. 두 분이 서세요, 제가 찍어 드릴게요. 그쪽 바위 말고 그 뒤쪽 큰 바위 쪽에 서세요.”
태월은 아루의 손을 잡고 그리로 갔다.
바위 위쪽은 눈이 쌓여 있지만, 벽면은 눈이 거의 없었다.
벽면에 손을 짚고 아루와 포즈를 잡으려는데, 영혼의 기운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떤 기호 같은 게 손 옆으로 희미하게 보였다. 장갑 낀 손으로 쓱쓱 닦아 본다.
드러나기 시작한 글자는 단 하나였다.
‘汗’
지도에 있던 그 표시였다.
근처에 이 글자를 찾아보려 했지만, 눈 덮인 곳이라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이 녹은 봄에 다시 올 생각이었다.
‘이렇게 운이 쉽게 닿는다고?’
成吉思汗(성길사한)의 이름에서 젤 끝 글자인 한이다. 汗은 추장이란 의미를 뜻한다.
‘이 앞쪽 정면으로 20보! 차,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