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아루까지 떨고 있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게 된 것이 있었다.
칠칠치 못하게 TV를 보면서 떡볶이를 먹다 보니, 컵에 담긴 물을 쏟은 것이다.
그게 하필 짧은 치마를 입은 탓에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바로 그 자리엔 TV와 연결된 전기 콘센트가 있었고.
난로에 발을 녹인다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있었던 게 문제다,
맨발을 타고 전기가 올라온 것이다.
초창기엔 그냥 변신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옷까지 변신이 되는 게 아니라, 얼굴과 몸만 변신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 둘이 저리 연결되어 덜덜 떠는 것이다.
태월이 아카의 엉덩이를 발로 차 버렸다.
그러자 접촉이 떨어지고, 감전은 멈추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머? 학생? 엄마를 발로 차면 어떡해? 안 그렇게 봤는데, 너무 애가 못됐네?”
“쯧쯧, 너무 오냐오냐 키웠구만….”
아카가 말이라도 해서 설명을 하면 좋으련만. 전기를 처음 먹어봐서인지, 아니면 바로 차여서인지 조금 멍해 있었다.
서둘러 계산을 끝내고 나오니, 아카가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어머, 너무 짜릿했어. 황홀….”
다시 생각하니, 정신이 안 돌아온 거다.
옆에서 아루가 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
40일이 지난 후, 태월과 아카, 아루가 서울로 돌아왔다.
이제 1990년 새해도 12살이 된 것이다.
“아들? 건강하게 보이는데? 별 고생 안 했나 봐? 말썽꾸러기들과 잘 지냈는가 보네?”
“어머, 저희가 왜 말썽꾸러기여요? 요조숙녀인데. 하여간 짜릿한 여행이었어요.”
“호호, 쟤 뭐라니? 뭐 했길래?”
“콩닥콩닥! 찌릿찌릿!”
홍미연은 무슨 소린지 몰라 태월을 쳐다본다.
그에 태월은 그냥 고개만 흔들 뿐이다.
“오빠? 나 졸업하는 거 보고 다시 갈 거지?”
“응, 그래야지. 시험 준비는 잘돼 가?”
“아휴, 중학교 검정고시 정도야 뭐, 나도 오빠처럼 고등학교 검정고시에만 집중하고 있어.”
“뭐, 내신에도 안 들어가는 중학교는 60점씩만 맞으면 되는 거니까.”
둘만 대화하는 게 샘이 났는지, 아루가 끼어든다.
“언니? 나 몸매가 쭉쭉 빵빵해졌어? 어때?”
“뭐? 배만 빵빵한 거 같은데? 어디가?”
“오빠한테 물은 거 아니거든요!”
“그, 그래. 글, 글래머스하네.”
설희가 봐도 그건 아닌 거 같아 대충 넘긴다.
“설희 말이 맞네. 글러머거쓰!”
끝까지 놀리는 태월을 향해, 콧바람을 내뿜고는 삽사리들한테 간다.
태월은 하루를 거기서 묵고, 다음 날 압구정으로 돌아왔다.
“아들! 잘 다녀왔어?”
“네, 엄마도 잘 계셨죠?”
“아휴, 전에 말 편히 할 때가 나은데, 점점 존댓말을 하네. 거리감 느껴진다니까.”
“하하. 알았어요.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뭐 중요한 일만 내가 처리하고 온 거지.
아들이 온다는데 기다리게 할 순 없잖아.
그런데 여행을 가놓고는 웬 집 등기를 보내냐? 스무 채나 되던데? 그거로 뭐 하려고?”
“아주 싸게 샀어요. 간 김에 퇴마도 하고요.
일단은 주변 부동산에 세 받는 걸로 위탁을 하긴 했는데, 민박 체인을 꾸려도 되지 않을까요? 좀 더 구해야 하지만.”
“그럼 그건 TW 투어에 맡겨두면 되겠네.”
해외여행 제한이 없어지자, TW에서도 발 빠르게 여행사 하나를 인수해 확장했다.
부동산 개발 쪽부터 시작한 TW인지라, 여행과도 궁합이 잘 맞았다.
금괴를 처분하면서 생긴 자본으로, 호텔과 콘도도 사들이는 중이다.
구정을 이틀 남기고 안강으로 가족들이 이동했고, 차례를 치른 후 바로 서울 홍대로 이동했다.
조민희와 박승철 그리고 태월이, 홍미연의 집으로 간 것이다.
가족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카가 태월을 찾아왔다.
