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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59화 (59/250)

59화. 바이칼호 부랴트족

음양오행과 풍수지리를 황서윤 스승에게 몇 년 배우고, 전국을 다니며 스승의 전철을 밟았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자주 연락했었지만, 몸이 쇠진하셔서 통화도 길게 하진 못했었다.

풍수지리를 접한 지 7년이 흐르고 있었다.

“태월아 어서 오너라.”

건곤암 큰스님이 태월을 문밖에서 맞이한다.

“스님 할아버지 스승님은 어떠신가요?”

“어서 들어가 보아라. 이 친구가 아무래도 이틀을 넘기기 어려울 듯하구나. 다른 이야긴 나중에 하자꾸나.”

“네, 그럼.”

이곳은 아직 이름도 새로 짓지 않은, 관악산의 그 암자다.

태월이 스승이 묵는 방으로 들어가자, 그의 아들이 되는 그 아저씨가 앉아 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승님은 어떠신가요?”

“몇 년 만에 보는 것 같네. 아버지는 잠드셨는데, 깨어날 시간이 되긴 했네.”

“언제부터 심해지신 건가요?”

“보름 전부터 이렇게 정신을 잘 못 차린다네. 자네가 오면 깨우라고 하긴 했는데….”

보름 전이면 태월이 마지막 통화를 했던 날이었다. 그 후론 전화를 잘 못 받으시기에, 서울 오면 직접 뵈려고 했던 차였다.

“깨우진 마세요. 일어나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음식은 좀 드시긴 하나요?”

“미음 정도는 간신히 드시네. 그나마 다행인 거지.”

아들이 살던 그 집 주변은 많이 변화가 있었다. TW 건설의 참여로 난곡마을 일부에 변화가 생겼다.

10여 채를 허물고 지은 5층 아파트를 보고, 그 주변에서 의뢰가 다시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난곡마을에 저층 아파트가 3채나 더 생겼다.

땅값이 아직은 저렴하기에, 택지 일부를 사서 도로까지 확장해 버렸다.

추가 개발 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다.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있자, 황서윤이 의식을 차리며 눈을 뜬다.

“아, 태월이 왔구나. 인석아, 왔으면 깨울 것이지. 시간 아깝게. 이리 가까이 오너라.”

“네, 스승님.”

태월이 가까이 오자, 아들에게 눈짓한다.

아들이 장롱 안에서 함을 하나 꺼냈다.

“이 안에는 내가 전국을 돌며, 귀하게 수집한 책들 5권이 있다. 그 외 책들은 아들 집에 따로 뒀으니, 나중에 받아 가거라. 그리고 지명아, 내가 잠시 태월이에게 일러둘 일이 있으니, 잠시 자리 좀 내주거라. 풍수에 관한 일이니, 넌 들어도 별 의미 없을 것이다.”

“네, 그럼 나가 있을 테니, 끝나면 바로 불러주세요.”

황서윤의 아들, 황지명이 밖으로 나갔다.

아들을 보내면서까지 해야 할 말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드는 태월이다.

“바이칼 호수라고 들어봤느냐?”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호라고 알고 있어요.

성스러운 바다란 이름도 가지고 있고, 기록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뿌리와도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바이칼 호수의 최대 깊이는 1,621m로 세계에서 가장 깊으며, 주변은 2,000m급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호수에는 전 세계 민물 담수의 20%가 담겨 있다고 한다.

바이칼호의 표면적은 북아메리카 5대호의 13%밖에 안 되지만, 물의 양은 5대호를 합친 것보다 3배나 더 많다.

그래서 ‘세계의 민물 창고’라고도 불린다.

“그들이 몽골족과 생김새도 유사하긴 해. 그들 스스로는 칭기즈칸의 후예라고 하니, 몽골과 연관이 있긴 하지. 그리고 한민족과 뿌리가 같은 것도 사실이야.

아마 가보게 되면 놀랄 것이다.

우리 풍습과 거의 흡사한 것이 많거든. 그리고 거기엔 고구려 동명성왕을 모시는 사당들이 있단다. 고구려 칸이라고도 부르지.”

러시아의 모스크바 유전학 연구소에서도. 바이칼 호수의 주변 부리야트 족과 한민족의 혈통이 같다고 증명했다.

