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영령과 화령의 진화와 변신
도깨비 문신이 불의 정령을 먹어 버린 것이다.
다들 놀라서 허둥대는데도, 아카는 별 반응이 없다.
도깨비가 삼키고 나면, 에너지가 차는 느낌이 있긴 한데 생각보단 약했다.
“아카? 너 왜 반응이 그러냐? 이 도깨비가 사고를 쳤는데도.”
“으응? 도깨비는 사악한 건 먹긴 하지만, 자연의 정령을 먹지는 못해.”
“지금 먹었잖아? 꿀꺽하고.”
“나처럼 다시 뱉어낼 거야. 자연체라고 해도, 사념이 어느 정도는 깃들거든? 그걸 정화시켜 줬으니, 오히려 순수해져서 좋은 거 아냐?”
아카의 말대로 몇 분 정도 후에 반응이 바로 나왔다.
-우 에엑!
문신이 커다란 입을 벌리더니 토해냈다.
불꽃 덩어리가 색이 달라졌다.
붉은색이던 게 푸른색으로 바뀐 것이다.
불로 따져도 빨간불이 제일 낮은 온도고, 푸른색이 초고온이다.
푸른 불꽃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태월의 앞에 섰다.
에너지가 제일 강했기에 그리한 것이다.
“여긴 어디? 난 불이야. 넌 누구?”
“여긴 관악산이라는 산이고, 네 앞에 있는 사람 이름은 태월이야. 넌 지금 불에서 막 태어난 아기고.”
아카가 나서서 대신 대답했다.
“넌 나랑 다른 존재구나. 얘, 너도 아가냐?”
아카가 손을 뻗더니 퍼런 불에 귀싸대기를 날린다.
-짝!
“야, 영령과 정령이 계보가 다르다 해도, 엄연히 서열이란 게 있어! 어디서 막 태어난 게, 어른을 몰라봐! 내가 너처럼 아긴 줄 아냐?”
“미, 미안….”
“특히나 네가 태어난 이 나라는 예의를 중시하는 그런 나라야! 앞으로 존대하는 걸 배우도록 해. 알았지? 존댓말은 내가 천천히 가르쳐 줄게.”
주눅 든 불의 아기 정령이 아카에게 끄덕인다.
그걸 보는 태월과 설희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꼬박꼬박 반말하더니, 엄한 데서 군기를 잡고 있다.
때리는 거에 놀랐던 셋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소리만 요란했다.
그래서 잠시 방관한 것이다.
“아카? 너나 잘해! 왜 아기를 괴롭혀?”
태월이 아기 정령을 감싸주자, 누가 강자인지 알게 되었는지 품속에 얼른 뛰어든다.
불이 훅하고 들어오기에 멈칫했지만, 의외로 뜨겁지 않다. 그냥 따뜻한 느낌?
“너 호리병 필요 없어? 너 오버하고 그러면, 이거 안 준다!”
태월이 호리병을 들어 흔들고 있다.
“헛, 안, 안 그럴게. 아기를 내가 동생처럼 잘 돌볼게.”
아카가 호리병에 왜 이리 집착하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는 태월이다.
“이제 이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아기도 아카식 레코드에 등록해야 해. 이름을 지어줘.”
태월은 이름을 지어야 한다기에, 엄마와 여동생을 쳐다봤다. 좋은 이름 없냐는 의미다.
“불의 정령이니까? 화령?”
설희가 생각나는 이름을 말해본다.
그런데 아카가 손을 젓는다.
“내가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된 방식이, ‘아카(영령)’야. 불의 정령을 화령이라 적을 거야.”
홍미연이 이름을 하나 지어본다.
“그럼 이쁜 빛을 내는 불이니. 빛이라는 라틴어 룩스의 루를 따서 아루 어때? 아름다운 빛! 아카 동생 같잖아.”
“아루? 엄마, 괜찮은데? 오빠는 어때?”
“응, 아주 좋은데? 아기야. 너의 이름은 이제 ‘아루’야.”
“아루!”
태월의 품속에 있던 불의 아기 정령.
품속에서 부르르 몸을 떨더니 빛을 내뿜었다.
이제 아카식 레코드엔 ‘아루(화령)’로 적혀있을 것이다.
아기의 이름까지 짓고 나자, 아카가 가까이 와서 몸을 비비 꼰다.
“지, 지금 그거 열어주면 안 돼? 지금 해야 할 거 같아서….”
협박용으로 자꾸 쓰일 것도 같고, 혹시 마음이 변해서 주지 않을 수 있기에 서두르는 아카다.