“나 이제 고스트 바스터즈 안 할래. 영령인 정신체라서 그런지, 몸 쓰는 것보단 지식과 연관해야 더 성장하는 것 같아.”
아루가 컴퓨터에 그리 관심이 없던 것과 달리, 아카는 처음부터 지식 탐구에 열을 올리긴 했었다.
“그럼 어떡하려고? 한국은 아직 그런 기반이 약한 상태인데? 미국이라면 또 모르지만.”
“응 그래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실리콘밸리로 가도 될까?”
몇 년 전부터 반도체 그리고 정보통신과 전자산업의 중심지로 뜨고 있는, 벤처기업 밀집 지역이다.
“진짜 혼자 갈 수 있겠어?”
아카의 본질을 이해하기에 말릴 수도 없음을 안다. 지식이나 정신의 충족으로 성장하는 아카이기에.
“난 정령이 아니라 영령이야. 감정보단 정신적 영역 성취에 더 어울려. 그리고 돈은 걱정하지 마. 전에 나한테 맡겨둔 거 있었지?”
“응? 어떤?”
“바하마 제도 은행에 예치된 통장과 작은 섬 그리고 신분증. 통장 카드도 있고 반지도 줬잖아. 기억 안 나?”
“하하, 이제 생각난다. 한동안 잊고 있었네. 거기에 얼마나 있는지도 알아보진 못했지만.”
“저번 달에 시간 나길래, 국제전화로 알아봤어. 통장엔 천만 불이 들어있어. 한화로 90억쯤 되겠네.”
더 큰 돈이 있었어도 입증을 할 수 없는 돈이긴 했다.
그리고 그 후엔, 금괴 덕분에 그런 돈을 신경 쓰지도 못했었고.
“그럼 바하마 제도의 가상 인물이, 이제 실존 인물이 되는 건가? 신분 문제는 해결되겠고.
아루 안 데리고 가도 되겠어?”
“아루는 여기 있는 게 나아. 거기 가면 답답해 미쳐 버릴걸? 그리고 걱정은 하지 말아. 난 태월과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니까. 그 종잣돈으로 우리의 왕국을 건설해볼게.”
1990년 1월 29일 아카는 미국으로 떠났다.
아루는 이틀 내내 우울해했지만, 금방 털고 일어나 삽사리와 노는 중이다.
설희의 졸업식까지 서울에서 보내고 난 태월은 아루와 남은 여행을 이어갔다.
“오오, 아루? 이모 흉내 잘 내는데?”
“호호, 아카 언니 하는 걸 유심히 봐놨었지.”
태월과 아루의 고스트 버스터즈가 이어졌다.
아루가 귀신에게 쓸 수 있는 능력은, 불의 능력과 공간이동이 전부다.
귀신은 그림자가 없으니 그림자밟기도 안 되는 거고, 금환술도 통하지 않고.
며칠 전 8월 2일에는 걸프전이 발발했다.
아마 아카는 이 일로 엄청 바쁠 듯했다.
그리고 삭막한 아루가 될까 봐, 둘이 영화도 보러 갔다.
광복절에 이 영화가 개봉되었다.
‘날아라 슈퍼보드’
그걸 보고 나서는, 틈만 나면 노래를 부른다.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나쁜 짓을 하면은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우리에게 들키지
밤에도 낮에도 느낄 수 있는
눈과 귀가 있다네 우리의 손오공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사랑하며 살면은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평화는 올 거야.”
이 노래를 배운 후론, 고스트 버스터즈는 더는 부르지 않고 있다.
그리고 9월 초가 되자, 설희까지 합류하게 되었다.
일본의 버블 붕괴 사태로, 국내외가 시끌시끌했다.
1980년대 말 2.5%까지 낮춘 기준 금리를, 1990년 8월에 6%까지 급격하게 올리면서 대출이 제한되었다.
그러자 부동산이 버블 붕괴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부동산 공급과잉도 한몫했지만.
대한민국의 1990년은 무역적자 45억 불로, 10년 만의 최악을 기록했다.
원화는 계속 약세를 보이고 있었고, 물가 상승은 계속 이어졌다.
부동산과 과소비 탓이고, 증시안정 자금이 대거 부동산으로 몰려버렸다.
정부 의도와는 다르게, 무역적자만 더 심해지고 기업은 대출받기가 힘들어졌다.
임금까지 대폭으로 상승해서 대기업은 무역보다는 부동산 투자에 집중한다.
그 여파로 주식 시장은 더욱 하락하게 되고.
