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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57화 (57/250)

57화. 고스트 바스터즈

태월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잠시 지내는 것이야 홍미연의 친척 핑계를 댈 수가 있지만, 계속 지내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일이다.

“그럼 엄마가 당분간 데리고 있어 주세요.

올해 4월 8월 검정고시만 마치면 데려갈게요. 그때는 전국을 다녀야 할 거 같거든요.”

“호호, 전 세계를 안 다니는 것만 해도 다행이네? 중국과 일본도 가볼 거라며?”

홍미연의 말에 태월은 고개를 끄덕인다.

“1월 1일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선언되었긴 해도, 전 아직 미성년자잖아요. 호족에 있던 역사서가 전부 유실이나 분실되었다니 아깝네요. 혹시 묘족에 가면 부본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가보고 싶기는 해요.”

“호호, 언니에게 들은, 뒤바뀐 역사를 증명해 보고 싶었나 보네?

하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민족 역사서 20만 권을 없애버리고, 의도적으로 없애지 않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가 좀 그렇긴 하지.

두 역사책에는 한국에 없고 중국에만 있는 지명들만 많아.”

“삼국지의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 역사 기록으로는 20만 명 안팎이었다면서요? 그런데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 명이어서, 남으로는 오나라와 월나라를 침공.

또 북으로는 중국 북부의 유·연·제·노나라 등의 난하 유역부터 산동성에 이르는 지역을 쳐버렸다면서요?

그런데 그런 것이 뭐가 무서운지, 쉬쉬하고 있잖아요.”

“한국 역사책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어.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쓰인 ‘조선사’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아.”

“왜 그런데요?”

“지금 원로 역사학자들이 누구라고 생각해? 일제강점기 때 친일하던 사람들만 강단에 서 있었고. 그들은 일본인들이 만든 조선사를 들고 가르쳤어.

그런 원로들 입장에서 진실이 밝혀진다는 것은, 자기들 치부까지 드러나는 일이야.

그런 원로들 제자들은 또 어떻겠어?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게 다 진실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교육받아서 세뇌되었을 테니.

루이스 프로이스라는 신부가 쓴 조선의 강역에 대한 글에는, 수량이 풍부한 강과 거대한 사막이 존재한다고 쓰여있고.

중국의 ‘중국 고금 지명 사전’마저도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속한다고 적혀있어.

그런데도 굳이 밝히려 들지 않았지.”

“조선 초 인구가 겨우 37만 명인데, 물론 노비는 숫자에 들지 않았겠지만요.

그래도 천 년 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고 기록에 나오니, 조금 황당하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는 몰라도, 타국에는 그런 기록물이 남아 있을 수 있을 거야.

우리도 전란 때 소실되긴 했어도 꽤 많이 남았었지.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불만을 품은 호족 방계의 배신자 하나가 밀고를 했어. 그래서 역사각에 있던 서책은 일본군에게 다 빼앗겼고. 다행히 밀각이 있는 걸 그들은 몰랐으니, 호족 보물이나마 보존된 거지. 그때 제자도 많이 잡혀갔다고 해.”

“중국과 일본은 없는 역사도 조작하고, 우리 역사를 도둑질해가는데. 그런데도 우리는 있는 역사도 없다고 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친일 역사학자가 많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민족을 위해서라도 추방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자들로 인해 잘못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은, 제대로 알려줘도 오히려 삿대질하니.”

태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그런 친일파를 몰아내지 못하게 막은 것이,

역사의 오점이지.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가 돼야 했어. 전 세계 어느 나라라도 독립을 하게 되면, 매국노와 반역자는 그냥 두질 않았지. 그들은 기득권층으로 있었을 텐데, 그대로 독립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런 짓을 했는데도 잘살게 둔다면, 나라가 어려울 때 어느 누가 피 흘리며 애국을 해?”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그 나라는 희망이 안 보이긴 해요. 독립군 후손들만 억울하게 되네요?”

“진실을 말하면, 빨갱이로 몰아붙이니 참으로 문제구나.”

