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졸업식과 호족의 보물창고
아카의 이야기는 여름 방학 때의 일과 연관이 있었다.
태월은 여름 방학에 관악산에서 있었기에, 그 당시 아카도 함께 따라와서 지냈다.
그때 불의 기운이 강한 관악산에서, 아카가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어떤 한 가지 기운이 수천 년을 이어 한곳에 머물고 쌓이게 되면, 자아를 가진 영성이 생겨나거든?”
“응? 너도 쌓이고 모여 새로 탄생한 거잖아? 그것도 그럼 영령이야?”
“나하고 원인은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해. 그렇지만 영령은 아니야. 난 정신체고 그건 자연의 기운이야. 정령이라 부르기도 하던데.”
“응? 실제로 그런 게 존재해?”
“하찮은 귀기도 쌓이면 어떤 작용을 하잖아? 그런데 수천 년이 모인 건데, 아무 일 없겠어?”
“그리 생각하면 또 그리되네. 그래서 그 관악산 아기가 어떤 상태인데?”
“불의 기운인데 자아가 곧 생기려나 보더라. 특이해서 콕콕 찔러보니 살짝 움직이더라고.”
“몸이 깨어난다는 의미가 자아가 깨어난단 뜻이지?”
“자아가 깨어나면 더불어 몸도 태어나거든?
반응으로 볼 때 봄쯤에는 깨어날 거 같아.”
“그럼 졸업하고 가면 되겠네.”
***
2월 중순이 지나 드디어 태월은 국민학교 졸업식장에 서게 되었다.
이제 태월은 11살이지만, 같이 졸업하는 학생들과 비교해도 평균보단 더 컸다.
키가 더 커서 170 정도다.
“큰어머니 그리고 이모들 오셨어요?”
태월이가 대외적으로 큰어머니라 부르는 사람은 홍미연이다. 주변 사람들이 있을 때만 그리 부르는 중이고, 실제로는 엄마라 부른다.
또 이모라 부르는 사람들은, 홍미연의 사저와 사매들이다.
“졸업 축하해! 설희보다 일 년 빠르니 딱 오빠감이 맞긴 맞네. 호호”
“오빠! 졸업 축하! 일 년만 기다려. 놀아줄게.
작은 엄마는 더 이뻐졌네? 혼자 좋은 거 몰래 드시나 보다. 작은 아빠는 또 어제 술 드셨죠?”
“오빠, 졸업 축하해요.”
“태월 오빠! 생일 축축!”
“오빠! 나도 축하!”
오빠라고 부르는 애가 많아진 이유는, 이모들이 데리고 온 4명의 딸 때문이다.
그 덕분에 꽃다발에 파묻히다시피 한 태월이다.
설희가 말하는 작은 엄마와 작은 아빠는, 조민희와 박승철이다.
홍미연을 조민희는 언니라 칭하고, 박승철은 형수님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그들은 관계 정리가 되어 있는 상태다.
딸의 애교가 늘 그리웠던 박승철은, 특히나 설희에게 살갑게 대하고 있다.
아들의 친여동생이니 자기에게도 딸이라 여긴다.
“우리 설희는 볼 때마다 더 이뻐지네? 형수님하고 연락이 잘 안 되니, 기획사에서 우리 집에 자꾸 전화하더라. 대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안 거지?”
“호호, 당신이 범인인데 몰랐어? 전에 설희가 체육관에 왔을 때, 딸이라고 자랑하고 다녔잖아. 집 전화번호야 체육관 사람들 몇 명쯤은 다 아는 거고.”
“어허, 그 사람들 입이 그렇게 가볍다니….”
“어머, 은근히 책임회피네. 설희야 잠깐 나 좀 보자.”
“네, 작은엄마!”
설희는 조민희를 따라 사람이 적은, 나무 아래 벤치로 왔다.
“초경, 축하해! 이제 숙녀가 되었네?”
들고 있던 쇼핑백에서 꽃다발을 꺼내 준다.
“어머, 어떻게 알았어? 나 어젠데?”
“어떻게 알긴 언니랑 통화했으니 알지. 그리고 이건 내 선물!”
쇼핑백에서 또 다른 작은 상자를 꺼내 내민다.
“호호, 소소하게 만들어 봤어. 열어봐.”
설희의 눈이 반짝이며 개봉을 한다.
빨간 모자를 쓴 양의 얼굴이 펜던트로 된 금목걸이였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배시시 웃는 설희다. 그에 조민희의 얼굴도 흐뭇해진다.
