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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재능을 삼켜라-55화 (55/250)

55화. 선택한 보물 넷 그리고 불의 아기

아카가 말하는 것은 호리병이었다.

청동 재질의 호리병인데, 입구는 봉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표면엔 고대 문헌에서나 등장하는, 불가사리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몸은 곰을 닮았고 머리는 코끼리와 비슷하다고 기록된 그 불가사리 말이다.

설화에서는 쇠를 먹어치우는 동물로 나오지만, 불교에서는 불을 먹고 사악한 것을 막는 존재로 알려졌다.

오래되어 보이는 골동품 같기에, 태월은 호리병을 뒤집어 바닥을 보았다.

골동품 도자기 감정 시, 바닥 면도 살펴본다는 걸 알기에 해본 것이다.

‘妖怪靈氣群集封印甁’

“응? 요괴영기군집봉인병? 요괴의 영기를 한곳에 모아 봉인한 호리병이란 뜻이잖아?

사악한 것이 들어있는 것 같은데, 왜 탐내? 이런 건 딱, 도깨비 먹잇감밖에 안 되는데.”

“악! 그건 정화해선 안 돼! 그러면 능력은 사라지고, 그냥 영혼 에너지만 생길 뿐이야.

그, 그리고 나 그거 먹으면 확 성장, 아니 진화까지도 가능할 것 같아! 제발, 나 호족 할게, 가입 좀 시켜줘!”

아카가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혹시 삿된 탐욕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영혼 에너지를 눈에 둘러 아카를 살펴보았다.

‘엥? 삿된 탐욕보단 흥분? 열망? 뭐 그런 건가 보네. 저게 대체 뭐지? 찜찜하네.’

아카의 애절한 소원에 설희가 한마디 한다.

“아카? 호족이 어디 남태령 고개의, 산적 소굴이라도 되는지 알아? 뭘 아무나 가입해?”

“힝! 나 가입하게 해줘. 앞으로 잘할게.”

너무 간절해 보여 인심을 쓰려는 설희다.

“그럼 나를 앞으로 누나로 깍듯하게 모실 수 있겠어?”

“응응, 언니, 사랑해요.”

“헐? 너 여자도 아니라며, 여성체야?”

“저, 저 요괴들이 전부 여성체라서. 그러니 나도 여성체가….”

설희가 약속은 했지만, 그녀 또한 찜찜하긴 했다. 그러나 호족으로 받는 건 말도 안 되기에, 자기가 고를 것에서 하나를 양보해야 했다.

“그럴 필요 없어. 내 걸로 할게.”

“아냐, 내가 약속하기도 했고, 아카를 이참에 말. 잘. 듣는. 착한 동생으로 만들어야겠어.”

아카가 속에 들어있는 본질까지 본다는 것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태월이다.

“아카야? 너 이제 소원 풀었으니, 여기에 있는 것 중 귀한 것 좀 찾아봐.”

“으응, 알았어.”

이대로 돌아다니다간 2층까지 해서, 반나절은 걸릴 것 같았다.

서고가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한 시간도 안 걸려, 아카가 찍은 것들을 모아왔다.

숫자는 5개였다. 물론 아카의 기준일 뿐이다.

“허리띠? 요대라고 해야 하나? 이게 뭐야.

가죽도 아니고 철편인가?”

설희가 요대를 들어 허리에 차본다.

허리띠로는 좋았는데, 자동으로 알아서 허리조절이 된다.

검은색을 띠고 있어서, 검정 가죽 벨트 같기도 하다.

“그거 늘어나는 채찍일 거야. 에너지를 두르고 때리면 웬만한 귀신들 기절할걸?”

“오? 잘되었네? 우리 호족들이 방어는 잘해도, 공격기가 거의 없거든. 그럼 난 이거!”

태월은 남은 것들을 바라보다, 철편 같은 걸 들어보았다.

“이거 서고에 있던 거 아냐? 철판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 서고에 두었나 보네. 선들이 그어지고, 이상한 점들도 있어. 서고에 있는 거 보면, 이거 문자란 소리잖아?”

“오빠? 그거 악보 아냐? 내가 음악의 역사 책을 저번에 사서 봤잖아? 거기 고대 기록 악보들이 저런 식으로 적혀있던데. 서양 것과 좀 다르긴 하지만….”

“아, 그럼 이 선들이 오선지 같은 거겠네? 그리고 이 점들이 음표?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아카는 이거 왜 이거 찍은 거야?”