“오빠? 아카는 잘 지내고 있대?”
“흐흐, 주식의 고수가 다 되었나 봐. 꽤 규모가 커졌다고 하더라. 그리고 유망 있는 기업엔 초기 지분투자를 하고, 핵심기술이 있는 곳엔 기술 자문으로 들어가 활약을 펼치나 보더라.
그리고 그 기술도 사서 진화시켜 놓기도 하고.
하긴 인간의 뇌 용량과는 비교가 안 되니. 웬만한 박사들 수십 명보단 낫겠지.”
“회사 이름이 뭔데?”
“RAON. 라온, 순우리말로 즐거운이란 뜻.”
“응, 뜻이 좋은데? 라온, 부르기도 쉽고.
‘라디오를 켜라’라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도 같고.”
“오, 그 숨은 뜻도 맞아. 세상에 전하는 지식 의미도 있다더라. 그리고 슈퍼컴퓨터도 만들 생각인가 보던데.”
“아카의 성향에 딱 맞는 일들이네.”
“시간 되면 아카 언니를 보러 가자. 응응?”
태월은 정이 많은 아루의 머리를 손으로 흩트려 놓았다.
“그래 알았어. 시간을 만들어야지.”
오늘도 귀신들을 찾아, 이동 중인 태월 일행이다.
시간이 점점 흘러 일 년이 지났다.
1991년 12월 뉴스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물러나고, 연방이 해체된 것이다.
개혁파인 옐친의 주도 아래, 독립 국가들의 연합 체제가 성립되었다.
1987년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표방한 페레스토로이카 개혁은, 사회주의의 기본 체제를 벗어나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한 방식이었다.
그것은 이제 옐친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써 세계적으로는 냉전체제의 종식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12월 말이 되자, 한해 계획했던 여정이 끝이 났다.
고스트 버스터즈를 마감하면서, 겨울 바다에서 새해 일출을 보았다.
각자의 소원을 빌며 1992년을 맞이했다.
태월과 설희는 이제 14살이 된 것이다.
“호호, 이제 중학생 관람가 영화는 눈치 안 보고 봐도 되겠네?”
“10살에도 봤었는데, 뭘 새삼스레….”
“나, 그때 들킬까 봐 심장 졸였다니까!”
“음음, 나는 성인영화도 볼 수 있는데?”
“큼!”
아루는 어른으로의 변신이 가능하기에, 저런 소릴 하는 것이다.
“아루는 소원 뭘 빌었어?”
“친구를 만들어 달라고 빌었는데?”
“응? 친구면 삽사리도 있잖아?”
“삽사리도 좋긴 한데, 나랑 비슷한 친구 말이야. 왜 있으면 안 돼?”
“아니, 안 되긴, 너도 안 심심하고 좋은 거지. 그런데 너 친구면 정령인데, 너하고 달리 정령체로 지내야 할걸? 호리병은 비어있으니.”
“응? 무슨 소리야? 전에 말한 거 대충 들었구나. 요괴는 다 기본으로 변신술이 가능해.
그러니 내가 가진 능력 중 하나를 친구에게 주면, 그 애도 요괴 변신술이 가능해져.”
“어머, 요괴의 정수에 그런 효능이 있다니.”
“언니도 하나 줄까요?”
“헛, 아, 아니!”
역시나 정이 넘치는 아루다.
명절을 보내려 서울로 다시 왔고, 그렇게 반복되어 2년이 더 흘렀다.
“오빠, 이제 웬만한 데는 귀신도 찾기 어렵겠다. 공동묘지까지 다 돌았으니….”
“제주도에다 울릉도까지 다녀왔잖아!
악덕 업주! 부당노동! 초코초코초!”
“에이, 제주도와 울릉도는 사실 여행을 간 거잖아? 뭐, 귀신도 있긴 했지만.”
“지금까지 귀신 집이 몇 채야? 75채?”
“뭐, 6년간 75채면 한 달에 한 채 밖에 안되네? 얼마 안 했군.”
“그거야 오빠가 산이랑 산은 다 다니니 그랬지. 그 명당 찾는다고, 그중 3년은 거기에 소모된 거잖아?”
1994년에 16살이 된, 태월과 설희의 긴 외유였다.
“이 핸드폰 배터리가 너무 짧아, 이번에 새로 나온 거로 살까?”
“엄마가 사준다고 했는데? SH –770.”
-띠리릭! 띠리릭!
태월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네?
위, 위급하다고요? 네네! 바로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