‘뭐, 어차피 주기로 한 거, 다들 궁금해하니 직접 보는 게 낫겠지?’
“그럼 준비해. 바로 열 테니.”
문신에서 영혼 에너지를 끌어당긴 후, 손으로 봉인 부적을 떼버리고 마개까지 열었다.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 색깔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아카가 들숨을 길게 하더니 그걸 빨아 당긴다.
그 광경은 호리병 속의 빛무리가, 삼 분의 이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배가 빵빵해져 더는 받아들일 수 없는지. 숨을 멈춘다.
그리고 몸을 웅크리더니, 누에고치 형태로 변해갔다.
그 순간 태월의 품에 있던 아루가, 남아 있던 빛무리를 빨아 삼켜 버렸다.
그 호리병 속에 남아 있던 삼 분의 일을….
이제 빈 호리병만이 태월의 손에 있을 뿐이다.
그러더니 아카처럼 누에고치 형태로 몸이 변해 버렸다.
“어머, 얘들 왜 이래?”
“아들? 얘들을 아무래도 암자로 옮겨야겠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데, 한없이 여기 있지도 못할 거고.”
“응, 무겁진 않으니, 그리할게.”
텐트를 해체하고 배낭을 다시 추렸다.
원래 텐트의 짐보다 더 높이 부피가 늘긴 했어도. 무게는 그리 늘진 않았다.
밤의 산길이지만, 자주 다녔던 곳이라 문제는 없었다.
또 호족 자체가 어둠에, 시각적 영향을 받을 리도 없다.
암자로 내려와 다들 잠에 빠졌고, 아침이 되어 일어났다.
그래도 고치들은 변화가 없다.
홍미연과 설희가 아침을 하러 나갔다.
그 사이 태월은 다른 일을 해보고 있다.
“오빠? 악보 철판 뜯어놨네?”
“흐흐, 이것도 에너지를 쓰니 분리가 되더라. 하나같이 이런 식으로 연결되네.
영매술사 아니면 분리도 못 했을 거 아냐? 그래서 그곳에 안전히 있었던 거 같아.”
악보는 총 5장이었다.
피아노와 작곡이란 재능이 있기에 연구를 좀 하면, 현대 악보 형태로 재구성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거 해석이 다 되면, 악기별로 편곡해도 될 듯한데? 완성되면 너한테도 보내줄게.”
“음, 그럴 거면, 시간이 나니까 셋이 같이 연구할까? 엄마도 음악은 좀 알고 있던데.”
“오, 그럼 나야 좋지. 그러자.”
“그런데 이번에 창고에서 얻은 거.
따지고 보면 나는 두 개네? 채찍과 악보.
오빠도 알과 악보.”
“응? 그리 해석하니 그렇네. 그런데 왜 너만 들어왔어?”
“아, 맞다! 오빠 아침 먹으라고 부르던 참인데, 악보 이야기하다 깜빡했네.”
아침을 먹고 셋은 악보를 해석하느라 머릴 맞대었다.
설희에게 음악의 재능이 함께 했기에, 5장의 악보는 점점 풀리고 있었다.
첫 장의 악보 해석이 어려웠을 뿐, 그게 끝나고 나니 다른 4장은 쉬울 수밖에 없다.
방식이 같은지라 해석은 금방이다.
오후 4시가 되자 악보는 완성이 되었다.
가지고 온 악기가 없었기에 직접 쳐보진 못했으나, 설희의 허밍만으로도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영혼 에너지를 써야 열리더니, 이거 일반 음악은 아니네? 종교음악 느낌도 들고.”
“엄마가 생각하기엔 말이야. 이거 5개가 연결된 흐름이 있는 것 같아. 옛 선조 중에 음공을 하신 분도 있었거든. 그쪽이 아닌가 여겨지네. 아들 생각은 어때?”
“응, 나도 그렇게 느꼈어.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일단 곡 자체는 해석되었으니 천천히 해보려고. 엄마도 시간 나면, 음공에 대해서 더 알아봐 줘.”
“우리 쌍둥이를 위해서라도 당연히 알아봐야지. 그런데 그 고치들은 어쩐 다냐? 슬슬 돌아가 봐야 하는데. 너야 이제 학교 안 가지만, 설희와 나는 일이 있으니.”
홍미연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어떤 파동이 느껴졌다.
“엄마? 잠깐만요. 어떤 파동이 느껴졌어요. 고치에 변화가 오려나 봐요.”
“어? 혹시 깨어나는 거 아닐까? 가기 전에 볼 수 있어서 다행이네. 딸! 어서 가보자.”