“그 철판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여러 장 겹쳐져 있길래. 그리고 벽사 기운이 느껴졌어.”

태월도 자세히 금속판을 보니, 아카 말대로 중첩되어 붙여진 거로 보였다.

“오, 그럼 나에겐 어울리네. 난 이거.”

남은 3개는, 푸른 빛이 감도는 달걀처럼 생긴 구슬과 불상 하나 그리고 비녀였다.

태월이 아카를 쳐다보자, 고르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아카다.

“불상은 집에 두면 악한 기운이 범접지 못하는 그런 기운을 느꼈어. 비녀는 아까 저 채찍과 같은 의미의 무기 같아. 표창처럼 던지는 그런 거? 그리고 저 달걀? 하여간 저건 나도 잘…. 그냥 기운이 풍기는데 단단히 농축되어 있어. 아 진짜 알은 아니야! 그리고 난 이 호리병으로 만족해.”

“그럼, 내가 비녀를 고를게. 설희한테 주는 선물로….”

“오빠? 나 오빠한테 과하게 받았거든? 그러니 그러지 말아. 난 이 채찍이면 돼!”

설희의 고집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셋 다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저 그런 느낌도 들고 해서 달걀을 골랐다.

아카도 달걀 같은 데서 태어나지 않았던가?

알은 아니라지만, 다른 거보단 나을 듯해 부담 없이 택했다.

‘혹시 영기를 올리는 보약?’

이런 속마음도 없진 않았고.

태월과 설희는 남은 두 개를,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놓고는 밖으로 나왔다.

“어머? 다 고른 거야? 흠, 요대 철판 그리고…. 저 알 같이 생긴 거 어디서 난 거야? 전대 장로님이 찾다가 못 찾은 건데. 게다가 호리병까지? 묘한 것은 다 모아왔네?”

“저 알 같은 게 뭔데요? 어떤 항아리 속에 들어있더라고요.”

“아 그리로 떨어졌었나 보네. 아쉽게도 호족에는 맞지 않는 보물이긴 해. 영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최상의 몸을 만들어줘.”

“그럼 더 좋은 거 아녀요?”

“호족 본질마저 사라지는데도?”

“어떻게 사용하는데요? 단단하던데.“”

“영매술사가 영기를 써서?”

아마도 영혼 에너지를 말하는 듯했다.

정서영에게는 그런 기운이 없기에, 정확한 대답을 못 하는 것이고.

호족은 영매술사를 제외하곤, 전부 자연의 기운을 이용하여 술법을 펼친다.

이것은 일본의 무녀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호족의 영매술사가 특별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태월과 설희는 쓸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럼 이 호리병은요? 어떤 거죠?”

“바닥 글 봤을 거 아냐? 요괴들 기운 모아 놓은 거겠지. 호족의 최고 등급이, 책에선 구미호라고 전해지잖아. 그 당시 변신술 연구를 위해 모아놨다는 설도 있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을 잡아들여 가뒀다는 설도 있고.

그 안에 든 기운을 감당할 호족이 없을 거야.”

“아니, 왜 그런데요? 상극인가요?”

“그런 거보단 인간의 육신으론 어렵대. 혹시 딴생각하는 건 아니지? 네게도 좋은 건 아냐! 차라리 다른 걸 고르는 게 어떠니?”

“사람 몸에 쓸 게 아니니 괜찮겠네요. 그냥 이거로 할게요.”

아카가 쓸 거라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인간의 몸은 아니지 않는가?

“어휴, 규칙은 규칙이니 그래 알았다.”

그 외 물건에 대해선 정서영도 잘 몰랐다.

호족에 대한 역사와 기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호족은 달의 기운과 연관이 컸다.

특히나 호족의 영매술사는 만월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호족은 달을 숭상했다. 달의 음기로 호족에게 딸이 태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쩌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방계로 정했었다.

물론 그 규칙은 새로 바뀌었지만.

호족 태생의 문제도 있었는데, 음의 기운이 과하다 보니 양의 기운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명하는 경우가 절반이라고 했다.

듣다 보니 어느새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까부터 아카가 재촉하기도 했고.

가는 길엔 홍미연의 차를 타고 갔다.

관악산까지는 불과 30여 분 걸리기에, 데려다준다는 것이다.

관악산에 도착할 즈음 설희가 생각을 바꾼다.

“엄마? 나도 거기 아기 보러 갈래.”

“아, 나도 그런 설화 같은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실제 기록엔 없어.