둘이 대화를 하는 중에도, 밖에선 호호 그러면서 놀고 있는 설희와 또 설희들이다.

“설희는 아카와 아루가, 자신으로 변신한 게 재밌나 봐요? 저렇게 신나게 노는 거 보면.”

“호호호, 나도 처음엔 거부감 들더니, 볼수록 재미있던데? 너 쟤들하고 다니면, 미성년자 불리함이 사라질 거 같은데?”

더 어린애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왜 그런지 의아해지는 태월이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홍미연이 빙긋이 웃는다.

“생각해봐! 쟤들 중 하나만, 나나 민희로 변신하면 다 해결되잖아!”

“그, 그렇네요? 그 생각은 못 했었네요.”

“그렇다고 해외로 당장 갈 생각은 하지 말아. 아들이 아무리 정신연령이 높다 해도, 세상 경험이 적고 나이도 결국 청소년일 뿐이야. 나나 민희나 지금은 불안해서 안 돼.”

홍미연의 말에 속이 뜨끔한 태월이다.

“이만, 가도록 하자. 넌 이제 검정고시 준비해야겠구나.”

“흐흐, 뭐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렇게 졸업 후 이틀간의 여정은 끝이 났다.

***

6월 3일과 4일에는 중국 천안문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민주화 시위를 중국 정부가 무력 진압하면서 벌어진 대규모 유혈 참사 사건이다.

4월의 중학교 검정고시는 손쉽게 붙었으며, 8월의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신경 썼던 만큼 성적이 높게 나왔다.

“아들! 전국 팔도 여행을 드디어 떠나는 거야? 그런데 그분하고는 안 가고, 왜 이모님이랑 가니? 더구나 처음 보는 이모 딸도 있네? 딸이 둘이었었나?”

그분은 풍수사인 황서윤 스승을 말하는 것이다. 요즘 기력이 많이 약해지셨다.

그리고 막내 이모와 딸이 아니라, 아카랑 아루가 변신한 것이다.

“아 스승님은 몸이 좀 편찮으셔서요. 그래서 막내 이모님이 보호자 역할로 가는 거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해외도 아니고 국내인데요. 뭐.”

“호호, 11살에 벌써 고졸 아들이니, 인정해야지 어쩌겠어? 그럼 매일 안부 전화는 꼭 하는 거다?”

“전화가 없는 산에는 어려울 수 있지만, 가능하면 꼭 할게요. 홍대 엄마에게도 허락받았거든요?”

“그래! 사내는 뭐니 해도 여행을 다녀야 시야가 넓어지지! 나도 너만 할 때, 세상 견문을 넓히려 이곳저곳을 다녔었지.”

“당신! 아들 여행이랑 그걸 왜 비교해요? 당신이 집 나간 건, 신발 안 사준다고 가출했던 거잖아요? 내가 어머님께 다 들었구먼.”

“컥!”

아빠도 흔쾌히 허락하셨다고 말하련다.

홍미연에겐 이틀간 졸라서 받은 허락이었지만,

그래도 막내 이모의 신분증까지 챙겨주셨다.

문제는 지금 같은 경우지만.

“언니! 달려!”

“호호호, 광란의 질주닷!”

“헉!”

사흘간 운전 연습하고는, 차를 몰고 나타난 아카가 문제였다.

그 신분증도 운전면허증이었고.

“우리는! 우리는! 고스트 버스터! 신나게 때려잡는 고스트 버스터! 난 귀신이 두렵지 않아! 예, 예, 예, 예!”

“이웃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면? 누구를 부르지?”

“고스트 버스터즈!”

“뭔가 괴상한 것이 있는데, 좋은 놈은 아닌 것 같다면, 누구를 부르지?”

“고스트 버스터즈! 난 귀신이 두렵지 않아!”

“네 머리를 지나가는 뭔가가 있다면 누구를 부르지?”

“고스트 버스터즈! 난 귀신이 두렵지 않아. 예, 예, 예, 예!”

고스트 버스터즈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둘이 저러고 있다.

황서윤 스승이 챙겨준 노트를 꺼내서, 여행경로를 재점검해 본다.

