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부랴트의 울라우데
태월은 잠시 식사를 멈추고는, 식당 뒤쪽에 가보았다.
마당에 불이 지펴져 있다.
얼굴을 가린 장식을 하고, 머리엔 뿔처럼 두 개의 깃털을 꼽은 여자가 있었다.
양털색의 옷에 소매와 허리엔 푸른색을 덧댄 무당 같은 모양새였다.
하늘을 향해 술을 뿌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녀는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집안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쏘크! 쏘크! 쏘크!”
무슨 뜻의 단어인지는 모르지만, 기운이 일렁이기는 했다.
마침 뒤따라온 가이드가 상황 설명을 해준다.
“부랴트에는 샤먼을 자주 보게 됩니다.
샤머니즘이 삶의 일부인 민족이거든요.”
“쏘크는 무슨 뜻인가요? 러시아어는 아닌 것 같은데.”
“저도 이곳 가이드를 종종 하기에 알게 된 것인데, 신명이 제물을 받아먹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즉 제물을 바쳤으니, 잘 봐 달란 것이겠죠.”
‘아, 흠향, 그 의미구나. 그런데 우리나라 성주고사 같네.’
태월은 10여 분쯤 더 지켜보다가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 나 입천장이 데었어! 아, 따거!”
부랴트의 부즈는 중국의 샤오롱파오(소룡포)처럼, 만두피 안에 뜨거운 수프가 있다.
이빨로 조심히 구멍을 내서 국물 먼저 흡입하고 속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입천장 화상이다.
‘아카랑 다르게 아루는 사람처럼 닮아 가네? 몸속도 그렇게 바뀌려나?’
“찐만두 말고 튀김만두를 먹지 그랬어?”
찐만두는 부즈고 튀김만두는 호쇼르라는, 이곳의 두 가지 주메뉴였다.
부즈가 어느 정도 식혀졌기에, 느긋하게 이곳 전통음식 부즈를 맛보는 태월이다.
“아저씨? 울란우데의 ‘부랴트 고려인 문화센터’를 찾아주세요.”
“헉, 그걸 제가 어찌 찾아요? 아, 아는 고려인이 하나 있는데 물어볼게요.”
지금 안내를 맡은 이는, 러시아 도시 중 하나인 이르쿠츠크에 사는 여행 가이드다.
‘TW 투어’에서 모스크바 여행사를 통해 소개받은, 이번 여행의 안내자다.
다행히 그 고려인이 그곳을 아는지, 주소까지는 받을 수 있었다.
2층의 허름한 건물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때마침 사람이 하나 있긴 했다.
“안녕하세요? 사람을 좀 찾으려는데, 가능한 방법을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태월이 나서서 유창한 러시아어를 날린다.
“어? 그런데 왜 고려인 문화센터를 오신 거죠? 그런 건 행정청을 가셔서 알아보셔야죠.”
이 사람은 태월의 유창한 러시아어에, 부랴트 국민인 걸로 착각한 것이다.
뭐 생긴 게 비슷하기도 하니.
“전, 대한민국에서 왔거든요?”
“어? 그런데 이렇게 러시아어를 잘한다고요?
신기하군요. 그 먼 곳에서 사람 하나를 찾으러 오신 거라는 거죠? 이름이 뭔가요?”
“니콜라이 코마로프. 1921년생.”
“흔한 이름이군요. 행정처에서 알아 와야 하는데, 적임자를 소개해드릴까요? 아마 수고료는 어느 정도 줘야 할 건데. 괜찮겠어요?”
“정확히만 찾아준다면,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어머니신가? 왜 아드님이 나서서?
그리고 러시아말을 어디서 배운?”
“하하, 저희 이모인데요? 낯을 좀 가려서요.
말은 이모한테 배운 것이에요.”
아루도 눈치가 있는 것인지, 바로 나선다.
“그 소개해 줄 분은 언제 볼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숙박할 만한 곳을 추천해 주세요”
“아, 목소리도 어여쁘시군요. 제가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잠시 안쪽에서 기다리세요.”
따뜻한 차를 두 잔 가져다주고는, 책상으로 돌아갔다.
30분 정도를 기다리자, 문화센터로 누군가 들어왔다.
40 초반은 되어 보이는 전형적인 부랴트족의 얼굴이다.