20시간 만의 변화였다.
고치를 두었던 방으로 급히 건너간다.
방문을 열자, 이상한 광경이 눈에 담긴다.
“어? 설희가 둘이나 있잖아?”
“어머? 이게 뭐야? 너희 누구니?”
현재의 설희와 똑같이 생긴 사람 둘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엔 고치가 부서져 잔해가 널려 있었다.
“엄마? 얘네들 그 아카랑 아루예요.”
“앗! 작전 실패. 들켰다. 동생 변신 풀어!”
“응! 언니!”
-쉬 리링! 쉬링!
둘의 몸이 공중에서 세 바퀴 회전되더니,
16살 정도의 은빛 머리 소녀와 8살 정도의 푸른 빛 머리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엥? 너희 원래 모습으론 안 돌아가냐? 이제 다 들켰는데?”
“호호호, 우리는 이제 이게 본모습이야. 내가 말했었잖아. 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요괴들은 하나같이 변신 능력이 있는 건 알지? 그 호리병 안에 있는 건, 변신술은 기본이야. 그 외에도 요괴들의 다양한 능력이 모여 있었어. 난 무려 5가지 능력을 추가로 얻었어.”
“난, 3가지!”
“하하, 별일이 다 있네? 그래서 어떤 능력들인데? 둘 다 여자애가 되어 버렸네.”
“그거야 여자 요괴들 기운 때문에, 성별이 없던 우리가 여성체로 전환된 거야.
영혼에 관련된 영령의 능력은 한 단계 더 상승했어. 그리고 요괴 능력으론 변신술 외에 빛의 화살, 악몽, 고백, 빙의, 망각 능력임.”
“난 불의 능력이 진화했고, 변신술 외에 공간이동, 그림자밟기, 금환술 재능이 생겼어.”
그냥 듣기론 절반만 이해가 되었다.
그것만 해도 대단했지만.
“아카? 빛의 화살은 뭐야? 그리고 고백? 망각? 그게 구체적으로 뭐 하는 능력인데?”
듣고 있던 설희가 나섰다.
“빛의 화살은 영혼 에너지를 날려서 상대의 영혼을 공격하지. 그리고 고백은 감춰둔 속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게 만들어. 망각은 기억을 지워버리는 거고.”
아카가 얻은 능력을 가만히 보면, 정신이나 영혼과 관계가 있었다.
“그럼, 아루의 그림자밟기와 금환술은?”
“그림자에 숨어서 따라다닐 수도 있고, 힘을 더 주면 그림자가 밟혀 있어서 실체가 못 움직여. 그리고 금환술은 눈앞에 보이는 게, 금덩이나 금붙이로 보이게 돼. 쓸모없는 능력임.”
“돌을 주면 그게 상대가 금덩이로 보여?”
“응응,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진짜 금도 아니고, 젤 구린 능력이야.”
어디에 쓸진 몰라도, 사기꾼에겐 엄청 좋은 능력일 듯했다.
아루는 인간 세상을 전혀 모르기에, 저런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지금 모습이 의미 있어? 어차피 남들이 너희 못 보잖아.”
“응? 이게 이제 우리 본체로 진화된 거야. 속은 인간과 다르지만, 겉으론 똑같아졌어.
위급할 땐, 그 전처럼 영령이나 화령으로 바꿀 수 있지만.”
“헐, 그럼 너희가 인간하고 겉으론 똑같다고? 만져지기도 하나? 물건도 들 수 있고? 음식도 먹나?”
“어머머, 웬일이니? 엄마 쟤들이 이제….”
“어머나, 엄마도 꽤 황당하구나. 무슨….”
호족인 그녀들도 이런 기이한 것은 생각도 못 했었다.
“응, 그런데 음식은 배고파서 먹진 않아. 그냥 재미로? 본체만 이 모습일 뿐, 본질은 영령과 화령이야.”
구미호가 인간이 되고 싶어 했듯이, 영령도 그런 욕구가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호리병을 원했던 것이고.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신기한 일이, 눈앞에 펼쳐진 하루였다.
물론 일반인들의 기준뿐만 아니라 호족에게도 말이다.
홍미연과 설희는 두 여자애를 손으로 콕콕 눌러보며, 이것저것 확인을 해보는 중이다.
‘어머! 거기를 만지시면 어떡해요?’라는 아카의 헛소리도 들렸지만.
“아들? 얘네들을 압구정 집에 데려가야 할 건데? 어떡하려고? 주워 왔다고 할래?”
“허억!”
전혀 생각지 못한 난관이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