우리 호족이 한반도에서 지낸 지 천년이 넘는데, 왜 한 번도 못 봤을까? 진짜려나?”

“엄마? 그럼 같이 가요. 설희도 보고파 하는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여차하면 이 도깨비로….”

태월의 말에 문득 생각나는 게 있는 홍미연이다.

“너 그 도깨비 문신 말이야. 사악한 것은 다 먹어 버리잖아?”

“네, 그건 그렇지요.”

“영혼만 가능하나?”

“귀기는 가능하더라고요.”

“혹시 암 같은 거나 그런 거도 없앨 수 있는 거 아냐? 그것도 어찌 보면 사악한 거잖아.”

태월은 엄마의 말에 갸웃거렸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다.

“악귀나 귀기나 다 기운 아닐까요? 육체적 종양은 그거랑 다를 거 같은데요?”

“그거야 다르겠지. 그런데 내 말은, 그 악성 종양에 나쁜 기운을 빼버리면? 그럼, 말 그대로 그냥 종기 같은 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거지. 일종의 용종 같은 거.”

설희가 그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살짝 끼어든다.

“악귀나 귀기나 다 정신체거나 기운들이지?

스트레스도 정신적으로 나쁜 기운 아냐?

그리고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들도 그렇고.”

“음, 그건 암 같은 거보단, 그나마 연관성이 있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에겐 써본 적이 없어. 영혼에 타격을 줄 수도 있잖아.”

태월의 말처럼 함부로 시도해볼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아들? 연쇄살인마라면 어때?”

“그런 존재라면 양심의 가책은 없긴 하네요.”

홍미연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걸로 도깨비 문신에 대한 이야긴 마무리되었다.

관악산의 암자에 차를 주차시켰다.

“정확히는 몰라. 대략 시간은 가까워지고 있긴 해. 그러나 언제라고는 장담 못 해.”

“엄마? 오늘 우리 야영 어때? 설마 아침을 넘기진 않겠지.”

“호호, 그럼 우리 셋이 야외에서, 오붓하게 처음 있어 보는 거네? 너무 낭만적인데?”

태월은 숙소에서 모포 4개를 꺼내 배낭에 넣고, 텐트 가방을 그 위에 올렸다.

필요한 물품들도 챙겼다.

“이 정도면 될 거예요. 이제 올라가죠?”

“오, 야영을 종종 하나 보네?”

“네, 혼자 있을 땐, 정상 근처에서 종종 해요. 맑은 날엔 별 보는 재미도 꽤 있거든요.”

셋은 아카를 따라 부지런히 걸어 올랐다.

산의 정상을 10여 분 남겨 놓고, 아카가 몸을 멈추어 선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빠져, 5분 정도 걸어가게 되었다.

암벽 틈 사이에 커다란 공간이 뚫려 있었다.

그 안에선 뜨거운 열기가 솟아났고,

“아 다행이네, 아직 깨어나기 전이야.”

“언제 깨어날 거 같은데? 그런데 재촉은 왜 했던 거야?”

“얘한테 내 일부를 남겨 두고 왔었거든.

정확하게는 예측 못 해도, 대략은 알 수 있을 거 같아서였어. 이 상태면 한두 시간이면 태어날 것 같은데.”

아직 2월 말이라 산 기온은 낮은 편이다.

그래도 셋은 정령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꼭 지켜보고 싶었기에 인내를 택했다.

적당한 장소를 골라 바닥을 고르고, 바닥 비닐을 올린 후 텐트를 쳤다. 텐트 안에 모포 하나를 깔고 그 위에 앉았다. 작은 가스난로를 켜두고, 모포를 두른다.

셋은 오랜만에 가족의 향수에 젖은 상태로,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었다.

물론 밖의 상황은 아카가 지켜보고 있고.

두 시간 가까이 지났을 무렵, 아카가 신호를 보냈다.

“나가보죠? 시간이 되었나 봐요.”

셋은 텐트를 나와, 뚫린 공간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왔다.

처음엔 변화가 없다가 5분 정도가 흐르자, 공간 속에서 붉은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황홀함에 취해 다들 가까이 다가갔다.

-쉬 리링!

어른 주먹 정도의 불꽃이 위로 올라와 넘실거렸다.

태월은 그게 아름다워,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내밀었다.

-쉬 아악! 꿀꺽! 히 이익!

다들 놀라서 눈이 커졌다.

왼손의 도깨비 문신이 덥석 먹어버린 것이다.

“헉!!”

태월 자신도 너무 황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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