귀신 퇴치와 풍수지리 현장 학습을 겸한 여행이다.

부수입으로는 귀신의 집이 보이면, 그걸 반의반 값에 사서 천도재를 하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저렴하게 전세나 월세를 부동산에 위탁한다.

천도재는 스님 둘과 태월이 시늉만 한다.

이미 그 전에 귀신을 잡았기에, 할 건 그리 없었다.

당연히 스님 둘은 변신한 아카와 아루다.

천도재를 치르고 나면 소문이 나서, 저렴하게 세만 주면 적당한 세입자는 생기기 마련이다.

충청도를 거쳐 전라도를 지나, 부산 쪽으로 향하는 중이다.

작은 읍내의 떡볶이 가게서 요기하던 중에 뉴스가 흘러나온다.

말이 요기지, 아카와 아루의 앞에는 5인분씩 놓여있었지만.

11월 9일 냉전체제의 상징과도 같았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있었다.

9월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동독 전역에 불꽃처럼 번져나갔다.

언론 자유와 자유여행을 요구하는 시위에 11월 9일 7시에 여행 자유화 정책을 발표했다.

이 소식을 접한 동, 서베를린 시민들은 해머나 드릴 같은 공구를 가져와 베를린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뒤이어 불도저와 크레인까지도 동원되었고.

“와, 내년 10월까지 협의를 거친 후 통일을 선언할 계획이라네? 우리나라도 저리되었으면 좋겠네.”

“북한의 귀신을 다 때려잡으면, 통일되지 않을까? 우리 고스트 바스터즈가 도와줄까?

북한 주민이 쫄쫄 굶어 뼈만 남았다며?”

세상 물정을 아직도 잘 모르는 아루의 단순한 생각이다.

사실 1970년대까진 실제로 북한이 더 잘살았다. 일부 지식인들만 그 진실을 알고 있을 뿐, 반공교육이 지배하는 남한에서는 알아도 모른 척해야 했다.

그러다가 88올림픽을 기점으로, 남한이 월등한 경제력 우위를 보이며 격차를 벌린다.

“이거 1월 20일까지 돌 거지?”

“그래야지, 1월 27일이 구정이잖아. 일주일 남기고 올라가면 될 거야.”

“언니? 우리 100마리는 잡았지?”

“두 달 반 동안 78마리 잡았지.”

“엑, 얼마, 안 되네? 자꾸 집 사는 데 시간 써서 그런 거 같은데?”

“아루야? 너 지금 먹는 것도, 다 그런 데서 버는 걸로 먹는 거거든?”

“대체 몇 채를 산 거야?”

“흠, 서울이 아니라서 그리 안 비싸. 20채 정도 샀던 거 같은데? 얼마 안 되지?”

“흥! 악덕 업주! 물러가라! 떡볶이가 웬 말이냐! 순대도 추가해라!”

오늘도 아루의 식탐은 계속되었다. 혼자서 5인분은 먹었는데도, 더 요구한다.

‘아귀라고 이름을 지었어야 했나?’

원래 아카와 아루는 굳이 음식을 먹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러다가 재미로 먹게 되었는데, 그게 입맛중독이 생긴 것이다.

“아홉 달만 지나면 설희 언니가 합류한다 이거지?”

“왜? 언니가 그렇게 보고 싶어?”

“응, 남자들은 모르는 여자들만의 세계가 있거든? 비밀이야.”

“하이고, 언제부터 여자였다고….”

아루랑 대화를 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아카가 조용하다.

“아카 너 뭐 하는데? 왜 이리 조용해.”

“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막 전율이 생겨.”

“응? 어디서 많이 익숙한 건데?”

태월이 설희를 처음 보았을 때 증세랑 비슷하긴 하다.

“나. 아무래도 사춘기가 왔나 봐!”

“헐. 영령이 무슨 사춘기야?”

“그, 그럼 갱년기인가?”

“헉!”

“언니? 진짜 막 떨려?”

아루가 제 딴에는 걱정이 되는지, 아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으아! 언니, 나도 막 떨려!”

“야, 대체 너희 왜 그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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