“어서 와, 세르게이. 빠르게 왔네?”
“어? 이분들인가? 흠흠, 내가 이쪽 정보는 빠삭하지요.”
“아하,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박태월이고, 이쪽은 제 이모입니다.”
“네, 반갑소. 세르게이요. 그 찾는다는 분 정보는 내가 듣긴 했소. 중요한 건 돈에 따라 시간이 단축된다는 것이오.”
“말해보세요.”
“화폐는 달러. 10일 안에 찾아드리면 500불, 5일 안에 찾아주면 1,000불을 내시오.”
부랴트족의 1인당 연 소득이 3천 불인 시대다.
1천 불이면, 4달 치 소득이다.
태월이 영혼 에너지를 눈에 두르고 그를 살폈다.
그냥 색이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회색.
“삼 일에 4달 치 소득이면 센 거 아닌가요?”
“흠흠, 나 혼자서 하면 5일 안에는 힘들지요.”
둘의 대화 중에 아루가 끼어들었다.
“1921년생이면 돌아가셨을 수도 있는데?
그땐 무덤 주소 알려주고 땡?”
“그러면 그때 가서…. 그것에 맞게.”
아루 이야기대로 간다면, 세르게이가 장난칠 가능성도 보여 태월이 나섰다.
“후손이 있다면, 추가하겠다는 거죠?”
“그거야 대상이 추가된다면 그래야죠.”
“5일 안에 니콜라이 그분이 살아계시든, 돌아가시든 관계없이! 후손 포함 1천5백 불! 하루 더 단축되면 5백 불 보너스! 선불은 5백 불, 대면 확인 끝나면 잔금!”
“조, 좋소! 그렇게 합시다. 하하하, 도련님이 화끈하시네.”
태월은 12살에 170이던 키가, 16살인 지금은 더 커져서 178 정도의 키다.
4년 만에 8cm 큰 게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외형상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상태기에, 세르게이도 존대하는 것이다.
“이 일에 대해 간단히 계약서를 작성하되, 계약 중개인은 저기 저분을 넣겠습니다.”
문화센터 직원은 떨떠름한 표정이지만, 서로 신뢰하는 것인지 결국 응한다.
“중개인인데 뭐라도 생겨야겠죠?
총금액의 10%를 중개료로, 잔금 때 같이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얼굴이 밝아지는 센터 직원이다.
사실 그래 봤자 10%면, 150불에서 200불에 불과하다.
그래도 그에겐 20일 치 임금과 맞먹는다.
오후 4시 정도지만, 센터 직원이 소개하는 숙소로 일찌감치 들어갔다.
비행기 9시간, 대륙횡단 열차 82시간, 차량 약 5시간. 무려 96시간 즉, 4일간의 이동이었다. 비록 이동 중에 잠자긴 했어도,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쌓인 것은 사실이다.
아루는 씻고 잘 때는 변신을 풀기에, 중1 정도의 몸으로 잔다.
정령이란 게 부끄러울 리가 있겠는가.
이불을 덮어줘 봤지만, 헛일이다.
화령이라서 그런지 추위를 타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늘 떨어져서 자는 태월이다.
태월은 오전 11시에 꿈지럭대며 일어났다.
무려 18시간을 잔 것이다.
아루는 언제 일어났는지, TV를 시청하며 깔깔대고 있었다.
“아루야? 다른 사람하고 있을 때는, 옷 좀 입고 있으라 그랬지?”
“아, 답답해서 불편해. 어차피 외출하면 또 입어야 하는데, 이럴 때는 그냥 있을래.”
“그럼 배 좀 집어넣던가? 이상형이 눈사람이야?”
배를 얼른 집어넣으며, 시치미 뗀다.
“배 안 나왔거든? 숨 쉬느라 잠시 나온 거야.”
“이곳 볼일이 끝나면, 겨울왕국으로 들어갈 거야. 너 거기서 몸매 뽐내도 되겠다.”
“아니? 왜? 비키니라도 입나?”
“아니 눈사람 콘테스트가 있더라.”
“으이씨! 나 배 안 나왔다니까!”
바이칼호 안에 있는 알혼섬으로, 2박 3일간의 여행을 갈 계획이다.
알혼섬은 바이칼호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적은 제주도의 40% 정도 크기다.