“엄마! 고마워. 호호, 이거 이쁘네.”
조민희가 목걸이를 꺼내, 설희의 목에 걸어주며 축하를 한다.
“딸! 숙녀가 된 걸 다시 한번 축하해.”
그리고는 꼭 껴안아 줬다.
“어? 이제 초경인데 가슴이 꽤 있네?”
“윽, 엄마, 조용히 말해, 남들 듣겠어. 그리고 이건 유전인가 보던데.”
“호호호, 하긴 언니도 빵빵하더라.”
다 함께 모여 졸업 축하 사진을 찍고, 도산공원으로 이동하였다.
구정 국민학교 주변 식당들은 이미 축하객들로 거의 자리가 없다.
태월의 축하 일행도 십여 명이고, 더구나 삽살개도 두 마리가 있다.
그래서 미리 도산공원 쪽에 있는 집으로 계획해놨다.
무슨 집이냐고? 그 귀신이 살았던 128평의 이층집, 태월이 그림 작업실로 쓰던 그 집.
TW 건설에서 리모델링도 해놨기에, 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와, 집이 굉장하네? 그런데 여기 빈 집이야?”
“호호, 우리 아들이 돈 벌어서 산 집이에요.
여기 겉으로 보기엔 2층이지만 실제는 지하 1층에 지상 3층 주택이랍니다.”
아들이 산 집인지라, 자랑도 하고 싶어서 일행들을 각층으로 데리고 다녔다.
“층고가 꽤 높네? 여긴 다른 용도로 써도 좋겠어. 그런데 여길 놀린다고?”
“놀리는 건 아니었고요. 전에는 아들이 아틀리에로 썼었지요. 자 이제 마당에 차려진 음식을 없애러 갈까요?”
마당에는 이미 아카가 삽사리들과 뛰놀고 있었다.
출장 뷔페를 부른 것이라, 음식은 넉넉하고 다양했다.
뷔페에 제일 신난 것은 이모들의 딸 넷이다.
호족의 태생들이라서 꽤 이뻤고, 크면 남자들이 줄을 길게 설 것이다.
그중에서 군계일학은 설희였지만.
“태월아? 내일 본가로 와보련?”
이 말을 하는 사람은 홍미연의 사저인 정서영이다.
“아, 호족 본가요? 거긴 왜요?”
호족에 대해선 이제 태월도 알고 설희도 안다.
출생의 비밀을 밝히고 난 다음 날, 홍미연에게서 둘이 따로 들은 것이다.
태월과 설희는 그때서야 태어날 때 벌어진 일들이 전부 이해가 되었다.
갑자기 살인귀들이 그랬다고 했을 땐, 뭔가 빠져 있는 퍼즐로 여겼었다.
“왜긴? 원래 너와도 관련 있는 곳이고, 또 줄 것도 있으니 그렇지. 설희도 올 것이니, 편하게 생각해.”
“네, 그럴게요. 점심 때쯤 가면 되죠? 오후엔 어딜 가봐야 해서요.”
“그러렴, 그리 알고 있으마.”
홍미연의 사저인 정서영은, 현재 호족의 제일 큰 어른인 셈이다.
79년에 그 사태로 살아남은 사람 중에, 서열이 제일 높기에 그리된 것이다.
이모부라는 사람은 외국에 있다는데, 그것에 대해 자세히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 딸의 생김새만 보면 외국인은 아닐 것이다.
시끌벅적한 태월의 국민학교 졸업 축하 잔치는 그렇게 지나갔다.
***
원래 호족의 본가는 경주 쪽에 있었다.
그러나 79년에 일본 닌자들과 무녀들의 급습으로 인해 절반 이상이 소실되었다.
그래서 주요 물건들은 전부 새로 마련한 본가로 이동시켰다.
적에게 이미 노출된 곳을 다시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경주 본가는 술법으로 흔적을 지운 상태고.
호족의 새로 만든 본가는 구룡산에 있다.
구룡산 정상은 해발 307.7m로 서초구 염곡동, 내곡동, 양재동과 강남구 개포동 일대에 위치한 산이다.
관악산, 청계산, 우면산 등과 산자락이 이어진다.
열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데, 인근을 지나던 임신한 여성이 그걸 보고 놀라 소리쳤다.
그 일로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아홉 마리만 승천 되었다고 해서 구룡산이다.