부랴트족은 바이칼호 주변의 인구 40만의 소수민족이며, 현재는 독립 형태를 띠고 있다.

1992년에 부랴트 공화국으로 승격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소련이 해체되어, 거긴 러시아가 되었는데. 그곳에 가야 할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니콜라이 코마로프란 사람이 부랴트족에 살고 있을 거야. 니콜라이는 애칭으로 흔히 콜야라 부르는데, 1921년생이야. 그 사람에게 내 스승이 맡긴 물건이 있단다. 오래되었다 해도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와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데요?”

“나도 모른다. 거기를 몇 번 가려고 했었지. 60, 70년대 한국서는 여행이 통제된 곳이라, 일반인으로는 갈 수가 없더구나. 뒤늦게 가려고 미루다 보니, 이젠 내 몸이 말을 안 듣는구나.”

“그냥 가면 되나요? 어떻게 서로 알아볼 수 있죠?”

“함 속에 반지가 있는데, 그게 그 집안 인장이야. 그것과 교환하면 된단다. 내 스승이 그 사람을 구해준 적이 있으니, 섭섭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걸 네가 찾아야 한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다녀올게요.”

일종의 유언인 셈이니, 제자로서 들어드려야 하는 일이다.

‘6년간 귀신 퇴치를 했지만, 능력 중에는 러시아어가 없었는데…. 영어로 되려나?

일본어나 중국 북경어는 있었지만.’

태월을 시작으로 그를 찾아온 사람들을 일일이 불러, 못다 한 말을 나누고 계셨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 새벽녘에, 잠든 듯이 돌아가셨다.

태월은 한 시간 내내 울기만 했다.

돌아가실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그 일이 닥치니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큰스님의 다독임에 조금씩 진정을 하게 된다.

장례 주관은 큰스님이 하셨고, 태월은 옆에서 보조하게 되었다.

첫날 임종 후 시신이 굳기 전에, 몸을 바로 잡는 수시를 행하고 방에 반듯하게 안치를 했다.

고복 기원도 한 후 마당에 사잣밥을 차렸고,

조그마한 상에는 메 3그릇과 나물 3그릇 그리고 동전 3개를 올렸다.

장례용품은 큰스님이 준비를 해왔고, 빈소부터 차렸다.

지인들에게 부고를 알리고, 조문객 맞을 준비를 했다.

둘째 날은 염습과 입관을 하고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복 내림을 진행한다.

상복을 바로 입는 성복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성복제라 했다.

조문객 접대는 상주 황지명이 맡고, 도명스님이 향과 초를 준비했다.

셋째 날은 큰스님이 영결식을 진행하였다.

발인하고 황씨 집안의 선산까지 가서, 산신제를 지내고 하관을 했다.

그 후 평토제를 진행하였다.

장례 후에는 삼우제를 지내는데, 첫날은 초우 다음날은 제우, 3일째는 삼우라 칭했다.

태월의 가족 중에는, 박승철과 조민희 그리고 홍미연과 설희가 왔다.

스승이 살아생전 암자에서, 종종 대화를 나누는 사이였었다.

***

조민희와 박승철은 태월이 러시아로 간다기에, 펄쩍 뛰었지만 결국 승낙하게 되었다.

막내 이모가 이번에도 동행한다고 했는데, 6년간 무사하게 보호자 역할을 한 그녀를 믿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내 이모는 아이들 안 돌보니? 네가 친아들도 아닌데, 진짜 친딸들 안 서운할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의문이, 지금에야 떠오르는 조민희다.

“막내 이모가 직장을 다니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이드 겸 매니저로 스카우트 한 거거든요.”

“아, 뭐 그러면 말이 되긴 하네. 그리고 아는 사람이니 마음은 더 놓이네.”

혹시 모를 명분을 만들어놨던 태월은, 이번에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반공교육이 지루했을 뿐, 준비는 잘 끝났다.

이번 여행은 태월과 아루만 떠난다.

설희가 따라오려는 건, 태월이 말렸다.

그 대신 음악 공부에 치중하라고 조언했다.

1990년, 소련 첫 정기 여객기인 아에로플로트 항공 소속 SU 599편 일류신 62 여객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했었다.

이것이 서울-모스크바 간 직항로 개설이었다.

지금은 1994년이기에 러시아로 가는 승객들은 많았고, 종종 좌석이 부족할 정도였다.