고대로부터 알혼섬에 부랴트과 쿠리칸족이 살고 있었다.
칭키즈칸 시대부터 알혼섬은 몽골 제국의 땅이었으나, 17세기에 러시아 식민지가 되었다.
칭키즈칸이 태어난 곳이라 알려졌고, 영구적으로 거주한 러시아인들은 거의 없다.
행정상으로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주에 속한다.
알혼섬에는 유라시아 대륙을 주름잡았던, 칭기즈칸 무덤이 있다는 전설이 있다.
바이칼호 근처에서 태어났고 죽을 때, 그의 유언에 따라 부르한 바위(일명, 샤먼 바위)에 묻힌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 진위는 알 수가 없었다.
태월이 알혼섬에 관심을 둔 곳은, 샤먼 바위라고 일컫는 부르한 바위와 무속인들의 고향으로 알려진 하보이 바위다.
하보이 바위는 알혼섬에 있는 후지르 마을에서 북쪽으로 35km 가면, 최북단에 위치한 하보이 곶에 있다.
하보이 곶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돌탑과 소원을 비는 장승이 있어 친숙한 느낌을 들게 한다.
과거 부랴트 무속인들이, 영성을 충전하는 곳으로 알려진 장소다.
“울란우데에서는 뭐 하려고? 여기 바이칼호 말고 별로 중요한 게 없어 보이던데?”
울란우데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몽골 횡단 열차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그 지리적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는 곳이다.
“가이드에게 연락할 테니, 일단 나가서 둘러보자. 씻고 옷부터 입도록 해.”
40대 초반의 이모로 다시 변신한 아루와 함께 호텔을 나섰다.
점심부터 먼저 하기로 하고, 호텔 맞은편의 부랴트 식당으로 갔다.
고급식탁에 자리를 넓게 배치해서, 아늑함과 편안함을 주게 해놓았다.
야채 샐러드, 소 혀, 돼지고기, 양고기가 식탁에 올라왔다.
그중에서 부랴트족 특유의 요리인 양고기가 입맛엔 맞았다.
“그런데 이거 뭐야? 맛있고 쫀득한데?”
“크크, 그거 소의 혀야!”
“우엑!”
식사를 끝내고 나오자, 가이드가 호텔 앞에 차를 세우고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 울란우데에서 관광할 곳이 있나요?”
“하하, 여기는 불교사원이 많아요. 이곳 관광할 때 제일 먼저 가보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크고 작은 박물관도 10개가 넘지요.”
“교회는 거의 안 보이던데.”
“주민 대부분이 불교 신자라서, 교회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개신교가 좀 있긴 하지만요.”
“사람들 복장이 청나라 시대 옷들을 많이 입는군요. 그리고 고려 시대 복식도 좀 보이고.”
중국 무협 영화 비디오를 보면, 흔히 보이는 그런 복식들이었다.
이곳의 불교사원은 건물들의 외관이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건물 자체도 견고하지 않고 정교함도 없었다. 스탈린 시대에 건축되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도 그리 흥미는 생기지 않았다.
아마 한국에서도 절을 많이 봐왔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어? 저거 엄청나게 큰 동상이네요?”
“1970년에 레닌 출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동으로 된 얼굴상입니다. 크기가 7.7m고 무게만 42t이나 되지요. 러시아에서 제일 큰 레닌 동상이지요.”
“모스크바에서는 못 보았는데, 이유가 있나요? 아직도 숭상?”
“그럴 리가요.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해체와 더불어, 사회주의 상징이었던 레닌의 동상이 곳곳에서 철거되었지요.”
“그런데 여긴 남아 있잖아요?”
“레닌이 이곳에서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고요. 공화국에서 저걸 철거하려고 했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포기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관광자원으로 잘 쓰이는 거고요.”
가이드의 말대로 관광객들이, 레닌의 동상에 발을 얹거나 기대며 사진도 찍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바로잡혀갔을 것이다.
이 동상은 1991년에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되어 있다.
부랴트 곳곳에 레닌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지만, 이곳에서의 레닌은 더는 영웅도, 사회주의의 전사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때 바로 옆에 사람들이 모여들더니 플래카드를 꺼내 들고 데모를 시작했다.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매단 노인들이 데모의 주동이었다.
주변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헛, 저게 무슨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