그리고 그 죽은 용이 있던 자리가 물이 되어, 양재천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그래서인지 구룡산에는 9개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룡산 기슭에 세종대왕이 묻힌 영릉이 있었는데, 여주로 이장하였다.
바로 그 자리에 현재 국가안전기획부 즉 안기부가 들어서 있다.
호족에서도 그런 구룡산에, 본가를 마련한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닌자들이 다시 찾아내어, 이곳으로 침투를 시도하기엔 걸리는 것이 생겼다.
잘못하면 대한민국 정부와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호족의 본가는 그 아홉 계곡 중에 하나의 계곡에 자리 잡았다.
호족의 역사가 깊었던 탓에 정부 쪽 인맥도 당연히 있었다.
그들이 힘을 써서 계곡 중 하나를 정부로부터 불하받을 수 있었고, 이전을 몰래 돕기도 했다.
태월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빠? 혼자 왔어? 점심은?”
“응, 석준이 형이 데려다주고 회사로 들어갔어. 점심은 오다가 간단히 했고. 넌 왜 여기서 기다려?”
“시간도 남아서 여기에 내려달라고 했지.
엄마랑 큰이모가 기다려. 들어가자.”
빨리 가자며, 설희가 태월의 손을 잡고 끌고 간다. 설희도 이곳을 오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호기심이 많은 상태라, 빨리 가고 싶은 것이다.
본가 안쪽까지 차량으로 바로 갈 수 있었으나, 그전에 내려서 주변 구경을 하면서 온 것이다.
“내가 업어 줄까? 산길이라 힘들 텐데.”
“아이고, 저번에도 관악산에서 날 업고 가다 넘어져 놓곤?”
“아, 그거야. 아카가 눈앞에서 하도 장난쳐서 앞을 못 봐, 그리된 거지.”
“다 와 가는데 뭐. 다음에 관악산 가면 그때 업어줘.”
설희는 아빠가 없어서인지 태월이 업어 주는 걸 좋아했다.
아마도 아빠의 등이 그리웠을지도.
본가의 닦인 평지는 오천 평은 넘지만, 건물 규모는 생각보단 크진 않았다.
일부만 건물이 서 있고, 나머진 빈 땅이었다.
인원도 적기에, 현재 필요하지 않은 건물은 세우지 않은 것 같다.
“오느라 수고했어. 건물들을 소개해 줄게.”
정서영의 뒤를 따라 몇 개의 건물 외부와 내부를 구경하러 다녔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들른 곳에서 멈춘다.
“이곳이 너희가 들어가 볼 곳이야.
우리 호족이 긴 세월 동안 모아 놓은, 서적들과 기물들이 보관된 곳이지.
이곳에서는 한 사람당 평생 두 개의 물건만 고를 수 있어. 그러니 너희도 한 개나 두 개를 골라 나오도록 해. 운이 좋으면 자신과 어울리는 것도 취할 수 있겠지. 나도 여기 있는 것의 일부만 알 뿐. 원래 알고 계시던 장로님은 그 당시 돌아가셔서….”
설희의 방울과 태월의 종은, 사실 홍미연이 과거에 고른 두 개였다.
그것을 딸에게 물려준 것이고.
정서영의 옆에 있던 홍미연이 문을 열어준다.
“아들! 딸! 행운을 빌게!”
“호호, 알았어! 도깨비방망이라도 건져올게.”
“엄마, 천천히 둘러보고 올게요. 쉬고 계세요.”
태월과 설희는 둘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과거에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전기가 들어와서 조명등이 켜져 있는 상태다.
“와아, 여기 한 300평은 될 거 같지?”
“흠, 2층까지 하면 500평은 돼 보이네. 천 년 이상 모았다고 하니, 이 정도가 되는 게 이상하진 않네.”
“2층은 서고로 보이는데, 난 여기 1층에서만 찾아야겠어. 이 넓은 데를 언제 다 봐.”
“그럼 1층부터 구경해보자. 시간 여유는 많으니, 천천히 보도록 해.”
처음엔 같이 다니긴 했는데, 물건에 따라 구경하는 시간들이 달라져 떨어지게 되었다.
한 시간 정도를 1층서만 다니는데도 반도 못 보았다.
“어? 아카! 거기서 뭐 해?”
멀지 않은 곳에서 설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카가 또 사고를 치는 것 같아, 태월은 그리로 향했다.
“나도 호족 가입할게. 이거 나 가지면 안 돼?”