대한 항공을 타고 날아올라 9시간이 걸려,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내렸다.

모스크바에는 3개의 국제공항이 있는데,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 이어 2번째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첫 정기 여객기였던, 아에로플로트의 허브 공항이기도 한 곳이다.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고 예카테린부르크를 지나, 노보스비르스크 그리고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긴 여정이었다.

무려 82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비싼 2인실로 왔기에 문제없었지, 6인실이었으면 아루는 뛰쳐나갔을지도.

긴 시간 동안 다행히 하나의 보람은 있었다.

대륙 횡단 열차에 귀신이 3명이나 있었고, 그들의 능력을 전부 흡수할 수 있었다.

다행히 둘에게서 러시아어 능력이 나왔고, 중복되었어도 만족스러웠다.

“어? 이거 전이가 된다고?”

“응응, 나도 되는데, 안 될 이유가 있어?”

“방법을 말해봐.”

“머릿속에 능력들의 항목을 만들어봐.

나도 아카 언니에게서 배운 거야. 컴퓨터에 메뉴 만들듯이 하던데? 떠올려서 이미지 트레이닝하면 된다길래, 컴퓨터 기초까지 배워야 했어. 그래서 해보니 되던데? 보통 사람은 성공이 희박하지만, 영혼 에너지를 가지면 쉬워.”

“그 후엔?”

“나와 신체접촉 후, 나한테 보낸다고 의지를 실어 명령해.”

아루도 했다고 하니, 안 되진 않을 터다.

그런데 아루가 말한 것은, 한 번도 생각 못 해본 것이었다.

한 시간 동안이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니, 서서히 실체가 잡혔다.

“아, 이거구나? 와, 이거 신세계인데?”

메뉴들이 하나하나 줄지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중 러시아어가 중첩되어 있기에, 하나를 꺼내 아루에게 보내는 의지를 실었다.

아루에게서 잠시 빛이 났다.

“어? 중첩이 없어지고 하나만 남았는데? 너한테 갔어?”

“오예! 나, 이제 러시아어가 생겼어!”

이곳에 오는 동안 러시아어를 모르니, 여러 가지로 불편함을 겪은 아루였다.

타인이 보기에 보호자로 있으니,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못 했잖는가.

이제 다시 이동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가야 한다.

준비된 차를 타고 갔는데도, 4시간 반이 걸렸다. 그나마 이것도 ‘TW 투어’에서 도움을 주었기에 헤매지 않은 것이다.

“우와, 러시아만 해도 이렇게 넓네? 그럼 그전 소련은 대체….”

새삼 대한민국이 작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런데 바이칼호 크기가, 우리나라의 3분의 1이나 된다고? 혹시 이거 서울 가서, 김 서방 찾기 꼴 나는 거 아냐?”

바이칼 호수 쪽으로 해서, 부랴트 공화국의 행정수도인 울란우데로 향했다.

부랴트는 러시아 발음으로 부랴트고, 영어식으로는 부랴티야라고 부른다.

바이칼 호수의 3/4을 포함한 곳이 이 부랴트 공화국이다.

“으, 춥네. 모피코트를 모스크바에서 사 오길 다행이야. 그런데 넌 화령인데도 춥냐?”

“어머, 이건 위장이야. 나 안 춥다고 해봐. 다들 이상한 여자로 보겠지.”

이곳 부랴트는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이 있는, 혹한의 대륙성 기후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여름이 덥다고는 하지만, 평균 18~19도 내외다. 한국에서 보자면 그리 덥진 않다. 단지 겨울 평균이 무려 영하 22도다.

1인당 소득은 3천 불 정도고, 국가 면적은 대한민국의 3.5배인 35만㎢다.

1994년 대한민국 1인당 소득이, 1만 불에 도달했다.

땅은 3.5배나 작은데, 소득은 3.3배나 높은 대한민국이다.

영토의 2/3가 숲에 불과한 부랴트지만.

울란우데에 내려서 식당을 갔는데, 부즈라고 적힌 만두 메뉴가 보여 그걸 시켜보았다.

제일 익숙하기에 일단 시켜보는 것이다.

조금 후에 음식이 나와, 시식을 하려던 중에 뒤쪽 민가에서 이상한 외침 들렸다.

“쏘크! 쏘크! 쏘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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